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126화 (126/135)

소드마스터 가온 - [3]

재와 불, 백색의 번쩍거림. 그것은 지상에 직접 내린 천둥이다.

그 여파를 평범한 사람들은 견디지 못한다. 이제야말로 기절하는 사람은 물론 고막이 터져 피를 흘리는 사람까지 속출한다.

겨우 정신을 붙잡은 사람들, 아직 결투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이 순간 두 소드마스터가 온 힘을 다해 충돌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것은 그저 전조천에 불과하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방금 그것은 감아올리기와 그에 대항하는 기술. 평범한 소드레슬링이었다. 힘이 아니라 정밀함을 사용하는 기술을 서로 겨룬 마당이지만, 거기에도 형언할 수 없는 힘이 실려있을 뿐이었다.

그리 인사를 나누고서야, 두 초인은 본격적으로 힘을 실어 칼과 칼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가공할 힘과 속도가 충격파를 자아낸다. 날선 폭풍이 생겨난다.

칼을 부딪친 두 검객의 팔은 마치 보이지 않는 칼에 베인 듯, 풍압과 충격파에 양쪽의 소매가 찢겨나가고 살갗이 움푹 파인다.

그러나 둘은 반신이고, 그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된다. 섬유에 걸린 마법 탓에 옷까지도 순식간에 복구되어 버린다.

그래서 저 멀리서 보기에, 그것은 그저 바람이 일더니 피가 튀었으나 아무 변화도 없는 불가해다.

이해할 수 없는 장면과 현상의 연속, 지상에는 계속해서 폭풍과 천둥이 강림한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제야 귀와 눈을 가린다. 천둥 신의 벼락을 맨눈으로 보지 않으려 하듯, 신들의 분노를 피해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재해와 같은 접전이 계속된다. 재해를 직접 일으키며 가온은 이마에서 땀을 흘린다.

양손에 검기를 쓸 수 있게 된 이상 승률이 아주 크게 올랐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던 모양이다.

가온은 자신이 약간 우세하다고 느끼지만, 압도적인 것은 아니다. 과연 이 적수는 만만찮다.

검기를 씌운 검 두 자루는 과연 가공할 무기라. 공기의 저항마저 거의 받지 않으며 정교하면서도 거센 맹공을 퍼붓는다.

그에 맞서 참마황도 평소 익숙지 않은 쌍검술로 맞선다.

참마황의 오른손에 들린, 백색 광채를 내뿜는 참마검은 카르세 전통의 롱소드 검법을 구현한다. 그것으로 기존의 검술에서 완전히 일신한 가온의 왼손과 맞선다. 우열은 전혀 없다. 그저 팽팽하다.

그리고 반대편 손, 왼손으로도 바삐 검을 휘두른다.

평소 익숙지 않은 왼손으로는 검기를 쓸 수가 없으니 아다만티움 도금 검을 들었다. 현실에서는 몇 자루 없는, 항공모함을 줘도 구할 수 없는 검이다. 카르세 대통령쯤 되었기에 딱 한 자루 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참마황은 그 보검을 쥔 왼손으로, 익숙한 검법을 구현한다.

가온은 천둔검법을 본다.

그 검법의 원래 한자를 무시하고 굳이 말하자면 만둔검법쯤으로 불러줘야 할 것 같다.

원래는 크고 강한 동작들로만 이루어졌던, 엄격하게 평가하자면 사실 검술조차 아니었던 그것을 어떻게든 써먹기 위해 참마황은 오랜 세월 궁리하고 노력하여 검법다운 검법으로 만들어냈다. 언뜻 보기에는 더 손댈 구석이 없을 만치 완벽해 보일 정도다.

그 기술적으로 발전된 옛 검법을 보며 가온은 친구의 집착을,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약점이다. 집착하여 어떻게든 보완했지만 여전히 한계가 역력한 검술이므로.

가온은 그 부분을 파고든다.

