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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8) (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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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산1

레지앙의 일주일은 금방 흘러갔다.

그 시간 사이에 그 사이에 놀라운 일이 있었다.

“오오! 자랐다! 싹이 올라왔어!”

거래 품목에 있던 감자 중에 먹지 못할 정도로 싹이 많이 자란 감자들을 한데 모아서 그 부분을 잘라서 땅에 심어두었는데, 심는 족족 싹이 발아한 것이다.

식량의 거래량이 줄었다는 소식에 조금은 불안해하던 레지앙 마을의 사람들은 그 소식에 싱글벙글했다.

매일 같이 자라는 감자 싹은 예전에 실패했던 때와는 달랐다. 감자는 원래도 척박한 땅에서 키우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땅의 질이 달라지고 나니 심는 족족 싹이 났다.

‘식량 문제는 머잖아 해결되겠지.’

마음 같아서는 아우로렐이 가진 힘으로 어디까지 더 할 수 있는지 확인도 해보고 싶은 제드였다.

그러나 골렘에 깃든 정령의 힘을 적극 사용하기 시작하면 마나의 소모는 궤를 달리했다. 제드의 일주일은 농경지를 확장하고 마나를 모으는 것만으로도 후딱 지나갔다.

그렇게 십여 일이 흘렀을 때, 리아드는 다시 찾아왔다.

다수의 짐 마차가 연이어 마을로 들어왔으니, 그 마차엔 새까만 마석이 가득했다. 전부 하급 마석들이었다.

“크흠. 혹시나 해서 못을 박아두는데······ 만약에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해서 거래를 되돌릴 수는 없다는 걸 알아두게.”

“당연합니다.”

제드의 대답에 리아드는 흡족하다는 표정이었다.

제드도 리아드도 만족한 거래였다.

레쟈스 나무를 거저 얻었을 뿐만 아니라, 마석을 처분한다는 명목으로 따로 돈을 챙기기까지 하였으니, 어찌 좋지 않을까.

‘흐흐. 그 쓸모없는 것들을 백날 심어봐라. 농작물이 자라나. 이런 척박한 땅에서는 10개를 심은들 그만큼 수확하기도 어려울 거다.’

원래 수개월에 한 번씩 찾아오는 리아드였지만, 다음엔 자비(?)를 베풀어 조금 더 일찍 찾아오기로 마음먹었다. 마을 사람들이 다 굶어 죽기 전에 활로는 열어줄 참이었다.

“자, 그럼 다음에 보지. 디아고 씨도 그때까지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리아드는 바쁘게 돌아갔다. 볼일을 다 봤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변심했다가 물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그렇기에 그는 그 십여 일 사이에 레지앙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창고를 가득 채우고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수북하게 쌓인 하급 마석. 마을 사람들도 신기한지 다가와서 구경하였고, 제드는 그들 사이에서 마석의 질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었다.

“이게 그, 마법사님께서 원하신 게 맞습니까?”

“맞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군요. 질도 썩 나쁘지 않습니다.”

빌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제드는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심시키려고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다.

‘그놈이 최하급만 가져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야. 표준에 조금 미치지 못한 마석들도 꽤 있다.’

잠깐 확인했는데도 그 가치가 어마어마했다. 지금이 아니라, 전생을 기준으로 말이다.

“흠, 이거 양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 돼지 같은 놈이 남 잘되는 꼴을 보고만 있을 놈이 아닌데······.”

“그렇겠죠. 근데 그는 모르는 겁니다. 이것의 가치를 말입니다. 하지만 빌은 알지 않습니까. 이것들의 어떤 가치가 있는지.”

“제가 말입니까? 전 무식한 놈이라, 이게 어디에 쓰이는지 뭐가 다른지 하나도 모릅니다.”

빌이 투박하게 대답하자, 제드가 피식 웃으며 저편을 가리켰다. 그곳엔 우드 골렘 아우로렐이 있었다.

빌이 멍청한 표정을 했다.

“서, 설마 그 창고에 있던 세 개의 마석······.”

“맞습니다. 아우로렐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죠.”

“허.”

빌이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쓸데없었던 마석이 저 존재가 되었을 줄이야.

꿀꺽.

빌이 고개를 돌려 자기 키를 훨씬 넘을 정도로 수북하게 쌓인 마석들을 눈에 담았다.

그 마석 3개로 저런 존재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이 많은 마석을 다 사용하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빌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

파직!

불순물이 터지며 발생하는 번갯불.

이제 그곳엔 손톱만큼 작은 마석만 존재할 따름이다.

정제된 마석.

제드는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자 아직 뜨겁게 달궈진 마석은 허공을 날아서 저편의 구석으로 굴러갔다. 그곳엔 그와 같은 작은 돌멩이 같은 마석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모두 정제된 마석들이었다.

“후우우.”

뜨거운 호흡을 내뱉으며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제드.

