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조지 - [1]
“떠나신다고요?”
“예. 목적은 달성됐으니까요. 신세 많이 졌습니다.”
“저희야말로. 빚을 갚으러 오셨다지만, 오히려 가문이 빚을 졌습니다.”
이번 작별에 멘데스 부부는 아쉬움을 표했지만 붙잡지는 않았다.
그 딸 요한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오늘 떠난다고요? 와, 차였네.”
요한나는 데리고 다니면 시선을 독차지할 수 있는 명품 남자친구를 잃는다는 사실에만 아쉬움을 표했다.
감히 날 버리냐며 화내거나 달라붙지는 않았다. 하기야 세련된 젊은이인 그녀가 보기에 그리 관계에 집착하는 일은 찐따 같은 일일 터였다.
“그러고 보니 파티랑 백화점만 다니느라 해야 할 일을 못했네요. 이별 섹스라도 한 판?”
요한나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가온은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이 현대 여성은 어찌나 세련됐는지, 수백 살 먹은 엘프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죄송하지만 엘프들에게 그런 행위는 금지돼있습니다.”
가온의 정중한 거절에 요한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우드엘프들도 즐길 거 다 즐긴다던데?”
이건 또 어찌 알았나? 가온은 서둘러 변명거리들을 생각해보았다.
다른 엘프들과 달리 순결 서약을 거부하고 화로의 여신께 귀의하는 과정에서 그레이엘프들은 신들에게 성욕감퇴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 그래서 성적으로 즐기자는 제안은 썩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은 물론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그레이엘프들은 오로지 출산을 목적으로만 성관계를 갖지만, 엘프가 보기에 수명이 짧은 하프엘프를 낳고 싶지 않다는 것도 설명할 수 없었다. 하프엘프보다도 수명이 짧은 인간을 병자 취급하는 발언 아닌가.
최대한 상처를 입지 않을 대답을 고르는 중이었다.
“엄마 아빠한테 말한 그 이유 때문이에요? 독일인이랑 떡치면 아스에선 배신자 취급 받아서?”
요한나의 질문에 가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죄송하게도.”
“그럼 뭐······ 어쩔 수 없죠. 그럼 바로 떠날 건가요?”
“예.”
“터미널까지 태워줄게요.”
“아뇨, 그럴 필요는······”
가온의 말에 요한나가 짜증냈다.
“그냥 마지막 데이트라 생각해요.”
이마저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인간 여성 하나와 남성 엘프를 태운 차가 도로를 달렸다.
*******
조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교황을 만날 방법은 꽤 여러 가지 있었다.
예를 들어 바오로 6세 홀에서는 수요일마다 일반알현이 이루어졌다. 대중에게 공개된, 교황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모인다는 것이 껄끄러웠다. 그 모두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개별알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것도 선택하기는 껄끄러웠다. 교황과 단독으로 만나고 싶노라 신청하면 당연히도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교황궁내원은 자신이 모든 소지품을 압수해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마법사이며 예히나탈에 다녀온 흔적까지 있음을 순식간에 파악할 것이다. 절대 교황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해야할 블랙리스트에 올릴 것이다.
그래서 조지는 두 방법보다 조용하고도 어려운 방법을 선택했는데, 바로 교황의 비서가 되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교황의 비서는 교황의 가장 개인적인 자리에 함께할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지금 비서가 되고 싶다며 이력서를 한 통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조지는 폴리모프 주문을 쓸 줄 알았다. 그것도 특정 인물의 외모를 순식간에 복제할 수 있을 만치 훌륭한 폴리모프 주문을.
그리하여 지금, 조지는 교황과 단둘이 있었다.
“오늘따라 표정이 창백하군?”
교황의 말에 비서의 모습을 한 조지는 핏기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예, 몸이 안 좋다 보니······ 다행히도 옮을 만한 병은 아니라 합니다, 성하. 다만 목이 아픈데, 목소리도······”
“그래. 말 시키지 않겠네. 비서들의 임무가 과중하니 아프다고 쉽게 퇴근하긴 어렵겠지만, 틈틈이 쉴 수는 있겠지. 마침 지금이 쉴 기회 같은데, 내가 기도하는 동안 눈 감고 편히 앉아있지 그러나?”
“말씀은 감사하지만······”
교황은 잔잔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릎 꿇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교황의 개인기도 시간이었다. 교황은 이 작은 테라스에서, 하루 30분 정도 묵주기도를 올렸다.
내면세계에 집중하고 있던 교황은 등 뒤의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암살자에게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자, 이제 눈을 감고 있는 교황을 그대로 찌르면 된다.
쉬운 일이었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조지는 머릿속에서 악마를 형상화한 것 같은 서기장의 말을 떠올렸다.
