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 회장 아타락시아 - [2]
“그거 혹시 매크로 답변입니까?”
가온의 물음에 남자 직원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절대 아닙니다!”
“매크로 답변이 아니라기엔 답변에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데.”
“그게, 저희가 일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 건 아니라서요. 대신 높으신 분들이 검토하실 수 있도록 지적해주신 내용을 위에 올릴 수는 있을 겁니다.”
남자 직원은 그리 말하며 쩔쩔맬 뿐만 아니라 대단히 죄송스럽다는 듯 굽신거렸다. 가온은 이 회사가 직원 교육은 놀라울 만치 잘 시켰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설마 질문에 대답할 권한조차 없는 건 아니시겠죠?”
“예? 예! 질문하실 게 있습니까?”
“예. 여쭙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여쭙다뇨? 하문하십시오!”
가온은 슬슬 부담감마저 느끼며 물었다.
“하문까진 아니고 그냥 묻겠는데······ 정말 우승자가 나오는 순간 서비스가 종료됩니까? 프로게이머들이 엄청 불안해 하는데요.”
애초에 이 질문을 하고자 여기 온 것이었다. 가온이 생각하기에는 앞서 한 요청보다 이쪽이 훨씬 더 중요했다. 알고 지내는 한국인 게이머들의 생계가 걸린 일 아닌가.
그러나 이번에도 만족스러운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뢰옵기 심히 망극하지만, 그건 저희도 알지 못해서······”
가온이 결투를 신청해야 하나 싶어 슬며시 칼을 뽑던 때였다.
“그래도 원하시는 답변을 드릴 수 있을 만한······ 높으신 분을 모셔올 수는 있습니다. 그럴까요?”
가온은 칼을 칼집에 다시 넣으며 대답했다.
“예, 그래 주시길.”
잠시 후, 한 여성이 방에 들어왔다. 그녀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가온을 경악시켰다.
“안녕하십니까, 가온 씨?”
가온은 다시 칼을 뽑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저번에 뵀잖습니까? 게임에서요.”
가온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칼을 집어넣었다.
“아······, 그때 뵀던 분이군요? 이복동이랑 지존무쌍 고용하신 그 아가씨······”
“예. 그때 솜씨를 봤죠. 그 실력에 경의를 표하는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깍듯이 대하라고 미리 말해뒀고요.”
“어쩐지, 과도하게 친절하더라니. 난 또······”
이 와중에 여자 직원이 가까스로 웃음을 참아내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가온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자가 물었다.
“아무튼 그래서, 하실 질문이 있다고요?”
가온은 방금 했던 질문들을 똑같이 했다.
게임 운영이 한국인들을 노골적으로 괴롭히는 것 같은데 앞으로도 이럴 것이냐? 그리고 게임 서비스 종료는?
여자가 정말 높으신 분이 맞는지, 이번에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선 게임 운영에 불만이 있으시다면······ 그 부분은 개선하지요.”
“약속해주실 수 있습니까?”
“예. 그리고 우승자 나오면 게임 서비스 종료되리라는 설······ 아마 맞을 겁니다.”
놀라울 만치 시원스러운 대답, 그 대답에 가온은 충격을 받았다.
“정말 서비스가 종료됩니까? 지금 이렇게 잘 나가는데요?”
“어쩔 수 없지요. 대부분의 수익이 지구인들에게서 나오는 마당인데요. 전쟁이 일어나면 양 세계간 교류는 거의 끊길 텐데, 태평하게 게임 서비스나 제공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되면 카르세인들에게서 얻는 수익만으론 게임을 운영할 수가 없으니, 적자만 쌓이게 되겠지요. 그만둘 수밖에.”
“아니, 그래도 아깝지 않습니까? 사실 지금도 미국인들은 몰래몰래 게임하고 있다 들었는데요. 그거 보니 서비스만 계속하면 지구인들 돈 계속 얻어내기는 가능할 거 같은데. 전쟁이 일어나든 말든······”
“그러리란 전망도 있죠. 하지만 그래도 종료해야 할 겁니다.”
“대체 왜?”
“윤리적인 문제 때문이죠.”
“윤리? 그 단어가 여기서 왜 나옵니까?”
“기술적인 문제였죠. 아시다시피 이런 가상현실이란 게 과학이나 마법으로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걸 어떻게든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약간의 윤리적인 문제가 있었는데요. 이 부분은 설명해 드리기가 좀 그렇군요······.”
여자가 말을 흐리는 가운데, 답답함을 느낀 가온이 지적했다.