야수적인 감각에 치중한 그 검법, 천둔검법에 맞서 이쪽도 야수적인 검법으로 대응한다. 오른손의 검은 평소 그런 검법에 익숙하다. 하기야 이쪽의 원래 검술도 그랬다. 덕분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적을 상대할 수 있다.

가온은 가공할 괴력과 속도로도 그저 차분하게 받아내고, 쳐낸다. 폭풍과 천둥 속에서도 전략적인 승리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불과 사십 분 만에, 가온은 참마황의 왼손을 베는 데 성공했다.

“너―감―히―!”

이때 참마황은 움츠러들지도 않았다. 잘린 손목에서는 바로 재생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짧은 공백이 생겼고, 왼손에 들고 있던 아다만티움 검은 놓쳤다.

가온은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양손에 각각 든 재와 불의 검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참마황은 여전히 치열하게 맞서지만, 생겨난 전력의 차이를 좁히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시간이 흘러, 결투에서 승리한 것은 가온이었다.

참마황의 오른손마저 잘려나갔다. 참마검이 콘크리트 가루가 깔린 바닥을 굴렀다.

백색 광채를 발하던 검기가 사라졌다.

이대로 싸울 수는 없지만, 참마황은 상처 입은 야수처럼 으르렁거린다. 결투를 지켜보던 참마황의 지지자들은 자기네 군주가 패배한 와중에도 계속 싸우다 죽을까 봐 겁에 질린다.

“제발, 그만!”

그러나 굳이 그리 애타게 외칠 필요는 없었다.

전쟁 신은 자기 대전사의 추태를 방관할 생각이 없었다.

전쟁 신은 분노한 와중에도 자기 대전사의 패배를 인정하고는 그에게서 권능을 거두었다.

충혈된 참마황의 눈에서 피가 빠지기 시작했다.

피가 몰려 익을 뻔했던 머리에서 분노가 급격히 사라지고, 가까스로 이성이 돌아왔다.

참마황은 가온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 눈에 분노나 원망은 없었다. 한껏 싸우고 나서 후련해져서는 아니었다.

마약을 하고 나서 자고 일어나면 그렇듯, 극심한 탈력감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리고 약간의 슬픔과 우울감도.

그 감정들이 목소리에 묻어나왔다.

“정말, 끝났군.”

참마황의 말에 가온이 물었다.

“그래서······ 패배를 승복하나?”

“그래. 내가 졌네.”

가온은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떼어 말했다.

“그럼 관습대로······ 떠나게.”

“어디로?”

“고향으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건 어떤가.”

“왜, 학살자답게 감옥에 들어가라 이건가?”

가온은 고개를 저었다.

“남쪽 말고. 자네 고향은 둘로 나뉘었지 않은가.”

그리고 북쪽의 흡혈귀 지도자는 이번에 완전한 불로불사를 얻었다. 그곳이야말로 누구보다 초인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 권유에 참마황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패배에 자존심이 상해서인지, 아니면 곰곰이 생각해보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가온도 굳이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허무가 떠오른 친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을 침묵한 끝에, 참마황이 입을 열었다.

“어디로 떠나든, 그 전에 고백할 게 있네.”

“갑옷 말인가? 숨겨두고 돌려주지 않는 내 갑옷.”

참마황은 온몸에 힘이 빠진 와중에도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저번에도 의심하더니, 아직도 의심하고 있었나?”

“자네와 전쟁 신 말고는 내 갑옷을 숨김으로써 이득을 볼 세력이 없었으니까. 아마 흉턴 경이 프랑스에서 탈환하여 손에 넣은 것 같은데. 내가 참전할 동기를 유지하기 위해 그 사실을 감춰왔고······ 아닌가? 괜한 의심이었다면 사과하지.”

참마황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사실, 맞네.”

“용서하네. 그래서 어딨나?”

