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 소드마스터 언데드 - [1]
1931년, 서기장 사무실에 웬 언데드 리치가 텔레포트하여 나타나 공산당 가입을 희망했을 때, 스탈린 서기장은 극심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자기 이름을 카샤드라 소개한 이 해골은 평등한 분배며 이상적인 사회 따위에 관심이 없다는 게 누가 봐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해골은 그저 아스 신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데 공산주의가 도움 되리라고만 생각했다. 공산주의가 소련인들에게서 그들 신의 신앙을 버리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면, 아스인들에게서 그들 신의 신앙도 버리게 할 수 있으리라고.
심지어 이 해골은 레닌과 마르크스를 공산당원들이 모시는 신의 이름으로 여기는 눈치였는데, 아니라고 몇 번을 설명해줘도 들어먹질 않았다. 자기네만의 신이 있지 않고서야 그 강력한 기독교 신을 왜 거부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이해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카샤드는 공산당 가입에 성공했으며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어쨌건 소비에트의 입장에 나쁜 제안이 아니었던 것이다.
불사왕이라 자처하는 이 뼈다귀 차르에게 서기장 감투를 달아주는 것은 꽤 괜찮은 업적이 될 것 같았다. 약간의 물자와 시체 지원만으로 아스에 동맹세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무더기로 쌓여있던 소련인들의 시체가 한곳에 쌓인 뒤, 소련제 총기가 그 앞에 운송되었다.
둘이 합쳐졌다.
수십만 소비에트 해골들이 소비에트제 총기를 들고 아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소련의 지시에 따라, 제국주의자들을 향해 돌격했다.
놀랍게도, 제국주의자들을 물리치는 데 소련 젊은이들을 수백만 명 죽게 만드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낫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카샤드와 그 휘하 리치들이 만들어내고 소련이 시체와 무기를 제공해 양산된 이 해골 전사들은 아무런 죽음의 공포 없이 돌격했으며, 이미 죽은 자들답게 잘 죽지도 않았다.
아무런 전술 없이 무작정 돌격시킨 스켈레톤 중대가 기어이 적 참호를 점령해버리는 일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소비에트 해골들이 어찌나 강력한지, 드래곤들이 상당히 전사하여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했던 아스의 전선은 다시금 고착상태가 되었다.
이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소비에트 지도부는 고무되었지만, 동시에 염려를 표했다.
모름지기 지도자들은 다른 이의 지도를 따르기 싫어하는 법. 모택동이 그랬듯 카샤드 또한 코민테른의 지도를 따르지 않게 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염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이미 소련에서 얻어낼 것을 다 얻어낸 카샤드는 결별을 선언했다. 자긴 이제 스탈린 서기장과 동격이라며, 코민테른과 독자노선을 걸으리라 결정해버린 것이다.
스탈린은 분노했지만 사실 예정된 일이었다.
이즈음, 카샤드는 공산주의가 아스인들에게서 자기네 신앙을 버리게 만드는 데 조금도 쓸모없다는 것을 눈치챈 마당이었다.
일찍이 스탈린이 지겹게 설명해줬듯 레닌과 마르크스는 정말로 신이 아니었으며,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무신론이란 아스인들의 입장에 지구 평면설만도 못했다.
결국 카샤드는 스탈린이 아니라 아스 신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반쯤 죽은 자들의 쓸모를 증명하여 천국 입성을 허가받기 위해 제국주의자들과 싸웠다.
그로부터 수십 년 지나, 이 수천 년 묵은 리치 서기장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
한국 길드 연합의 수장은 늘 그랬듯 백두 길드장이었다. 전에는 부길마였던, 이제는 길드장이 된 오상덕. 마침 저번에 언데드 군대와 싸워본 경험까지 있었다.
자신이 넘치게도 여기 모인 길드장들에게 말했다.
“스켈레톤들, 좆나 셉니다. 진짜 좆나 세요. 총 쏴서 죽이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기관총이며 포격이며 있는 대로 화력을 퍼부어야 겨우 죽일 수 있어요. 그런데 기관총탄이든 포탄이든 넉넉하신 분?”
그 질문에 여기 모인 한국 길드장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얼마 전 있었던 백골부대와의 일전으로 이미 비축된 물자를 죄다 소모한 마당이었다.
“가온 경? 혼자 수백 마리 잡으셨다는데. 방법을 알려주실 수?”
웬 길드장의 질문에 가온이 대답했다.
“그 가온 아니니까 가온 씨라 부르고. 어떻게 죽였냐면 마법으로 태워죽였는데. 왜, 지금 마법 배우게?”