‘악을 갚겠다 말하고 여호와에게 뒤돌아서게. 그가 자넬 버리게 해.’
그렇다. 이 일을 저지르는 순간 자신은 지금껏 모시던 신께 등지는 것이다. 영원히 버림받는 것이다.
새삼 각오한 일인데도 몸이 떨렸다.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자네? 괜찮나?”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뜬 교황은 비서가 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식은땀마저 줄줄 흘리고 있자 놀랐다.
“바로 사람을 불러 와야······”
교황의 말에 조지는 허둥거렸다.
“아니,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가서 네 신에게 작별을 고하고 와.’
교황이 나가서 사람을 부르려던 와중이었다. 조지는 황급히 교황을 불러세웠다.
“잠깐만······ 성하께 감히 여쭤볼 게 있습니다. 영혼에 관련된 일인데요.”
“영혼에 관련된? 종교적인 질문이란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교황은 그런 건 바쁜 교황이 아니라 다른 사제에게 물어보라며 쏘아붙이지 않았다. 교황은 아픈 사람에게 냉정하게 굴 사람이 못 되었다.
“물어보게. 뭔가?”
조지는 뭘 물어야 할지 긴급히 떠올렸다. 마침 어느 성직자든 붙잡고 물어보고 싶던 질문이 있었다. 그것을 여기서 교황에게 물었다.
“리치가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언데드 리치 말입니다.”
“당연히 안 되겠지. 개신교도들이야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그거야 그네들 주장이고. 정해진 수명을 거부하는 것은 곧 신께서 약속하신 안식을 거부하는 것인데, 그거야말로 악마의 노예가 되는 일 아니겠나.”
곧 리치가 될 예정인 마법사에게는 듣기 좋은 대답이 아니었다. 더듬더듬 물었다.
“하지만······ 리치가 되는 걸 수술의 연장으로 볼 수는 없겠습니까? 그저 죽음을 미룬다는 점에서 같은 것 같은데······”
“수술이라니? 사악한 마법 아닌가. 자네 대체······”
퍼뜩 놀란 교황은 조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네······ 내 비서가 아니군.”
“예?”
“난 독일 출신일세. 소싯적엔 마법에도 손댔지. 워낙 재능이 없어서 맨드레이크가 똥만 됐고. 그 덕에 성직에 임하는 데 결격사유가 되지 않았지만······”
조지는 낭패감을 느꼈다. 교황은 한때 마법을 수련한 자로서, 자신의 눈에 일렁이는 마력을 느낀 모양이었다. 비정상적으로 넘쳐나는 이 마력을.
“그래서? 알면 어쩔 거요?”
조지의 말에 교황은 조용히 말했다.
“조용히 하게. 소리를 내면 근위대가 올 거야.”
“다 죽여버릴 거요.”
“그러면 안 되지. 지금 죽기엔 젊은 친구들인데······ 조용히 하게.”
물론 조지로서도 소란을 피워서 이로울 것은 없었다.
조지가 입 다문 가운데 교황이 물었다.
“어디서 왔나?”
“소련에서. 인민의 아편상을 제거하라며 서기장 동지께서 지령을 내리셨소.”
애써 빈정거려 보았지만 먹히지 않았다.
“과거에서 왔나 보군? 반세기 전에서. 뭐, 서기장 동지가 보낸 것은 맞는 거 같은데.”
조금 생각해보면 뻔한 일이지만 조지는 지금 그리 느낄 수 없었다.
속이 읽히는 느낌, 초조와 불안 속에서 조지의 머리에는 두 가지 생각이 소용돌이쳤다.
죽일까?
그냥 떠날까?
생각할 시간이 꽤 있었다. 교황은 당장 무슨 벨을 눌러 근위대를 호출하거나 상주 직원들을 부르려 시도하지 않고 있었다. 교황은 그저 모범적인 인질처럼, 얌전히 있었다.
아주 고맙게도. 수상한 행동은 전혀······.
아니, 아니었다.
“지금 뭐 하는?”
조지는 지금 교황이 은밀하게 뭔가 적고 있음을 눈치챘다.
모름지기 인질을 잡은 납치범의 초조함은 분노로 화하는 법.
조지는 어처구니없게도 배신감마저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왜 적는 거지? 뭘 적는 건가?
조지는 교황이 뭔가 적어둔 종이를 노려보았다.
“뭐라고 쓴 거냐?”
조지는 읽을 수 없었다. 라틴어로 쓰여있었다.
그것이 조지의 눈에는 비밀 지령을 내린 것쯤으로 보였다.
분노에 가득 차 외쳤다.
“대답해!”
