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멘데스 - [2]
가온은 당황했다가 겨우 대답했다.
“실례지만 거절해야할 것 같군요. 아가씨의 매력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엘프는 결혼할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요한나는 코웃음쳤다.
“누가 결혼하재요? 그냥 내 옆에 졸졸 따라다녀 주기만 하면 돼요.”
“시종이나 경호원이 필요하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니, 그냥 옆에 된다니까? 뭐든 해주겠다면서 이거 하나 못 해줘요?”
그러나 가온으로서는 썩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정말 그랬다간 나중에 검술 선생에게 돌아가서 뭘 어떻게 말해야 한단 말인가.
‘은혜를 갚기 위해, 당신 손녀쯤 되는 젊은 여자애랑 사귀고 왔다? 한 대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네.’
속으로 고심하며 가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여자만의 자취방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본가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면 부모가 돌아올 것이다. 그들에게 자세한 얘기를 하면 될 것이다.
그리 생각한 가온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 당분간은.”
“정말이죠?”
요한나가 기분 좋게 웃는 가운데 가온은 입술을 달싹여 주문을 외웠다. 폴리모프. 다시 애용하는 동양인의 모습을 둘렀다.
그 모습에 요한나는 좋아하다 말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왜 또?”
“엘프의 모습을 드러내고 다니면 지나치게 관심받을 것 아닙니까?”
“옐로몽키도 만만찮게 관심받을 텐데? 안 좋은 쪽으로요.”
가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평소 한국인들과 어울리는 마당에 옐로몽키란 단어는 듣기 좋은 단어가 아니었다.
“지금 엘프를 악세서리처럼 끼고 다니고 싶어서 그리 말하는 겁니까. 아니면 정말 독일 내 인종차별이 심한 겁니까?”
“둘 다요. 여기까지 오면서 눈 찢는 제스처 같은 거 안 당했어요? 이걸 왜 모르지?”
“텔레포트로 와서······”
가온의 해명에 여신께서 참지 못하시었다.
‘텔레포트할 줄 아는 엘프가 내 대전사 말고 또 누가 있기에 그런 설명을 하느냐. 네 여신이 그럴 것이라면 아예 검기도 쓰라 몇 번이고 말했지 않았느냐?’
‘대놓고 정체를 밝히진 않더라도 은근슬쩍 정체 유추할 수 있게 힌트를 주는 게 묘미인데······ 아무튼 데이트 하는 건 상관없겠습니까?’
‘내 대전사는 요새 실행을 먼저 한 뒤에야 허락을 구하는구나? 내 대전사의 독실함에 네 여신은 매번 감격하노라.’
‘어······ 번복할까요?’
‘글쎄. 만약 내 대전사가 저 여자와 결혼하겠노라 청하였다면 네 여신은 시어미가 어떤 존재인지 친히 알려주었겠으나······’
‘그러진 않을 겁니다. 절대.’
가온은 즉답했고 여신께서는 만족하시었다.
‘그래, 그럼 되었노라. 가온.’
한편 요한나는 자신을 두고 위대하신 대신격과 그 대전사가 신성한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저 신이 나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오늘 파티 있어? 응, 있다고? 갈게!”
통화를 마치자마자 요한나는 씩 웃었다.
“준비해요.”
그리 말하더니 요한나는 가온에게 정장을 입혔고, 문외한이 보기에도 값비싼 독일제 스포츠카에 태웠으며, 속도를 위반하며 신나게 달렸다.
순식간에 도착한 파티장은 으리으리했다. 호화스러운 후긴의 뱀파이어들에게 익숙해진 가온이 보기에도 기가 질릴 정도였다.
‘대체 뭘 돕겠다고 온 건지······’
새삼 후회하며, 가온은 실실 웃는 요한나와 함께 파티장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는 약간 기분이 좋아졌는데, 관심을 받게 된 덕분이었다.
아주 열렬한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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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 명백히 우월한 엘프의 존재가 드러났을 때, 지구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몇몇은 질투했고, 몇몇은 질투하다 못해 작위적인 혐오를 드러냈다. 엘프들의 외모는 지나치게 아름다워 요사하고, 뾰족한 귀는 척 보기에도 사악하니 그들이 마귀 족속이라 주장한 것이다.
