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10) (10/124)

#   9 - 3719738

#

움직이는 산3

*

“하아암.”

“하하하. 많이 지겨우신 모양입니다.”

“뭐, 그렇지. 하는 게 없으니 시간도 안 가는군.”

“중대원들이 다 그 소리를 합니다. 그나마 처음에는 몬스터라도 퇴치했는데 말이죠. 솔직히 이 정도면 경비대를 두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뭐, 이곳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겠지.”

미노스는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이해는 안 됐다.

그레지안 산맥의 남부 자락의 마석 광산.

지금 그들이 지키고 있는 이 장소였다.

최근 계속 규모를 키우고 있는 이 일 때문에 한동안 조용했던 남작령은 최근 아주 북적였다.

“그런데 중대장님께선 이런 하급 마석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십니까?”

“글쎄. 나 같이 칼만 휘두르며 살아온 사람이 뭘 알겠나. 그냥 위에서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아는 거지. 뭐, 적어도 공화국에서는 필요하니까 이러는 거겠지.”

“그게 이해가 안 됩니다. 채석장이든 어디서든 쉽게 발견되는 게 이런 하급 마석이 아닙니까. 물론, 이 그레지안 산맥에 유난히 많은 양이 매장되어 있는 건 맞긴 합니다만.”

“필로스 중위, 자네는 다 좋은데 너무 알고 싶어하는 게 문제야. 그냥 그러려니 하면 마음도 편하고 좋지 않나.”

“그래도 궁금하지 않습니까. 공화국 상인들이 가져오는 금액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거기다 점점 더 늘어나고 있죠.”

“들은 바로는 공화국에서 어떤 마법 연구에 쓰인다고 하더군.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잘 되진 않아. 우리에게 너무 좋은 이야기라서 말이지.”

이 기이한 거래가 처음 논의되고 성사된 것은 불과 몇 개월 전의 이야기였다. 남부의 강국인 렌시아 공화국은 비공식적으로 남작가에 비밀리에 접촉해왔다.

국경을 맞대고 있긴 했지만, 예전부터 공화국과는 활발하게 무역을 이어왔던 콜렉 남작령이었다.

처음에는 좀 기이하게 여겼던 남작가였다. 공화국 정부가 이런 식으로 접촉해온 건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 내용이 더 터무니없었다. 그들은 남부 그레지안 산맥의 광산 개발을 요청해온 것이다.

그 초기 투자비용과 상세하고 구체적인 거래내용에 남작은 이 사태에 행정관료와 상인들을 한데 불러 모아놓고 그 요청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했다.

대다수가 공화국에 다른 속셈이 있다느니, 기만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했지만, 계약서와 조건은 도저히 거절하기 어려울 정도로 남작령에 좋았다.

공화국의 목적은 오직 마석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작은 반신반의하면서 일을 진행했다. 어차피 손해 볼 것도 없었기에.

곧 땅을 파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석이 채굴됐다. 하지만 그 마석의 등급 태반은 하급이었다. 어느 마탑에서도 취급하지 않을 것들이다.

그러나 렌시아 공화국에선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거래 계약서의 내용 그대로 모든 마석을 사들였다.

막대한 자금이 공화국에서부터 들어오기 시작하자, 콜렉 남작의 눈은 돌아갔다. 채굴량이 많아질수록 그들이 얻게 되는 수입도 뛰었다. 그야말로 땅을 짚고 헤엄을 치는 격이었다. 돈을 쓸어담을 기회였는데, 이걸 진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불과 수개월 만에 광산의 규모는 놀라울 정도로 커지게 됐고, 광부들의 수는 늘었으며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길을 정비하기에 이르렀다. 마석은 단숨에 영지의 주 수입원이 된 것이다.

“공화국 사람들이 전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이 정도 막대한 투자를 한 만큼 얻는 게 있기에 벌이는 일일 텐데······.”

미노스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히 생각을 더 해봐야 머리만 아팠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되겠지. 요즘 세상이 좀 빠르게 바뀌나?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른 세상이야.”

“저도 중대장님처럼 속 편하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미노스가 큭큭 웃다가 별안간 미간을 모았다.

“조금 전에 무슨 소리지? 필로스 중위, 들었나?”

“예, 들었습니다.”

듣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처음에는 광산의 수레가 오가면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건 진동이다. 땅으로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미노스와 필로스는 밖으로 나왔다.

그 진동은 광산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느낀 모양이었다.

미노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훑고 있을 때였다.

[너희가 침범한 이 땅엔 주인이 있다. 모두 썩 물러가라. 이것은 경고다.]

별안간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기괴한 목소리. 음산한 목소리는 흡사 사람의 것이 아닌 듯하다.

“히익! 사, 산의 주인이 노하셨다!”

“사, 살려주십시오!”

수레를 나르던 인부들이 겁에 질려 땅에 엎드렸다.

그러나 미노스의 눈빛은 날카롭게 변했다.

“감히 누가 주인임을 자처하느냐. 이 땅은 콜렉 남작령의 주인이신 슈리만 비오트 콜렉 남작님이 지배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썩 물러가지 않으면 피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경고다.]

“이 건방진······. 빌트만 소위!”

미노스가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저편에서 젊은 청년이 달려왔다.

중대 마도사 빌트만이었다. 빌트만의 눈동자에 신비로운 빛이 감돌았다. 마나의 흐름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머잖아.

“틀림없습니다. 마법입니다.”

그 순간, 미노스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가당찮구나. 이깟 우습지도 않은 마법 따위에 겁을 먹을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중대 전투 준비!”

