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멘데슨 - [1]
영국인 마법사 조지는 교황을 암살하러 떠났다.
비행기에 탑승했다. 로마행 비행기에.
이때 조지는 비행기 삯마저 자기 돈으로 치러야 했다. 암살 임무를 맡겨놓고서 자금 지원 따윈 없었다. 마법을 알려주거나, 다른 기술적인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
그 해골 서기장은 이 어려운 임무를 맡기면서 정말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애초에 정말 교황을 죽이길 기대하지 않는 거야. 그냥 암살 시도를 해서, 뭔가 했다는 퍼포먼스만 보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모두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 조지는 우울감 속에서 몸서리쳤다.
교황을 죽이다니? 어찌 감히?
독실한 카톨릭교도요 전형적인 유럽인이었던 조지에게 기독교란 단순한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문명이다. 삶의 방향이다.
그 모든 것을 엎어버리는 결정이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사실, 그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란 걱정은 하지 않았다.
1950년대, 미국이 지닌 핵을 부러워했던 영국은 핵 비슷한 비대칭 전력을 원했다. 예를 들어 초인 소드마스터와 같은 전력을.
그리하여 계획한 것이 마구스 프로젝트요, 조지는 그 성공적인 결과물이었다.
수십 년간 받아온 온갖 훈련과 기술 덕에, 조지는 소드마스터가 할 수 있는 전술적 행위들을 상당 부분 따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몇몇 낙관적인 기대에 따르면, 이론상 소드마스터와 상대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조지가 보건대, 교황을 암살하는 것은 소드마스터와 상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었다. 너무나도 하고 싶지 않아 그 해골 서기장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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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지존무쌍은 가온을 즐겁게 하지 않았다.
만나자마자 대뜸 부탁을 해왔는데, 가온으로서는 들어주기 즐거운 부탁이 아니었다.
“돈 빌려달라고······ 그래서, 오백만 원 정도 빌려주면 되나?”
가온의 말에 지존무쌍은 더 달라고 요구하려다 말았다.
가온의 표정이 밝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머뭇머뭇 대답했다.
“그거라도······”
가온은 한숨 쉬더니,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반드시 갚아요. 천천히 갚는 건 상관없지만 다달이 갚아. 고정수입 있다는 거 뻔히 아는데, 만약 안 갚는다면 그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갚을 맘이 없는 거거든? 나 그건 못 참아.”
그 말에 지존무쌍은 살짝 표정을 구겼다. 그 안면에 드러난 표정을 가온은 읽을 수 있었다.
‘부자면서 고작 오백 빌려주는데 생색이라 여기는군. 고맙긴커녕 서운하다 이거지.’
어쨌건 입금해주기로 했다. 지존무쌍은 거기 만족하지 않았지만, 어쨌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빌려준다 이거지? 고마워요, 정말······”
지존무쌍은 기운 없는 목소리로 감사를 표하더니, 검술 교습소를 나섰다.
그 뒷모습을 보며 여신께서 분노하시었다.
‘저 거머리 같은 작자, 내 대전사를 현금 자동 지불기로 여기는구나. 네 여신이 진작 헤어지라 했거늘!’
‘안 그래도 돈을 갚지 않으면 바로 절교할 예정입니다. 그럴 생각으로 빌려준 거예요.’
가온의 말에 비로소 여신께서 진정하시었다.
‘그래, 그 정도면 연을 끊을 명분이 되겠구나. 하여간 내 대전사는 정이 너무 많노라. 아무리 인연이 적다 한들 저런 작자까지 챙겨줄 필요는 없을진대.’
‘뭐 그렇다고 스승 챙겨주는 것까지 뭐라 하진 않으시겠지요?’
‘그 거머리를 돕는 것과 달리, 그것은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
여신께서 말씀하신 가운데, 가온은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했다.
교습소에서 얼마쯤 더 칼을 휘두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온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던 검술 교관이 말을 걸어왔다.
“이제 가십니까?”
“예. 그 전에······ 로베르트 멘데스 선생?”
