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82화 (82/135)

LV.? 후긴 왕 가온 - [3]

4판타지 온라인의 전쟁은 실제의 전쟁에 비하면 확실히 초라하다. 동원되는 병력은 극단적으로 적고 전장은 지나치게 좁은 탓이다.

그러나 아린 벌판만은 예외다.

이 장소는 게임의 결전 무대이므로. 게임적 허용을 최대한 줄이고 현실을 본뜬 것 같았다.

광활한 대지, 사막과 풀밭이 끝없이 펼쳐진 벌판. 잃기에는 너무나도 넓고 귀중했던 제국의 변방.

이 벌판이 어찌나 넓은지, 다들 차량으로 이동하는데도 그 과정에서 다들 지쳤다.

휴식 중에 아린 벌판으로의 진격을 주장한 길드장이 말했다.

“아린 벌판에 가온 경 나오시는 거 알죠? 그래도 우리가 실제 가온 경과 싸울 필요는 없을 겁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가온 경께서 혼쭐내시겠지만 우린 안 그럴 테니······”

그 말을 들으며 가온은 기분 좋게 기도를 올렸다.

‘한국인들이 정말 절 존경하는 모양이군요? 몇 번이나마 열심히 도와준 보람이 있어요. 제 이름을 절대 낮춰서 부르지 않네요, 기특하게.’

‘네 여신이 보기에는 당사자가 여기 있으니 존대하는 것 같은데······’

한편 길드장이 저 너머에 있는 풍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다들 저 도시 보이시죠? 아린 벌판의 전초기지쯤으로 써먹을 수 있는 거점입니다. 저 도시를 점령하면 우리는 저길 부활, 로그인 장소로 설정할 수 있게 되지요. 그러니까 저 거점 하나만 먹어도 우승을 저지할 강력한 견제수단이 되는 거죠.”

그 말에 사람들은 지평선에 아른거리는 도시를 보았다.

저 멀리 있는데도 도시는 웅장해 보였다. 아린 벌판에 있는 도시답게, 실제 도시 크기를 그대로 옮겨온 덕분이었다.

반쯤 질린 기분으로 누군가가 물었다.

“저 도시 점령하긴 쉽고?”

“뭐 쉽진 않겠죠. 하지만 예상보단 쉬울 겁니다. 우리는 지금 시가전의 제왕을 모셔왔으니······ 아무리 봐도 소마인데 소마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가온 경께 박수!”

사람들이 자길 향해 손뼉 치는 가운데, 가온은 최대한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자 애썼다.

여신께서 한심하다는 듯 하문하시었다.

‘또 칭송이나 들으려고 여기 따라온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대전사를 믿으십시오. 다 뜻이 있어서 하는 일입니다.’

여신께서는 조금 생각하시고는 말씀하시었다.

‘뭘 하려는지는 알겠다마는, 썩 바람직하지는 않구나.’

‘하지만 필요한 일입니다. 아시잖습니까?’

이 와중에 강주석은 자기가 대표로 연설하지 못하는 게 불만인 듯했다. 그러나 이 전 길드장에게 발언권은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쭉 입 다물고 있어야 했다.

날이 저문 뒤, 작전이 시작되었다.

어둠 속으로 투명한 남자가 달려나갔다.

투명화 주문을 쓴 가온이었다.

온갖 열 감지 장비가 즐비한 현대에서도 막기 어려운 이 마법적 침투를 2차 대전 시기에 막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남자가 힘껏 달리면서도 아무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면 더욱.

한편 아린 벌판에 진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길드장은 말만 앞섰던 게 아니었다. 미리 이 도시의 지도와 병력배치 정보를 입수해두고는 가온에게 전해두었다.

소리 없이 시내에 잠입한 가온은 미리 전해 들은 루트로 나아갔다.

한국 게이머들의 접근을 눈치챈 도시는 경계태세였다. 방공체계 또한 활성화되었는데, 그것들이 무력화되기는 순식간이었다.

실제 특수부대가 하는 일이었다. 방공무기 파괴. 소드마스터의 경우엔 혼자서, 아무런 지원 없이 할 수 있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몇 번의 뜀박질과 칼질을 거쳐, 가온은 할 일을 끝내고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완료.”

신호를 보내기 무섭게 한 대의 수송기가 비행을 시작했다. 배경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제 거주민이 없는 아파트 단지를 향해서.

잠시 후, 제 위치에 도달한 수송기는 16명으로 이루어진 분대를 뱉어냈다.

정예로 이루어진 16명은 순식간에 각자의 위치로 돌입했다.

여기가 저격 포인트로 좋다는 것쯤은 이 도시에서 지내는 카르세 플레이어들도 아는 모양이었다.

