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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렘 마법사의 회귀-124화 (완결) (4) (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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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2

*

아직 새벽녘이 밝지 않은 시각.

험한 산세를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깡마른 체구의 소년은 몹시 은밀하고 기민했다.

‘몇 시간 전까지 여기 있었어.’

벌써 오크의 흔적을 몇 가지 발견했다.

가장 찾기 쉬운 게 배설물 따위다. 오크는 체구가 크고 육식만 했기에 변의 냄새가 아주 고약했다. 그 냄새는 오크끼리는 영역을 알리기도 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숫자는 최소 20마리에서 최대 100마리는 넘지 않는다. 썩 큰 규모의 무리는 아니란 얘기야.’

정찰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날랜 움직임으로 돌아가는 제드.

아무리 거센 동작을 해도 문제없이 다리는 움직였고, 숨은 차올랐지만 금방 회복됐다.

‘좋다, 정말 좋아. 바로 이게 젊음이구나.’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금이라면 정말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오크가 왜 쳐들어온 걸까.’

본질적인 의문.

오크는 호전적이지만, 생존에 큰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일이 아주 드물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할 정도의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일.’

이 무렵의 사건에 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가 적다.

다만, 맥도웰의 마석 정제법이 공화국에서 새롭게 발표되는 건 그리 머잖은 날의 일이라는 점이었다. 그 일을 기점으로 세상은 크게 변한다.

그리고 그 충격적인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닐 터였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나온 결과일 터.

‘발표 이전에 어떤 징조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역사의 흐름이 촉박하게 흘러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레지앙 마을 코앞까지 다가온 제드.

마을의 목책 너머에서 사방을 경계하던 사냥꾼이 활을 사납게 겨누었다가 이내 내렸다.

“혼자 정찰이라도 다녀온 거냐?”

마을로 들어가자마자 빌이 다가와서 물었다. 그는 제드의 마법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손쉽게 나가떨어진 이후로 태도가 바뀌었다.

“오크는 앞으로 사흘 안으로 쳐들어올 겁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오크들은 공격하기 전에 정찰하고 무리를 끌어모으는 습성이 있습니다. 두어 시간 전까지 정찰로 추정되는 놈들이 머무르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

“숫자는 최대 50마리를 넘지 않을 겁니다. 최소 단위의 부족 단위 규모로 추정되니까요.”

만약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오크가 공격해왔더라면 레지앙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레지앙은 오크에게 침공당해 무너진 게 아니었다. 전후의 사실관계만 대조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한편, 빌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는 거냐. 너 정말로 제드가 맞긴 맞는 거냐?”

“맞습니다. 그저 변한 것뿐이죠.”

“······변했다고?”

“그렇게밖에 할 말이 없네요. 모르는 걸 알게 됐고, 보이지 않던 걸 볼 수 있게 된 거니까요. 아마도 마법사란 게 원래 그런가 봅니다.”

거짓말이었다.

마법사는 타고난 재능에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미지의 영역을 가늠하는 존재들이었다. 갑자기 벼락을 맞은 것처럼 변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러는 게 빌과 마을 사람들을 통제하는 데에는 더 잘 먹힌다. 미지는 신비와 닿아있고, 그것은 곧 경외감으로 다가오곤 하니까.

그리고 빌은 그걸 몸으로 느꼈다. 그는 눈앞의 제드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변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제드, 나에게 유감이 있다면 패도 좋다. 하지만 부탁하건대 마을을 지켜다오. 떠돌이의 삶은 비참하다. 힘없는 할아범들이나 여성들은 노예보다 더 못한 삶을 살아갈 거야.”

별안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빌.

제드도 그 모습은 의외였다.

기억 속 빌은 항상 성격이 급했고 자존심이 강해서 아쉬운 소리는 죽어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게 마을을 지킨다는 일념 때문이었나?’

제드가 쉽게 버렸던 이곳을, 이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빌도 필사적이었던 것이리라. 떠돌이의 삶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마을을 도망치듯 떠났던 제드는 알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

제드 크레인.

부모 없이 홀로 큰 마을의 작은 소년.

오크의 공격에 머리에 상처를 입고 깨어난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단순히 마법을 깨우친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행동거지, 눈빛, 말투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저건 제드가 아니에요.”

제드 또래의 소녀 마리아가 그렇게 단언했다.

어려서부터 제드를 옆에서 봤던 아이였다. 옆에서 누구보다도 제드를 챙겼던 것도 그녀였다.

“디아고 할아버지도 아시죠? 분명히 제드인데, 제드가 아니에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으음, 나도 잘 모르겠구나. 제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말이야. 하지만 제드 그 아이가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는 건 나도 알겠다. 그 아이의 말투의 억양이 전혀 달라졌어. 그건 저 동쪽의 강한 억양이야.”

“동쪽이면······ 토르가 왕국이요?”

“그래, 그 나라의 사람들에겐 특유의 억양이 있어.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구나. 제드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인데, 어떻게 토르가 왕국에서 긴 시간을 살아왔던 사람 같은 억양이 있을 수가 있는지 말이야.”

며칠 사이 오크가 나타난 뒤로 마을 밖으로는 아예 발걸음도 옮기지 않는 마을 사람들은 제드의 이야기만 했다.

그러나 결론은 항상 같았다.

알 수 없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도 지금의 제드가 누구인지 모른다.

오직 그 장본인인 제드만 제외하고 말이다.

마을에는 창고가 있다.

