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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마법사1
밤이 다 되었을 즈음 둘은 토바스에 도착했다.
주점에 들어와 마주 앉은 노인과 청년은 일견 할아버지와 손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둘이 대화를 나누는 걸 듣자면 그런 일반적인 이들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자네도 마법사인 이상 더 많은 써클 연성에 관심이 없지는 않을 텐데, 왜 그걸 다 팔려고 하는가?”
“저에게 그건 당장 급한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당장 쓸만한 디바이스가 더 필요하죠.”
“디바이스가 없단 말이지. 그건 안 될 일이지. 마법사라면 말이야······.”
베른은 그렇게 주억거리며 제드를 가만히 눈에 담았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수수께끼다. 나이는 아직 한참 어린 듯한데, 행동거지와 말투는 그렇지가 않다. 제드는 온갖 다양한 지식에 해박하였고, 정체를 가늠해볼 법한 질문은 의뭉스러운 태도로 흘려내는 노련함도 있었다.
‘떠보는 건 그만두자. 안 통한다.’
베른은 그 결론에 도달했다.
이럴 땐 그냥 대놓고 묻는 게 낫다.
지금 급한 건 제드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었으니까.
“써클을 올리는 게 급하지 않기에 판다······. 그 말은 자네에겐 지금 가진 것 외에도 더 많은 마석이 있다는 얘기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허. 세상의 마탑이란 마탑이 눈에 불을 켜고 상급 마석을 찾고 있는데, 그게 지금 자네의 손에 다 있는 듯하군.”
“글쎄요. 마석을 찾는 이들이 어디 마탑뿐이겠습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제드가 슬쩍 흘린 말에 곧장 반응하는 베른.
표정을 보니, 전혀 모르는 눈치다.
‘뭐, 모르는 것도 당연하겠지. 마법계에 발표되는 건 한참 이후의 일이니까.’
“저도 얼마 전에 마을에 찾아오는 상인에게 들은 얘깁니다만, 콜렉 남작령에서 대대적인 광산 개발에 착수한 모양이더군요.”
“음, 광산 개발이라.”
조금 전까지 솔깃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베른. 그도 그럴 게 광산에서 채굴되는 마석 중에 상급 마석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쯧쯧.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광산에서 마석을 채굴하는 것만큼 돈 낭비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좀 묘한 것 같더군요.”
“무엇이 말인가?”
“광산에서 마석이 채굴되는 족족 전부 다 팔려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 말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러자 심드렁했던 베른의 표정에 호기심이 짙게 드리웠다.
“마석의 등급에 상관없이 말인가?”
“예, 모든 마석이 말입니다.”
“그건 이상한 일이로군. 대체 그걸 어디에서 전부 사들인단 말인가? 거기다가 규모까지 꽤 된다면······ 애초에 광산 개발의 주체가 남작가가 아니라는 얘기인데.”
제드의 눈빛이 반짝였다.
거기까지 유추하는가?
점점 더 마음에 든다.
그 사이, 베른이 더 물어왔다.
“그래서 마석을 사들이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나?”
“상인들의 행렬이 남쪽으로 줄을 이룬다고 하더군요.”
“콜렉 남작령의 남쪽. 그렇다면 렌시아 공화국인데?”
베른의 이마에 주름이 깊이 드리웠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렌시아 공화국은 라이곤 왕국과는 달랐다.
긴 시간 정체되어 변화가 없었던 라이곤 왕국과는 달리 렌시아 공화국은 바로 얼마 전까지도 혁명의 피바람이 불었다.
그리하여 총재정부라는 형태로 중앙집권화가 되었으니, 기존의 지방 귀족들이 몰락한 상태였다.
즉, 이번 일은 총재정부가 주도했다는 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왜? 대체 그 마석들을 어쩔 셈일까.’
베른의 고민이 이어지는 동안, 제드는 잠자코 있었다.
실마리는 다 던져주었다. 그 조각들을 맞췄을 때 나오는 그림이 무엇인지는 스스로 판단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알려줘도 받아들이지 못할 테니까.’
주점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
콜렉 남작령.
영주성의 안쪽 깊숙한 방.
방 분위기는 심각했다.
모여 있는 열 명 중 여섯은 상처를 입은 듯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 그런 그들의 모습 바라보는 마른 중년 사내의 콧수염은 파르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 그 꼴이 다 뭐냐.”
나지막한 물음에 서 있는 이들은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숙일 따름이다.
“왜 대답을 못해! 경들은 이 영지의 최정예다! 적의 정체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패배해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라도 했다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영주님.”
그들이 할 말은 그것뿐이었다.