“모두 조심!”

몇 명의 카르세 게이머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매복한 보람이 없었다.

총격이 오가는 교전을 몇 번 치른 뒤, 아파트에 숨어있던 카르세 유저들 스무 명이 죽었다.

그러나 돌입한 16명 중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적 게이머들의 시체를 넘어 달리는 한국인 중에는 이복동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존무쌍 아저씨 왔으면 어떻게 된 게 아이템 하나도 안 떨어지냐며 욕했겠네.’

당장 눈에 띄는 수입은 없지만 이복동은 만족했다.

이 팀, 랭커들로 이루어진 정예팀에 합류할 자격을 인정받은 덕분이다. 이것이 불과 몇 개월 훈련의 성과라고는 믿을 수가 없다.

정말 자신은 이쪽에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실제 특수부대가 해야 할 체력 훈련, GPS 교육 따윌 죄 건너뛴 덕분도 있겠지만 어쨌건.

모름지기 작전 중에는 전체적인 상황을 살펴야 한다. 아파트 계단을 계속 달리면서, 이복동은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군 본대는 적의 탄약고 건물에 화력을 퍼붓고 있었다.

성대한 폭발과 함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되었다.

긴급히 조명을 밝힌 도시를 향해서, 소총을 든 한국인 게이머들이 달려나갔다.

이 침공군을 막고자 집결한 카르세 유저들의 이동은 수월하지 않았다.

명사수들이 아파트의 높은 층에서 준비를 마쳤으니.

이복동도 집안 가구를 순식간에 배치하여 창가에 저격하기 좋은 장소를 만들어낸 뒤, 저격총을 거치했다.

그대로 엎드려, 마치 작은 점처럼 보이는 적들을 향해 연달아 쏘았다.

이동하는 적들은 이쪽 저격에 노출되었다.

총성이 불을 뿜고, 하나둘씩 쓰러지는 가운데, 우군 부대는 계속 전진해오고 있었다.

그로부터 네 시간 지나, 한국인들로 이루어진 십자군은 도시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

이후로는 로켓과 박격포들의 시간이다. 매캐한 화약의 시간.

지구 군대의 시간.

적진을 부수고 부순 뒤, 충분히 중요한 부분들을 타격했다 판단한 뒤에는 보병들이 전진한다.

한 블록을 점령하고, 다음 블록을 점령하는 점령의 반복.

그 지겹고도 어려운 과정은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쪽 국가가 훨씬 부유한 덕에 화력도 강력한 데다, 베테랑 게이머들이 많은 덕에 병력의 질마저 월등한 덕분이다.

불과 사흘 만에, 한국 플레이어들은 도시의 절반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

시가전은 쉴 틈 없이 계속되었다. 이 와중에 가온은 가장 어려운 일을 연달아 맡았다.

“와, 이런 걸 배치해둬?”

가온은 건물의 통로를 가득 채운 채 달려오는 골렘을 보았다.

적이 오면 자동으로 가동하게 돼 있는 전투 골렘.

거대한 골렘은 쿵쿵 울리면서, 돌진해왔다. 지뢰 대신에 함정 역할로 배치해둔 모양이었다.

이 좁은 곳에서는 피할 곳도 없어 보였지만······

텔레포트할 것도 없었다.

가온은 골렘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그 뒤까지 통과해서는 다리 관절에 칼을 찔러넣었다.

다리에 꽂힌 칼을 걷어찼다. 골렘은 바로 넘어졌으며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리 어려운 일을 하나 또 끝낸 뒤에는 무전으로 보고했으며, 기다리고 있던 부대가 들어와 건물을 점령했다.

그렇게 구획 하나가 또 이쪽 손에 들어왔다. 완전 점령까지는 코앞이었다.

“여긴 왜 이리 진격 속도가 빨라? 위치 잡기가 어렵네.”

이현우의 말에 이복동이 대답했다.

“이 블록으론 가온 씨 진출하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한 사람인데······”

“텔레포트에 헤이스트까지 쓰잖아요? 사배 속 빨리감기 튼 수준이죠 뭐.”

이현우가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이 이제 저 남자와 대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며 이복동은 뿌듯했다.

더없이 즐거운 기분으로 달리고 달렸다.

이복동은 지금 이현우와 함께 한 고층 건물의 꼭대기로 순식간에 뛰어가고 있었다. 레벨이 꽤 높아진 덕에 체력은 현실의 몸과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이지만, 그래도 체력의 소모감은 느낀다.

견디기 힘들만치 숨이 차는 것을 이전에 운동 한번 해본 적 없는 이복동은 기꺼이 참아냈다.

