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 대전사 참마황 - [2]
“유감이라니, 뭐가?”
가온의 물음에 참마황이 대답했다.
「최근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 후긴을 용서한 것은 뭐라 않겠네.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그거야 자네의 권리였으니까. 하지만 교황 사건은 넘길 수가 없어. 거의 이적행위나 다름없었잖은가?」
“그건 오해라는 거 알 텐데. 전쟁 신께서 말씀 안 해주시던가?”
「나야 알지.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걸. 게다가 이번에 자네, 교단의 집회에 참여했다는데 맞나? 반전시위를 예고한 그 자리에······」
“그렇다면?”
「경솔한 일이었네. 그러지 말아야 했어」
“신도들이 다칠 수 있으니 보호하기 위해 나선 거지. 애초에 대전사가 교단의 집회에 참여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
「일련의 사건이 연속되니 자네가 완전한 반전주의자로 보이니까 문제 아닌가. 자네는 분명 복수를 맹세했을 텐데, 교단의 일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두고 자넨 당장 다가오는 전쟁에 집중해야 하지 않나?」
참마황의 지적에 가온은 혀를 찼다.
“웃기는군. 내가 지구의 공포로 통하는 건 다 여신님의 권능 덕분인데, 그 권능을 주시는 여신님께 소홀하길 바라나? 다들 그 권능을 원하기에 여기저기서 러브콜하는 것일 텐데.”
「다른 자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아닐세. 권능과는 상관없이, 난 그저 자네와―」
참마황의 말을 가온이 도중에 끊었다.
“전화로 나눌 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군. 도청될 수 있단 것 모르나?”
「―그래. 알겠네. 아무튼 거듭 충고하자면, 처신에 주의하게. 이번 반전시위 예고에 사람들은 화가 났네. 그놈의 평화집회는 전쟁을 원하는 자들을 감명시키는 게 아니라 도발할 게 분명하단 말일세」
“그래서? 설마 나보고 집회를 말려달란 건 아니겠지?”
「그럴 수 없나?」
“없네. 그동안 교단 일을 내팽개치던 대전사에게 무슨 발언권이 있겠나.”
참마황은 한숨 쉬었다.
「아만약 이번 시위로 인해 유혈사태가 일어날 경우······ 득 보는 자들은 마족들밖에 없을걸세」
“그게 걱정된다면 시위 현장에 경찰이나 좀 넉넉하게 배치해주게. 웬 얼간이들이 여신님의 신도를 해치지 못하게.”
「안 그래도 그럴 계획이야. 그러니 자네도······」
*******
그 시각, 일부 카르세인들은 TV를 보며 혀를 찼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마족과의 전쟁을 바라는 자들. 소위 극단분자들은 마족과의 화해를 주장하는 자들을 배신자라고 느꼈다.
배신자를 응징하고 싶은 충동이 간절했다.
“평화 시위? 그게 뭔? 마족 물이 들어가지고 역겨운 짓만 골라서 하네······.”
그들은 이번 시위 예고를 일종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였다.
가뜩이나 요새 저놈의 교단이 맘에 들지 않던 마당이었다. 유명하기 그지없는 저 교단의 대전사만 해도 그렇다. 얼마 전에 그 대전사가 프랑스에서 날뛸 때는 가히 황홀경마저 느꼈지만, 요새 그 대전사의 행보를 보고서는 그럴 수 없었다.
아스에도 인터넷이 있다. 저 유명한 엘프가 요새 지구에서 영웅 취급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스의 전쟁주의자들은 그 사실을 대단히 고깝게 여겼다.
물론 화가 난다고 뭘 어쩌기는 어려웠다. 화로의 대전사는 반신이자 소드마스터이며, 그런 초인의 보호는 너무나도 강력하다.
누군가가 화로의 신도를 공격할 경우 저 대전사는 즉시 텔레포트로 날아와 응징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무리 어려워도 저 배신자 교단을 공격하고픈 사람들이 많았다.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끼리,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리하여 꽤 그럴듯해 보이는 작전이 나왔다.
워낙 시간이 촉박한 탓에 전문가의 자문을 구할 수 없어 여러모로 어설픈 계획이었지만, 어쨌건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며칠 뒤, 예고된 평화 시위가 개시되었다.
불꽃처럼 휘날리는 화로의 깃발 아래, 화로의 신도들은 카르세의 수도를 행진했다. 각자 준비해온 반전 구호를 외치며.
“전사들은 영광스럽게 죽어 천국에 갈 수 있을지 몰라도 남겨진 어머니와 자식들은 그러지 못합니다! 남겨둔 자들을 생각하지 않는 무책임한 전쟁입니다!”
“싸우면 자멸이나 공멸뿐입니다! 좋든 싫든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과거의 원수와 불편한 공존을······”
그리고 야유가 쏟아졌다.
그들의 반전시위에 지지를 보내는 시민들은 없었다. 하나도 없었다.
