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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6) (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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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4

*

두두두두.

한꺼번에 달려오는 오크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기가 질린다. 제아무리 체구가 큰 장정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컸고, 그 덩치는 거의 두 배에 달했다.

그런 놈들이 수적으로도 더 많은 상황.

“크워어어어어어!”

쩍 벌린 입으로 터져 나오는 외침에 오금이 다 저렸다.

“씨발. 씨발!”

“이 개새끼들아, 다 덤벼!”

저마다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이 가지각색이다.

그리고 그들은 달려드는 침략자를 맞이했다.

푸욱!

“꺼르르르르.”

목이 꿰뚫린 오크가 가래가 끓는 목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렸다. 말뚝에 처박혀 그 틈으로 팔다리가 찔려 널브러지는 놈도 존재한다.

땅에 박은 목책이 금방이라도 뽑힐 것처럼 흔들렸고, 한쪽에서 빌이 연신 고함을 질러댔다.

“자리에서 물러나지 마, 이 새끼들아!”

규모는 작았지만, 확실히 이곳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건 전쟁이었다.

광기와 비명, 고함.

그것들은 제드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을 끝내고 싶어했던 제드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자신을 증명한 곳 또한 바로 이 전장이었다.

바로 그때.

쿵.

땅이 작게 진동했다. 아직 그 진동의 의미를 아는 이는 이곳에 없다. 오크도, 레지앙의 병사들도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둠의 저편에서부터 영롱한 녹색의 불꽃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허억!”

성벽 위에서 연신 땀을 뻘뻘 흘리며 화살을 쏘던 병사 막스는 고개를 돌렸다가 기겁했다. 어둠의 저편에서 나무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가, 그 의문에 대한 어떤 결론이 나기도 전에 그 나무는 길게 늘어진 팔 따위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가 그대로 내려찍었다.

콰아앙.

땅이 푹 꺼질 정도로 묵직한 타격이었다.

단말마의 비명조차도 없이 온몸이 으깨진 오크 셋.

“워어억!”

성벽을 계속 밀어붙이던 오크들이 뒤늦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뻐억!

우우우우.

아우로렐이 팔을 크게 휘둘러서 오크를 날려버렸다. 몸이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널브러진 오크는 선혈을 토하더니 그대로 축 늘어지고 말았다.

“저게······ 저게 대체 뭐지?”

“나, 나무······ 나무가 움직인다!”

병사들이 뒤늦게 아우로렐를 발견하고 얼어붙은 얼굴을 했다. 별안간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서 오크를 닥치는 대로 사냥하고 있었다. 빌도 이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대체······.’

바로 그때, 그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마법사.

제드 크레인!

그는 이 무시무시한 광경 속에서도 초연했다.

싸움에 대한 공포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눈빛은 저 거대한 나무에게 꽂혀 있었다.

“당황하지 말고 자리를 지켜! 저, 저건 마법이다.”

“마, 마법?”

“그럼 제드가?”

뒤늦게 병사들의 시선이 성벽 위의 제드에게 꽂혔다.

오싹.

그들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담담한 기색을 한 제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드리웠다.

크워어어어어어!

오크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 우드 골렘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무기와 힘은 통하지 않았다.

오크의 무시무시한 힘도 아우로렐보다는 약했고, 그들이 휘두르는 우악스러운 무기는 껍질에 박힐 뿐, 완전히 잘라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우우우.

아우로렐의 녹색 불빛이 더욱 선명하게 타올랐으니, 그 분노는 여지없이 그들에게 되돌아갔다.

콰아앙!

오크가 한꺼번에 덤벼들면서 등과 팔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아우로렐의 움직임을 막을 수 없다.

부우웅!

또다시 팔을 휘두르는 아우로렐.

이번에도 여지 없이 오크 대여섯 마리가 휩쓸리며 바닥을 나뒹굴며 널브러졌다.

일방적인 전투였다.

오크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는데, 아우로렐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오크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으지직.

“워어어억!”

손아귀에 잡히면 그들의 억센 근육과 단단한 뼈가 무색할 정도로 손쉽게 결딴이 났고, 휘두르는 팔에 휩쓸리면 널브러져서 더는 일어나지 못했다.