교황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바깥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젠장,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근위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긴장과 분노 속에서, 기어이 조지는 일을 저질렀다.
조지는 입술을 달싹였고, 주문이 발현되었다. 공격적인 주문이.
“그저······”
뭔가 말하려는 교황의 입이 닫혔다. 그 목에 회전하는 얼음송곳을 쑤셔 박혔다.
기어이 교황을 살해한 조지는 피로 물든 종이를 줍고는 달렸다. 달리면서 마법적 유물에 닿았고, 폴리모프가 풀렸다. 원래 모습이 드러났다.
이제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된 가운데, 조지는 복도에서 근위대와 마주쳤다.
“너!”
이쪽에 겨누어진 소총, 물론 마법사를 죽이기 충분한 무기다. 그러지 못하게 막았다.
조지의 눈이 마력으로 일렁였고, 기초적인 마법이 발휘되었다. 냉기조종.
따뜻한 데다 기초적인 마법저항력이 있는 신체를 직접 얼리기는 어렵지만, 총을 얼리기는 쉬운 일이었다. 원체 차가운 금속이니.
그렇게 했다. 조지의 시선을 받은 노리쇠가 얼어 붙었다. 결국 노리쇠는 당겨지지 않았고, 총기 고장에 근위대원은 당황하면서도 할버드를 들고 달려들었다.
냉병기를 든 전사 따위는 마법사의 상대가 아니다.
“억······”
간단한 마법을 쏘아 근위대원 한 명을 죽인 뒤, 근위대원이 들고 있던 총을 주워들었다. 이후로 마주칠 근위대원들을 상대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러했다. 마주친 근위대원들의 총은 얼리면서, 이쪽은 일방적으로 총을 쏘며 달렸다.
조지가 암살에 임하려던 원래 생각과는 달리, 학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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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도 교황과 근위대를 학살하는 마법사의 존재란 긴급속보에 출연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로마는 물론 한국에도, 독일에도 관련 속보가 송출되었다.
「교황 살해 범인은 고령의 (······) 그러나 고도로 훈련된 요원으로 보여 (······) 마법적 흔적이 (······) 총기를 난사하며 달리는 (······)」
지구의 뉴스와 달리, 아스의 뉴스는 이것을 역사적 위업쯤으로 받아들였다.
「간악한 예수쟁이 두목이 응징을 받았다! 이는 수십 년 만의 쾌거이며, 천상의 신들께서도 기뻐하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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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던 차의 차량용 TV에도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가온이 듣는 가운데, 요한나가 입을 열었다.
“바티칸에 테러? 미친놈이네. 아스인이 보기에도 저런 놈들은 쓰레기죠?”
가온은 사교적인 대화를 위해 맞장구를 쳐주려다 말았다.
수십 년 전 기억을 간직한 재의 왕자는 정체를 숨기는 와중에도 그럴 수 없었다.
“아뇨. 의로운 일입니다. 저 교단이 아스에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요.”
“현 교황은 잘못도 없는데요. 요새 아스도 연좌제는 철폐하지 않던가요?”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왜? 가온은 당황하면서도 말을 받았다.
“연좌가 아닙니다. 집단이 원한의 대상인 거죠. 그러니 거기 몸담길 선택한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겁니다.”
그 말에 요한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 조금 뜸 들인 끝에 입을 열었는데, 설득하려는 듯한 어조였다.
“가논 씨한테 가르침을 내리셨다는 우리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조언하시길, 맘속 응어리와 집착을 내려놓으라 하지 않으셨나요?”
“그러셨죠.”
“과거는 잊고 용서하는 것도 거기 포함되지 않았을까요?”
그 말에 가온은 쓰게 웃었다.
“실컷 두들겨 맞은 왕따와 일진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둘이 나이를 먹었는데, 왕따는 하도 시달려서 공부도 못했고 성격도 뒤틀려서 막장 인생 살고 있습니다. 일진은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장 다니고 있고요. 그 와중에 일진이 왕따를 찾아와서 그땐 미안했다며 사과 한마디 했다 쳐요. 과거 일이라고 용서가 되겠습니까? 용서한다고 응어리와 집착이 사라질까요? 오히려 식칼 들고 달려들고 싶을 겁니다. 지구와 아스의 관계가 딱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과로도 부족하면, 일진이 용서받으려면 뭘 어째야 하는데요?”
“심판을 받아야지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요한나는 다시 생각에 잠기더니, 또 다시 설득을 시도했다.
“이름 비슷한 가온을 보세요. 그 일을 당해놓고서도 후긴을 용서했는데, 다른 아스인들은 본받아야······”
“가온은 사실 용서한 게 아닐 겁니다. 그리고 사실, 후긴은 벌이라도 받았죠. 지구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독일도 포함인가요?”