그 어떤 인간 종족도 수명 짧은 원숭이쯤으로 보이게 하는 이 종족을 어떻게든 폄하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물론, 그리 엘프들의 가치를 깎아내리면서도 남몰래 엘프들을 납치하여 그들의 완벽한 육체에 깃든 비밀을 알아내고자 노력하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편 일본과 독일의 경우에는 보다 호의적이었다.
일본인들의 경우에는 엘프들의 외모에 주목한 모양이었다. 백인종보다도 아름다운 이 종족을 데려와 피를 섞어, 일본 인종을 서양인들보다 우월하게 개량하자는 계획을 진지하게 세웠다.
계획 실현을 위한 엘프 납치시도가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엘프들이 지금도 에르후란 발음만 들어도 기함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그리고 독일인의 경우에는 엘프란 종족 자체를 숭상했다.
독일인들은 엘프 종족에 그저 무한한 호의를 보였는데, 이 세상 모든 종족이 자기네보다 열등하지만 오직 엘프들만은 금발에 푸른 눈의 아리아인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라는 평가를 내렸을 정도였다.
이 놀라울 만치 후한 평가는 생각보다 많은 독일인들이 아스를 자기네 선조들의 땅이라 믿는 데서 기인했다.
그리 믿는 이유가 나름대로 있었다. 아스의 대표적인 종족인 엘프와 트롤 등은 게르만 신화에도 등장하는 종족들 아닌가. 심지어 발음마저 유사하니,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엘프들은 게르만 선조들과 어울리던 위대한 종족인 것이다!
이 믿음이 얼마나 확고한지, 히틀러는 독일 내에 엘프 보호수역을 만들어 엘프들을 살게 하자는 계획까지 세웠다.
물론 일본의 하프엘프화 계획보다는 훨씬 온건한 계획이긴 했지만 그 역시 거부당했다. 엘프들은 자기네 숲에서 자기네 종족과 지내길 원했다.
결국 21세기에도 지구에 넘어온 엘프라곤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나타난 엘프의 인기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가온은 파티장에서 모두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실감했다.
“애미 뒤졌네! 반칙이야 이거!”
“어디서 데려왔어! 어디서 데려왔어!”
모여든 아가씨들이 주변에서 꺅꺅거리는 가운데, 가온은 그녀들과 춤추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파티를 즐겼다.
그러니까 구석에서 주변 모두에게 관심이 없는 듯 무표정하게 서있었단 소리였다. 그러기만 해도 엘프는 모두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사진 좀 찍어도 돼요?”
“죄송하지만 거절해야겠군요. 영혼의 손실이 우려되어서요.”
“와, 진짜 엘프야!”
어느새 파티가 엘프 숭배모임이 된 가운데, 자신이 데려온 엘프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요한나는 우월감을 만끽했다.
그녀가 파티를 즐기는 방식 중 하나였다. 비싼 소유물 자랑하기. 귀하신 아가씨들의 취미다.
그런 고풍스러운 아가씨들의 취미에는 당연히도 약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파티가 계속 진행되던 중, 요한나가 말했다.
“화장실 갈 건데, 에스코트 좀 해줄래요?”
뭔 에스코트를 화장실까지 하느냐 따지지는 않았다. 가온은 순순히 요한나를 따라갔고, 모두의 부러움을 받으며 요한나는 복도를 걸어갔다.
“여기서 망 보고 있어줘요.”
“예, 뭐.”
독일인들에겐 특이한 문화가 있구나 싶어 가온이 멀찍이 서있던 와중이었다.
요한나는 화장실로 다가갔다. 소변을 누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화장실은 남들과 차단될 수 있는 장소로, 파티 중에 약을 즐기기 좋은 장소다. 그 사실을 모두가 알고 애용했다.
화장실 앞에 한 남자가 서있었는데, 약팔이였다.
“오늘은 뭐 있어?”
“코카인만 좀······”
“별론데······ 아무튼 줘.”
둘은 들리지 않도록 작게 말했지만, 엘프의 귀에는 들렸다. 가온은 바로 둘의 거래 현장에 끼어들어 제지했다.
“그만.”
약팔이가 엘프를 보고 놀라는 가운데, 요한나는 짜증을 냈다.
“아, 꼰대처럼 왜 방해를······”
가온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후긴을 마약상 소굴로 만든 장본인으로서, 가온은 마약에 민감했다.
“약은 오크나 하는 겁니다. 오크였습니까, 요한나 양?”
“아니······”
“꺼져라. 아니면 결투할 텐가?”