그리 말하며 가온이 손에 불꽃을 피워냈다. 아무런 주문도 외우지 않고, 단번에.
가온의 손에서 거대한 불꽃이 넘실거렸다.
그 순간 다들 이 한국말을 대단히 잘하는 남자가 아스인임을 실감했다. 지구인 중에서도 이제 마법사가 꽤 있지만 저렇게 당연한 듯 쓰지는 못한다.
질문을 던진 길드장 또한 질린 눈으로 불꽃을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아뇨······”
“화염방사기도 쓸 만한데. 없나?”
그 말을 백두 길드장 오상덕이 받았다.
“있는데 많진 않을 겁니다. 아무튼 화력으로 어쩔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이 있긴 한데요.”
“마지막 방법?”
“참호 안에서 근접전 벌이는 거죠. 스켈레톤들이 근육 없는 뼈다귀들이라 근력은 형편없지 않습니까? 개머리판만 휘둘러도 쉽게 때려눕힐 수 있죠······ 이때 가온 경의 도움이 필요한데요.”
“내 도움이 왜? 검술 훈련이라도 시켜달라고?”
“아뇨, 간단한 동작 배우는 거야 검술 교습소가 있으니 필요없고······ 저쪽에 언데드 소드마스터가 있다지 않습니까? 가온 경께 굳이 알려드릴 필요가 없겠지만, 소드마스터들은 참호전의 악몽이지요. 자칫하면 스켈레톤들은 막아도 소마 하날 못 막아서 참호 속에서 전멸할 수도······”
“가온 씨라 부르라니까. 그래서 내가 적 소드마스터랑 직접 싸워주시면 좋겠다고?”
“예. 제일 중요한 역할입니다.”
주목을 받을 수 있겠다. 그 자체는 아주 맘에 들었지만 가온은 다른 것을 걱정했다.
“믿어주니 영광인데, 소드마스터도 아닌 내가 언데드 소드마스터랑 붙을 수 있겠나?”
“힘드실까요?”
간절한 눈길, 가온은 조금 뜸 들이고는 말했다.
“어쩌면······ 될지도 모르겠네.”
오상덕이 반색했다.
“정말이십니까?”
“응. 언데드 소드마스터는 검기를 못 쓰거든. 흡혈귀든 데스나이트든 , 죽었다가 살아났으면 그냥 못 써.”
그 정확한 이유는 밝혀진 바가 없다느니, 검기는 신성 능력의 일종이라 그럴지도 모른다느니 설명하며 가온은 소드마스터도 아닌 자기가 대등하게 소드마스터와 맞붙을 수 있을 이유를 설명하려 애썼다.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길드장들은 ‘상대할 수 있다’는 말에만 주목했다. 그 사실에 환호를 보냈다.
“재의 왕자 가온 경 만세! 한국인들의 수호자!”
“아니, 그 가온 아니라고······”
가온이 뭐라 하든 말든, 여기 모인 길드장들은 웃고 떠들어댔다. 가온은 분노에 차 고함질렀지만 그들의 웃음은 그칠 줄은 몰랐다. 가장 힘들 것 같던 부분이 쉽게 해결되자 기분들이 좋은 듯했다.
그리고 회의장을 나온 순간, 그들의 웃음은 사라졌다.
“아, 저 새끼······”
불청객이 회의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던 남자,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된 남자.
“강주석?”
전 백두 길드장 강주석이 회의장 문 앞에서 시위하는 중이었다. 이와 같이 적힌 팻말을 들고서.
「한국을 지키기 위해 단결하자!
모두 뭉쳐 참마황의 군세와 맞서자!
자기 이익만 좇는 개돼지가 되지 말자!」
모두가 강주석을 노려보며 무슨 염치로 왔느냐 따졌지만, 강주석은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시위에 열중할 뿐.
“강주석 저 새낀 왜 저리 개돼지란 말을 좋아하냐?”
그 말을 끝으로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강주석을 가엾이 여기는 가온조차도, 자기만 말을 걸었다간 동정을 베푸는 것 같아 더욱 비참해질 것을 염려하여 입을 다물었다.
한편 길드장 몇몇은 강주석이 든 팻말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강주석 저놈 주장이 일리가 있는 거 같긴 한데. 인터넷에 참마황이 어쩌고 이 게임이 어쩌고 하는 글들 보면······’
그러나 어디까지나 생각뿐이었다.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다들 새로이 최대 규모 길드마스터가 된 오상덕의 눈치를 보는 마당이었다. 일부러 강주석을 비웃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면서 애써 머릿속에 떠오른 걱정을 떨쳐냈다.