“내겐 없네. 전쟁 신께서 가지고 계셔. 노하셨을 텐데 돌려받기 힘들지도 모르겠군. 그러고 보니 그분의 분노를 어찌 감당할 텐가? 자네는 맹세를 어겼어.”

“그래, 어겼지. 자네 비밀을 발설하지 않기로 했는데 기어이······”

“다른 신들도 분노하실 걸세. 자신들의 뜻이 좌절됐으니 보복하려 할 거야. 그분들의 분노를 피할 방법은 마련해두었나?”

“아니.”

“그럼?”

“신들께서 분노한다면, 내 기꺼이 받아들이지. 그들의 분노는 합당하니.”

반면 내 분노는 합당하지 않았단 말이지?

참마황은 새삼 화가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참마황은 여전히 이번 친구의 결정을 원망한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탓이라고도 생각한다. 결국 자기와 연관되어 이 지경에 이른 것 아닌가. 그 탓에 응징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칼을 찬 국회의원. 참마황의 열렬한 추종자가 물었다.

“이제 카르세를 떠나셔야겠군요. 그래서 어디로 가실 겁니까?”

“응?”

“어디 가시든 따르겠습니다. 폐하를 원하는 곳은 많습니다. 굳이 카르세 연방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다시 정의를 원하는 자들을 이끄시지요.”

그리 말하며 남자는 바닥에 떨어져있던 참마검을 공손히 주워들어서는 내밀었다.

참마황은 이미 양손이 복구되어 그 칼을 받으려면 받을 수 있었는데, 이때 그 양손이 가공할 속도로 재생한 것은 참마황이 반신 반지성임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마저 무시하는 모양이었다.

‘직접 보고서도 이런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하겠군. 다들 내가 반지성이니 뭐니 했던 말을 들은 척도 안 할 거야.’

과연 남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결투를 걸며 명분으로 내세운 말, 원래 조선 마족이었다느니 어쩌느니 한 건 다 헛소리인 걸 압니다. 제 믿음에는 변함이 없어요.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폐하, 어서······”

반지성은 자기 얼굴을 더듬어보았다.

여전히 흉턴의 얼굴 그대로다. 이미 폴리모프를 해제한 줄 알았는데 차마 그러진 못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러려다 잊었거나.

반지성은 한참을 주저하더니, 자신의 얼굴에 주문을 걸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아니, 믿음을 거두시오.”

“예?”

참마황은 친구가 걸어준, 수십 년이나 지속되었던 마법을 해제했다.

반지성이 말했다.

“난 조선인 반지성이야.”

남자의 몸이 굳었다.

벌벌 떨더니, 허공을 바라보며 비명 질렀다. 어지간히도 충격을 받았는지 이성을 상실한 모양이다. 반지성의 얼굴에 대고 뭐라뭐라 삿대질하다가, 이내 눈을 까뒤집고는 쓰러졌다.

한편 카메라가 이 장면을 찍고 있었다. 충격을 받은 기자들의 얼굴.

그리고 가온은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이로써 그들의 분투에 의미가 생겼다. 끝내 저 친구가 엘프가 되었다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까. 그 사실에 만족해야 하나?

가온은 그럴 수 없다. 친구가 왜 끝내 부정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저 진실을 굳이 밝혔는지 가온은 안다.

새삼 한국인들에 대한 복수심을 거둬서도, 자신이 벌인 일에 반성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저 친구를 위해서일 것이다.

친구가 밝힌 진실을 굳히기 위해, 그로써 아스인들에게서 자신의 지지를 없애기 위해, 자신을 지지하는 만큼 그 친구를 증오해야 했을 아스인들에게서 비난을 돌리기 위해 부끄러운 역사가 되기를 자처했을 것이다.

그 효과는 탁월했다.

