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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1) (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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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산4

광산의 입구.

우드 골렘이 좌우에 서 있는 이 대지 위에 제드가 섰다.

짓뭉개진 도로와 꺼진 땅.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짙은 피비린내. 제드에겐 익숙한 풍경이었다.

전투가 아닌 학살의 현장.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가 있었기에, 굳이 이렇게 죽이는 게 아니라, 적당히 쫓아내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제드는 안다. 대개 그런 방법이 다음에는 더 큰 싸움으로 번진다는 것을. 전장에서 섣부른 동정은 아군을 위험으로 몰아넣는다.

따라서 단 한 번으로 확실히 알게 해주는 게 낫다. 이 땅에 함부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말이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평화의 시대를 바라기에 싸움을 벌이고 적을 이토록 무자비하게 죽인다니 말이다.

하지만 제드는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하다면 그 어떤 수단도 강행할 셈이었다.

‘이건 끝이 아니다. 겨우 시간만 벌었을 뿐이야. 콜렉 남작은 바로 공화국에 지원을 요청할 테지. 그 후에는 공화국의 군대를 상대해야 한다.’

공화국은 남작령과는 달랐다. 그들은 세계패권을 노리고 있었고, 마도혁명의 시대의 중심에 있었다.

전생에 그들이 훗날 라이곤 왕국을 억압된 자유의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침공을 자행할 때, 보여주었던 군사적 역량은 대륙 전체를 뒤흔들어놓을 정도였다.

‘물론,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내가 전략적 우위에 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에 그 어떤 나라도 이 땅에 함부로 발을 들이밀지 못하게 하려면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해.’

제드의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무수한 마석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달그락거리던 마석들은 이내 허공에 둥실 떠올라 제드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앞으로 더 마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디바이스를 구할 때가 됐다. 마석을 한 곳에 쌓아둔 제드는 곧장 북쪽의 산자락을 따라 움직였다.

제드가 레지앙에 돌아온 건 꼬박 하루가 지나서였다.

집에 돌아온 제드는 곧장 채비를 갖추었다.

그나마 좀 쓸만한 디바이스를 구하자면 마탑이 있는 왕국의 수도 그레즈까지는 가야 할 터였다.

‘토바스를 거쳐서 그레즈까지 가자면 꽤 걸리겠지.’

거리만 따지자면 썩 멀지는 않았지만, 당장 말을 살 돈이 없는 게 문제였다. 정제한 마석을 팔면 되겠지만, 이 레지앙과 가까운 토바스에 이 마석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이가 있을까?

‘가다 보면 알겠지.’

제드는 작은 주머니에 정제된 마석을 모두 담았다.

제드가 정제한 마석은 총 이십여 개.

지금은 마석의 가치가 한창 높은 시기였으니, 최대한 팔 수 있는 만큼 팔아버릴 참이었다.

끼익.

집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어디 나가십니까?”

불쑥 들려온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빌이 있었다. 사냥에서 돌아오는 길인지 활과 화살을 메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동안 마을을 비울 참입니다.”

“······돌아온 지도 얼마 안 되셨잖습니까. 이렇게 갑자기 어딘가로 가신다면 마을 사람들이 불안해할 겁니다. 마법사님께서는 지금 이 마을의 인도자이십니다.”

“글쎄요. 제가 마을에 있는 게 좋은 일일까요.”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마법사님이 마을에 미래를 열어주시지 않았습니까.”

“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도 말입니까?”

빌이 놀란 표정을 했다.

전쟁.

아직 철이 없었던 때에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크고 작은 분쟁과 전쟁을 겪었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목도했다. 광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떠났다. 언젠가 땅에 썩어갈 시체 중 하나가 되어 스러져갈 것임을 알았기에 그는 부도 명예도 모든 걸 버리고 사람을 피해서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다.

그럼에도 아직 빌은 한 번씩 악몽을 꿀 정도였다.

“······그 수호신을 늘렸던 이유가 그거군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던 겁니까?”

“무관하지 않습니다.”

“······.”

제드는 빌의 반응을 살폈다.

잘됐다. 어차피 언젠가는 그도 알아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의 대응에 따라 그를 쓸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빌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이거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마법사님이 이 레지앙에 없어도 그 전쟁은 일어나는 겁니까?”

‘당돌하군. 이토록 노골적인 질문이라니.’

제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드리웠다.

“예, 일어날 겁니다. 시대의 흐름이 그러하니까요. 만약 그때가 되면 빌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어쩔 수 없이 싸워야겠죠. 살기 위해서.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 전쟁은 마법사님 때문에 일어난다고는 할 수 없는 거로군요.”

“그건 모르는 겁니다. 인과는 항상 뒤틀려있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법이니까요.”

“저는 그런 어려운 건 모르겠습니다. 근데 마법사님은 마을을 지키려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럼 된 겁니다. 레지앙은 마법사님이 필요합니다.”

단호한 빌.

그가 필요하다고 한다.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가 돌아오면 그때는 앞날을 준비하죠.”

제드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산에서 내려갔다.

빌은 한참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킨 빌은 천천히 주먹을 폈다. 식은땀이 손바닥에 흥건했다.

‘조금 전의 그 눈빛······.’

한순간이었지만, 제드의 눈빛이 번득였다.

빌은 발가벗겨진 채로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짐승의 앞에 선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조금 전 삶과 죽음의 기로 앞에 서 있었다. 그건 절대로 착각이 아니었다.