폴리모프한 채 시위대를 호위하며, 가온은 그 사실을 실감했다.
‘시민들의 태도만 봐선 모두가 전쟁을 바라는 것 같군요. 이래서야 여신님의 바람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가온의 한탄에 여신께서 대답하시었다.
‘평화를 바라는 자들은 보이는 것보다 많으리라. 여기서 시위에 냉담하게 대응하는 자들조차, 속으로 평화를 원함에도 겉으로는 외면하는 것일 수 있노라.’
‘전쟁 분위기에 평화를 외쳐서 좋은 취급을 받을 리는 없으니 말입니까?’
‘그래. 네 여신은 그렇듯 침묵하는 다수가 있으리라 믿는다. 어쩌면 그들을 수면 위로 끌어낼 수 있으리란 가능성을 믿었지. 그래서 이런 쓸모 없어 보이는 시위를 허가했노라.’
그 말씀에 가온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길가의 사람들이 속으로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어쨌건 당장 보기에 시위대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험악했다.
그나마 시위대에 계란이나 오물 따위가 날아오지 않는 것은 감히 그랬다간 신성모독으로 여겨지리란 걱정 때문이었다.
좋든 싫든 신의 뜻을 받드는 자들은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아스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가끔은 상식을 무시하는 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배워먹질 못한 오크들이 그러했다.
“씨발놈의 배신자들, 뒤져어어어―!”
시위대를 향해, 일단의 오크 무리가 달려들었다.
이 오크들은 이런 테러가 일종의 성전으로 간주 되리라 기대하는 눈치였다. 이 과정에서 죽으면 천국에 가리라고 기대하여 돌격했다.
“멈춰! 다가오면 쏜다!”
기겁한 경찰들이 총을 겨눴지만 오크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전투함성을 외치며 달려들었다.
이미 다들 죽을 각오를 하고 왔는지 마약까지 한 눈치였다. 경찰들이 권총탄 한두 발 쏘는 것쯤은 무시할 것이다.
경찰들이 당황한 가운데, 화로의 신도들은 겁을 먹었다.
“여신이여······”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화로의 대전사가 앞으로 나섰다.
날을 세우지 않은 예장용 검을 휘둘렀다. 아주 살짝 움직였지만, 거기 닿은 오크의 무릎은 푹 하고 꺾였다.
“억······”
뒤이어 달려온 오크들도 더 좋은 꼴을 당하지는 않았다. 모두 이 소드마스터를 넘어서지 못한 채 쓰러졌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스무 명의 오크들은 제압되어 경찰들에게 포박당했다.
이 놀라운 솜씨에 자칫 죽을 뻔했던 신도들은 감격한 눈치였다. 위기에서 등장한 검객에게 지극한 예를 표했다.
“대전사님, 감사합니다!”
“저 여러분 대전사 아닙니다. 뭐만 하면 다 가온 경인 줄 압니까?”
신도에게 짜증 내며, 가온은 여신께 하소연했다.
‘아니, 왜 다들 제 정체를 저리도 잘 맞히는 거죠?’
‘이게 다 내 대전사가 정체를 숨기다 드러내는 전개를 지나칠 만치 남발한 탓 아니겠느냐?’
‘하여간 이래서 신비의 소드마스터 설정을 유지해야 했는데······ 아무튼 이로써 제 임무는 완수된 것이겠습니까?’
여신께서 웃으며 대전사에게 ‘그렇다’고 대답하시려던 차였다.
여신께서 위치한 천상의 옥좌에, 신도들의 기도가 전해지고 있었다.
그 기도가 여러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여신께서 대전사에게 말씀하시었다.
‘아니다, 가온. 네 여신의 신도들에 대한 공격은 이제부터 시작인 듯하다.’
‘이 근처엔 습격할 만한 자들이 더 없는 것 같은데······ 다른 곳에서 습격이 있습니까?’
‘그래. 평화 시위가 오히려 전투의 신호가 된 모양이라. 카르세의 여러 곳에서, 네 여신의 신도들을 향해 동시다발적인 공격이 개시되었다.’
그리고 가온이 말했다.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
드워프들은 대장장이 신 아니면 화로의 여신을 믿는다.
옛날에는 주로 대장장이 신을 모셨지만 이제는 화로의 여신을 더 많이 모신다. 대장장이 직업의 수요가 지나치게 줄어든 탓이다.
몇몇 골수 드워프들, 소위 드워프 파시스트들은 그런 동족들을 고깝게 여긴다. 평소에도 손봐주고 싶었는데 마침 그럴 명분이 생겼다.
망치와 아주까리기름을 들고, 일단의 드워프들이 움직였다.
망치질에 능한 드워프들답게 뭔가 때려 부수는 데에도 능했다. 예전부터 근처에 공장이 들어서면 단체로 쳐들어가 기계들을 부수곤 했다.
