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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5) (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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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3

*

제드가 토굴에서 나온 건 꼬박 이틀이 좀 안 됐을 때였다.

밤이 깊은 시각이었다. 나지막하게 타오르는 모닥불만이 작은 마을의 어둠을 힘겹게 몰아내고 있었다.

제드는 마을의 경계 상태를 살폈다.

썩 나쁘지 않다.

젊은 나무꾼들은 두 겹의 두꺼운 나무를 땅에 박아넣고 만든 성벽의 위에 서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었으므로 시야의 맹점은 없었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제법 체계적이군. 빌이 젊었을 때 용병 생활을 했다고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 경험이 바탕이 된 건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예전엔 빌을 그냥 무서워하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다른 것들이 보였다.

제드는 서문으로 다가가자 그들이 알아보았다.

“제드? 토굴에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나온 거냐?”

“네, 좀 밖에 다녀올게요.”

“뭐? 지금 이 시간에?”

“네, 필요한 일이에요.”

“음, 네, 네가 그렇다면야······. 근데 혹시 빌도 아는 일이야? 혹시 모른다면 지금 빌에게 말해서······.”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나중에 빌이 오면 말해주세요. 제가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고 하면 알아들을 겁니다.”

제드의 말은 차분했지만, 거스르기 어려운 힘이 있었다. 그들은 입을 꾹 다물고 튼튼한 나무 걸쇠를 빼고 길을 열었다. 곧 제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무로 만들어진 성벽 사이를 지나서 어둠을 향해 나아갔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됐군.”

“그러게 말이야. 뭐라고 할까······. 조용하고 차분한데, 어쩐지 꼼짝도 못하겠단 말이지.”

“마법사님이잖아. 이제 예전과는 다른 게 당연한 거지. 그러니까 빌도 이제 전처럼 그러지 못하는 거고.”

“뭐든 좋다. 오크만 처치해준다면야 누구라도 말이야.”

척박한 땅이었지만, 그래도 이곳은 고향이었다. 고향을 잃은 떠돌이의 삶은 비참해진다. 더욱이 가족까지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

제드는 어둠 속을 나아갔다.

한 치 앞도 헤아리기 어려운 어둠이 가득했지만, 그건 큰 제약이 되지 않았다.

영롱한 빛을 머금은 눈동자는 어둠 속을 꿰뚫었다. 우거진 나무 사이를 지나며 제드의 시선은 바쁘게 그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찾았다.’

이틀 전, 정찰하면서 미리 봐두었다.

‘100년 이상 된 레쟈스 나무.’

하늘 끝까지 뻗은 이 거목은 이 땅에 아주 긴 시간 뿌리를 내리고 존재해왔다. 그리고 긴 시간을 존재해온 것들에는 힘이 깃든다.

정령과 마나. 그리고 세계의 기록.

긴 시간을 살아온 생명은 그 자체가 기록이었으니, 그것은 곧 마법이나 다름이 없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마법사라면 반드시 이 나무가 어떤 식으로든 몹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밖에 없었다.

제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의 부름에 응해다오.”

두근.

맥동이 커졌다.

감응.

생명과 그 생명과 연결된 정령이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 공정 과정은 정령술의 기초이자 핵심과도 연관되어있다.

마법만큼이나 정령술은 천부적인 친화력이 없어서는 시작조차도 못하는 일이었고, 다행히도 제드에게는 그 재능이 있었다.

사아아아.

잎사귀가 거칠게 요동쳤다.

문을 두드리듯, 제드는 몇 번이고 이 오래된 생명에 깃든 존재를 불렀다.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첫 감응을 이토록 빨리했다는 건 머잖아 다음 감응이 온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이 정령과의 감응이야말로 제드가 정립한 골렘 마법의 핵심이나 다름없었다.

기존의 골렘은 마법사가 만든 그릇에 억지로 정령에 가까운 존재를 가두어 억지로 부리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제드가 정립한 이 공정은 그런 강제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건 소통이었고, 그들과 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골렘은 기존 골렘과는 차원이 달랐다.

유기적인 움직임. 속도, 힘, 마나의 소모에 이르기까지.