‘좋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해.’

아우로렐의 전투력에 대한 제드의 평가였다.

급한 대로 만든 골렘이었다. 노심이 될 마석은 순도는 높았지만, 너무 작았기에 출력이 약할 줄 알았다.

근데 그렇지가 않았다. 100년이 넘은 거목 레쟈스 나무의 소재가 부족한 출력을 메워줬다.

‘지금만으로도 이 정도라면 노심을 보강한다면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

골렘의 연구에는 정통한 제드였지만, 우드 골렘은 많은 연구를 하지 않았다. 강철을 소재로 한 스틸 골렘이 기본 규격으로 책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오크들이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크르르륵.

아우로렐과 거리를 벌린 채로 좀처럼 다가오지 못하는 모습. 제드는 그 모습을 보고 알았다. 싸움이 끝났다는 걸 말이다. 이미 죽어 나자빠진 오크만 이십 마리가 넘었다.

우우우우.

낮게 울려 퍼지는 아우로렐의 울음.

옹이구멍으로 녹색의 불꽃이 음산하게 일렁였다.

쿠웅.

아우로렐이 나머지 오크를 향해 그 무거운 발걸음을 한 번 내디딘 순간, 오크들은 곧장 어둠 너머로 도망가버렸다.

우우우.

아우로렐이 그 뒤를 따라서 쿵쿵 움직일 때였다.

‘아루로렐, 그만. 거기까지다.’

우뚝.

제드가 맹약의 고리를 통해 명확한 지시를 전달하기가 무섭게 멈춰버린 아우로렐. 일렁이던 녹색의 불꽃이 약해졌고 이내 훨씬 느려진 걸음으로 숲의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후우.”

제드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빠른 속도로 몸속에서 빠져나가던 마나의 흐름이 멎었다. 아우로렐이 기동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와아아!”

곧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제드! 제드!”

“제드가 우리 모두를 구했다!”

기쁜 목소리로 승리를 소리치는 그들을 보면서도 제드의 표정은 담담하였다. 이건 승리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

꿈을 꾸었다.

먼 과거의 일들.

처음으로 전장에 나섰을 때의 일이었다.

이름 모를 병사가 광기에 젖은 눈으로 커다란 망치를 휘둘렀고, 그 망치에 왼쪽 정강이가 박살이 났다. 그대로 혼절할 정도의 고통에 비명을 질러댔었다.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제드는 그 뒤로 다시는 뛸 수 없었다.

번쩍.

제드는 눈을 떴다.

“또 이 꿈이로군······.”

수도 없이 꾼 꿈이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은 제드는 자신의 멀쩡한 왼발을 보았다. 항상 이 꿈을 꾸고 일어났을 때는 부러졌던 발이 시큰거렸는데, 지금은 멀쩡했다.

그건 지금 이 세상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의 나는 모든 걸 바꿀 수 있다.”

제드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건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주문이기도 했다.

똑똑.

“마법사님, 깨어 계시는지요?”

“예, 일어났습니다.”

누군가가 찾아왔다. 문을 열자, 그곳에 젊은 여성이 웃으며 뭔가를 건네왔다. 감자였다.

“이것 좀 드시라고 가져왔어요.”

“······.”

제드가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그 여성은 돌아갔다.

그런데 그 뒤로 또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별로 대단한 건 아니고······ 마을을 지켜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이런 식으로밖에······.”

“아니, 괜찮습니다.”

“아휴.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이렇게라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그런 것뿐입니다.”

“······.”

그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한둘이 아녔다.

마을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찾아오고 있었다.

“빌도 왔군요.”

“크흠······ 제대로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제드가 미간을 모았다.

이젠 존대까지?

“······갑자기 이런 대우가 불편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어젯밤, 모두가 보지 않았습니까. 마법사님의 그 능력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생각을 말이죠?”

“마법사님이야말로 이 레지앙의 수호신이라고 말입니다.”

“우습지도 않네요. 날 떠받들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그러면 안 됩니까?”

비꼬려고 한 말인데, 빌의 태도가 진지했다.

