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125화 (125/135)

소드마스터 가온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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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도 이 결투 소식에 모두가 기뻐하지는 않는다. 분노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즉시 불만을 표시하러 나섰다.

“아스의 배신자!”

성난 군중이 화로의 대신전 앞에 몰려온 가운데, 이에 대한 교단의 대응은 놀라울 만치 빠르다. 하기야 시위 진압 요원이 텔레포트를 쓸 수 있다면 빠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막 정문을 돌입하려던 군중 앞에 엘프 하나가 나타났다. 모두 화난 와중에도 이 엘프를 알아보았다.

군중이 하나둘씩 뒤로 물러나는 가운데 가온이 입을 열었다.

“내게 불만이 있나?”

“당연히······”

“그렇다면 돌과 주먹이 아니라 칼을 들고 덤벼야지, 천민들. 왜, 왕족과 결투할 간담은 없나?”

이왕 미움을 받기로 한 것, 뻔뻔하게 나가기로 한 것일까?

어쨌건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머릿수를 믿어봤자 소용없는 법이다. 군중은 성난 와중에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산하지도 않은 채 어쩔 줄 몰라 멈춰선 와중이었다.

마비된 군중을 헤치고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마이크를 든 기자들. 초인과 신의 대변인들에게 조건 없는 예를 표하는 아스의 언론인들이이지만, 지금만큼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많은 아스인들이 이번 결정의 이유를 알고 싶어합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시겠습니까?”

그들의 물음에 가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가온은 화로의 대전사로서 최초로, 언론의 요청에 응하게 되었다.

“기어이 마족들을 편들기로 하셨습니까?”

“아니.”

“그렇다면 왜 동지에게 칼을 겨누기로 하신 겁니까? 참마황 폐하와 함께 영국과 프랑스, 두 원수들을 쳐부수기로 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내가 고작 둘에 복수하는 데 그자의 도움씩이나 필요할 것 같나?”

기자는 입을 다물더니,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여 물었다.

“하기야 혼자서도 국가를 징벌해낸 적이 있는 분이시지요. 그런데 본인께선 그러셨으면서, 지금 그분의 뜻은 꺾으려는 이유는 뭡니까? 단순히 그 도움이 필요 없단 이유에서는 아닐 테고.”

“권리의 문제지. 내겐 그럴 권리가 있었다. 그에겐 없고.”

다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느꼈다.

카르세 제국의 정통한 황제 후보였던 흉턴, 그 남자에게는 당연히 카르세 연방을 지도할 권리가 있으며 자신과의 약조를 어긴 한국 정부를 벌할 자격도 있다. 그런데도 아무런 권리가 없다니 그게 무슨?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참마황 그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온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이내 말했다.

“······조선인 반지성이다.”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가온이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에게는 복수를 주장할 권리가 없다. 다른 세계 사람이므로, 여기 아스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도 없다.”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인 선언이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경악하면서도 새삼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네들 대통령이 실은 조선 출신 소드마스터라는 소문, 반신이라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란 소문이 새삼 새롭지는 않다.

카르세 내에서는 금기로 여겨져 진지하게 토론되지 않았으며, 지구에서는 꽤 그럴듯하다고 느끼면서도 막상 밝힐 방법이 없어 음모론에 불과하지만 어쨌건 이미 존재하던 소문이다.

그러나 정말 그 소문이 사실일 경우, 확실히 참마황이 내세운 명분은 사라질 것이다. 마족 따위가 참마의 기치를 내걸다니?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그러나 명분은 어디까지나 실력을 뒷받침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실력이요, 신의 뜻이다.

그것은 결투로 증명될 것이다.

만약 참마황이 이긴다면 진실이야 어떻건 그 위장이 풀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흉턴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화로의 대전사가 승리하여 진실이 드러날 경우는, 결투에서 패한 참마황은 단순히 나라를 떠날 뿐만 아니라 그가 진행해온 모든 사업은 중단될 것이다.

결투는 내일 TV로 방송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리하여 다음 날, 양 세계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소드마스터가 결투에 나섰다.

*******

다른 한국인들이 그렇듯, 이복동도 TV 앞에 앉았다.