경사의 토굴을 파서 만든 장소였는데, 이곳은 산세가 워낙 험해서 평평한 땅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이런 식의 토굴을 만들어 이곳에 이것저것을 비축해 두곤 했다.

축축한 흙냄새를 맡으며 토굴 안으로 들어온 빌은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창고는 꽤 넓었으나, 태반이 다 비어 있었다. 지금은 계절적으로 식량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다.

머잖아 상인이 찾아올 때가 된 것이다.

“음, 분명히 여기 어딘가에 둔 것 같은데.”

빌이 구석을 뒤적였다. 오랜 기간 그곳을 건드리지 않은 듯, 온갖 잡동사니가 그곳에 가득했다. 도끼의 자루나 날이 상한 도끼날 혹은 부러진 칼 따위가 말이다.

“아, 여기 있군.”

곧 빌이 그곳에서 뭔가를 찾은 듯 가지고 나왔다.

그것은 흡사 평범한 돌덩어리처럼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뒤에서 그걸 지켜보는 제드의 눈빛엔 이채가 감돌았다.

‘역시 내 기억이 맞았군. 마석이다.’

“균열 틈에서 구했던 마석인데, 불순물이 너무 많이 섞여서 상인들이 못 쓴다고 그랬었다. 이 정도면 마탑에서도 안 사가니까 값을 주기도 어렵다고 말이야. 근데 이걸 정말 쓸데가 있다는 거야?”

“예, 이게 레지앙의 수호신이 될 겁니다.”

“수호신? 그게 무슨 소리야.”

“곧 알게 될 겁니다.”

제드는 의미심장하게 말하며 빌에게 마석 세 개를 건네받았다.

“빌, 다른 안 쓰는 토굴이 있죠. 그곳을 좀 빌리겠습니다. 아무리 길어도 이틀 정도면 충분해요. 그러니 그때까지 방어 준비를 단단히 해주세요.”

“알겠다. 그리고 고맙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법사가 있으니 이 싸움은 이미 우리가 이긴 거나 다름 없겠지.”

빌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왜냐하면, 제드는 반쪽짜리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모를까 오크가 상대라면 지금 상태론 기껏해야 셋만 상대해도 마나가 바닥을 칠 거야. 더군다나 지금은 디바이스도 없다.’

오랜 시간 쓰이지 않은 토굴에는 먼지뿐이었다.

“콜록. 으. 여기서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청소가 우선일 것 같다.”

“괜찮아요. 그거라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드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체내에 존재하는 한 줌의 마나를 휘감아 손끝에서 흘렸다.

휘오오.

부드러운 바람이 일었고 오랜 시간 정체된 먼지가 한꺼번에 휘감겨 밖으로 휩쓸려나갔다. 공기가 순환되면서 서늘한 공기가 토굴에 감돌았다.

“허.”

빌이 탄성을 내뱉는 가운데, 제드는 토굴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어둠 속에서 제드는 중심부에 서서 눈을 감았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제드는 마석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지금부터 이 불순물 덩어리를 정제할 것이다.

*

마석 정제.

처음 그 기술은 연금술사 맥도웰에 의해 발명됐다.

마석의 불순물을 필터로 걸러내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석을 정제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소요됐고, 정제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결국, 그 기술은 발명된 이후로도 거의 사장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채 흐르기도 전에 그 기술은 엉뚱하게도 다른 마법사의 손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다.

비토 라그만.

렌시아 공화국 출신의 마법사.

그는 마석을 정제하는 그 기술을 토대로 정제법을 개발하였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마석은 마도공학의 발전에 핵심이 되었고, 온 대륙이 마석을 차지하기 위한 각축장이 됐다. 하지만 그 일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근 미래의 일.

그리고 비토 라그만이 그 마석 정제기술을 발표하기도 전에 그 마법술식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제드 크레인.

식은땀이 소년의 이마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싯푸른 빛에 휘감긴 마석이 번갯불을 거듭 터뜨렸다.

‘이제 두 번 더.’

번갯불이 터질 때마다 불순물이 외부에서 소멸한다.

파직.

또 터졌다. 이제 한 번 남았다.

제드의 집중력은 놀라웠다.

그의 육체에 깃든 마나는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마법사란 육체적 능력보다 정신적인 영역에 더 크게 좌우 받는 존재들이었다.

더욱이 이 레지앙은 산악을 끼고 있었으며, 이 토굴은 아주 정순한 마나의 강이 흐르는 길목이었다.

매 순간 부족한 마나를 끌어와서 쌓이기가 무섭게 사용하는 제드였다. 덕분에 마나가 흐르는 길이 만들어지지 않은 육신은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지만, 제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파직.

‘좋아, 됐다.’

마침내 마지막 불순물이 터졌다.

마법을 거둔 순간, 천천히 빛을 잃어가는 마석.

그 형태는 처음과는 사뭇 달랐다.

주먹보다 조금 더 컸던 마석의 크기는 손톱의 크기만큼 작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다.

제드는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마석을 천천히 쥐었다.

파지직!

접촉하기가 무섭게 에너지를 발산하는 마석.

제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드리웠다.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작은 마석이었지만, 일단은 이걸로도 충분했다.

‘이 마석이 골렘의 노심(爐心)이 될 것이다.’

앞으로 못해도 30년은 더 지난 후에야 초기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는 골렘 노심이라는 마도공학의 산물. 그것을 만들어낸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제드였다.

전생의 제드는 이 기술을 제국에 바쳤다.

그러나 이번 생에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골렘 마법사는 오직 제드 크레인 한 명뿐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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