‘됐다. 이제 겨우 처음 목표했던 단계에 도달했다. 이게 이렇게 오래 걸리고 힘들 줄이야.’

그때는 다수의 마법사 인력을 손쉽게 움직일 수 있었기에 잘 몰랐다. 근데 지금처럼 모든 걸 혼자 하려고 하니, 보통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아니었다.

각자의 공정을 도맡아서 하던 분산 작업은 공장이라는 대규모 마법사 공방이 만들어져야만 도입할 수 있었다. 그래야 각 공정의 흐름이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마을의 규모가 훨씬 커진 후의 이야기다. 일단은 제드 그 자신이 한 사람의 마법사라고 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르는 게 우선이었다.

허공에 손을 휘젓자, 정제된 마석 세 개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제드의 앞으로 날아왔다.

하나같이 손톱의 절반 크기밖에 안 되는 마석들이다. 이것들보다 훨씬 큰 마석도 많았지만, 지금의 제드에겐 이 정도가 딱 좋았다.

과유불급.

수준에 맞지 않는 걸 탐하면 반드시 탈이 난다.

제드는 정제된 마석을 손에 쥐고 눈을 감았다.

지금부터 제드는 이 마석을 흡수할 참이었다.

두근.

마석의 순도 높은 마나가 제드의 마나에 감응하면서 맥동하기 시작했다. 한번 일어난 에너지는 계단을 밟고 오르듯 무섭게 치솟기 시작하고, 이내 제드의 몸 내부로 유입됐다.

콰콰콰콰!

제드에게는 그 마나의 흐름이 그렇게 느껴졌다.

거침없이 밀려 들어오는 격류.

그것은 막아도 막을 수가 없었다.

정제된 마석에는 고밀도의 마나가 덩어리로 존재하였고, 그것은 풀리면서 점차 불어난다. 제드는 그동안 만들어왔던 체내의 길로 받아들였다.

무서운 기세로 쏟아지는 마나를 받아들이기엔 그 길은 너무 좁았다. 그렇기에 좁았던 길이 억지로 벌어졌다.

콰드드득.

그 순간의 고통은 온몸의 신경을 긁어대는 것과 비슷하다.

제드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꽉 다문 이 사이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고 각오했던 일이었다.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으나, 신음 한 번 내지 않는 제드였다.

‘이런 고통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전생의 마지막 순간에 겪었던 그 비참한 절망에 비하면 이런 고통 따위는 장난이다.

그리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을 생각한다면 이런 건 고통도 아니다. 불타오르는 대지 위로 비명이 뒤섞일 것이고, 땅에는 피가 강물이 되어 흐를 것이다.

‘나는 반드시 전과는 다른 결과를 이끌어낼 것이다.’

번쩍.

제드의 눈동자에서 시퍼런 광채가 흘러나왔다.

이른 새벽이었다.

끼이익.

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 한 인형이 나왔다.

형형한 푸른빛이 일렁이는 눈동자가 새벽의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다. 그는 제드였다.

새벽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식혀주었다.

“후우우. 이제 좀 살겠군.”

공기를 들이마시며, 그렇게 중얼거린 제드.

부드럽게 미소 짓는 그의 얼굴엔 전에 없던 자신감이 엿보였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처음은 마석으로 마나의 길을 넓히는 데 주력했다. 그런 다음에는 체내 구석구석 마나를 쌓았고, 그 마나로 마석을 정제하였다.

그 공정을 계속 반복했다. 마나에 익숙하지 않은 이 몸을 길들이는 과정. 처음에는 한 번의 공정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점차 속도가 붙었고, 한 번에 제어할 수 있는 마나의 양도 늘어났다.

그걸 체감했을 때, 제드는 산발적으로 체내 곳곳에 깃든 마나를 집약하여 심장에 고리화하였다.

이를 써클이라고 했다.

마법사들의 지표를 가늠하는 가장 보편적인 마법력의 상징.

먼 과거에는 마나를 빠르게 쌓을 방법이 없어 정신의 세계가 크게 확장할 때마다 세계로부터 마나를 받아들여 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과거 마법사는 구도자라고 불렸고, 신비를 쫓는 존재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이르러 마법사의 의미는 변했다.

마탑에서는 마법사를 인위적으로 육성할 수가 있었다. 다량의 상급 마석을 통하여 마나를 억지로 유입시켜 써클을 반쯤 강제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현상은 비토 라그만의 정제법이 도입되면서 더욱 가속화되어 머잖아서는 마법사의 수는 그야말로 찍어내듯이 늘어나게 된다.

물론, 그건 이후의 일이었다.

거기다 그렇게 만들어낸 마법사는 3써클의 경지에 다다른 마법사라고 해도 몇 가지 마법밖에 쓰지 못하는 까닭에 특수병사에 더 가까워 마법사가 아니라, 마도사로 격하하여 부르곤 했다.

