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 소드마스터 언데드 - [4]
가온의 설명에 운전수는 조금 의아한 눈치였다.
뭐 이렇게 길고 열심히 설명하나? 무슨 설득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실제로, 가온은 이 한국인 게이머를 설득하려는 것이 맞았다.
그래서 최대한 열심히 설명했는데, 솔직히 대충 되는 대로 추측으로만 말하긴 했다. 최대한 그럴듯하게, 말을 지어내기까지 했다.
이 남자가 다른 한국인 게이머들에게 퍼뜨려주기를 바라서.
가온이 말한 거라며, 강주석이 말한 그 계획이 헛짓거리임을 모두에게 전해주길 바랐다.
‘게임에서 단결하여, 참마황이 원하는 걸 얻지 못하게 만들어 평화를 얻어내? 미친 소리······’
가온이 보기엔 영 가능성이 없는 일인 데다,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봐도 그 유치한 계획은 참마황을 화나게 할 뿐, 그 이상의 소득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기는 어려웠다. 그런 일에 사람들이 노력과 열정을 허비하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남자는 아직도 그놈의 노력과 열정을 거기에 쏟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말씀이 사실이라 치고, 어디서 그런 집념이 나왔을까요?”
운전수의 말에 가온은 지겨움마저 느끼며 대답했다.
“아들이 죽었잖아.”
“반 세기 전이잖아요. 이미 잔뜩 복수에 나서서 원한도 소진됐을 텐데, 그 원한이 아직까지 남을 수가 있나?”
“남을 수 있지 왜.”
“아뇨, 아무리 그래도. 발전소까지 터뜨려놓고서 아직도 만족을 못한 건 이상하죠. 증오만으론 설명하기가······”
가온이 슬슬 무시할까 생각하는 중에, 남자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중얼거렸다.
“어쩌면 의무감일지도······.”
“의무감이 뭐?”
“흉턴은 아린 벌판의 영주였잖아요. 제국 변경백. 지구에 점령된 아린 벌판을 되찾고 싶을 거예요. 그런데 지구에서 아린 벌판을 반환하지 못하는 건 거기 대차원문이 있어서, 그 통로를 빼앗겼다간 이후로 아스에 일방적으로 공격당할 게 무서워서인데······ 이번에 한국에 대차원문이 생겼으니까, 그걸 남겨두는 조건으로 아린 벌판을 돌려주면 전쟁 생각이 사라질지도······ 어때요, 가온 경?”
“내가 보기엔 헛소리네요.”
가온이 너무 주저없이 대답해서 운전수는 당황했지만, 아직도 단념하지 않은 눈치였다. 막 졸라대는 것 아닌가.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한번 시험해봐요.”
“누구한테. 여기 데스나이트한테? 걔 AI라서 감정 없어.”
“그래도 한번······”
가온은 딱 잘라 거절하려다가 말았다. 어쨌건 자기 나라를 생각하는 이 남자를 막 대하기는 껄끄러웠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해볼게.”
“감사합니다!”
차량이 멈추었다. 데스나이트가 저기 있었다. 그 사실은 여기서부터 흐르기 시작한 피의 시냇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가온은 평소와는 달리 힘겹게, 차량에서 내렸다.
“대기해.”
운전수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가온은 데스나이트에게 다가갔다.
가온이 발소리를 최대한 줄여서 접근했기에 데스나이트는 그 접근을 조금 뒤에야 깨달았다.
가온과 데스나이트가 눈이 마주쳤다.
데스나이트는 이미 가온을 위험한 적으로, 그러니까 굳이 맞붙어 싸울 이유가 없는 적으로 인식한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다음 순간 가온은 낭패감을 느꼈다.
데스나이트가 바로 뒤돌아서더니, 위치를 이탈하려 하는 것 아닌가.
가온이 아까 운전수와 약속한 대로 말했다.
“결투다. 나 가온이······”
외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워낙 지친 탓에 몸에 목에도 힘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데스나이트는 아스의 검사라면 절대 무시하지 않을 그 결투 신청을 들은 체만 체 하며 뛰었다.
그 등에 대고, 가온이 마지막 성대 힘을 짜내어 외쳤다.
“아린 벌판의 영주에게 도전한다. 도망칠 경우 영지의 지배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알겠다. 흉턴 아린.”
그리고 다음 순간, 가온은 자신이 의도한 일임에도 놀랐다.
데스나이트는 달리다 말고 멈추더니, 뒤돌아섰다.
무기질적인 눈, 무감정한 눈으로 가온을 바라보았다.
“결투에 응할 건가?”
가온의 물음에 데스나이트는 굳이 입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말없이 칼만 뽑았다.
가온 또한 왼손으로 칼을 뽑았다.
두 검객이 서로를 향해 돌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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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데드의 군세는 본드래곤을 제외하면 가난한 3세계의 군대와 흡사하다. 소총을 든 보병과 박격포병만으로 이루어진 무채색의 군대. 부족한 화력을 박격포에 의지하려 했는지, 포성만은 엄청나게 우렁차다.
전투가 막바지에 이른 모양이다. 남은 포탄을 전부 쏟아내는 것 같다.