아마 정부 요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투의 결과로 그들은 나라의 운명이 걸린 결정을 내려야 할 테니까.

그리고 마침내, TV 화면에 두 남자가 나타났다.

엘프 하나와 늙은 인간 하나. 두 검객은 초인들의 결투를 위해 준비된 광장에 발을 디뎠다.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저 엘프의 얼굴은 평소와 같은 무표정이 아니었다. 적의조차 아닌 다른 감정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우울함.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가온이었다.

“이제 우린 친구가 아닌 건가?”

참마황은 무시하려다 말았다. 그저 쏘아붙이듯 대답했다.

“난 그리 생각했지만 자네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아니, 나도 여전히 자네가 내 친구라 생각하네.”

“친구한테 이러나?”

“친구이기에 이러는 거야.”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는 듯 참마황은 눈을 흘겼다. 그리고 가온이 말을 이었다.

“자네가 한국인들을 학살했을 때, 그걸 난 죄라고 느꼈네. 그러면서도 입 다물고 있었지. 그래서 안 됐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거야. 제발 이해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더군.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런 설명을 가지고는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미치광이가 사람 죽이는 꼴로밖에 안 보이는데.”

참마황은 뒤늦게라도 변명해볼까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참마황의 복수심이란 이미 그 내면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이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굳이 논리까지 필요하지 않을 만큼 확고한 것이었다.

여전히 모든 감정은 그 안에서 휘몰아칠 뿐, 말이 되어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입 다무는 가운데, 가온이 말했다.

“내가 죄라 느낀다면······ 그것은 자네에게도 죄일 거야. 그리고 더 죄를 짓지 않도록 말리는 게 친구의 역할이라 생각하네.”

“그래서 친구 역할을 하러 나왔다고?”

“그래.”

“필요 없는 오지랖이었네. 단호히 거절할 테니 물러가.”

“아니, 반드시 해야겠어. 형으로서 오지랖 좀 떨면 어떻다고.”

어쩐지 정마저 느껴지는 말, 그것을 들은 순간 참마황의 뇌리에 스친 생각은 분노가 아니다.

‘내가 실은 형인데.’

그리 생각하고서 참마황은 자기 자신에게 놀란다. 이 와중에 그런 여유로운 생각이나 들다니?

이래선 안 된다. 결투에서 이기고 뜻을 관철하려거든, 이렇게 친근함을 유지해서는······.

참마황이 입술을 깨물었다.

싸울 준비를 하고자, 둘은 검을 뽑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TV 너머에서 한 공무원 여자가 놀랐다.

“어, 저거······”

가온은 오른손 검에서 불타오르는 검기.

그것을 보며 여러 사람이 기겁하는 가운데, 결투의 당사자인 참마황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게임 속에서 이루어진 일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한 모양이다. 그 붉은 검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한편 가온은 오른손에 든 검에서도 검기를 피워냈다.

이번에는 잿빛 검기다.

양쪽에 다른 검기, 그것들은 이내 합쳐진다.

재와 불이 서로에게 옮겨붙는다. 양쪽 기운이 뒤섞인다.

재와 불꽃이 섞인다.

재를 감싼 불꽃이 나선처럼 소용돌이치다가 재 속에 갈무리된다.

재 안으로 알알이 박히는 불씨들. 그 붉은 점들은 일렁이는 재 속에서 선명한 빛을 발한다. 완전한 합일.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현상이다. 참마황은 애써 적의를 불태우던 와중에도 무신경하게 넘어가지 못한다.

“그간 또 발전이 있었던 모양이군?”

“덕분에.”

참마황은 칭찬하려다 그만둔다. 저 엘프가 여전히 친구건 아니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결투의 상대방과 맞서기 위해, 참마황은 백색 검기를 피워낸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내심 이 엘프보다 자신이 더 강하리라 짐작했는데, 지금 보니 쉽지 않으리라고.

모든 힘을 다하지 않으면 패할 것이다. 그러니까, 상대를 죽일 각오로 싸워야 한다.

그러려거든 분노가 필요하다. 수백년지기 친구에게 살기를 발할 만큼 충분한 분노가.

그 분노를 참마황은 외부에서 이끌어온다. 전쟁 신의 대전사로서 기도를 올린다.