‘어차피 재기 좋아하는 마탑의 늙다리 마법사들이 만든 분류법일 뿐이야. 마법사든 마도사든. 중요한 건 이 방식의 효율성이지. 실제로 사용해보니까 알겠어.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고써클로 올라갈수록 이 방식의 효율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그래서 5써클 이상의 마법사는 사용하지 않았다.

제드도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이 방법이 각 마탑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땐 그는 이미 6써클의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 적잖이 놀랐다.

불과 한 달. 그 사이에 제드의 심장엔 두 개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처음 마법에 입문하고 2써클에 오르기까지 몇 년이 걸렸던가.

“이번에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겠어.”

제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새벽의 어둠 속을 향해 나아갔다.

지금부터 두 번째 골렘을 만들 생각이었다.

*

두 번째 골렘을 만드는 데에는 재료가 필요했다.

베이스는 이번에도 레쟈스 나무.

즉, 우드 골렘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수준의 우드 골렘은 아니다.

푸드득.

나무 위로 날아오르는 푸른 새를 발견한 제드가 손가락을 튕기기가 무섭게 잎사귀가 싹둑 잘리며 날카로운 바람 한 줄기가 새의 꼬리를 스쳤다.

잘려나간 깃털이 빙글거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제드가 깃털을 줍고 주머니를 살폈다. 조금 전에 떨어진 깃털과 같은 게 가득하였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제드는 수풀이 우거져 주변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장소를 잡았다. 준비한 재료를 모두 놓고 마지막으로 정제한 마석을 놓았다. 이로써 준비는 끝난 셈이다.

“나의 부름에 응해다오.”

제드가 마나를 개방하면서 마법술식을 외웠다.

그 순간, 마석이 녹아들 듯 재료 안으로 스며들었다.

정신을 집중한다.

이미 오래된 생명에 깃든 정령을 새로운 그릇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만들었던 아우로렐과는 달리 지금처럼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정령을 불러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전생의 제드조차도 골렘 마법에 한참 매진한 후에야 성공한 골렘 마법. 하지만 지금의 제드는 이미 완성된 마법술식과 방법을 알고 있었다.

휘오오.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왔구나.’

제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드리웠다.

바람의 정령이 제드의 부름에 응했다.

정령이 응답했으니, 이제 감응의 단계다.

두근.

정령에게 의지를 전달하는 과정.

이 과정이 순탄히 완료되면 정령은 제드의 의지를 따라 새롭게 구성되는 육체의 그릇에 깃들게 된다.

두근.

두 번째 맥동.

‘드물게도 순한 녀석이군.’

바람의 정령은 아주 예민한 편이었다. 감응과 함께 곧장 사라져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지금 찾아온 이 정령은 좀 특이했다.

‘느낌이 좋다.’

제드는 느긋하게 손을 뻗어 재료 위에 녹은 마석에 손을 얹었다. 길을 안내하는 것이다. 여기가 네 보금자리라고 말이다. 이 단계에 와서도 응하지 않고 가버릴 수도 있다.

형성된 코어에 엮는 과정.

제드는 이게 한 번에 될 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바람의 정령은 까다롭다. 제드도 과거 수도 없이 실패했을 정도로.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키득키득.

‘응? 웃음소리?’

아이가 웃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설마, 내가 정령의 목소리를 들은 건가?’

제드가 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할 때였다.

화아악.

별안간 일대에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쳤고, 바닥의 재료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깃털이 회오리쳤고 레쟈스 나뭇가지가 치솟았다.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나뭇가지가 뼈대가 되었고, 그 위로 진흙이 달라붙어 형태가 갖춰지고 깃털이 달라붙는 순간, 진흙 위로 파란색 깃털이 돋아났다.

머잖아 바람이 멎었을 때, 그곳에 파랑새 한 마리가 산들바람을 타고 제드의 어깨 위에 앉았다.

일견 평범하게만 보이는 새였지만, 영롱한 녹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는 녀석이 골렘임을 말하고 있었다.

“블라르, 그게 네 이름이다.”

꾸꾸.

녀석이 작게 울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게 왔어.’

제드는 그걸 알 수 있었다. 사용한 마석이 작아서 마나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은 체구의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정령의 존재감은 꽤 컸다.

‘최소 중급이야. 그 정도 정령이 이런 작은 코어에서 머무는 건 너무 아까울 정돈데.’

그뿐만이 아니다.

목소리.

아주 잠깐이었지만, 틀림없이 웃음소리 따위가 들렸다.

전생보다 친화력이 올라간 걸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제드는 절벽에 섰다. 저 아래로 광활하게 펼쳐진 그레지안 산맥의 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블라르.”

꾸우우!

블라르가 빽 울더니 남쪽 하늘로 날아올랐다.

산맥의 남쪽. 그 끝자락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제드가 알고 있는 역사대로라면, 그곳에는 수년 이내에 발발할 전쟁의 시발점이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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