게임 속 저격수 훈련은 이상할 만치 알찼다. 네이비씰의 훈련과정을 본떴는지 5박 6일 동안 자지 않고 움직이는 훈련까지 있었는데, 이복동은 그마저 수료했다.

별 도움이 되는 훈련은 아닌 것 같았는데. 그저 인내심을 확인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자신이 그리 고통을 참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 자체가 하나의 훈장이요, 귀중한 경험이다.

이 모든 것에 이복동은 더없는 보람을 느낀다.

이 훈련의 성과를 현실에서 써먹기는 어렵겠지만. 자신은 현실에선 일개 신병훈련소에서도 쫓겨난 놈이니······.

잡생각을 떨쳐내고 저격할 위치에 도달했다.

스코프를 노려보았다.

저 아래에서 총격전이 오가는 가운데, 저격수들의 임무는 아군을 엄호하는 것이다. 각자 고층의 창가나 지붕 위에 자리 잡아서는 아군을 노리는 적을 쏘면 결과적으로 아군을 보호하게 된다. 그리 싸우고 싸운 끝에 아군이 승리하여 진격하면, 저격수들은 바로 위치를 옮겨야 한다.

그 모든 것이 일사천리다.

한국인들의 진격이 계속된다.

화력과 특수전 양쪽에서 한국인 게이머들은 완벽하게 우세하다.

“와, 우리 이러다 도시 정말 먹는 거 아냐? 죽이는데······”

애국심 반, 돈벌이 목전 반으로 이 원정에 참여한 게이머들은 희열을 느낀다. 좋은 일터를 발견한 사람들 특유의 기쁨으로, 이 먼 곳까지 오자고 주장한 지도부를 찬양한다.

그들의 진격이 어찌나 순조로웠는지, 날이 저물었을 때 저항하던 카르세 게이머들은 이미 다 집어치우고 로그아웃 할 마음을 먹고들 있었다.

그리하여 도시에 달밤이 깔렸을 때, 이 함락 직전의 도시에 한 엘프가 도착했다.

우드엘프 나루.

지금 그녀는 인간의 몸을 하고 있었다. 커스터마이징에 조금도 공을 들이지 않은 그 얼굴은 너무나도 평범하며, 깨진 유리조각과 플라스틱들이 즐비한 도심에 적합하지 않게도 맨발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지금 숲속에 존재하는 엘프처럼 보인다.

달빛만이 비추는 이 어둠 속에서, 그녀는 실루엣으로 존재한다. 몸의 자세와 거기서 발휘되는 분위기만이 존재한다.

유연한 고양이과 짐승, 숲속 사냥꾼의 분위기.

당연한 일이다. 숲속에서 모든 우드엘프는 사냥꾼이다. 콘크리트 건물의 숲에서도 그렇다.

유연한 고양이과 짐승처럼, 우드엘프는 도약했다.

건물 옥상 수십 개를 순식간에 뛰어넘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동 중인 병사들이 지금 그녀 아래로 지나가고 있었다.

놈들은 총을 들고 있지만 상관은 없었다. 그녀는 저들이 총 쏘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싸울 테니.

달빛을 배경 삼아, 우드엘프가 뛰어내렸다.

“뭐······”

사냥감들의 목덜미에 초승달 같은 칼날이 내려꽂혔다.

나루는 양손잡이였으며 양손에 칼 한 자루씩을 들고 있었다. 그 칼자루가 각각 표적에 꽂힌 덕에 사냥감 둘이 동시에 절명했고, 일 초 뒤에는 둘이 더 죽었다.

이번에도 동시에.

*******

특정 구획에서 전멸 소식이 연달아 들려왔다.

전멸 소식은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들려왔다. 엄폐하지 않고 전열 보병처럼 싸운 게 아닌 이상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잠시 후, 지휘부는 상황을 파악했다.

“칼?”

죽어서 로그아웃한 아군 게이머들의 증언은 모두 같았다. 웬 칼 든 여자가 흘긋 보였으며, 그것으로 끝이었다고.

그 소식을 들은 강주석은 기쁨에 넘쳐 외쳤다.

“소드마스터!”

그 옆에 선 길드장은 강주석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왜 저리 좋아하는지는 알 만했다.

‘아스인들이 소드마스터를 동원할 거란 자기 말이 증명되어 좋은 모양이지?’

그러나 길드장은 당장의 승리를 생각해야 했다. 그래야 그를 따라온 게이머들에게 이익을 안겨줄 수 있을 테니.

길드장은 무전기에 대고 요청했다.

“가온 경? 소드마스터로 의심되는 적이 나타났는데, 지금 당장 이동해주실 수 있습니까?”

무전기 너머에서 가온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소드마스터? 정말?」

“확실히는 모릅니다. 한번 싸워보고 실제 소마인지 파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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