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116화 (116/135)

외전 흉턴 - [1]

아버지의 죽음 이후, 반지성은 사람을 죽이고 죽였다.

한국인들, 길거리에서 눈에 띈 불특정 다수를 죽였다. 그들의 존재가 반지성이 보기에 맘에 들지 않았으므로, 그들을 볼 때마다 욱했으므로 베어죽였다.

무단횡단하는 이, 거리에서 욕설을 지껄이는 이, 불법 노점상이며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는 이들은 죄를 지었으므로 당연히 죽였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이며 서양 물건을 소지한 이 등 죄 지은 것이 맞는지 의문스러운 이들까지 모조리 죽였다.

언젠가는 자신을 비난한 방송국에도 방문하여 교훈을 주었는데, 감히 평범한 잡것들이 초인을 비난했다간 모두 목을 잃고 만다는 교훈이었다.

그리하여 언론마저 침묵한 지금, 길거리에 담배꽁초 하나 버리면 바로 목을 베어버리는 초인의 존재는 모두의 공포가 되었다.

서울 부동산 가격이 이토록 폭락하기는 역사상 처음이었지만 지금은 그마저 신경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수천 명이 베여죽은 지금은.

이제 서울 사람들은 눈에 띄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으며 담배 꽁초를 길가에 버리기는커녕 길가에서 숨쉬기도 어려워했고, 이제 반지성이 죽일 죄인을 찾기도 어려워졌다.

이 와중에 반지성은 계속해서 같은 수를 베어죽이길 원했다.

이제 어쩌다 찾은 죄인을 참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 친구, 그 가족까지 참했다. 유유상종임을 고려하면 결국 다 똑같은 놈이므로.

당연히도 경찰과 군인들이 진압하러 왔지만 반지성은 그들과도 기꺼이 맞서 싸웠으며, 살아남았다.

결국에는 미군까지 동원된 소탕작전에서도 승리해냈다. 그 과정에서 총알 세 발을 맞긴 했지만 머리에 맞지는 않았다. 반신을 죽이긴 부족한 화력이었다.

결국, 한국 정부는 아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초인들, 그러니까 소드마스터들을 보내달라고.

맨 먼저 조선 독립운동과들과 연을 맺은 우드엘프들에게 요청했지만, 공기 질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당연히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니었을 테고, 반지성과 우드엘프 소년들 간의 친분 덕일 것이었다.

그 사실에 반지성은 더없는 감사함을 느꼈다. 역시 아스의 고귀한 종족들은 은원이 확실하다. 은혜는 물론 원한까지 싸그리 잊어버리는 조선 족속과 다르게도······.

반지성은 그리 감격하는 한편 분노했다. 이로써 자기 행각이 아스에 알려진 바, 그들이 어찌 보고 있을지 생각하자 더 큰 분노가 밀어닥쳤다.

자기네 죄도 모르고 어찌 감히.

그리하여 이미 만 명을 죽인 마당에 ‘징벌’할 대상의 범위는 계속해서 확장되었다. 죄인 본인에서 그 친구와 가족으로, 이제는 그냥 눈에 띄는 사람이면 그냥 죄인으로 여기고는 베어죽일 지경이었다.

덕분에 이제, 서울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그래, 고요한 아침의 나라란 이래야 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이 광경에 비로소 반지성은 만족감을 느낀다. 계속해서 이 애국활동을 이어나가려던 중이었다.

서울의 밤거리, 반지성이 징벌할 누군가를 찾아 매복해있던 그곳에, 기어이 이 조선인 초인을 상대하러 아스의 초인이 찾아왔다.

“반지성, 맞나?”

어조는 거칠지만 어휘만은 고풍스러운 카르세어, 반지성은 기겁했다.

“맞소만, 누구요?”

“흉턴.”

그 이름을 듣자마자 반지성의 놀라움은 더욱 커졌다.

정말인가? 그 흉턴? 아스 분노의 화신?

얼굴을 봐서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지금 흉턴이라 소개한 남자는 전신 판금갑옷을 입었다. 방어력이 무의미한 소드마스터끼리의 대결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다. 친구의 가보라던 그 갑옷이 아니고서야.

그리고 실제 흉턴이건 아니건, 반지성은 그와 싸우고 싶지 않다.

흉턴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세계에서도 들어왔다. 위대한 아스의 영웅, 복수의 화신.

