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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4) (1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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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마법사3

*

끼이익.

마탑의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밤이 깊은 시각이었다.

“제드, 자네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비상한 재주가 있군.”

“그렇습니까?”

“저 마탑의 원로님들도 그렇겠지만, 나도 자네에게 궁금한 게 참 많아. 하지만 그걸 다 묻는다고 해도 자네는 대답해주지 않을 테지.”

제드는 그저 살짝 미소 지을 따름이다.

‘실로 수수께끼의 마법사로다.’

자신만이 아니라, 라르곤 마탑을 발칵 뒤집어놓고도 담담하다. 가만히 있을 때는 정말로 평범한 듯 보이는데, 별안간 눈빛이 번득일 때면 폭풍이 휘몰아치듯 모든 것을 압도한다.

‘필시 그것이 본 모습이겠지.’

“일이 다 끝날 때까지 마탑에서 머물러도 될 것을 굳이 나오겠다고 한 건 다른 볼 일이 있어서인가?”

“예, 따로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앞으로 쓸 디바이스도 제 눈으로 보고 고를 생각입니다.”

“그렇군. 불과 사흘 남짓의 짧은 여정이었는데, 자네와는 오랜 시간 함께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 말이 통하는 벗을 만난 기분이랄까.”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되겠죠. 베른님이 제가 생각한 그대로의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허허. 어쩐지 그 말의 의미가 불길하게 들리는군.”

“그 직감이 아주 빗나가진 않을 겁니다.”

베른의 얼굴이 굳었다. 그 말의 의미가 전쟁을 뜻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드는 굳이 덧붙여 말하지 않았다.

‘경고는 할 만큼 했다.’

라르곤 마탑에도, 베른에게도.

나머지는 이제 그들의 선택에 달렸다.

“인연이 닿으면 또 뵙기로 하죠.”

제드는 몸을 돌렸다.

작별 인사가 굳이 길 필요가 무엇이던가.

하지만 베른은 제드와는 달랐던 모양이다.

“레지앙.”

불쑥 들려온 말에 걸어가던 제드가 멈춰 섰다.

“그곳으로 가면 자네가 있는가?”

“예, 저는 그곳에 있습니다.”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훗날의 만남을 약속했다고 하기엔 모호한 끝인사였으나, 제드는 직감했다. 그와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과연, 이번엔 이 도시가 불타는 일은 없을까?’

제드는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만약 정말로 역사가 바뀌어 이 그레즈라는 왕국의 심장부가 타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연 긍정적인 일일까.

라이곤 왕국은 도태됐다.

구시대라는 시류의 늪에 사로잡혀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

그뿐이랴. 이 작은 나라 곳곳에는 온갖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있다. 지방 귀족의 수탈은 극심하였고, 시민들의 분노는 차곡차곡 쌓여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왕정은 힘을 잃었고, 정쟁은 점점 심해지고만 있었다.

그렇기에 해방전쟁이 발발했을 때, 시민들은 기꺼이 공화국 뜻에 동참하였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 올 것임을 의심하지 않고서 말이다.

‘라이곤이라는 나라의 형태를 남겨둔다면 피의 쇄신이 필요하다. 어떤 형태로든 말이야.’

중요한 것은 그 칼을 누가, 어떻게 휘두르느냐였다.

정통성과 명분, 그리고 실리.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한 사람이 떠오르긴 했다.

그 사람을 잘 이용한다면 더 많은 것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구태여 그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제드가 하고자 하는 건 라이곤 왕국을 회생시키는 일 따위가 아니다. 그의 목적은 그보다 더 멀리 시대의 저편에 있었다.

‘그게 더 이득이 된다면 그렇게 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다시 한번 불타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테지.’

그것이 엄청난 희생을 동반한다고 해도 말이다.

곧 밤의 거리 속에서도 대낮처럼 환한 빛에 휩싸인 거리가 나타났다. 마탑의 거리.

무수한 인파 속에서 제드는 천천히 걸어갔다.

크고 작은 가게들이 있었고, 화려하게 치장된 디바이스도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제드가 원하는 것은 그런 기성품이 아니었다.

제드는 마탑의 거리 골목으로 들어갔다.

대낮처럼 환한 거리와 달리 이곳에는 퀴퀴한 냄새와 어둠이 음습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골목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꽂혔지만, 제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돌아서 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제드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제드의 앞을 가로막는 사내 둘의 눈빛에 살기가 맴돌았다.

“가진 거 다 내놔. 죽고 싶지 않으면.”

“비켜. 경고는 한 번뿐이야.”

“뭐야? 이 비실비실한 새끼가 죽고 싶은······ 커억!”