왜냐하면, 콜렉 남작이 말한 것처럼 그들은 일방적으로 패배했기 때문이다. 경비대를 이끌었던 중대장 미노스의 얼굴은 특히나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광산의 입구로 들이닥치던 그 무지막지한 존재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전투력과 힘. 그 앞에선 수없이 훈련해왔던 것도, 단련해왔던 것도 무의미하였다.
“미노스 경이 대답해보라!”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지독하게도 일방적이었습니다. 어찌해볼 도리도 없이 말입니다.”
빠드득.
붉으락푸르락 변하는 콜렉 남작.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저들을 칼로 베어버리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자리에는 그들만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정하시지요, 영주님.”
“후. 한심한 모습을 보여드렸소, 루안 경.”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남작령은 이미 본국의 동맹이나 다름없습니다. 남작령의 일이 곧 공화국의 일이지요.”
루안이라고 불린 삼십 대의 사내는 부드럽게 말하며, 미노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미노스 경, 조금만 더 그 거인의 존재에 관해서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조금이지만 짚이는 바가 있어서 그러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거인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은 나무들이었소. 움직이는 나무.”
미노스는 그때의 순간을 다시금 설명했고, 루안은 잠자코 그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역시 틀림없다.
‘골렘이다. 그것은 분명히 골렘이야.’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루안은 당혹스러웠다.
일이 틀어지는 건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예상했던 요인 중에 골렘이 나타나는 상황은 없었다.
‘믿을 수가 없군. 설마, 라이곤 왕국에서 골렘을 벌써 배치했다는 건가?’
하지만 정작 콜렉 남작은 그냥 어처구니가 없다는 기색이다.
‘이 정도의 일을 영주가 모르고 있다고? 그건 말이 안 돼. 속이고 있는 게 아니야. 남작은 모른다. 저들도 마찬가지. 적어도 이곳에 있는 이들 중에서는 골렘을 아는 이가 없어. 그렇다면 마탑이나 왕이 독자적으로? 아니야. 그것도 말이 안 돼. 그런 정황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루안의 눈빛이 빛났다.
‘다른 나라가 배후에 있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쪽은 토르가 왕국이겠지.’
“루안 경, 뭔가 짚이는 바가 있으시오?”
“아니, 아닙니다. 짚이는 바는 있는데······ 아직 확실한 게 아니라서 뭐라고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군요. 일단 본국에 돌아가서 지원을 요청해야 할 듯싶습니다.”
“지원이라 함은?”
“무단으로 영주님의 땅을 점거한 적을 몰아내야지요. 공화국에서는 군사적 지원을 약속드립니다.”
“으음.”
콜렉 남작이 못마땅한 듯 미간을 모았다. 그렇게까지 하는 건 아무래도 일이 너무 커지는 일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남작의 속내를 알았음인가, 루안이 말을 덧붙였다.
“영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이번 일은 자연재해나 일반적인 몬스터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 세력이 이 일의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거대한 세력이라니? 루안 경,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누군가가 남작령의 번영을 바라지 않기에 이번 일을 계획적으로 방해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타국의 교활한 계책 같습니다.”
“······.”
콜렉 남작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 이 상황은 아무래도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
그레즈.
라이곤 왕국의 수도.
평원 위에 만들어진 백 년 왕국의 도시.
‘감회가 새롭군.’
큰 도로를 따라 도심으로 들어가면서 제드는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봤던 이 도시의 풍경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짓밟힌 도심에는 먹을 걸 찾아 어슬렁거리는 유령 같은 모습의 사람들만이 가득했었다.
전생에서 이 도시는 폐허로 전락했다.
“멋진 도시지 않나?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못 잊어서 결국 라르곤 마탑의 초청을 받아들이게 됐지.”
“몹시 사소한 이유로군요.”
“그런가? 나이가 들고 보니 때때로 그런 사소한 것들이 삶에 큰 원동력이 되더군. 한 곳에 처박혀서 마법에 매진한다고 해도 진리라는 것이 요원하게만 느껴지더란 말이지.”
“그렇다면 또 다른 의미의 진리를 찾으신 셈이군요.”
“또 다른 의미의 진리라. 과연. 그걸 그렇게도 보는가. 유쾌한 일이로군.”
베른이 웃으며 노새의 머리를 왼쪽으로 돌렸다.
북쪽으로 돌자, 건물 너머로 하늘 높이 뻗은 검은색의 탑 하나가 보였다. 거리는 꽤 되는 듯했는데도 한 번에 시선을 빼앗는다. 라르곤 마탑이다.
“이제 마탑이로군. 기분이 어떤가. 디바이스를 맞추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력을 손에 넣게 될 텐데.”
“글쎄요. 이제 겨우 시작점에 선 느낌입니다.”