“저는 무식한 놈이라서 지금 이게 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던 그 겁쟁이 녀석과 지금 눈앞의 마법사님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생긴 것 외에는 다 다르단 말입니다. 전혀 이해도 안 되고, 그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그냥 이 산맥에 존재하는 이름 모를 대단한 수호신이 마법사님의 몸에 깃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요.”

“······.”

황당하기 짝이 없군.

제드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으나, 그걸 입 밖으로 표현하진 않았다.

‘마법사를 잘 모르기 때문인가. 이 모든 상황을 일종의 토속 신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군.’

굳이 바로잡을 필요성은 못 느끼는 제드였다.

그들의 이러한 태도는 앞으로 제드가 구상한 계획에 득이 되면 됐지, 나쁘게 작용할 일은 아니었으니까.

“뜻대로 하세요. 나 역시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할 수가 없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움직이는 나무는 무엇입니까? 설마, 그것도 마법이라는 것입니까?”

“예, 마법입니다. 골렘이죠.”

“골렘. 골렘이라······. 제가 들어본 존재와는 너무나도 다르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어쨌든 마침 잘 됐네요. 빌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저한테 말입니까?”

“예, 상인이 마을을 찾아오는 날과 올 때마다 거래의 품목과 가격의 책정이 어떠했는지 장부를 보고 싶은데요.”

“그건 디아고 할아범이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럼 같이 보면서 얘기 좀 하죠.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으니까.”

“오오. 어서 오십시오, 마법사님.”

디아고는 제드를 반겼다.

“할아범, 장부를 좀 봐야겠습니다.”

디아고는 끙하고 일어나더니 저 옆에 아무렇게나 쌓인 양피지 뭉텅이를 가져왔다.

“일단은 가지고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그전의 기록들은 아마도 창고 구석에 넣어둔 것 같은데······.”

“아뇨, 다 볼 것까진 없습니다.”

제드는 장부의 내용을 빠르게 살폈다.

‘관리 자체는 미흡하지만, 정리는 잘 되어 있다. 거래 내용은······ 뭐, 예상한 그대로군.’

레지앙에서 상인에게 사들이는 것의 태반은 곡식. 이곳이 워낙 척박한 땅인 탓에 개간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알만한 건 알았다.’

제드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허허. 그런데 정말로 아예 다른 분이로군요.”

디아고가 경이롭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억양은 삶을 대신 말하는 법이지요. 동부의 억양도 그렇고, 지금 글을 읽는 것도 그렇고······. 예전의 제드는 글을 아예 몰랐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이 무렵의 제드는 글도 셈도 할 줄 몰랐다.

“그랬었죠. 얼마 전까지의 저라면 말입니다.”

전과 지금은 다르다.

제드는 그걸 분명히 했다.

“그래서 다음 상인이 마을에 오는 때는 언제입니까?”

제드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돌렸고.

“한 달 정도 후입니다.”

디아고는 그 대화의 흐름을 따라왔다.

“식량의 구매량을 줄이는 게 좋겠습니다.”

“크흠. 마법사님, 그렇게 했다가는 마을 사람들이 다 굶어 죽을 겁니다. 그렇잖아도 오크 때문에 벌목량이 줄었고, 질 좋은 레쟈스 나무도 찾기가 어려워져서 거래량 자체가 줄었습니다.”

“그건 디아고 할아범의 말이 맞습니다. 저 토바스의 빌어먹을 돼지 놈들이 가격을 조금씩 올려대는 까닭에 그렇잖아도 빠듯한 상황입니다.”

“상인이 왜 가격을 올린다고 합니까?”

“그건······ 밖의 세상에서도 곡식의 수확량이 줄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저희로서는 선택지가 없는 일이지요.”

“수확량이 줄었다······. 수작을 부리는군요.”

제드가 그렇게 단언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식량 문제는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거래 품목을 바꾸기로 하죠. 지금 당장은 세상에 가치가 없지만, 가까운 시일에 온 세상에 누구나가 원하는 걸 말입니다. 다음 거래엔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디아고와 빌의 얼굴에 난색이 떠올랐다.

그게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설명보다 보여주는 게 빠르겠죠. 나갑시다.”

제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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