지상에 화약 냄새나는 천둥이 연달아 울린다. 그 괴성 안에서 고작 칼이 부딪히는 소리는 묻힌다.
그 탓에 이번 재대결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다.
자그마치 두 소드마스터의 대결이지만 일렁이는 재도, 백색의 광채도 주변을 뒤덮지 않는다.
부딪치는 것은 오로지 롱소드 두 자루뿐이다.
그래서 이번에 펼쳐진 격전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아까와는 달리 갈채를 보낼 구경꾼도 한 명뿐이며, 무엇보다 가온은 잔뜩 지쳤다. 억지로 마신 오거 포션마저 가온에게 제대로 된 힘을 주지 못했다.
결국 아까보다 훨씬 밀린다.
지금 가온을 밀어붙이는 데스나이트의 공격은 덜 세련됐으며, 더 과격하다.
반면 육체에서 힘을 받지 않는 데스나이트는 지치지 않는다. 아까와 다름없는 괴력으로 쉴새 없이 가온을 몰아붙인다.
단순하지만 힘이 실린 공격의 연속, 단순히 힘만으로도 제압당할 것 같다.
가온은 그 격류에 휘말린다. 버티지 못한다.
이쯤 되면 소드마스터의 대결도 아니요, 그냥 잔뜩 지친 병사와 그렇지 않은 병사의 전투일 뿐이다. 아무래도 이 대결에서 소드마스터들와의 대결로 얻을 법한 무언가를 얻진 못할 것 같다. 그러기엔 너무 수준 낮은 싸움 아닌가.
그리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마당인데도 굳이 싸울 이유가 있나?
있다. 분명하게 있진 않지만, 기분적으로는 있다.
머릿속으로 아까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미안하실 이유가 있나······ 그 가온이 우리 한국인들 돕는 것도 그렇죠. 사실 전혀 이유 없이 돕는 건데요.’
틀렸다. 가온에게는 한국인에게 미안함을 느낄 만한 이유가 있다.
수십 년 동안 바깥과 인연을 끊었던 주제에, 몇 번 정도 방문해줬을 만한 이유가 있다.
‘현실에서 못 돕는데 게임에서 돕는 건 웃기는 일이지만······’
지금 이 데스나이트를 무찌른들 실제로 한국에 이로울 리는 없지만, 그 일부인 게이머들의 살림에 도움이 되긴 할 것이다. 여기서 밀렸다간 가진 재산을 다 잃을 테니.
그런 생각에 고통마저 느끼면서 싸우는 중에, 데스나이트의 공격은 변함이 없다.
허릿심으로 몸을 걷어차려 하고, 피할 데 없이 공간을 점하여 칼을 휘두르고······.
이 데스나이트의 정체가 흉턴이건 누구건 노련한 전사인 건 분명하다. 굳이 기술이며 실력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다른 요소로 더 쉽게 이길 수 있다 싶으면 그러려는 모양이다.
그래서 실제 실력이야 어떻건, 지금 검술에 의지하는 건 가온 쪽이다.
머리를 노리고 덮쳐온, 데스나이트의 묵직한 칼날.
그에 맞서 가온은 방어를 겸한 공격을 해본다. 교관에게서 배운 감아 올리기. 적의 공격 도중에, 지레의 원리로 칼을 끼워서······.
‘아.’
실패했다. 무거워진 팔은 적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다.
적의 칼과 부딪친 칼이 밀려났다. 다행히 적의 공격을 튕겨내는 것은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이쪽 상반신이 무력화되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총알처럼 날아오는 칼날.
언제 봐도 완벽한 찌르기. 지금 막아내기는 불가능하다. 가온은 게임오버를 예감하며 축 늘어진다. 사고를 포기하고 죽음을 각오한다.
그리고 오랜 훈련의 성과로, 머리가 멈춘 와중에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인다. 온몸에 힘이 빠진 덕분인지 몰라도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가온이 칼을 마주 찌른다. 강제로 밀쳐졌던 힘을 반동 삼아, 먼저 휘두른 적보다 빠르도록 힘껏.
그 순간, 머릿속에 불씨가 튄다. 잔뜩 지쳐 생긴 환각일까?
“아······”
그리고 다음 순간, 또다시 눈앞에서 불씨가 튀었다. 방금 튄 불씨보다 이번 불씨가 더욱 선명했다.
이조차 환시인가?
아니다. 이번에는 실제로 불똥이 튀었다. 칼날이 판금을 뚫고 들어간 충돌의 과정에서 생긴 여파다.
가온은 자기 칼이 데스나이트의 흉갑을 꿰뚫었음을 깨달았다. 마나의 원천, 심장이 위치할 그곳에.
이겼다. 저쪽은 졌다.
어떻게?
가온도 그 비결을 알지 못했다. 다행히 녹화 기능을 켜두었다. 나중에 이 승리의 비결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데스나이트 또한 자신이 졌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찌르기가 멈췄다. 죽음을 받아들이려는지, 데스나이트는 잠시 멀거니 있었다.
그리고 눈을 감으려다 말았다.
“어, 왜 움직여······”
데스나이트의 손이 다시 움직였는데, 흉갑을 찌르기 전과 다름없이 수월한 움직임이었다.
