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103화 (103/135)

LV.? 대전사 참마황 - [3]

그로써 전쟁주의자와 평화주의자 모두 위기를 넘겼다며 즐거워하던 그 시각. 심지어 여신께서도 안심하시던 그때.

또 다른 트롤이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이번에 등장한 트롤은 행위뿐만 아니라 종족에서도 트롤이었다. 초자연적인 재생 능력으로 유명한 그 트롤 말이다.

이 트롤 또한 전쟁을 바랐다.

게다가 그는 참마황의 골수지지자였다. 그분의 뜻을 반대하는 자들을 증오했다.

그리고 그들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지금, 트롤은 크나큰 울분을 느꼈다.

울분을 풀길 원했다.

트롤은 집 근처에 있는 화로의 신전을 떠올렸다. 정문에 설치된 화로에서 이십사 시간 불꽃이 타오르는 그 신전.

대부분의 트롤들은 불을 싫어한다. 그 역시 불꽃의 신전을 보면서 언제나 혐오감을 느꼈다.

지금이야말로 불을 꺼뜨릴 기회라고 생각했다.

트롤은 신전의 문을 박차고 안에 들어섰다.

화로의 사제 또한 형제자매들이 무사함에 TV를 보며 기뻐하던 마당이었다. 그것이 트롤의 화를 키웠다.

사제는 트롤의 등장에 놀라 물었다.

“형제님? 이 시간에 왜······”

물음에 답하지 않고, 트롤은 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옛날에는 몬스터로 분류되던 트롤들의 몸은 그 자체로 흉기다.

바위처럼 크고 억센 주먹에 머리가 으스러져, 사제는 절명했다.

신실하고 선량하게 살아온 성직자의 죽음이었다. 육체를 잃은 그 영혼은 천국에 닿았으며, 그로써 화로의 여신께서는 당신의 사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셨다.

여신께서 크게 노하시어 범인을 잡도록 요구하셨으니, 뒤늦게 출동한 경찰은 이 트롤을 체포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잡은 트롤의 정체를 알고는 당황했다.

트롤의 이름은 쿠타르였고, 아주 유명한 트롤이었다. 카르세의 모두가 그 이름을 알았다.

*******

트롤들은 놀라운 재생 능력 덕에 쉽게 늙어 죽지 않는다. 쿠타르 또한 올해 116살이었다.

이 정도로 오래 산 아스의 존재라면 지구 제국주의자들의 만행을 직접 겪어봤기 마련이다. 쿠타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름지기 제국주의자들이 실험체로 사랑하는 종족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트롤이었다.

트롤의 피가 회복 포션의 주재료라는 것은 예로부터 유명한 일이었다. 아스에 넘어온 지구인들이 이 초자연적 생물에 주목하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세의 열악한 기술로 이 괴물의 신체 일부를 그리도 쓸모 있게 가공할 수 있었다면, 위대한 과학의 힘으론 얼마나 많은 쓰임새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아름다운 엘프를 해부하는 것과 달리, 이 괴물 같은 유사인류의 몸을 칼로 쑤시는 것쯤은 그다지 사악한 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러니 당당히 드러내놓고 실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롤의 인기란 상상을 초월했다.

아스에 진출한 지구의 열강은 숲과 산을 뒤져 경쟁적으로 트롤들을 잡아갔으며, 쿠타르 또한 이때 잡혀가 온갖 생체실험을 겪었다.

고통의 세월이 지나, 쿠타르가 풀려난 것은 전쟁이 끝난 후로도 시간이 꽤 흐른 1964년이었다. 쿠타르가 잡혀간 것은 1920년대였으므로, 사십 년 넘게 고문받다가 돌아온 셈이었다.

이후 수립된 장검정권은 이토록 끔찍한 일을 당한 피해자를 무관심 속에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마족이 얼마나 사악하고 잔인한 족속인지 보여주는 산증인으로서, 이 트롤에 관련된 책과 다큐멘터리를 여럿 제작하여 배포했다.

덕분에 쿠타르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카르세에서 몰상식한 것을 넘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로 간주되었다. 위안부 사건을 모르는 한국인이어야 그와 비슷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 유명한 트롤이 살인혐의로 기소된 사실은 당연히도 카르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현실을 부정할 만큼 놀랍게 하지는 못했다.

다들 저 트롤이라면 그런 짓을 저지를 만하다고 생각했다. 기껏 복수의 전쟁이 다가오는가 했더니 훼방꾼들이 승리한 셈이었으니.