“혼령들을 썼지요? 지옥에서 꺼내온 혼령들이나 지옥에 갈 예정인 원혼들을요.”
“아시는군요? 그럼 서비스 종료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유추하실 수 있을 텐데요.”
“혼령들을 계속 부려먹을 순 없으니까? 하지만 어차피 혼령들은 특정 NPC에만 들어가 있던 것 같은데요. 다른 NPC들은 혼령 없이도 잘만 움직이던 것 같은데, 차라리 혼령들은 그냥 게임에서 배제하는 게······”
“그게, 사실 혼령들은 특정 NPC에만 쓰인 게 아닙니다.”
“그럼?
“게임 전체를 구현하는 데 사용됐죠. 총 한 자루부터 소드마스터까지 전부요.”
가온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가운데, 여자는 말을 이었다.
“원혼을 통한······ 일종의 환상 마법이죠. 영혼에서 강렬한 기억······ 그러니까 죽을 당시의 기억을 환상으로 불러일으키는 겁니다. 그 환상들은 실제 있었던 일과 사물이기 때문에 아주 선명하면서도 생생해지죠.
그래서 전쟁 무기들이나 특정 소드마스터들의 경우엔 구현이 쉬웠습니다. 그들에게 죽은 원혼들이 많았으니까요. 마스터 반지성은 구현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그 희생자들은 대부분 지구에 있어서 그에게 죽은 원혼들을 따로 구해오기가 어려웠던 탓이죠. 그래서 그만은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친구의 일에 여자는 관심을 보였다.
“다른 방식? 설마 반지성의 영혼을 집어넣은 건 아닐 테고, 뭡니까?”
“반지성과 같은 소드마스터인 참마황 폐하께서 데이터를 입력해주신 거죠. 아시다시피 그분은 반지성을 상대해본 적이 있잖습니까? 그래서 반지성의 검술을 알고 있던 모양입니다. 원본과는 꽤 달라졌겠지만, 얼추 비슷한······.”
가온은 혀를 찼다.
“이제는 참마황까지 나오는군요. 제게 설명해도 되는 내용입니까? 아무리 들어도 극비 같은데요.”
“비밀이지만 뭐, 괜찮습니다. 아무튼 질문은 끝났나요?”
가온은 문득 생각난 것을 물었다.
“영혼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게임에 사용된 영혼 중에 웬 독일인 검객의 것이 있지 않습니까?”
“글쎄요, 만약 살아 움직이는 듯한 NPC가 있었다면 정말 영혼이 들어간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자, 게임에서 꺼내주거나 할 수 없습니까? 은혜를 입어서요. 보답하고 싶은데. 그리고 거기 들어간 우드엘프의 영혼들도······”
그 말에 여자는 난색을 표했다.
“어려운데요. 오히려 게임에 NPC로 들어간 영혼들은 특혜를 받는 겁니다. 그것만 마치면 바로 지옥에서 풀려나는 거라서요. 서비스 종료와 동시에 NPC 노릇은 그만두고 다시 태어날 텐데, 지금 꺼내줄 수는······.”
“그럼 아무것도 못 해줍니까? 뭐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그 말에 여자는 조금 고민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 영혼의 친지나 피붙이에게 뭔가 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원하신다면 그 영혼의 신원을 파악해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 그래 주실 수 있습니까?”
“예, 물론.”
가온은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의문을 표했다.
“그렇게까지 해주실 줄은 몰랐는데······ 물론 대단히 감사드릴 일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주시는군요? 아무리 면식이 있다지만 말입니다.”
“이것도 다 실력 있는 검객께 빚을 지워두기 위해서지요. 이 정도를 빚으로 생각해주실 경우의 일이지만 말입니다.”
하기야 아스에서 실력 있는 칼잡이에게 미리 호의를 보이는 것은 흔한 일이다. 검이 숭상받는 사회인 데다, 그 칼잡이가 나중에 초인으로 거듭날지도 모르므로.
가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예, 빚을 졌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보답하지요.”
“기회가 오면 좋겠네요.”
그리 대답하며 여자는 웃었다.
그 대화를 끝으로 둘은 만족한 채 헤어졌다.
가온이 물러간 가운데, 여자는 두 직원을 바라보았다.
지금 두 직원은 일생에 겪어보지 못했던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회장 앞이니 웃음을 참아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이야말로 참던 웃음을 터뜨려야 하는지.
그 고민을 대단히 복잡한 표정으로 내보이고 있는 두 직원에게, 회장 아타락시아가 지시했다.