가온은 이 언데드의 약점이 가슴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카샤드가 심장을 다른 데 달았나 보군’
가온을 향해 마지막 공격을 해왔다. 지금 가온은 방어할 수단이 없었다.
가온의 가슴에 데스나이트의 칼이 박혔고, 이제 둘은 서로의 가슴에 칼을 박은 처지가 되었다.
마침내 죽기 직전, 가온은 외쳤다.
“쏴!”
대기하고 있던 운전수는 이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투 감각이 사라진 탓에 데스나이트의 반응은 한 박자 늦다. 그래서 로켓탄이 날아온 그 순간에야 데스나이트는 발을 움직이려 했지만 실패했다.
서로의 칼날이 깊이 박힌 탓에 피하지 못했다.
폭발이 시야를 뒤덮더니, 게임 오버.
“아, 씨. 아깝게······”
가상현실 기기를 나온 가온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 낭패감은 있었지만 축 늘어진 무기력함은 더는 없었다.
게임을 나온 순간, 게임 속 몸뚱이를 잠식하던 피로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가온은 전신에 넘치는 힘을 느꼈다.
언데드와 마찬가지로 지치지 않는, 그러나 다른 이유에서 한계가 없는 반신의 육체. 이 육체로 싸웠다면 싸움은 훨씬 쉬웠으리란 것을 알았다.
여신께서 방금 전투를 치하하시었다.
‘네 여신이야 잘 모르는 일이지만, 전쟁 신이 말하기를 내 대전사의 실력이 또 늘었다더구나. 볼 때마다 정말 달라진다던데, 뭔가 나아진 점이 있었느냐?’
“예. 꽤 늘었습니다.”
‘얼마나?’
“아주 조금, 아주 조금만 더 나아가면······ 하고 그 유니콘에게 닿을 정도입니다.”
여신께서 조금 생각하시더니 물으시었다.
‘더없이 잘된 일이로다. 그래서 다음엔 어쩔 테냐?’
“다음이요?”
‘네 여신이 알기로 내 대전사에겐 원수가 많지만 그중 으뜸이 하고 그자였기에 다른 자들에 대한 복수를 미뤘을 뿐이라. 하고 그자를 처치한 다음에는, 비로소 미뤄뒀던 복수에 나설 것이냐?’
가온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여신께서 달래듯 물으시었다.
‘추궁하려는 게 아니다. 그에 맞추어 네 여신이 교단에 지침을 내려야하기에 묻는 것이라.’
“모르겠습니다.“
고민 끝에 가온이 대답하자, 여신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래, 이해한다. 당장 결정하기 어려운 일일 테니.’
“예. 그러니 당장엔 그냥 제 이름이나 검색해야겠습니다.”
‘아니, 일해야지, 가온. 네 여신의 이름을 팔아치운 값은 해야지 않겠느냐?’
“신경 쓰지 않으시는 줄 알았는데······”
‘설마.’
“그럼, 뭘······”
그리고 여신께서 대답하시었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저 이번에도 내 대전사로서 어디에 좀 방문해주면 되리라.’
“이번엔 또 어딥니까?”
여신께서는 조금 주저하시더니 말씀하시었다.
‘예히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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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소! 오랜만에 군을 움직여보니 좋군. 폭격에 당했는지 데스나이트가 격파된 건 조금 속 쓰리지만 말이오」
카샤드의 말에 아타락시아가 대답했다.
“그것도 전훈이지.”
「그 말이 맞아.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전쟁에 일어나면 전장에 내보내지 말고 내 호위로만 둬야겠어. 그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유용할 테니까. 아무튼 이······ 게임? 그냥 오락 목적으로 소비하기는 아까운 걸작이군. 군사훈련 목적으로 상당히 유용할 것 같은데」
“그런 목적이긴 하지. 예산이 부족해 군에 보급하진 못했지만 말이오.”
「아무튼 상상 이상이었소. 신들께서 보여주시는 조화란 참으로 놀라워. 우리 리치들은 원혼을 가지고 고작 스켈레톤이나 찍어낼 뿐인데, 그분들께서는 원혼을 다루어 아예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해내시는군? 물론 원혼 가공기술은 우리가 제공했지만 말이오······」
갑작스러운 천상 찬양을 아타락시아는 오만한 드래곤답게 대충 들어넘겼다.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을 물었다.
“그런데 재밌다던 군 지휘도 갑자기 때려치우고 돌아가보겠다니, 어떻게 된 거요? 그 탓에 게임 내 이벤트를 조금 억지스럽게도 빠르게 종료했는데. 사실은 재미가 없었나?”
「아니, 아니오. 다른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래. 귀빈이 오시거든」
“귀빈?”
「그렇소. 예히나탈이 일찍이 맞이해본 적 없는 귀빈이오······ 가온 경께서 오신다오」
아타락시아가 눈을 크게 떴다.
“왜?”
「비밀이오」
카샤드가 정신적으로 웃는 가운데, 아타릭시아는 뉴스를 챙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뭐가 뭔진 몰라도 잘 지켜봐야겠다고.
그녀에겐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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