우상에 가까운 그를 쓰러뜨리라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결투다. 관습대로의 결투는 아니다. 승자는······”

흉턴의 말을 무시하고, 반지성은 도주했다. 빠르게.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반지성은 반신이고, 그 초월적 다릿심이 내는 추진력은 가히 로켓과 같다. 평범한 인간 소드마스터인 흉턴은 따라잡지 못할······.

아니, 아니다. 따라잡힌다.

공기의 흐름이 반지성에게 자신을 추격하는 적의 접근을 감지하게 해준다.

등 뒤를 흘긋 돌아본 반지성은 기겁했다.

‘참마검······’

그 유명한 흉턴의 검이 지금 최대 길이로 늘어나 있다. 검기를 두른 칼끝이 저 너머 건물의 벽에 박혔다. 충분히 깊이 박혔다 판단되자 흉턴은 검기를 해제하고는 참마검의 길이를 줄인다.

흉턴의 몸은 그에 딸려간다. 순식간에 도망자와의 거리를 좁힌다.

검술이라기보다는 곡예에 가까운 동작이지만 이 순간에는 실전성이 넘친다. 이미 여러 본 써먹어본 눈치다.

반지성은 계속 놀라려다 말고 이내 수긍했다.

하기야 저 남자는 아스인이지만 지구의 도시에 누구보다 익숙할 것이다. 이런 콘크리트 정글에서 마족들을 사냥해온 저 기사라면.

“그래, 한번 붙읍시다······”

피할 수 없다고 느낀 반지성은 그제야 뒤돌아 섰다. 두 마스터는 서로를 마주보고 검을 겨누었다.

지구인이든 아스인이든 인간이란 공통분모가 작용한 것일까? 두 마스터의 검기 색은 같다.

찬란한 백색 광채가 어두운 서울을 비춘다. 이 구경거리를 마다하고 서울의 시민들이 숨 죽인 가운데, 두 초인이 맞붙었으며 그로부터 이십 분도 되지 않아 결판이 났다.

*******

반지성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상태 그대로 흉턴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씨발······”

그 욕설에는 초저주파가 흘러나온다. 상처 입은 야수. 그 흉흉한 눈에 분노가 깃들었지만, 자길 쓰러뜨린 적에 대한 분노는 아니었다.

저자를 불러온, 이 땅의 주민들에 대한 분노다. 감히 자신을 쓰러뜨리기 위해 아스의 영웅을 부르다니? 반지성은 살아 생전 이보다 큰 모욕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이것을 감히 자기네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르는 동족들에 대한 지엄한 분노라 부르건, 경찰을 부른 은행직원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하는 은행강도의 분노라 부르건 상관없다. 어쨌건 반지성의 분노는 더욱 커졌고, 그 분노는 가라앉을 줄을 모른 채 내면에서 소용돌이 칠 뿐이다. 패배자를 내려다보던 흉턴이 문득 물었다.

“왜 그랬나?”

반지성은 차마 이 영웅을 무시할 수 없었다.

“죄 지은 마족들을 속죄시키기 위해서요. 놈들이 추악한 짓을 저지르고 좋아하는 꼴을 볼 수 없었소.”

“죄를 지었다면, 베트남전? 거기 참전시킨 걸 말하는 건가?”

사실 그보다는 복잡한 이유가 있지만, 반지성으로서는 어찌 설명하기 어렵다.

반지성의 원한은 풀어 설명하기에는 그다지 이성적인 것이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불합리한, 그러나 그 자신에게는 선명한 분노다.

게다가 자신이 겪은 일을 굳이 말로 설명하자면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얘기다. 이미 죽은 그분을 모욕할 수야 없으니.

“비슷하오. 한 놈이라도 더 죽이지 못해 원통할 뿐이야.”

이 부족한 대답에 흉턴은 만족하지 못한 눈치였다.

“그러면 안 되지.”

“왜?”

“아무리 그들이 잘못을 저질렀다 한들, 어찌 수천 명이나 해칠 수 있나.”

그 말에 반지성은 버럭 소리질렀다.

“놈들도 다 마족일 뿐이오! 열등하고 약해 빠져서 쪽바리들 노예 노릇이나 했지, 힘이 있었고 이득이 된다면 죄 범하고 다녔을 마족! 그 사실을 이번에 증명했을 뿐이지!”

“그만, 귀가 울리는군······”

초저주파가 담긴 고함이 쇳덩어리 안에서 메아리치며 흉턴을 괴롭게 했던 모양이다.

그제야 흉턴이 투구를 벗었다. 드러난 그 얼굴은 땀에 젖어있다. 잔뜩 지쳤음이 드러난 그 얼굴.

