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115화 (115/135)

LV.9 빚쟁이 지존무쌍 - [2]

지존무쌍은 속으로 원망했다.

그놈의 사이버 매춘업소, 그놈의 비싼 요금. 기껏 번 돈을 모조리 날리고 말았다.

이 와중에 게임의 서비스 종료가 예정되었다. 앞으로 생활할 돈을 벌 수 있으리란 희망마저 사라졌다. 가뜩이나 전쟁이 다가오는 마당 아닌가. 국가는 이 빚쟁이 중년을 돌봐줄 여력이 없을 것이었다.

절박한 마음에 독한 맘을 먹고 일을 저질렀다.

‘괜찮아. 이건 죄가 아니야. 걔넨 웬 애국 활동에 수십억씩 쓸 정도로 여유가 있잖아? 여유 있는 쪽이 베풀어야지. 그중 겨우 오천 가져온 게 뭐 어때서······’

손을 벌벌 떨며,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생각했다.

‘어차피 이대로면 실패로 끝나서 허공에 날아갈 돈이기도 하고. 게다가 그 엘프 양반 말대로면 어차피 다 쓸모없는 일이니, 그리 낭비될 바에야 차라리 내가 가지는 게······’

자기합리화를 하는 와중에도 가슴이 콩닥거린다. 돈을 빌리고서 갚지 않은 적이야 여러 번이지만 아예 사기를 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반적인 컴퓨터 온라인 게임 계정과 달리, 세상에서 유일한 가상현실 게임의 계정을 추적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류시범이야 아예 기업 스폰서를 얻은 바람에 정보가 까발려져 습격당한 모양이지만, 자신은 스폰서마저 한국인이 아니었다. 경찰에 걸릴 염려가 전혀······.

그래도 너무나 불안한 나머지 문을 굳게 잠가두었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 사기꾼 새끼.”

불현듯 들려온 목소리에 지존무쌍은 비명 질렀다.

“아아아악!”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말했다.

“조용히.”

지존무쌍은 너무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서야 겨우 불청객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그가 이 집안에 어찌 들어왔는지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

“가온 씨? 내 집 어떻게 알고······”

“내가 그동안 현피를 상대가 주소 알려준 덕에 해낸 줄 알았나? 전화번호 대충 알고 알아낸 거지.”

“그래서 내 집엔 왜······”

“뭐긴 뭐야. 현피뜨러 왔지.”

“현피? 아니······”

“싫으면 갈취한 돈 당장 토해내.”

뭘 했는지 알고서 온 모양이다. 맙소사.

지존무쌍은 더듬더듬 말했다.

“이거 불법 침입이야.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 텔레포트로 침입하면 어쩔 방법 없다던 그 친구들? 무섭네. 왜, 총알을 베는 귀쟁이가 자신을 위협하고 있으니 경찰 말고 군대를 데려오라 요구하는 건 어떨까?”

지존무쌍의 가슴이 더욱 크게 박동했다. 그제야 며칠 전에 술까지 함께 마셨던 이 귀쟁이가 공권력조차 어쩌기 힘든 존재임을 실감한 것일까?

겁에 질린 지존무쌍은 어깨가 잔뜩 움츠러든 가운데, 거의 울먹이며 가온을 쳐다보았다. 가온도 이 중년 남자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어쭈, 원망하는 표정······’

마치 자기가 피해자인 듯한 그 얼굴에 가온은 어이가 없었다.

“사기 친 분이 왜 이리 떳떳한지 모르겠어. 경찰까지 부르겠다 하시고.”

“그건 사기가 아니라······”

“닥치고. 돈, 내놔.”

“없어. 다 썼어······.”

“장난하나?”

“진짜야. 채무불이행으로 통장이 압류된 상태라······”

“자세한 사정은 내 알 바 아니고. 그래서? 마흔 넘게 처먹고 젊은 애들 돈 갈취하고 싶나? 그 애들이 가엾지도 않아? 나라 위한다고 돈에 시간까지 버려가며 고생하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걔들보다 불쌍해!”

비난을 참지 못한 모양이다. 지존무쌍이 울분에 가득 차 소리질렀다.

“삶이 너무 어려워서 그랬어! 물론 번 돈 다 쓴 건 내 자업자득이지만, 그래도 돈이 너무 쪼들렸어····· 내가 그래서 가온 씨한테 그놈의 게임에서 돈 좀 벌게 도와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했잖아! 그랬음 이럴 필요 없이 정당하게 돈을 벌었을 텐데, 야속하게 무시했고!”