“시작점이라 그 말도 맞는군. 근데 이제 이후에는 어쩔 셈인가? 다시 그 레지앙이라는 곳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예, 돌아가야죠.”
“마석 때문에?”
“맞습니다.”
제드의 대답에 베른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콜렉 남작령이 광산을 개발하는 것도 그렇고, 자네가 굳이 그 레지앙이라는 곳으로 돌아가려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그 산맥에 뭔가가 있다는 건 확실한 듯하군.”
“만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건 오직 사람뿐이죠. 그곳에 있었던 건 아무것도 변한 게 없습니다.”
“가치의 변화라. 공화국에서는 그 쓸모없던 마석의 가치가 변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드의 말에 베른은 입을 다물었다.
충격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베른은 아직 그 어떤 결론도 서두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콜렉 남작령에 광산이 개발되었는지, 그리고 그게 공화국으로 팔려나갔는지 말이다.
‘그리고 이 청년이 가지고 있는 상급 마석이 실물인지 어떤지도 알 수 없다. 허풍일 가능성도 아직 존재한다.’
그러는 사이, 수레는 어느새 마탑의 거리로 들어섰다.
이곳에도 사람은 많았다. 마법은 이제 실생활 이곳저곳에 스며들어 있었고, 그런 일상적인 것들마저도 아티팩트로서 저렴한 가격에 팔리곤 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마석 정제법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질 테니까.
그러는 사이 거리의 끝. 그곳에 웅장하게 하늘로 뻗은 마탑이 있었다. 마법으로 벼려진 탑.
오래전부터 인간은 마법을 통하여 하늘 저편에 존재하는 진리에 도달하고 싶어하였고, 그 결과가 바로 저 마탑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하늘 높이 뻗어 올라가기만 할 것 같았던 마탑도 시대의 흐름 속에서는 변한다.
마법사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국가의 생산력에 마법사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그들은 더는 세상과 단절된 채로 하늘 높은 곳의 이상을 추구할 수가 없게 됐다.
‘아니, 진리의 형태조차 변했다고 해야겠지.’
제드는 시선을 내렸다. 상념은 여기까지다.
“가세나. 나와 함께 들어가면 저 긴 줄을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게야.”
“좋습니다.”
제드는 사람들의 줄에서 벗어나 앞으로 향했다.
그런 두 사람의 앞을 검은색 로브를 걸친 사람이 막아섰다.
마법사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의 흐름이 강렬하다.
“누구십니까.”
“마탑의 초청을 받았소. 나는 베른 바일이라고 하는 마법사요.”
“어서 오십시오, 베른 님. 그런데 이분은 누구십니까.”
“그는 나의 손님이오. 마탑에 중요한 제안을 할 참이니,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죄송하지만, 그럴 순 없습니다. 초청받지 않은 분은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라르곤 마탑의 규칙입니다.”
문지기 마법사는 단호했다.
베른도 이럴 줄은 몰랐는지 난감해 하였다.
“끙. 마탑에 있어서 정말로 이득이 되는 이야기이니, 한 번 안에 이야기라도 전해보는 게 어떻겠소?”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외는 없습니다.”
“어허. 그러니까······.”
베른이 다시 설득하려고 하자, 제드가 그를 제지했다.
“때로는 몇 번이고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더 빠를 때도 있습니다.”
“응? 아, 아니······ 제드, 자네 지금 여기서?”
“안 될 것도 없죠. 그러는 편이 얘기가 더 잘 통할 테니.”
제드는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문지기 마법사가 경계하는 가운데, 제드가 주머니를 풀고 손을 튕겼다.
그 순간, 형형한 푸른색의 마석 하나가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고, 제드의 마나에 공명했다.
우우우웅.
“헉!”
“사, 상급 마석!”
줄을 서고 기다리던 이들 중 몇 명이 깜짝 놀라서 소리치는 가운데, 문지기도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그 역시 상급 마석을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라긴 이르다.
딱.
제드가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긴 순간, 주머니에서 두 개의 마석이 더 둥실 떠올랐다.
크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공명음과 빛. 그리고 출렁이는 마나의 질량까지. 그것은 틀림없는 상급 마석. 그것도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는 순도의 물건들이었다.
“이걸 마탑에 팔 생각입니다만, 쓸데없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다른 곳에 팔아야겠지요.”
그건 허풍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제드에게는 마탑의 권위와 명성은 아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꿀꺽.
굳은 얼굴만 하고 있던 문지기 마법사가 마른 침을 삼켰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제, 제게 권한이 없으니 지금 당장 이 사실을 안에 전하고 오겠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길 바랍니다. 시간의 가치란 저마다 상대적인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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