그 피곤한 얼굴을 본 반지성은 분노한 와중에도 놀랐다.

‘상상 속 흉턴의 모습이 아냐.’

정확히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흉턴의 모습, 그 분노한 광전사의 모습과 다르다.

지금 흉턴의 주름진 얼굴에 투지와 분노 따윈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금 그는 그저 늙고 지친 노인처럼 보인다.

그 나약한 얼굴을 숨기고자 굳이 투구를 쓴 다음, 투구가 어색하지 않도록 갑옷마저 입은 모양이다. 하기야 이상한 일은 아니다. 흉턴은 이미 늙었으니.

반면 자신은 전혀 늙지 않았고, 패배한 와중에도 힘이 넘친다. 반신 아닌가.

반지성은 지금 반격하면 자신이 승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말했다.

“말이 길었군. 변명처럼 되니 구차해지는데······ 그냥 죽이시오.”

반지성의 요청에 흉턴은 담담히 대답했다.

“아니, 죽이진 않을 것이다.”

“그럼? 포로로 삼기라도 하겠단 거요?”

“원래는 그러려고 했지. 자네를 데려가기 위해, 대신 싸워주는 대신 부탁을 하나 들어달라 자네 나라 정부와 교섭해두기도 했고.”

“왜 굳이? 내가 뭐 그리 가치있다고······”

“정확히는 자네가 아니라 그 피를 탐냈다.”

“내 피를?”

“반신이라 들었다. 그 피엔 미약하나마 신성이 담겨있을 테니, 주기적으로 뽑아내어 섭취하면 수명연장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내 신께서 조언해주셨다.”

반지성은 조금 놀랐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존재가 저 아스 영웅을 위할 수 있다면 오히려 영광일 뿐이다.

“그래, 필요하다면야 얼마든지······”

그리고 흉턴이 말했다.

“그런데 막상 대화를 나눠보니 다른 생각이 드는군.”

“다른 생각?”

“마족을 증오하는 인간 소드마스터는 하나보단 둘이 나을 것이란 생각. 게다가 자네의 친우, 내가 원하던 복수를 순식간에 해낼 수 있었을 그 그레이엘프가 분노하리란 생각. 그렇듯 아군이 될 수 있을 둘을 굳이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어보인다.”

“그럼 날 데려가지 않고, 그냥 내버려둘 거요?”

“아니.”

“그래서 포로나 피 뽑기용 가축으로 데려가려는 게 아니면, 무슨 목적으로 데려가려는 거요?”

“내 후계자로.”

반지성은 눈을 크게 떴다.

“날 제자로 삼겠단 말이요?”

“비슷하다. 우선 검술부터 고쳐주지.”

“날 너무 쉽게 이겨서 우습게 보나본데, 난 살의가 없이 싸워서 그리 빠르게 진 거요.”

“그건 안다. 그걸 감안 하고서도 형편없었고. 검술을 익히긴 했나?”

“물론, 나는······”

반지성은 대답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지금 대답하자니 자기 검술과 그걸 가르쳐준 아버지를 욕보이는 것 같았다.

한편 흉턴이 평했다.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동작 간의 연계도 없고 역사도 느껴지지 않던데. 검술 스승이 누구인지 몰라도 제대로 된 검사였던 게 맞나?”

물론, 아버지는 제대로 된 검사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전제로 반지성은 생각해보았다.

아들 앞에서 근사하게 보이기 위해, 최대한 근사한 검술을 고안하는 아버지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검술 창작에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작도 몇 개 안 되었으니까. 오히려 악룡참수니 뭐니 기술 작명에 더 오랜 시간을 쏟았을 것······.

아버지가 우습게 여겨지는 이 생각에 반지성은 거부감을 느꼈다. 빠르게 생각을 수정했다.

이것은 진짜 천둔검법이고, 김시습이 안배한 그 검술이 맞다.

그리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반지성은 또 다시 욕설을 지껄였다.

“하여간 조센징들은 전래하는 검술마저 병신같군.”

흉턴은 그 멸칭이 맘에 들지 않는 눈치다.

다행히도 굳이 이 자리에서 실랑이를 벌일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이후로 흉턴은 반지성을 차원문까지 끌고갔는데, 반지성은 이미 재생을 마쳐 그 손길에서 벗어나려면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 지긋지긋한 조선 땅을 벗어나, 이 아스 영웅의 후계자가 될 수 있다면 그저 영광일 뿐이니.

차원문이 반지성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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