그렇게 카르세 연방의 산업화를 지연시켰기로 악명 높은 이 드워프 파시스트들은 이번에 기계가 아닌 동족에게 망치를 휘두르고자 했다.
첫 표적은 시계를 만들며 사는 동족이었다. 평화에 찌든, 불량 드워프. 무기를 만들어야 할 의무를 저버렸다.
“곧 전쟁이 다가오는데 넌 이딴 쓸모없는 잡동사니나 만들어!”
시계 장인으로 유명한 이 드워프는 파시스트들의 습격에 질겁했다.
독실한 화로의 신자답게 비명처럼 외쳤다.
“여신이시여! 도와······”
이 순간 파시스트 드워프들은 뭘 할 기회가 없었다. 울붖짖는 시계공을 비웃을 틈도, 작정한 대로 시계공의 손등에 망치를 찍어버릴 틈도 없었다.
공간이 일렁였고, 신도의 위기에 화로의 대전사가 파견되었다.
“어······”
이 파시스트들이 진압되기까지는 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기 무섭게 가온은 다른 장소로 텔레포트했다. 다른 장소에서 요청한 도움에 응했다.
이번에는 린치 현장이었다. 웬 불쌍한 청년이 복면 쓴 무리의 몽둥이찜질에 당할 판이었다.
“게이 새끼도 아니고! 사내새끼가 어딜 가정이나 돌보는 여신을 믿······”
가온은 어디서 감히 신성모독을 하느냐며 훈계하지 않았다. 그러는 대신, 검집을 휘둘러 그 입들을 박살 냈다.
그러고서 다시 텔레포트했다. 여신께 도움을 요청한 다른 장소로.
이번에 도움을 요청한 자는 소위 폰팔이였다.
맥도날드 점포가 단 하나도 들어서지 못한 카르세 연방이지만, 이 나라에도 스마트폰 대리점은 있었다.
주로 지구에서 물건을 들여오는 이 업소는 이번에 습격을 당했다.
“어디서 마족 물건을 팔아먹어?”
평소 같으면 마족 중에서도 동맹인 한국에서 들여온 물건이라 변명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마침 참마황이 그들 국가에 선전포고 비슷한 것을 한 마당 아닌가.
습격범들은 이 휴대폰 판매상을 두들긴 뒤, 평소 갖고 싶던 스마트폰을 각자 몇 개씩 챙겨가고 싶었을 것이다.
바로 나타난 화로의 대전사가 그들의 소망을 파괴했다.
이런 식의 습격이 서른두 곳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났으며, 그중 스물다섯 습격은 서로 연대 된 자들의 계획된 습격이었다.
그들은 여러 장소에서 동시에 공격할 경우, 제 아무리 텔레포트의 달인으로 유명한 그 대전사라도 대응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 결국 모조리 습격에 실패한 지금, 그들은 경찰의 손에 넘겨졌으며 저녁 뉴스에 출연했다.
「화로의 신도들에게 몇 번의 습격이 있었으나, 모두 미수로 끝났으며 (······)」
얼핏 보면 이것은 평화주의자들이 승리한 사건으로 보인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전쟁주의자 또한 이 결과에 크게 안심하고 있었다.
이번에 화로의 신도들이 습격을 당해 크게 다치거나 몇 명이 죽었다면, 그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경우 화로의 대전사는 복수심일랑 접어두고 신도들의 보호를 우선해야 했을 테니까.
요새 행보야 어쨌건 마족과의 전쟁에 동참하기로 한 그 대전사는, 자기 신도들을 해친 전쟁주의자들을 적대하게 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전쟁주의자들은 아주 강력한 동맹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습격 미수범들은 전쟁주의자들이 보기에도 그저 대업을 망칠 뻔한 트롤 무리에 불과했다.
그 증거로, 전쟁 신마저 이번 습격에 분노를 표했다. 이따위 말도 안 되는 습격을 꾀하다 죽기라도 한 자는 반드시 지옥에 보내버릴 것이라고 엄포했다.
전쟁 신의 엄포는 카르세 연방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전쟁 신의 대전사가 현 카르세 연방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참마황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뜻이 다르다 하여 여신의 뜻을 받드는 자들을 해치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신성모독이라 단언하셨습니다.
정부의 기조와 다르다 하여 그들 신도에 대한 공격을 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만약 그럴 경우, 정부는 절대 묵시하는 일 없이 강력히 처벌할 것을······」
카르세의 뉴스를 보며 여신께서 대전사에게 말씀하시었다.
‘전쟁 신 그자가 내 대전사에게 치하와 격려를 전해달라는구나? 네 여신으로서는 그자가 기뻐함에 함께 좋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마는.’
“일단은 기뻐하시지요. 어쨌건 죽은 신도는 안 나오지 않았습니까?”
가온의 말에 여신께서는 조금 고민하더니, 이내 웃으셨다.
‘그래, 네 여신은 기꺼이 기뻐하리라. 아주 잘했다, 내 대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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