「참마황, 반지성 확정 (······)」

카르세인들은 자기네 지도자가 마족이었단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장 극렬한 주전파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허무함과 배신감을 견디지 못하고는, 지금까지의 주장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아스인 다수의 의지는 썩 민주적이지 못한 현실정치에 크게 반영되지 못하지만, 천상의 정치에는 의미가 있다. 지상의 신앙을 힘으로 삼는 신들에게는.

*******

본디 아스의 천상은 하늘과 벼락의 신이 통치하는 왕정이었다. 그러나 아스의 하늘이 지구의 전투기에 정복되어 신들의 왕이 우울증을 앓아 칩거한 이후로는 다른 통치방식을 이용해야 했다.

그리하여 아스의 천상은 지상의 의견을 반영하는 공화정이 되었으니, 어쩌면 지구식 민주주의가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잡힌 것은 천상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대신격으로서, 화로의 여신께서 말씀하시었다.

「이제 내가 일종의 왕이라」

달과 순결의 여신이 불만스레 물었다.

「그래서 왕의 권리로, 당신의 대전사가 맹세를 어긴 것은 불문에 부치잔 거요?」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최대 의결권을 사용하겠다 말할 수도 있겠지」

화로 여신님의 선언에 다른 대신격들이 이를 갈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화로의 여신께서 차지한 천상의 의석은 48%로, 중립을 표방한 죽음과 영혼의 신의 의석을 제외하면 다른 신들의 의석을 넘어섰다.

배신감에 못 이겨 기존의 신앙을 갈아탄 자, 기존의 신앙을 포기한 자들이 이 변화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화로 대전사의 승리 또한 그들의 개종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끝내 누가 승리했는지 보고서, 전쟁 분위기에 평화를 외치기 두려워 침묵하던 자들도 기어이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테니.

어쨌건 당분간 이 의석이 뒤집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분의 뜻에 따라야 할 것이다.

「결국 당신만 이득을 보는군. 하기야 오죽하겠나? 지구에도 그리 신자가 많은데, 이 상태를 유지하면 이득인 것을」

전쟁 신의 말에 화로의 여신께서 대답하시었다.

「이득 때문에 한 일이 아님을 알 텐데」

「그럼, 뭔 고상한 뜻이 있으셨소?」

전쟁 신이 빈정거렸지만, 화로의 여신께서는 화내지 않읏혔다.

「그대는 지상을 완전히 망칠 수 있었다. 이기건 지건, 지상을 더 황폐하게 만들 것이 분명했노라」

「더 황폐해지지 않았으면, 뭐?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굴욕으로 점철된 기억은 승리의 기억으로 덮이지 못할 것이고! 부유한 마족들이 떵떵거리는 가운데 아스의 미천한 것들은 여전히 가난하겠지! 계속해서 비참해질 거요. 끝내 복수에 성공하지 못한 내 대전사처럼! 반쯤 죽길 선택한 내 대전사와 같이 될 거야!」

화로의 여신께서는 전쟁 신을 바라보시었다.

전쟁 신이 자신의 대전사를 얼마나 아꼈는지, 그 최후에 얼마나 비통해했는지 알고 계신다. 언데드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자는 결정은 전쟁 신의 강력한 주장으로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단순히 전력을 보강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기 대전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 신을 위로하시듯, 화로의 여신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대 대전사의 복수를 대신해줄 수는 없지만, 그 숙원을 이뤄줄 수는 있다. 편히 눈 감게 해줄 수는 있어. 마땅히 그래야 할 테고」

그 시각, 가온은 기자들 앞에 앉아있었다.

기자회견이었다. 기자들은 화로의 대전사로서 여기 나온 줄 알았던, 그러니까 앞으로도 마족들과 어떻게 잘 지내보자고 연설하러 나온 줄 알았던 화로의 대전사의 선언에 충격을 받았다.

“나 가온은 후긴 엘 왕국의 전 왕족으로서, 카르세 제국의 동맹이었다. 동맹을 도울 권리가 있지.”

“그 말씀은······”

“아린 벌판을 되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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