노심이라는 체계의 마법 공정이 제대로 도입되면서부터 그 차이는 더욱 벌어져서 전쟁의 후기에는 제대로 된 골렘 몇 기가 전투의 판도 자체를 바꿀 정도였다.

사아아아아.

잎사귀의 떨림이 더욱 커졌다.

두근.

두 번째 감응.

제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드리웠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감응이 빨랐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제드는 손에 쥐고 있던 마석을 나무에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잎사귀의 떨림이 멎었다.

정령이 부름에 응하였으니, 이제부터는 그 정령에게 새로운 육체를 부여할 때가 된 것이다.

“나는 명명하는 자요, 법칙을 새로이 그리는 존재이니라.”

그 순간, 마석을 중심으로 푸른빛 선이 뿜어져나와 허공에 원형의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적인 수준의 마법사라면 이 마법 공정을 완벽히 구현할 수 없기에 마법진이라는 형태를 구축하였으나, 그런 것들은 제드에게는 필요하지 않았다.

파지지직.

마석에서 번갯불이 번쩍였다.

허공을 수놓는 마법진의 술식이 가득 메워진 순간, 마석은 고목의 껍질 속으로 녹아들 듯이 파고들었다.

그 과정은 천천히 진행되었고, 제드의 이마에서는 금방 식은땀이 맺혔다.

‘예상했던 것보다 마나의 소모 속도가 빠르다.’

노심이 될 마석을 제외한 두 개의 마석 중 하나가 이미 완전히 녹아서 사라졌다. 제드가 마석의 마나를 빨아들이기가 무섭게 마법에 소모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늘 높이 뻗었던 나무가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 형태가 변하고 있었다.

수 미터에 이르렀던 고목은 어느새 3미터 안팎까지 줄어들었다. 그리고 커다란 가지들이 서로 합쳐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것은 두 개의 팔과 같은 형태로 변했다.

곧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진동했다.

드드드드.

쩍쩍 땅이 갈라지면서 그 안에서 고목의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뿌리 역시 가지처럼 한둘씩 합쳐지면서 굵어졌다.

땅이 진동하고 고목이 전혀 다른 형태로 변해가는 과정 중에도 제드는 미동이 없었다. 마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더!’

두 번째 마석도 이제 거의 다 소모됐다. 손톱 크기에 지나지 않았던 게 이젠 4분의 1밖에 남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마나 소모가 크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이 고목에 붙어있는 정령이 상위 정령이었던 것이다.

제드의 뺨으로 굵은 땀방울 하나가 흘렀다.

집중을 늦추지 않고 골렘의 연성공정을 끝마쳐간다.

그리고.

번쩍.

“헉! 헉헉!”

눈을 뜨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제드.

마나를 너무 많이 쓴 까닭에 진이 다 빠졌다.

가지고 있던 정제되 마석도 두 개가 다 사라지고 없었다.

막판에 가서는 마나가 부족한 나머지 대지에 흐르는 마나까지 긁어모아서 들이붓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눈앞에 있었다.

“······만나서 반갑다.”

3미터 높이의 나무. 정확히는 레쟈스 나무라는 그릇을 토대로 만들어진 골렘이 그곳에 있었다.

우우우.

낮게 울려 퍼지는 울음과 함께 골렘은 천천히 몸을 굽히더니 주저앉아서 제드를 쳐다보았다.

사람으로 치면 얼굴이 있는 곳에 파인 옹이구멍의 너머에서 신비로운 녹색의 빛이 어른거린다. 그것은 눈동자였다.

정령인 그것과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으나, 제드는 그 정령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름.

정령은 한없이 현상에 가까운 존재. 그것이 제드의 의지를 따라 명확한 존재로 격상, 혹은 격하된 이상 그것은 새롭게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너는 아우로렐이다.”

우우웅.

우드 골렘, 아우로렐은 굵은 울음을 토했다.

제드는 아우로렐과 의식이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그것이 기쁨을 표현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우로렐이 팔과 같은 커다란 나뭇가지를 뻗어 제드를 감사안더니 어깨에 올렸다. 거친 나무껍질의 촉감과 풀냄새, 그리고 흙냄새가 났다.

“마을로 돌아가자.”

아우로렐이 몸을 일으켰다.

길고 긴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던 거목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쿠웅.