빌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

제드는 동쪽의 토바스를 향해 바쁘게 걸어갔다.

곧 산자락이 끝났다. 길은 맑은 하늘 아래로 구릉지를 따라 동쪽으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해가 머리 위를 지나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해가 다 질 즈음에는 토바스에 도착하겠군.’

갈림길이 두어 번 나왔을 때부터 길을 따라 걷는 이들과 짐 마차 따위가 한둘씩 보였다. 조만간 토바스라는 얘기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이보게. 토바스로 가는가?”

뒤에서 덜컹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힐긋 고개를 돌리자, 푸근한 인상의 노인이 노새에 수레를 묶어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잘 됐군. 나도 토바스를 지나가는 길이니 함께 가지. 자네는 발이 편해서 좋고, 나는 말벗이 있어서 좋고.”

“고맙습니다.”

제드는 수레에 올라탔다. 수레에는 짐이 얼마 없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레지앙입니다.”

“레지앙?”

노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 들어본 적이 없는데, 타지에서 왔는가?”

“아니요. 산골의 작은 마을이라서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 사실 나는 타지에서 왔다네. 저 남부에서 왔지.”

“그렇군요. 그레즈까지 가십니까?”

“눈썰미가 좋군. 그걸 어찌 알았나?”

“마법사가 먼 길을 떠날 때의 용무란 대개 거기서 거기가 아닙니까. 마탑에 용무가 있는 거겠죠.”

제드의 말에 노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걸 언제 알았는가?”

“처음부터 알았습니다.”

허. 노인은 작게 탄식했다.

“어떻게? 마나는 완전히 갈무리했는데.”

“오히려 그게 더 티가 납니다. 주변만 마나가 이상하게 흐르거든요. 마치, 밀려나듯이 말입니다.”

“허.”

노인은 터널웃음을 터뜨릴 따름이었다. 이렇게 간단히 자신이 누구인지 꿰뚫어본 이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 말인즉, 자네는 마법사란 얘기로군.”

“예, 아직 어설픈 수준입니다만.”

“겸손이 지나친 듯하군. 날 이렇게 알아보는 이가 흔하지는 않은데 말이야. 거기다 자네가 가진 물건도 그렇고 말이지.”

노인의 말에 제드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알고 있었다. 이 노마법사의 관심은 애초에 처음부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품속에 있는 마석에 있음을 말이다.

“제 물건에 관심이 있으신 모양이로군요.”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아직 자네 같은 어린 마법사가 가지고 다닐 정도의 물건은 아니니 말일세.”

“물건을 소유하는데 무슨 특별한 자격 따위가 있겠습니까.”

“허허. 그도 그렇군. 그런데 그런 대단한 물건은 대체 어찌 얻었나?”

“글쎄요. 운이 약간 따랐죠.”

제드는 그렇게만 말했다.

그러자 노마법사는 속이 바짝 타는 느낌이 들었다.

‘틀림없다. 저건 거의 최고 등급의 마석이야. 약간의 운? 그런 걸로 손에 넣을 게 아니야.’

탐욕이 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처음에는 분수에 안 맞는 물건을 운 좋게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눠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직 어린 나이인 것 같은데, 대체 어디에서 이런 마법사가 나타났지? 정체가 무엇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였다.

“하지만 저에게 과분한 물건인 만큼, 나머지는 그레즈에 가서 전부 다 팔아버릴 생각입니다.”

“저, 전부? 그 말은······ 마석이 여러 개란 말이로군?”

“예, 아주 작은 것들이긴 합니다만.”

꿀꺽.

노마법사가 마른침을 삼켰다.

하나가 아니란다. 거기다 그걸 전부 마탑에 팔겠다고 한다.

“허허허. 정말 잘 되었군. 그레즈까지 함께 가세나. 가는 길에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는 안 될 터이니 말이야.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아직 하지 않았군. 나는 베른 바일이라고 하네.”

“제드. 제드 크레인입니다.”

베른은 제드의 이름을 곱씹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에 없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제드는 그의 이름을 듣기도 전에 그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베른 바일.

그는 머잖아 이 땅에서 벌어질 해방전쟁에서 공화국의 마법사들에게 공포의 대명사가 되는 ‘붉은 재앙’이었다.

‘그를 이렇게 만날 줄이야.’

해방전쟁.

그때의 제드는 징집된 일개 병사에 불과했으나, 베른은 무너져가는 라이곤 왕국의 희망이었다.

골렘을 조종하는 적 마법사들을 정확하게 저격하여 불태웠던 그의 추적 마법은 공화국 마법사들에겐 그야말로 공포였다. 그가 있었기에 금방 끝날 뻔했던 전쟁은 조금 더 길어졌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전술이란 없는 법이었다.

머잖아 대응법이 나왔고, 강습병이 전열을 우회하여 진영 깊숙이 침투했고 ‘붉은 재앙’은 그렇게 전장에서 죽게 된다.

그리고 라이곤 왕국은 완전항복을 선언했으니, 지도상에서 라이곤 왕국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그때, 제드도 다시는 뛸 수 없는 몸이 됐다.

‘기묘한 인연이로군.’

그를 보기 전까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자그마치 수십 년도 더 된 옛 기억이었던 까닭이다.

거기다 당시의 붉은 재앙이라고 불렸던 마법사 베른은 일개 병사에 불과했던 제드에게는 너무나도 먼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었고 제드는 그 수레바퀴의 올라타 있었다.

‘운명의 신이여, 나를 가늠하는가?’

제드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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