“다들 가온 경 말 들었지? 이제는 함부로 NPC 병력 움직이거나 해서 한국인들 견제하지 말도록.”
“그래도 될까요? 대통령 폐하께서 싫어하실 텐데.”
그 말에 아타락시아는 웃었다.
“어쩌겠나? 신의 대전사께서 행차하시어 따지셨는데. 이건 스폰서의 의향으로 해석하고 중히 여겨야겠지.”
“예, 그럼······”
“말했듯 이제부턴 따로 개입하지 말고. 거기에 정부 쪽에서 불만을 표하면 가온 경 이야기를 꺼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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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4판타지 온라인에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저희는 지금까지 한국인 유저들에게 주요 이벤트를 드렸는데, 그 모든 것은 게임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한국인 유저 여러분에게 더 큰 즐거움을 드리기 위한 일종의 보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나친 배려에 불편함을 느끼셨다는 제보가 들어와 개선할 필요를 느낀 바, 깊이 사죄드리며 저희는 이제부터 (······)」
놀랍게도 공지사항에는 해명과 사과가 모두 들어있었다. 그러니까, 실제로 한국인들에게 몇몇 치명적인 일들을 벌인 것은 사실이며 싫어하는 것 같으니 앞으로는 자제하겠다고.
그것을 본 한국인 게이머들은 허탈함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꼈다.
“아니, 진짜 한 방에 해결되네. 진짜 가온 경인가? 후긴에 사는 엘프라니 역시······”
이미리의 말에 웬 게이머가 지적했다.
“저한텐 카르세에 산다고 했는데?”
“음? 뭐지. 그 양반은 자기 국적도 까먹나······”
“직접 가서 추궁해보시죠?”
그 말에 이미리는 표정을 구겼다.
“아, 전 못 그래요.”
“왜요?”
“저번에 그 양반이랑 결투 떴다가 져버려서. 원래 있던 도시에 못 돌아가요.”
“응? 아, 패배자가 추방되는 결투의 관습······”
결국 이번에도 이미리가 아니라 다른 게이머가 가온에게 찾아갔다.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보수를 전달하기 위해서.
돌아온 한국인 게이머는 굳은 표정으로 이미리에게 말했다.
“가온 경, 일단 보수는 거절했습니다.”
“예상했지만 돈 굳었으니 잘 됐네요.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그리고······ 이 말을 전해달라던데요.”
“뭔 말?”
“우승자 나오면 서비스 종료된단 설이 맞다고. 그러니까 다들 대비 해두라고······.”
그 말에 여기 모여있던 길드장의 표정들이 굳었다.
모두 길드장이기 전에 프로게이머였다. 이 게임에서 먹고 사는.
이 와중에 가온은 아는 사람에게 직접 알게 된 정보를 전하고 있었다.
그 전화를 받은 것은 이복동이었다.
“언젠가 게임 서비스 종료될 거니까 재산 정리해두라고요?”
「응. 지존무쌍 아재한테도 전해둬」
이복동은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결국 이 게임은 끝난다고?
내 직장이 없어져?
겨우 적성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다.
충격 속에서 이복동은 게임에 접속했다. 지존무쌍을 찾아갔더니 그는 화가 난 표정이었다.
“야, 지금 알아보니까 너 나만 빼놓고 원정 갔다며. 그러기야?”
이복동은 당황하여 변명했다.
“전 스폰서 말대로 갔을 뿐인데요? 그리고 가난한 카르세 인들이 상대니까 돈 벌 만한 기회도 아니었어요. 실제로 거기 가서 장비만 잔뜩 잃었고······”
“그래도 그렇지, 아예 같이 가자는 말도 안 꺼내는 게 말이 돼?”
“어쩔 수······”
“미안하지?”
“예, 정말 죄송······”
“그럼 돈 좀 빌려줄 수 있니? 그럼 용서해줄 테니까······”
그리 말하며 지존무쌍은 면목이 없는 듯 헤헤 웃었다.
그리고 이복동은 안면근육이 굳었다. 지금까지는 이쪽한텐 손 벌리려 하지 않더니? 이제는 그런 일종의 선마저 넘어야 할 만큼 절박해진 모양이다.
“안 돼요.”
“아니, 모은 돈 있잖아? 앞으로도 벌면 되고. 제발 약간만······”
“앞으로는 못 벌지 몰라요.”
그리 말하며 이복동은 가온에게 들은 정보를 전했다.
다 듣고 난 지존무쌍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그 역시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너한테 못 빌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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