그러니까 쿠타르가 성직자 살해 혐의로 기소된 지금, 전쟁주의자들이 이 트롤의 무죄방면을 주장한 것은 그가 정말 사제를 죽였다고 믿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이 트롤이라면 그런 짓을 저질렀어도 용서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그 누구도 수십 년 동안 고문받았던 이 트롤의 원한을 그릇됐다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도 이 트롤이 겪었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서 나온 행동은······”

그동안 장검정권은 이 트롤을 전쟁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상징으로 삼았다. 그 상징이 수감 되는 일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마침 수십 년 동안 고문당했던 불행한 과거는 이 트롤이 정신병으로 인한 심신장애였음을 주장하기 충분해 보였다. 이대로 시간을 끌다가 적당히 감형을 시킬 작정이었다.

그러나 여신께서는 그리 쉽게 넘어가실 생각이 없었다. 정치적인 이유에서든, 정말로 분노하셔서든 간에.

성녀가 여신의 말씀을 전했다.

“성직자 살해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며, 그 살인은 정신병이 아닌 증오로 인해 저지른 일이었다! 그 사제 살인범은 즉시 처벌받아 마땅하다! ”

화로의 교단은 이 일을 결코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교단은 이번 분쟁에서 어떻게든 승리하길 원했다. 평화주의자들을 향한 어떤 범죄든 절대 넘어가지 않으리라 증명하길 원했다.

그리하여 평화를 외쳐도 해코지당하지 않으리란 보장을 줄 수 있다면, 맘속으로는 전쟁을 꺼리지만 비겁자로 몰릴까 봐 두려워 침묵하는 자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 와중에 카르세 재판부는 어쩔 줄 몰랐다. 이 정도로 정치적인 분쟁에서 중립적인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하물며 신이 얽힌 일임에야.

그리하여 재판부는 이 사건을 자기네 손에서 던져버렸다.

그들은 이렇게 선언했다.

“이 사건은 신의 위엄과 관련된 일이므로, 세속의 법으로 판단하기 극히 어렵다고 판단되어······”

부끄러운 짓을 하는 자 특유의 헛기침.

“······결투 재판을 선언합니다. 피고인 쿠타르는 직접 결투에 나서 승리하여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거나, 혹은 자길 위해 결투에 임할 대전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공정한 척하는 편파였다. 이 판결이 쿠타르에게 유리한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그 트롤을 위해 나서줄 솜씨 좋은 검객들은 카르세 연방에 넘친다. 소드마스터 대통령에게 잘 보이고 싶은 소드 엑스퍼트들만 모아도 사단을 이룰 수 있을 것 아닌가. 화로의 교단에 소속된 검객들을 모아봤자 그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화로의 교단이 격분하는 가운데, 가온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껏 일이 잘 풀렸나 싶었더니 이따위로 흘러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가온은 배신감을 느꼈다.

참마황, 그가 어찌 감히?

‘은혜도 모르는 놈이.’

가온이 생각하기에, 참마황은 여신께 이래서는 안 된다. 대체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참지 못하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정말 이럴 건가?”

「이해해주게. 나는······」

가온은 더 듣고 싶지 않았다. 뭔가 말하려는 참마황을 무시하고, 전화기를 내팽개치고는 텔레포트했다.

이번 일의 원흉이 있는 곳으로.

*******

이 어처구니없는 판결과 사건의 진행은 계속해서 주목받았다. 아스에도, 지구에도.

저아스인입니다 : 카르세 새끼들 미개한 거 보소? 21세기에 결투로 살인죄 판결하겠다는 거 진짜냐?

저아스인입니다 : 애초에 트롤이면 한세기전에만 해도 사람 잡아먹고 다니던 몬스터 새끼들 아닌가? 지구인들이 트롤 새끼들 죄다 잡아가 줘서 사망자 대폭 줄었는데, 고마운 줄 모르고

멋진이 : 트롤도 어엿한 사람이다, 이 차별주의자야. 그리고 생체실험에 쓰려고 잡아간 족속들을 대체 왜 고마워해야 하니?

저아스인입니다 : 트롤 말고도 딴 몬스터들도 지구인들이 싹 잡아줬는데?

멋진이 : 그야 몬스터들이 싸돌아다니면 자기들이 철도 깔고 식민지 경영하는 데 방해되니까 죽였지. 주민들 위한다고 죽였니?

저아스인입니다 : 의도야 어떻든 지구인들이 일해줘서 무능한 아스놈들 만 년 넘게 소탕 못 했던 몬스터들 싹 다 죽은 거 인정? 덕분에 아스인들 살기 훨씬 나아진 거 인정? 지구에 은혜 입은 거 인정?

멋진이 : 이거 딱 지구놈들 논린데? 이 자식 말도 이상하게 험하고 VPN까지 쓰는 거 보니 영국이나 프랑스놈 같은데...

프랑스인 하나가 눈살을 찌푸리던 그때, 지금까지 일어난 일보다 훨씬 더 주목받을 일이 일어났다.

모두가 이 사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가온이 텔레포트 한 곳은 구치소 건물이었다. 그놈의 트롤이 구금된 장소.