아우로렐이 동쪽을 향해 움직였고, 우거진 잎사귀들 사이로 새벽녘의 빛이 눈두덩을 두들겼다.

아침이었다.

*

마을로 돌아온 제드는 한숨 깊이 잠들었다.

이틀간 마석 정제에 이어 골렘 연성까지.

온몸이 노곤했다.

그렇게 한나절을 꼬박 기절했다가 깨어난 제드는 입이 쩍쩍 마르는 걸 느꼈다.

‘해가 지고 있나.’

일어나서 차가운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밖으로 나오자, 마을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경색되어 있었다.

마을을 중심으로 세워진 목책과 성벽에는 횃불이 빼곡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마을의 중심부에는 노인들과 여성들이 모여 있었다.

핏빛에 물든 하늘 아래로 이십여 명 남짓의 남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화살은 각 입구에 배치해둬. 그리고 여기 입구쪽으로 한꺼번에 밀고 들어올 거다. 방어조는 가장 길고 날카로운 창을 들고 죽을 각오로 버텨라. 알겠어? 튕겨나가는 새끼는 내가 죽여버린다!”

빌은 으름장을 놓으며 사나운 시선으로 목책을 살폈다. 방비는 아무리 해도 부족하지 않다. 아주 약간의 틈. 그 틈으로 준비했던 모든 게 무너질 수도 있었으니까.

‘역시 군인이 잘 어울려.’

빌은 제드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인재일지도 몰랐다.

“이제 일어난 거냐. 꼼짝도 하지 않기에 죽은 줄 알았다.”

“준비가 한창이네요. 당장 오늘 쳐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요.”

“아니, 오늘 온 것 같다. 오전에 정찰을 나갔다가 놈들의 흔적을 발견했거든.”

빌이 으르렁댔다.

벌써 그의 눈빛에 전의가 가득했다.

“빌, 앞으로 모든 게 바뀔 겁니다.”

“뭐?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미리 말해두는 겁니다. 오크를 격퇴하는 건 아주 작은 일이에요. 이제부터 이 레지앙이 크게 변할 겁니다. 그 변화 속에서 균형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 역할을 빌이 맡아줬으면 좋겠어요.”

“제드, 너······ 뭔가를 하려는 거냐?”

“제가 뭔가를 하지 않아도 세상이 이 레지앙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이곳엔 너무 큰 보물이 있거든요.”

제드가 그렇게 말하며 해가 거의 다 저물어서 어두워진 숲 저편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어쩌면 저 오크의 갑작스러운 움직임도 그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죠.”

“······.”

빌이 점점 더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뎅! 뎅! 뎅!

“온다! 놈들이 온다!”

요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빌이 짐승 같은 얼굴을 하고서 서쪽 성문을 향해 달려갔다.

평시에는 사냥꾼 내지는 나무꾼인 남자들은 지금 이 순간, 전사가 되어 죽음을 각오하고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좋군.”

제드는 목재를 쌓아올려서 만든 성벽 위에 올랐다.

해가 저물고 바람이 바뀌면서 저 멀리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났다. 이 특유의 독한 체취는 오크의 그것이다.

그르르르.

둥! 둥! 둥!

북을 치는 소리와 울음이 우거진 나무의 저편에서 들려왔다. 오크가 자주 하는 수법이었다. 기를 눌러서 전의를 꺾는 의식.

“쫄지마 이 새끼들아! 한 발이라도 물러서봐!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여기에 너희 마누라랑 새끼. 그리고 부모님들이 있다는 걸 똑똑히 기억하란 말이다!”

우렁찬 빌의 외침에 입구에서 창을 들고 대기 중인 병사들과 성벽 위에서 활을 겨눈 궁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결사항전의 태세.

제드는 원래 이 무렵에는 이곳에 없었기 때문에 레지앙의 일은 잘은 몰랐다. 하지만 꽤 많은 이들이 죽었다는 얘기는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치열했던 싸움이었으리라.

그러나 이번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크워어어어어!

숲 속을 쩌렁쩌렁 울리는 오크의 울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2미터가 넘는 거구의 오크들이 맹렬한 속도로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제드는 숲의 저편을 보았다.

‘아우로렐.’

마법사가 불렀고,

골렘이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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