당장에는 다가온 위기에 맞서야 할 때였다.
쳐들어오리라 예고된 반송장 군대에 맞서 자기네 영토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
평범한 유저들은 평소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검술 교습소에 들어가 훈련하는 가운데, 공병들은 참호선을 건설했다.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건축에 게임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특성상 현실과 비교할 수 없이 빠르고 간단했다.
그로부터 이틀 지나, 순식간에 방어선이 완성되었다.
참호선이 겹겹이 생겼다, 한국인 게이머들의 영토를 완벽히 두르는 참호선이.
“완벽해!”
만반의 준비가 갖춰진 지금, 제 아무리 악명 높은 해골들이 달려온들 능히 막아낼 수 있을 듯보였다. 실제 2차 대전에서도 병사들에게 근접전을 집중훈련시켜 참호에 투입한 뒤, 해골 군단의 전과가 상당히 줄었음을 고려하면 헛된 기대가 아니었다.
다들 참호 속에 몸을 누인 채, 다가올 적들을 기다렸다. 바다를 겨눈 해안포들과 수두룩한 포들이 해골들을 갈아버릴 준비를 마친 마당이었다.
그러나 적들은 그 방향으로 와주지 않았다.
“기습······”
고요한 가운데 들려온 소식. 모두가 당황햇다.
“뭐? 어디서?”
방금 무전을 듣고 온 길드장은 황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차원문이 열렸대요. 우리 후방에. 거기서 스켈레톤들이 쏟아져나온다고······”
마법에 조예가 있는 가온이 난색을 표했다.
“뭔 소리야? 차원문 여는 게 얼마나 빡세고 오래 걸리는데. 그게 쉽게 되지 않을 건데?”
그리고 그 말에 대답하듯, 모두의 머릿속에 메시지가 전해졌다.
이벤트의 상세를 설명하는 시스템 메시지였다.
「[이벤트 알림 ] :
카샤드의 군대가 여러분의 영토에 도달했습니다!
저희는 이벤트 군대의 진격로가 지나치게 편중될 경우 대부분의 유저들은 이벤트를 즐기질 못할 가능성을 염려했습니다. 특정인들만의 축제가 진행되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니까요!
그리하여 약간의 고증을 무시했습니다!
모든 국가의 게이머 여러분께서 이벤트를 즐기실 수 있도록, 실제 가능 여부와는 상관없이 차원문은 각지에 열렸습니다.
자, 막아내세요!」
잠시 모두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누군가가 비명지르듯 소리쳤다.
“아타락시아 씨발 년아아아아아아아아!”
*******
기껏 구축한 방어선을 버리고, 긴급히 병력이 이동했다.
철도와 차량을 총동원해가며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실제보다 땅이 훨씬 좁은 이 게임의 특성상 병력이동 자체는 꽤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워낙 대규모 병력이 이동해야 했다. 그 모두를 한꺼번에 옮기자니 이동수단이 부족했다.
결국 방어선에 모여있던 병력은 도보 행군까지 감행해야 했다. 고작 게임에서 밤새가며 며칠 내내 걸어야하는 정신 나간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동에는 며칠이 걸렸고, 앞서 이동한 병력은 쳐들어오는 언데드 군단과 정면으로 맞서기엔 너무 부족한 수였다.
결국 당장 싸우길 포기한 채 다시 참호를 파고 방어선을 형성했으며, 모든 병력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국 게이머들은 이 할의 영토를 상실한 마당이었다.
작가의 말
1. 영국은 영국 나름대로 초인 육성을 시도했습니다. 값비싼 맨드레이크 엑기스를 천재 고아들에게 말도 안 되는 양을 복용시켜 전투 마법사들을 육성하려는 것이었죠!
’프로젝트 마구스‘로 육성되어 가온을 상대하기 위한 대마법사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소설에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2. 죽음 신의 권능은 죽음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권능이 실린 칼로 적의 목을 베거나 심장을 터뜨리면 적은 죽습니다!
재생력이 강한 트롤을 잡을 때 특히 유용합니다!
3. 소드마스터를 언데드로 되살린다면 데스나이트가 될 것이며, 검기를 못 쓰기에 아다만티움 검이 필수일 겁니다!
4. 카샤드는 짱셉니다. 휘하 리치들과 함께 소드마스터를 격퇴한 적도 몇 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