가온은 이 중년 남자에게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한테 신세 지지 않으려는 나름의 자존심이 있었음을 안다. 신세를 져도 큰 폐가 아니도록, 자기보다 훨씬 부유하고 강력한 가온에게만 빌붙으려 했던 것도 안다.

그러나 자신이 워낙 밑바닥에 떨어진 나머지, 모두가 자신보다 우월하게 여겨지게 된 지금, 모두에게 신세를 져도 될 권리가 생겼다고 여긴 모양이다.

가온은 그 사고를 짐작하지만, 무시한다. 충분히 무시할 만한 사고 아닌가.

“그래서?”

“내 집 꼬라지를 봐! 곰팡이 범벅된 반지하! 여기서 십 년 넘게 살았는데, 이젠 월세 못 내서 쫓겨날 처지야! 몸 망가져서 노가다도 못 뛰는데. 아무도 도와주질 않고! 나 방금 통장 압류됐다고 말했지? 사실 예전부터 신용불량자였어!”

“그래서?”

“그 어린 애새끼들이랑 달리 난 미래가 없단 말이야! 그래서 어쩔 수 없었던 거라고! 이해해 줘, 응? 우리 십 년 간 잘 지냈잖아! 십년지기면 거의 부모만큼 각별한 사인데, 고작 돈 가지고 이러기야? 가온 씨한텐 큰돈도 아닌 거 뻔히 아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건데······”

너무나도 억울하다는 듯, 아예 울기 시작한 지존무쌍을 가온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다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래, 친구를 위해서라면 오천만 원쯤 대신 내줄 수 있지.”

“정말 그래줄······”

지존무쌍이 울먹이다 말고 고마워하려 했지만, 가온은 그러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란 동등한 관계를 말하는 단어거든. 한쪽에서 기생하는 건 관계가 아니라. 그건 친구가 아니라 기생충이지?”

“난······”

“사실 지금까지도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일로 확실해졌어.”

“제발······”

그리고 가온이 선언했다.

“정식으로 절교다. 이젠 아는 척하지 마라. 더는 친구 비슷한 것도 아니니 정에 기댈 생각도 하지 말고.”

그러자 지존무쌍은 뭐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씨발 새끼, 동정심도 없는 새끼. 네가 어떻게······”

엄청난 부자인 네가 어찌 그럴 수 있냐느니, 이 정도로 냉혈한인 줄 알았다면 십 년 전에 게임에서 말을 걸어주지도 않았을 거라느니.

가온으로서는 죽도록 패주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기로 했다. 그리 고통을 주었다간 이 남자는 정말 약자로서의 기분을 한껏 만끽할 테니까. 속 편하게 병원밥이나 먹게 만드는 것보다는 교도소 밥을 먹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이후로 가온은 지존무쌍의 휴대전화에서 사기의 증거가 될 만한 입금 기록을 찾아낸 뒤, 울부짖는 지존무쌍을 내버려 두고 그 습기 찬 집을 나섰다.

그리고 사기의 피해자에게 연락하여, 일을 어찌 처리했는지 설명했다.

*******

“일이 그렇게 됐어. 증거랑 주소에 이름까지 알려줄 테니까, 그 새끼 사기죄로 고소해. 그리고 갈취당한 오천만 원은 일단 내가 준다.”

가온의 말에 수화기 너머 이미리가 말했다.

「아뇨, 그러실 거 없어요」

“물론 내가 갚을 필요 없단 건 잘 알지만, 나중에 둘이 짰단 식으로 오해받는 것이 싫어서 그래.”

「안 갚으셔도 된다니까요······」

“그럼 뭐, 그냥 기부한 셈 치겠다고?”

「아뇨. 그 돈은 정식으로 낸 셈 칠 테니까······ 도와줘요」

또, 또 저놈의 요청. 가온은 속으로 질색하며 예전에 했던 대답을 반복했다.

“안 돼.”

「다들 가온 씨가 도와주기로 해서 엄청 기뻐하고 있어요. 가온 씨가 유일한 희망이었다고요. 이대로 돌아가서 그게 사기였다고 말하면 모두 절망할 거예요. 가뜩이나 다들 너무 고생해서 피곤에 찌들어 있다가 겨우 웃게 된 건데」

“너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 고작 게임에서 일희일비하는 거에 그 정도로 가치를 두는 성격이던가? 예전 같으면 겜창들이 게임에 과몰입한다며 비웃어야 정상일 텐데? 갑자기 감정팔이나 하고······.”

「이젠 안 그래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다들 얼마나 고생하는지 뻔히 아는데 어찌 그래요」

“아무튼 안 된다니까. 지존무쌍이 이 말도 안 전해줬나 본데, 난 그 고생 해봤자 소용없는 줄 뻔히 알면서 돕는 척 기만하기 싫어.”