자기 이름이 불리자 검술 교관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제가 이름을 알려드렸던가요?”
“따로 알아봤죠.”
“어째서?”
“보답하려고요.”
“교습비는 따로 받았습니다마는.”
“교습비만으론 부족하죠. 제게 큰 도움을 주신 스승님인데요. 아스의 검객으로서 이걸 넘길 수야······ 아, 제가 아스 출신이란 건 아시나?”
“알지요. 후긴의 엘프 아니십니까.”
“아뇨. 그 설정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저번에 수정해서 이젠 카르세 엘프예요. 아무튼······ 아스인들은 검에 상당한 의미를 둡니다. 검을 가르쳐준 스승에게도요. 그러니까 제자들이 스승의 친가를 경제적으로 후원하거나 돌봐주는 것은 아스 칼잡이들에게 흔한 일이란 말입니다.”
한 단어에 교관이 반응했다.
“친가요······”
“예, 친가. 지구에 가정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가정, 있지요. 있는데······”
교관은 말을 흐리고 싶어했지만, 가온은 이미 자세한 내용을 전해 들은 뒤였다.
알아둔 내용을 읊었다.
“내팽개치셨지요? 검술 수행하겠다고 아스에 오느라. 검술 수행이야 지구에서도 할 수 있을 텐데, 어째서 그러셨는진 모르겠지만······”
교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소드마스터가 되고 싶었습니다. 정확히는 초인이 말입니다. 젊을 때부터 숙원이었습니다.”
교관이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군 복무하던 시절부터 그랬죠. 군에서 병사들한테 니체 책을 잔뜩 보급했어요. 차라투스트라 어쩌고 하는 거. 그 책 쓴 양반이 독일 지도자들을 좋아했는진 모르지만 지도자들은 그 책을 좋아했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초인이 곧 히틀러라고 선전했어요. 사람들은 초인 지도자를 마땅히 따라야 한다고.
그런데 전선의 병사들에게는 다른 초인이 보였죠. 금발에 푸른 눈동자는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초인인 존재들.”
“소드마스터?”
“예. 아스의 위버멘쉬들. 물론 니체가 말하는 초인인 검기 좍좍 뿜는 그런 초인은 아니었겠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들이 하도 떠들어대서 너무나도 익숙해진 개념인 위버멘쉬들······ 초인들이 눈앞에 있다는 게 중요했죠. 그들을 숭상하게 되었습니다.”
비단 이 남자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독일 전체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느샌가 아스인들을 상대하던 전선의 병사들은 물론, 그 지도자들마저 아스의 것들을 숭상하기 시작했으므로.
결정적으로, 독일의 높으신 분들이 아스 신앙에 심취했다.
당시 독일인들은 그리스 신들과 흡사한 아스 신들을 보고서 충격을 받았다. 독일 민족의 신들도 실존할 거라 여기고는 아스에서 찾아 헤매다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아스 신들이 자기네 민족 신이라 주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히틀러가 그랬는데, 소문에 따르면 그 나치 지도자는 아스 전쟁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독일이 본디 불가침 조약을 맺었을 뿐이었던 소련과 정식으로 동맹을 맺고 미영을 견제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히틀러가 부추긴 가운데, 아스의 전쟁 신이 실은 독일 민족의 오딘이라는 주장이 당시 군부에 퍼졌다.
독일의 위정자들이 마법을 익히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들은 오딘이 마법의 신이니 자기네도 마법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은 검술을.
두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쟁이 흐지부지 끝나기 무섭게 수많은 독일인은 홀린 듯 아스로 향했다.
교관도 그중 하나였다.
“아무튼 말씀드린 대로 돕고 싶으니,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셨음 좋겠는데요.”
“그러니까 제가 살던 집은······”
교관이 더듬더듬 자기 거처와 가족들을 설명하더니, 허리를 숙였다.