살벌하게 협박하던 사내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제드의 손가락 끝에서 날아간 마탄이 단숨에 복부를 후려치고 치솟아 턱을 부숴놓았기 때문이다.

눈을 까뒤집으면서 널브러지는 사내의 모습에 다른 한 명이 기겁하며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제드는 곧장 손가락을 튕겼다.

쐐액!

어둠을 꿰뚫고 날아드는 마탄은 단숨에 사내의 허벅지를 관통했다. 실이 끊긴 것처럼 시꺼먼 바닥에 쿠당탕 널브러지는 사내.

“흐아아악! 내, 내 다리!”

고통에 겨워하는 사내에게 저벅저벅 걸어가는 제드의 눈빛이 서늘하다.

“경고는 했을 터.”

“사, 살려······ 살려만 주십시오! 제, 제가 감히 주, 주제도 모르고 마, 마법사님께······.”

목숨을 구걸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제드의 눈빛엔 변함이 없었다.

사람의 가치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기회란 늘 주어진 게 아니다. 모든 행동엔 책임이 따른다.

퍼퍽!

쏜살같이 포물선을 그리며 뻗어 나간 두 개의 마탄은 쓰러진 둘의 머리로 그대로 꽂혔고 골목엔 적막이 드리웠다.

압도적인 폭력 앞에 골목의 약탈자들은 숨을 죽였다. 일진이 사납다. 이 거리에 눈 하나 깜짝 않고 사냥하는 포식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약육강식. 밑바닥의 본성이 드러나는 이 골목에서는 그게 곧 법이다.

골목은 곧 끝났고, 그 너머에는 다소 조용한 분위기의 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마탑의 거리 외곽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특별한 것들만을 취급했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제드는 그 중 한 가게의 안으로 들어갔다.

코를 찌르는 시큼한 시약의 냄새와 매캐한 연기가 가게엔 가득했다. 그리고.

“흐음, 이거 아주 무서운 손님께서 찾아오셨군. 피냄새가 진동을 하잖아.”

연기 너머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이프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그는 험악한 인상의 난쟁이였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군.’

제드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제드를 처음 보는 거겠지만, 제드는 아니다. 그는 훗날 동부의 제국 토르가로 흘러들어와 제국 대장간과 병기창을 책임지는 실무자가 되기 때문이다.

안톤 라그노푸스.

그게 그의 이름이었다.

“맞춤 무기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건방진 인간이군. 다짜고짜 요구부터 하다니. 다른 크고 좋은 가게도 있는 것 같은데, 왜 곧장 날 찾아온 거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꼭 나를 알고서 찾아온 것처럼 말이야.”

“지나가다가 이야기를 들었어. 그쪽이 물건을 꽤 잘 만든다고 말이야.”

“흥.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는군. 됐어. 돌아가. 나는 귀찮고 잔인한 인간과 얽히는 건 딱 질색이야. 다른 데를 알아봐.”

“그럴 순 없지. 나는 안톤 라그노푸스, 그쪽이 만드는 물건에 푹 빠진 사람이거든.”

꿈틀.

나른하게 담배 연기를 내뿜던 안톤의 눈빛이 무겁게 변했다. 흘려들을 수 없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인간, 정체가 뭐야? 어떻게 내 성씨를 알았어.”

“글쎄. 그쪽과 나 사이에 적잖은 연이 있다고만 해두자고. 지금 중요한 건 나는 다른 사람의 솜씨 따위는 필요 없다는 거야. 안톤, 나는 오직 당신의 솜씨가 필요해. 내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낼 수 있는 디바이스는 오직 당신만 만들 수 있으니까.”

“······.”

안톤은 제드의 알 수 없는 기백에 압도되는 것을 느꼈다.

일말의 의심도 없는 확신. 그것은 일종의 믿음이라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결과를 말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 마법사는 뭐지?’

안톤은 아주 오랜만에 호기심이 동하는 것을 느꼈다. 귀찮은 일에는 얽히지 않는 게 그의 신조였지만, 그 신조보다 지금 느끼는 호기심이 더 강렬했다.

말에는 힘이 깃드는 법.

마법사의 말이란 더욱 그러하다.

“······괴상한 인간이로군. 안으로 들어와. 어디 뭘 원하는 것인지 들어나 보자고.”

디바이스란 마법사의 마법력을 끌어올리는 도구다.

먼 과거에서부터 그것은 지팡이의 형태로 존재해왔지만, 지금의 시대에 이르러, 그것은 지팡이의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목걸이, 귀걸이, 안경, 반지, 회중시계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는 디바이스는 마법사들 저마다의 개성에 따라서 만들어진다.

물론, 대개는 기성품의 한도에서 크게 오가지 않았고, 저마다 약간의 조정만 하면서 자신에게 맞게끔 길들인다.