「소용없어도 돼! 안 되면 그냥 우리가 잘못 알았나보다 할 테니까 그냥 도와줘······」

이제는 숫제 설득이 아니라 조르기다.

가온은 짜증과 우울함을 동시에 느끼며, 자그마치 소드마스터와 맞붙을 수 있을 만치 실력 있는 칼잡이에게 걸맞은 보수는 줄 능력은 있느냐고 따지려다 입을 다물었다.

가온은 자기 나라를 구하려는 이 여자에게 그리 잔인하고 냉정하게 굴 처지가 못 된다. 그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가온은 게임 속 한국인 게이머들을 떠올린다.

희망을 품은 젊은이들.

가온은 그들의 희망이 헛된 것임을 알며, 왜 헛된 것인지도 정확히 안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설명해줄 수는 없다. 그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가온의 입에서 나온 말은 힘이 없었다.

“그래서 너희 쓸모없는 짓거리 하는 거, 도우느라 옆에서 구경하며 맘고생이나 실컷 하라고?”

「우리 고생하는 꼴 보기 싫어요?」

“물론.”

「그냥 내버려 두지만 말고 도와주든가요! 빨리 다 끝내고 집어치우게······」

“내가 도와주면 그 고생이 빨리 끝나나?”

「당연히 그러겠죠! 엔딩이 나오지 않아서 모두 질질 끌려 고생하는 상황인데요. 결과야 어떻든, 엔딩에 도달만 하면 모두 좋아할걸요. 비로소 이 지긋지긋한 짓거리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고······」

이것은 또 처음 들어보는 관점인데.

가온이 고심하느라 침묵하는 가운데, 그 귓가에 천상의 옥음이 울려 퍼졌다.

‘부탁에 응하는 게 어떻겠느냐, 가온?’

때아닌 여신님의 말씀에 가온은 놀랐다.

‘예? 여신이시여, 갑자기 왜······ 불과 며칠 전에 이제 게임 좀 줄이고 대전사 노릇에 충실하겠노라 다짐한 마당인데요. 이 와중에 누가 게임을 하라고 꼬시면 말리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일개 전자오락을 넘어선 중요한 일이니까. 참마황, 그가 태생 종족을 버리고 엘프가 되길 꾀함은 분명한 일인데. 그 소망을 저지하는 것은 사실 네 여신과 교단을 위한 일이 아니겠느냐?’

가온은 조금 생각해보고는 기도를 올렸다.

‘하기야 그렇군요.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대전사로서의 의무를 다하자면, 그 자식이 엘프가 되는 걸 저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국 애들이 바라는 그런 결과까진 나오지 않겠지만······’

‘그래, 사실 반드시 해야 할 일은 결코 아니지. 게다가 그럴 경우 그자와 내 대전사 간의 관계가 악화할 것을 생각하면, 네 여신은 그 일을 선뜻 지시할 수 없기도 하다.’

‘그것도 그렇죠. 그러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나름의 고민과 궁리를 거쳐, 가온이 이미리에게 말했다.

“그래······ 너희의 쓸모없는 고생길을 빨리 끝낼 수 있다면······”

「그 말씀은?」

“돕긴 도울게.”

「정말이요? 정······」

“너무 좋아하진 말고. 전폭적으로 도우려는 건 아냐.”

「그럼······」

이미리가 초조함을 느끼는 가운데, 가온이 말했다.

“정말 엘프 못 되게 막았다간 참마황한테 밉보일 게 무서우니까, 적당히 거들 예정인데······ 당장 게임 끝내지 못하는 게 그놈의 가온이 문제인 거지? NPC 가온.”

「예.」

“그렇다면 딱 수십 분.”

「예?」

“딱 수십 분······ 아마 이십 분 미만. 그 NPC 가온이 나타나면 그 정도 붙들고 있겠어. 애초에 소드마스터도 아닌 나한테 그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진 않겠지? 검기도 못 쓰는데 반신 소드마스터랑 그 이상 오래 싸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것은 그 어떤 한국인도 해낼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미리는 반색했다.

「예, 그 정도만 할 수 있어도 대단한 거죠! 정말 가온 씨가 그 가온이 아니라면 말이지만······ 참마황한테 밉보이기 싫다면서 가온이랑 맞짱뜨는 건 돼요?”

“그 정도는 괜찮아. 그 자식이 염치가 있으면 그거 갖고 뭐라 못할걸.”

결국 그리 결정되었고, 이미리는 비로소 웃었다.

「정말 고마워요, 정말!」

“고마울 거 없어. 말했잖아? 너희한텐 다 쓸데없는 짓이라고.”