미노스가 마나를 담아 우렁차게 소리쳤다.

곧 사방에서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달려와 대열을 갖추었다. 그들은 보통 훈련받은 게 아닌 듯, 순식간에 방진을 갖추었다.

“적 마도사의 위치를 찾을 수 있겠나?”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마나의 흐름을 따라 추적해보겠습니다.”

빌트만 소위가 눈을 감는 가운데, 미노스와 병사들도 사방을 경계하였다.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다시금 머릿속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쿠웅.

땅이 진동했다.

“허억! 사, 산이 움직인다!”

인부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산자락의 나무가 요동치며 움직였다. 그게 한둘이 아니다. 그것은 정말로 산이 움직이는 듯한 광경이었다.

*

미노스는 당황했다.

산이 움직인다.

그 말마따나 정말로 나무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이곳이 어딘가? 그레지안 산맥이었다.

예로부터 이곳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었으니, 어떤 몬스터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마법사인지, 귀신인지······ 무엇인지는 몰라도 상관없다.’

“두려워할 것 없다! 어떤 적이 앞에 나타난다고 해도 쓰러뜨릴 뿐이다!”

미노스가 소리치자, 남작령의 정예병인 그들은 이내 언제 당황했었느냐는 듯 그 자리를 지켰다.

그러는 사이에도 적은 다가오고 있었으니, 땅의 진동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빌트만 소위, 아직 멀었나!”

“큭! 죄, 죄송합니다. 마나를 추적할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지. 당장 화살막이 마법을 준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중대 마도사에게 너무 많은 마법을 바라선 안 됐다. 그들은 정식적인 마법사라고는 할 수 없는 이들로 기껏 1써클 내지 2써클로 전투에 필요한 몇 가지 마법만 익히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적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허. 정말로 나무가 움직인단 말인가?”

미노스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험한 산자락을 타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그 존재들은 나무였다. 하나하나가 3미터 남짓의 크기를 한 나무들. 근데 그 나무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우우우.

소름이 끼치는 울음을 흘리면서 말이다.

“······저렇게 큰놈들이 적이라면 방진이 의미가 없다. 뒤로 물러난다. 필로스 중위, 산병(散兵) 대형으로 대열에서 이탈해 불화살로 저것들을 태운다.”

“맡겨만 주십시오. 1소대 산병은 나를 따른다!”

그 순간, 방진에서 수십 명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이로써 방진의 대열은 크게 약화했으나, 어차피 저런 거대한 게 적이라면 밀집된 방진은 큰 효용이 없었다.

“다무트 중위도 산병 대형으로 이탈해!”

“옛! 2소대 산병은 나를 따른다!”

또다시 우르르 빠져나가서 좌측으로 돌기 시작하는 다무트의 2소대.

산병은 옛 무기인 활을 소지한 병사들이었다. 최근에는 산병교리 자체가 사장되는 추세였으나, 미노스 중대는 옛 시대의 전술교리를 그대로 채택하고 익히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엔 그게 옳았다. 나무를 태우는 건 불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미처 몰랐다. 그들에게 다가오는 나무들의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말이다.

미노스 중대의 1, 2소대가 좌우로 산개하여 자리를 잡고 활을 꺼내고 화살에 불을 붙일 때였다.

“피해!”

병사 중 누군가의 외침이 울려 퍼지기가 무섭게.

콰아앙!

커다란 바위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산병 대열의 정중앙을 휩쓸었다.

“아아악!”

“끄아아아······.”

바위에 정면으로 휩쓸린 병사들은 즉사.

튕겨 나간 이들은 뼈가 박살이 나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이십여 명이 전투불능에 빠진 것이다.

“이런 미친······ 산중에 투석기라도 있단 말인가?”

운 좋게 살아남은 다무트 중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어느새 바로 지척까지 다가온 커다란 나무가 커다란 팔을 크게 휘둘렀다.

퍼퍼퍼퍽!

순식간에 대여섯 명이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굴거나 바닥에 처박혔다. 곧 병사 중 몇 명이 불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그 불길은 우드 골렘을 태우기엔 그 화력이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꽝!

“끄악!”

높이 들어 올렸다가 내리치는 주먹질에 병사들은 짓뭉개졌다. 그 참혹한 광경에는 제아무리 잘 훈련된 병사들도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었다.

2소대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미노스가 창백해진 얼굴로 중얼거렸을 때였다.

“중대장님, 피하십시오!”

별안간 외침에 고개를 돌린 미노스는 또다시 대열로 쏟아지는 바위를 보면서 아연실색했다.

콰콰콰쾅!

일방적인 전투였다.

······아니, 이건 학살에 더 가깝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 그 자리에서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모습으로 죽었다.

그 후엔 대열 자체가 무너졌다.

느리게 움직이던 우드 골렘이 별안간 속도를 내면서 다가와 그 거대한 몽둥이 같은 팔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전투는 그렇게 끝났다.

이제 광산의 입구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 골렘 넷과 그 일대를 휩쓴 커다란 바위뿐이었다.

“경고했을 때 말을 들었어야지.”

현장에서 얼마간 떨어진 장소.

높은 지대 위에서 한 사내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짙은 갈색 머리칼에 깡말라 볼품없어 보이는 남자의 눈빛은 심연의 그것처럼 무거웠다.

그는 바로 제드였다.

우우우우.

커다란 바위를 내던졌던 우드 골렘의 대장인 아우로렐이 낮게 울었다. 그러자 광산 입구의 우드 골렘들 역시 이에 호응하듯 낮고 무겁게 울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