가온이 검을 뽑아들며 말했는데, 약팔이는 사실 총이 있었지만 엘프를 쏴죽임으로써 유럽의 모든 신문 1면에 출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좆같네······”
결국 약팔이가 툴툴거리며 물러간 뒤, 요한나는 화내려다 말았다.
“날 위해 칼까지 뽑았어요? 이건 좀 근사한데······”
“딴 말 말고. 평소에도 약합니까?”
“뭐, 중독 안 될 만큼만 조금.”
“마약에 조금이 어딨습니까? 다 그러다가 조금씩 양 늘리면서 심신이 망가지는 거지.”
“잔소리는······”
요한나가 다시 툴툴거리는 가운데, 가온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손 줘봐요.”
“손은 왜요.”
불평하면서도 요한나는 순순히 손을 내밀었는데, 일부러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지금 상황이 썩 싫지 않은 눈치였다.
이윽고 가온이 그녀 앞에 무릎 꿇더니,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사제다운 자세로 여신께.
“여신이시여.”
여신께서 기도에 응하신 바, 신성이 발휘되었다.
사제이자 반신으로서 사용하는 정화의 주문. 그 강력한 신성이 마약쟁이의 신체에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지금 주문의 힘이 자기 체내에 깃든 불순물을 밀어내고 있음을, 그게 얼마나 어렵고 놀라운 일인지 요한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황홀함을 느꼈다.
지금 요한나가 보는 것은 경건함이다. 21세기, 따로 종교시설에 찾아가도 겪기 어려운 감성이다. 지금까지 어울려온 세련된 남자친구들과는 겪어보지 못한 고리타분한 감성이다.
이 순간, 그 낡은 감성에 요한나는 매료되었다.
그녀가 상황 자체를 즐기는 가운데, 정화가 끝났다.
가온은 사제로서 경고했다.
“금단증상이 있긴 할 겁니다. 기억으론 똑똑히 남아있을 것이라서요. 그러니 약을 끊으시려면 단순히 방금 해드린 신성 마법적 조치뿐만 아니라 본인의 노력이 필요한데, 그러실 의지가······”
요한나는 멍하니 있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뭐, 그러죠.”
“맹세합니까?”
“뭐, 같이 있을 동안에만······.”
가온은 한숨쉬었고, 파티장에 복귀했으며 다시 관심을 독차지했다.
날이 저물어서야 둘은 집에 돌아왔다. 손님방까지 따로 있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집이라 가온이 머물 곳은 이미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거기서 얌전히 요한나의 부모를 기다렸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가온은 하룻밤 잤고, 다음 날에는 또 파티에 끌려다녔으며 백화점 쇼핑까지 어울려야 했다. 심지어 영화관에도. 가온이 보기에, 요한나는 어디에 데려가든 엘프와 함께라면 주인공이 될 수 있단 사실에 쾌락을 느끼는 눈치였다.
“엘프!”
가온으로서는 슬슬 쏟아지는 관심을 즐기기보다 정신적인 피곤함을 느끼는 가운데, 또 다시 날이 저물었다. 가온은 괜히 왔다는 후회 속에서 생각했다.
‘대체 부모는 언제 오는 거야? 약쟁이 딸내미 내버려두고······’
다행스럽게도 다음 날 아침, 이번에는 요한나가 미용실에 데려가겠다 선언하여 가온을 겁에 질리게 한 그 시점, 가온이 애타게 기다리던 두 명이 나타났다.
문이 열렸고, 한 부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자기 구원자라 확신한 가온은 바로 그 앞에 서서 자신을 소개했다.
“멘데스 씨 맞지요?”
“예? 예. 그런데······”
“초대받지 않고 멋대로 댁에 머무르고 있어 죄송합니다. 저는······”
부부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가운데, 가온은 서둘러 자신이 여기 온 목적을 밝혔다. 그러니까 이 부부가 얼른 다른 부탁을 함으로써 이 ‘기생오라비’를 딸에게서 내쫓아주길 바라며.
그러나 뜻밖에도, 멘데스 부부는 그러지 않았다.
“선친께 받은 은혜를 갚으러, 아스에서 오셨다고요?”
“예.”
“그렇다면 정말 엘프? 분장이 아니라 진짜 엘프입니까?”
맙소사, 부모마저 찾아온 손님의 목적보다 종족에 더 관심을 두는 눈치였다. 가온은 반쯤 질린 기분으로 대답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