「그래도요!」

이미리는 거듭 감사를 표했지만, 가온 또한 거듭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 말하지만, 고마울 거 전혀 없어. 원망하면 모를까.”

*******

혼자만의 연무장에서 수련하던 참마황은 뜻밖의 손님을 맞이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 심지어 표정까지 밝지 않은 그 손님을 참마황은 너무나도 반가이 인사했다.

“아, 자네! 여긴 어쩐 일로?”

가온은 인사할 기분이 아니었다. 바로 본론을 꺼냈다.

“대마법사가 살아 있단 걸 알고 있었지.”

참마황은 잠시 굳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필요한 일이었네.”

변명하면서도 참마황은 심히 미안한 눈치였다. 그 감정이 목소리에 뚝뚝 묻어나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 가온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겠지. 이쯤 되면 내 갑옷도 자네가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되는군.”

“아다만티움 갑옷 말인가? 그걸 내가 왜 갖고 있겠나?”

“갖고 있진 않더라도 어딨는지는 짐작하고 있을 것 같은데. 필요하다면 입 다물고 있을 테고.”

난데없이 의심받는 상황에 참마황은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역으로 화내지는 않았다.

“자네, 너무 흥분했네. 그러지 말고 차분히 생각해보게. 내가 왜 그러겠느냔 말이야······”

가온은 사실 예전부터 심증은 있었지만 직접 추궁하긴 뭐해 입 다물고 있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조용히, 원래 하려던 말이을 꺼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자네가 엘프가 되고 싶어한다고 들었는데, 맞나?”

“맞네. 그건 왜?”

“그걸 내가 방해해도 되나?”

그제야 참마황은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랬음 좋겠는데. 그런데 왜? 생존 사실을 숨긴 복수라도 하겠단 건가?”

“아니. 그 오락에서 내 분신이 가장 큰 장애물이란 말을 들어서.”

“자네 분신? 아, 그. 맞아. 또 다른 아린 벌판의 수호자지······.”

“그게 맘에 들지 않더군. 소위 ‘참마황 불로불사 영구집권 계획’에 또 다른 내가 협조하는 것 같아서······. 확 없애버릴까 싶네.”

“또 다른 가온을 없애다니? 어떻게······ 초상권이라도 주장해서 삭제를 요청하겠단 말인가? 대통령씩이나 돼서 법을 부정하긴 우습지만 그건 안 될걸세. 애초에 그 게임은 법을 아득히 초월하시는 신들께서 만들라 지시하신 거라서.”

“당연히 그런 방식은 아니지.”

“그러면 어떻게?”

“손수 없애볼까 하는데.”

“또 다른 가온을, 그놈의 게임에 직접 뛰어들어서 죽이겠다고?”

“못 그럴 것 없지.”

참마황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제발, 그러지 말게!”

지금 참마황은 그 방해로 말미암아 자기가 엘프가 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참마황은 그저 기겁하여 말을 이었다.

“재의 왕자가 참마황의 숙원을 막으려 하는 거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네! 그런데 고작 게임에 접속해서 그런다고? 재의 왕자씩이나 되어 치졸하다고 비난받을 거야! 도저히 자네 체면에 어울리는 짓이 아니네!”

사실, 가온도 그리 생각했더랬다.

“그야 당연히 정체를 숨겨야겠지. 회색 검기 따윈 쓰지 말아야겠고. 그저 은근슬쩍 섞여 칼을 휘두르기만 해야······”

그 말에 비로소 참마황은 반색했다. 그 정도면 별일 아니라 느낀 것일까?

이 심각한 와중에 갑자기 웃더니 말했다.

“뭐, 그 정도로 자네 화가 풀릴 것이라면 얼마든지 하게. 그런데 검기를 쓰지 않고 또 다른 자넬 상대하겠다니, 쉽지 않을걸? 나도 시험차 겨뤄봤는데 분신에 불과하다고 해서 도저히 얕볼 수가 없더군. 그 친구, 자네 가보까지 입었던데 말이야······.”

참마황은 난데없이 또 다른 가온에 대해 줄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낭패를 보지 않도록 배려하려는 모양이다.

난데없이 찾아온 회색 엘프에게 욕만 잔뜩 얻어먹은 와중에도, 참마황의 태도엔 이렇듯 호의가 넘친다. 화내러 온 가온이 미안해질 정도다.

‘뭐 어쨌건 게임에서 날뛰어도 좋단 허락은 받았고······’

한편 그 시각, 4판타지 온라인과 그와 관련된 사이트에서는 한 엘프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가온! 가온! 가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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