“전쟁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흉턴도 전쟁 신의 대전사였지만 그 사실이 시각적으로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마법적 공부와 마력적 재능이 모두 부족하여 신성 주문을 잘 쓰지 못하여 자기 신의 권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여기 있는 반신은 아니다. 마법적 공부는 부족하지만, 마력과 신성은 넘쳐 흐르다 못해 그 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떤 신성 주문이건 강력하게 발휘하기 충분한 요소다.

그리고 힘을 빌려줄 전쟁 신은, 그 요청을 하기도 전에 이미 분노하고 있었다.

‘죽여라! 이 참에 죽여버려라, 마족 놈아!’

전쟁 신은 격렬하게 분노를 노래하며, 그 감정을 자신의 대전사에게 전한다.

신의 권능이 반신의 몸을 타고 흐른다.

참마황의 힘줄이 솟구친다. 양쪽 눈이 충혈된다.

기어이 분노에 휩싸인 그 눈.

거기에서 이제 미약하게 남아있던 주저함은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분노, 분노만이 불타오른다.

일찍이 독일인들이 아스 전쟁 신과 오딘과의 연관성을 주장하게 했던, 광전사의 권능이다.

썩 대단한 평가를 받는 권능은 아니다. 공포를 잊게 만들고 신체 능력을 향상 시키는 이 권능은 사지로 돌격하는 병사들에게나 쓸 만한 것이요, 그 정도 효력이야 마약으로도 구현 가능한 일이라 크게 가치 있다 여겨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 어떤 권능이든, 반신이 사용할 경우에는 그 신적인 힘을 온전히 발휘한다.

참마황의 모든 마력이 분노로 화해 피로 퍼진다. 신경에도, 힘줄에도 신성한 분노가 퍼진다. 이제 이 막강했던 반신의 몸은 거의 없었던 한계마저 벗어났다.

분노의 권능은 몸뿐만 아니라 그 정신, 더 나아가 검기에도 영향을 주었다.

본래 검신을 감쌀 뿐인 검기는 원래의 역할을 넘었다. 참마황의 검을 타고, 줄기줄기 뿜어져 나와 주변 공기를 찢어발겼다.

그것을 가온은 지켜보다 말고, 본격적으로 싸울 준비를 했다.

결투 전에는 예의를 표해야 한다. 그렇게 했다.

“그럼, 최선을 다해서······”

가온이 검례를 취했다. 검신으로 얼굴의 반을 가렸다.

참마황은 그럴 정신이 없다.

참마황이 신적인 다릿심으로 땅을 박차는 그 순간, 쾅 하는 굉음이 울린다. 주변 바닥에 직접 가해진 여파는 단순히 금이 가는 수준이 아니다. 아예 구멍이 뚫린다.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이었는데도 마치 사막이었던 양, 콘크리트 가루가 폭풍처럼 휘날린다.

폭풍을 등지고 참마황이 달려온다.

그리고 가온은 그 속도를 보고 새삼 놀란다. 예상을 넘어선 속도와 힘이다. 저번 대련에서는 확실히 힘을 잔뜩 빼고 임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쪽도 맞설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입술을 달싹여 주문을 외운다. 가속된 속도와 반사신경으로 맞섰다.

양 초인이 충돌한다.

멀리서 TV로 이 두 소드마스터의 결투를 보는 사람들은 이 순간, 2차 대전 당시에 어떻게 소드마스터를 어떻게 네 명이나 죽일 수 있었는지 의문을 품을 것이다. 만약 모든 소드마스터들이 이랬다면 그때 아스는 세상을 정복했으리라.

그때 군사기술의 질이며 인구수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두 남자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들의 영역에 발 디딘 초인들이므로.

“카르세―아린―에―영광―있―으라―!”

그 포효는 드래곤의 그것이다. 엘프인 가온도 견디기 힘들어 눈살을 찡그리는 가운데, 저 멀리 있던 다른 사람들은 아예 몸이 굳는다. 그 누구도 이 가공할 초저주파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현장에서 도망치지는 않는다. 어떻게든 이를 악물며 결투를 바라보려 애쓴다.

기어이, 양쪽의 칼이 부딪쳤다.

양쪽이 빛이 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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