“예. 독일도 그나마 영향력 있는 카르세에만 사과했지, 잔뜩 학살한 유대인들은 비누라며 놀리지 않습니까. 아스에서 괜히 아직도 독일을 제국주의 국가로 분류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뭐 어쨌어야 하는데요?”
“처벌을 받았어야 했지요.”
“그럼 독일인인 나도 처벌을 받아야 하나요?”
“간접적으로는 받아야할지 모르죠.”
가온의 대답에 요한나는 입을 다물었다. 차를 멈추더니 말했다.
“내려요.”
화가 난 모양이었다. 가온이 바라보는 가운데 요한나는 소리쳤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려요!”
가온은 순순히 차에서 내렸다. 터미널까지 가는 데 굳이 운송수단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니.
요한나가 탄 차가 멀어지는 가운데, 가온은 멍하니 서있었다.
저 여자가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역사 문제에 그리 관심이 많았나? 설마.
역사 이야기란 모름지기 파티장에서 떠들었다가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등신 취급받기 딱 좋은 화제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왜 작별하는 와중에 했으며, 그걸 가지고 왜 화까지 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 의문을 표하니 여신께서 말씀하시었다.
‘내 대전사와 진지한 관계를 맺고 싶었던 게 아니겠느냐?’
‘예?’
‘내 대전사는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을 만한 배려로 아스와 지구의 험악한 관계를 이유로 삼았지. 그러니 그 이유가 잘못됐다며 설득에 나서려 한 것으로 보이노라. 교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사실상의 프로포즈였단 말입니까?’
‘아마.’
그 말에 가온은 곰곰 생각해보았다. 확실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 설득을 하기 위해, 요한나는 짧은 시간 꽤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꽤 공들인 프로포즈였던 셈이다.
그걸 거절한 지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가온은 스마트폰을 켰다.
거기서 나오는 뉴스를 마저 보았다.
「벌써 근위대원 서른네 명이 죽었습니다. 참으로 끔찍한 (······)」
바티칸에서, 마법사 테러리스트는 자길 막으려는 근위대를 죽이고 죽이면서 달리고 있었다.
이때 가온이 할 만한 행동은 딱히 없었다. 옛 원한을 생각하면 막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계속 보기만 하던 와중이었다.
「시스티나 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왜소한 마법사임을 고려할 때 텔레포트하려는 것으로 보여 (······)」
추적에 협조를 요청하려는지, TV에 용의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가온은 그 노인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조지 워커?’
가온은 그 마법사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가 말한 사연이 남은 까닭이었다.
옛일을 생각나게 만드는 사연, 가온은 그에게서 동정심을 느꼈다. 따로 도움을 주고 싶을 정도로.
‘텔레포트하려고 들어갔다고? 그럼 나도 저쪽에 텔레포트할 수 있단 말인데······’
가온은 그 영국인 마법사가 과연 얼마나 텔레포트를 잘할지 생각해보았다. 추격을 피할 만큼 멀리 이동할 수 있을까?
그것까진 알 수 없었지만, 자신만큼 텔레포트를 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탈출하기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했다.
TV에 나오는 장소를 향해, 가온은 텔레포트했다.
*******
조지는 기어이, 자길 가로막는 근위대원 수십 명을 죽이며 길을 열어내는 데 성공했다.
조지는 시스티나 성당을 둘러보았다.
온갖 벽화로 장식된 유명한 성당. 천지 창조를 비롯한 온갖 명화들이 이 성당을 수놓고 있었다.
물론 구경하고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뉴스에서 보인 추측이 옳았다. 여긴 관람이 허가된 시설이고, 평소에 텔레포트 방해유물이니 뭐니를 설치해놓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얼마든지 텔레포트할 수 있었다.
그러니 여기 들어온 지금, 이제 조지가 탈출하여 리치가 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목적이 달성되었다!
성취감이 죄악감을 밀어내는 가운데, 조지는 텔레포트할 준비를 했다.
그 전에 문득 의문 하나를 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벽에 붙어 덜덜 떨고 있는, 사제로 보이는 남자를 붙잡고 물었다.
“읽어봐라. 뭐라 적힌 거지?”
교황이 몰래 적은 쪽지였다. 무슨 비밀지령이 있었을까?
겁에 질린 사제는 거짓말을 지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쪽지를 더듬더듬 읽어내렸다.
“복수하지 말라. 오른뺨을 맞았다면 왼뺨을······.”
조지가 굳은 가운데, 사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마저 읽어내렸다.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지만 지키는 기독교도가 없던······ 그 격언을 실천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