“경제적으로 도와주실 필요까진 없습니다. 그냥 잘 지내는지만 확인해주셔도 정말 감사할 겁니다. 제가 베푼 가르침 따위로 마스터께서 거기까지 해주실 필요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가온은 교습소를 나선 뒤, 하고와 싸웠다. 이번에는 왼손으로 싸웠으며, 그래서 더 빨리 로그아웃했다. 그 다음에는 지존무쌍에게 오백만 원을 입금했다.
그리 모든 일을 마치고서 독일로 떠났는데, 이때 별 수고는 필요하지 않았다. 텔레포트 몇 번이면 되었다.
독일이 아스의 엘프를 반겼다.
*******
요한나 멘데스는 스무 살 독일인 여성으로, 대학생이지만 출석은 거의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대학에 내준 기부금이면 이름만 올려놔도 졸업장을 따고도 남았다.
그래서 남아도는 시간에 요한나는 젊음을 즐겼다.
그러니까, 술과 코카인 그리고 기회가 되면 더 비싼 파티드러그들을 즐겼다는 소리다.
어제는 셋 다 했다. 그 탓에 오늘은 숙취와 후유증에 잠들었다가 점심이 지나서야 겨우 깼다.
이런 방탕한 생활을 즐기며 요한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윈 하지 않았다. 시간을 낭비하는 거야 부유한 젊은이들의 특권 아닌가.
지금 요한나가 걱정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는데, 바로 눈 상태를 보면 엄마가 딸이 아직도 약을 끊지 않은 것을 알아채고 용돈을 끊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어떤 렌즈를 껴야 엄마가 못 알아챌까?
거울을 보며 고민하는 중에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로 시킨 물건은 없다. 요한나는 무시하려다 말았다.
「안 계십니까?」
바깥에서 젊은 남자 목소리, 이상할 만치 듣기 좋았다.
얼굴이나 한번 보자 싶어 문을 열었더니, 한 남자가 거기 서 있었다.
“멘데스 씨 댁 맞습니까?”
요한나는 당연히도 잘생긴 남자를 좋아했다.
남자가 동양인치고 잘생겼으므로, 요한나는 기꺼이 대답해주었다.
“맞는데, 왜요?”
그리고 가온이 말했다.
“은혜에 보답하러 왔습니다. 정확히는 로베르트 맨데슨 씨께 입은 은혜를요.”
요한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로베르트? 할아버지 이름인가?”
“잘 모르십니까?”
“뭐······, 아마 맞을 거예요. 그런데 그 인간 아스로 떠났다던데?”
“예. 거기서 저와 마주쳤죠. 제게 가르침을 내리셨고요.”
진지하고 경건한 대답, 아스의 칼잡이다운 그 태도에 요한나는 픽 하고 웃었다.
“아스인이에요? 그리 안 보이는데? 꼭 동양인 같은······”
“폴리모프입니다.”
“아, 그거 마법이죠. 그럼 원래 종족은 뭔데요?”
“엘프입니다.”
요한나가 눈을 반짝였다.
“와. 보여줄 수 있어요?”
가온은 바라는 대로 해주었다.
그렇다고 진짜 그레이엘프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달인답게, 폴리모프를 변형해서 사용했다.
원래 자기 모습에 머리칼을 바꾼 뒤, 얼굴 생김새를 살짝 바꾼 은발 우드엘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진짜 원래 모습은 아니지만, 원래 모습과 상당히 닮은 모습.
아름다운 엘프의 모습.
그 모습을 요한나는 잠시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가온은 그 시선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애써 경건한 자세를 유지했다.
잠시 후, 요한나가 입을 열었다.
“은혜를 갚겠다고 했죠?”
“예. 당장 집이 좋아 보이는데, 그래도 혹시 금전적으로 쪼들리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다른 어려움이라도?”
“집안이 쪼들리진 않는데요. 딱히 어려운 문제도 없고.”
“정말 아무 문제가 없습니까? 어떤 부탁이건 도와드릴 생각이었는데요.”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겠다고요?”
“예. 능력껏.”
그리고 잠시 후, 요한나가 부탁을 말했다.
“앞으로 만나요.”
가온은 당황했다.
“예?”
“데이트하자고요. 엘프남 끼고 드라이브해보는 게 소원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