그러나 제드의 요구는 그런 일반적인 수준을 아득하게 벗어났다.

“미쳤군. 이런 식으로 만들면 까닥 잘못했다가는 디바이스가 폭발해서 죽을 거다. 말도 안 되는 요구야.”

“걱정할 것 없어. 마법의 제어는 내가 한다. 따라서 쓸데없는 보조는 필요 없어. 증폭과 제어.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야.”

“오만하기 짝이 없군. 네놈이 가져온 그 최상급 마석까지 갈아 넣고 만들면 이 디바이스로 완성되는 마법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해. 딱 한 번만이라도 실수하면 폭사란 말이다.”

“실수 따윈 없다. 즉, 그런 일도 없단 얘기지.”

제드의 단언에 안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말이 안 통하는군. 만들어진 후에 후회나 하지 마.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내가 만드는 물건에 실패란 없어. 그쪽이 요구한 대로 만들 테니까, 나중에 이 마석 값을 물어내라느니 헛소리를 늘어놓지 말라고.”

“그게 걱정이라면 계약을 하지. 내 요구대로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나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을 거야. 마법사의 계약이 무슨 뜻인지는 안톤, 당신도 알 거야.”

“흥. 좋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어디 두고 보자고.”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어?”

“넉넉잡아 한 달. 이 정도나 되는 마석은 나도 거의 100년 만이라 섬세하게 다뤄야 해.”

“좋아. 그럼 그때 다시 오지.”

제드는 양피지에 계약을 휘갈겨 넣었다. 요구한 것 이상의 결과물만 나온다면 어떤 책임도 전가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에 이름까지 써넣는 것으로서 이 계약서는 이제 마법적인 기능을 한다. 이름을 걸고 하는 약속에는 힘이 깃든다.

계약서 작성을 끝으로 제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를 나섰다. 홀로 남은 난쟁이 안톤이 탁자 위의 계약서를 힐긋 살폈다.

제드 크레인.

마나가 깃든 글씨가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역시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허. 거참. 빌어먹을 요정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군.”

파이프 담배를 쩝쩝대며 피우는 안톤.

흡사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기분이었다.

대체 저 소년의 정체가 뭘까.

수수께끼다.

난쟁이는 기억력이 아주 좋아서 웬만한 것들은 전부 다 기억하고 있는데, 저 소년은 단언컨대 처음 봤다.

근데 상대는 마치 안톤이 누구인지 훤히 다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것은 불쾌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호기심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창작욕도 마구 샘솟았다. 간만에 그의 모든 걸 쏟아부을 만한 걸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톤은 망치를 들었다.

*

그레즈는 왕국의 수도답게 대도시였다.

북쪽으로는 마탑의 거리라고 하는 마법지구가 펼쳐져 있었고, 남쪽으로는 대단위의 상업지구가 있었다.

각종 길드부터 유흥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 동안 발전해온 이 도시에는 명암이 뚜렷했다.

제드는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여관에서 나왔다.

‘한 달이면 딱 좋다.’

그 안에 마탑에서도 대금을 치를 준비가 끝날 터였다. 물자를 준비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아마 지금쯤 각 상인 길드의 사람들이 마탑에 불려 갔을 것이다. 준비한 물건을 본격적으로 사들여야 할 테니까 말이다.

물론, 그 문제는 마탑에서 알아서 준비할 것이다. 그러기 위한 계약이었으니까.

그동안 제드는 만나볼 사람이 있었다.

시끌벅적한 상업지구의 사람들의 틈을 지나면 유흥의 거리가 나왔고, 거기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빈민촌이 나타난다. 남부 도심의 외곽. 귀족의 수탈로 거리의 어둠에 들어가서 조직화한 약탈자들과 그들에게 착취당하는 말단의 약자들이 이 거리에 혼재되어 살아간다.

과거, 전후 제드는 이곳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의 때를 기다렸다.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에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그는 쓸모없는 인간에 불과했다.

그렇게 죽어가던 그를 살려준 사람이 있었다.

제드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익숙한 거리를 나아간다. 그리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 그곳에 작은 광장이 나타났다. 기억 속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풍경. 뒤쪽 건물이 무너지지 않은 까닭에 이곳은 아늑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광장에선 인형극이 한창이었다. 그 앞에 꼬질꼬질한 모습을 한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제드는 조용히 그 뒤에 앉았다.

초라한 배경 속에서 지저분하고 조잡한 봉제인형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말을 했다. 온화한 정령의 기운과 마나가 노닐고 있음이 느껴진다.

전에 없을 정도로 제드의 시선이 온화해졌다.

‘스승님.’

라데르 아일란.

그가 저 인형극 너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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