수감시설인 만큼 당연히도 텔레포트 방지가 돼 있었다. 그래서 정면으로 뚫고 나갔다.

“누구냐!”

경비의 날 선 외침에 가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마!”

뭐라 외치는 경비들을 무시했다. 가온이 발걸음을 옮겼다.

기어이 구치소 안에 들어서자, 경비들은 눈을 질끈 감고는 각자 든 총을 발사했다.

그리고 발사된 총알들은 튕겨 나갔다. 침입자가 대충 휘두른 칼에 모조리.

지구의 오해와 달리, 이런 묘기는 아스에서도 보기 어렵다.

이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본 경비들은 더 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소드마스터? 그러니까······ 가온 전하?”

“아니.”

물론 가온으로 의심하더라도 나중에 추궁할 수 없을 것이다. 누가 감히 초인에게 따지겠는가?

가온은 이제 방해받지 않고 복도를 걸어갔다.

아무도 분노한 소드마스터의 앞을 막지 못했다. 간수와 경비들은 그저 상부에 연락하고자 죽을 힘을 다해 어디론가 뛰어갈 뿐이었다.

잠시 후, 가온은 목적지에 다다랐다.

철창에 갇혀있는 트롤이 보였다.

가온은 철창을 칼로 구부려 입구를 만들었다. 쿠타르는 순간 장검정권의 칼잡이가 자기를 구하러 온 줄 알고 기겁했다.

“어······ 누구요? 난 여기서 안 나갈 거······”

말하던 쿠타르가 컥컥거렸다.

가온이 그 목을 붙잡았다. 그대로 벽에 밀었다.

쿠타르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당황하면서도 반항했다. 두꺼운 팔로 침입자를 밀어내려 애썼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이 트롤은 자신이 힘에서 밀리자 당황했다. 오거 포션이라도 마셨나? 그래도 어떻게 트롤을?

“억······”

가온이 쿠타르를 집어던졌다. 벽에 충돌한 쿠타르는 고통 속에서도 맞서 싸우려다 말고 퍼뜩 생각했다.

이 상황에, 이럴 만한 인물을 안다.

쿠타르는 벌떡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엎드려 복종을 표했다.

“가온 전하······”

가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가온이 말없이 칼을 드는 가운데, 쿠타르가 외쳤다.

“요즘 그리 처신하시는 건 심히 잘못된 일입니다······ 원수를 갚으셔야 합니다! 죽은 그레이엘프 분들을 생각하십시오. 그들의 원한을 갚아주셔야······”

이놈이나 저놈이나. 자신에게 뭔가 시키지 못해 안달이다.

새삼 더 화가 치밀어오른다.

이제 가온은 기꺼이 종족 차별주의자가 되었다.

“어디서 그레이엘프를 입에 담아. 천한 트롤 따위가.”

그제야 쿠타르가 입 다문 가운데, 가온은 이 트롤을 단번에 죽여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단순히 화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이 일을 가장 깔끔하게 해결할 방법이었다.

그 목을 베기 위해 휘두른 칼, 소드마스터가 휘두른 그 칼이 막혔다.

“그러지 말게, 제발.”

쿠타르는 자신을 도우러 온 참마황을 보고 울먹였다.

“폐하······ 절 위해서······”

참마황은 일을 저지른 트롤을 노려보다 말고 한숨 쉬었다.

가온이 칼을 거두지 않은 채 쏘아붙였다.

“왜?”

“불쌍한 자야. 가뜩이나 내게 의지하는데, 저버릴 수 없네.”

가온은 분노한 와중에도 어이가 없었다.

“설마 그래서 감싼 건가?”

“그렇네.”

“황당하군. 대통령씩이나 되어서 일을 그리 감정적으로?”

가온의 비난에 참마황은 고개를 숙였다.

“부디 용서해주게. 내 나중에 여신께 따로 용서를 빌겠네.”

그제야 가온은 칼을 거두었다. 일을 끝내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용서야 당연히 빌어야 하는 거고. 그냥은 못 넘어가지.”

“결판을 기어이 내야겠다는 거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참마황의 말을 가온이 알아들었다.

“그래, 그럼.”

가온은 여신님과 대화를 나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화로의 교단은 결투 재판을 승낙했다.

그리고는 결투자로 자기네 공식 대전사를 내보냈다. 그러니까, 소드마스터 가온을.

그 결정에 모두가 경악했다. 그들이 보기에 일개 결투 재판에 반신 소드마스터를 내보내는 것은 소규모 분쟁에 핵무기를 발사하는 격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평범한 칼잡이를 내보내는 것은 사실상 항복이나 다름없다.

참마황은 항복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트롤을 위한 대전사로 나섰다.

아스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 둘이 맞붙게 된 상황, 이 정신 나간 상황에 아스인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지구인들은 기대 어린 시선으로 이 상황을 주목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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