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24 대전사 가온 - [2]
아줌마를 따라간 그곳에는 신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년 여성들과 그 남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들, 그리고 결혼할 예정이거나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여성들.
전형적인 화로 여신님의 신도들이었다. 가정에 충실한 자들. 영혼의 미래를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여기 나왔을 것이다.
그들은 본토에서 왔다는 여신의 사제에게 존경의 눈길을 보내오고 있었다.
“대단하신 분을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정말!”
한 신도의 말에 가온은 쑥쓰러워 했다.
“대단한 분이라 하실 것까지야. 아직 뭔가 보여드린 것도 없는데요.”
“아뇨, 척 보기에도 기도력이 높으신 거 같던데요!”
“기도력? 그게 뭔진 잘 모르겠지만, 어째섭니까?”
“아까 저희 앞에서 연설하신 것만 생각해도 딱 집중이 되고 귀에 딱딱 박혔던 게, 저희가 본 그 어떤 사제님보다 나은 거 같아요!”
“아, 그건 제가 사제 경력이 좀 길어서.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데 익숙한 덕이죠. 기도나 그런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겸손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어신도들은 더욱 열렬한 눈빛으로 가온을 바라보더니, 이런저런 상담을 해왔다.
종교적으로 썩 대단한 상담을 해오지는 않았다.
“동생이 이혼한다는 데 그러다 지옥 갈까 두렵습니다. 말려야 할까요?”
“동생분이 화로 여신님의 신도인가요?”
“아뇨.”
“그럼 뜻대로 하게 내버려 두시죠. 굳이 자기 교리가 세상의 진리인 양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는 건 유니콘이나 할 짓이니까요. 그럼 다음 분······”
“아, 저. 집에 보일러가 이미 있는데 화로를 굳이 사야 할지······”
대부분의 상담이 이런 식이었다. 가장 일상적인 종교의 신도들답게 던져오는 질문들도 죄다 일상적이었다.
가온이 일상을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특유의 기나긴 사제 경력은 이 경우에도 도움이 되었다.
상대방을 안심시켜 주면서, 가끔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 상담자의 역할은 충분하다.
옛날에 그랬듯, 가온은 지금도 그렇게 했다.
상담이 계속되는 중에, 웬 신도가 이런 질문을 던져왔다.
“제가 열다섯 살짜리 아이가 있는데, 제가 어릴 때 입교시켜서 이미 화로 여신님의 신도거든요? 그런 주제에 독신으로 살겠다는데 미치겠어요. 벌써 담배나 퍽퍽 피우고, 이거 천국행에 감점받는 악행이죠?”
“예. 태아와 자녀에게 안 좋으니까요.”
“미치겠네요 정말. 아스인들은 안 이럴 텐데. 모든 행동을 신께서 보기 좋도록 할 테니······”
그 한탄에 가온이 부정했다.
“아뇨. 아스인들도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신의 뜻과 어긋되게 행동하는 일이 많죠.”
“정말요? 아스인들은 다들 천국 가려 열심히 노력하지 않나요?”
“설마요. 열심히 공부하면 사짜 직업 붙은 직업 될 수 있다고 해서 학생들이 다 밤새워 공부하진 않잖습니까? 그거랑 똑같습니다. 다들 생각보다 대충 살아요. 되는대로 살다 보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거죠.”
“그건 좀 실망인데. 아스인들은 사후세계를 당연시하니까, 사후를 두려워해서라도 행동을 다르게 할 줄 알았는데요.”
그 말에 가온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찰나의 욕망이 장래의 희망을 쉽게 이기는 법입니다. 아스인이든, 지구인이든 간에요.”
*******
지존무쌍은 원래 택시를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이 연속으로 적발되어 면허가 정지된 이후로는 노가다를 하다가 몸이 상했다.
이후로는 월세 내기도 벅찼다. 그나마 요새는 아주 나아졌지만······.
지존무쌍은 통장 내역을 보고 한숨 쉬었다.
잔액 345,938원.
번 돈이 꽤 있었는데, 또 다 날아가고 말았다.
그놈의 업소 때문이다. 가상세계에 생긴.
열심히 머리를 굴려 남은 돈으로 월세와 식비를 낼 수 있을지 계산해보았다.
‘대충 낼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리 판단한 뒤, 지존무쌍은 가상현실 기기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줄어든 돈은 또 벌면 된다고. 미래가 불안한 가운데 노후 자금은 크게 번 뒤에 마련하면 된다고, 자기 자신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게임에 들어갈 테니, 켜두고 있던 TV를 끄고자 리모컨을 만지던 와중이었다.
「차원문 터미널에 (······) 경악스러운 참사가 (······)」
송출된 긴급속보를 보고 지존무쌍은 기겁했다.
*******
상담이 계속된 끝에, 별 대단한 대화가 오가지 않았는데도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상담한 자들도, 상담을 들어준 사제도 상담 결과에 모두 만족할 수 있었다.
‘대전사와 더불어 대사제 노릇도 해보겠느냐, 가온?’
여신께서마저 감탄하시는 가운데, 가온은 속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거라면 기꺼이.’
‘아, 되었노라. 계속 지금 역할에만 충실하거라, 내 대전사.’
‘그러지요. 그런데 대전사 역할이라도 하자니······ 아무래도 걱정하신 예언이 맞을 것 같지가 않은데요? 생각해보니 예언자들이 아스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겨우 예언해내지, 지구 관련해서 하는 예언은 죄 틀리지 않습니까?’
‘다른 세상 일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 탓에 예언을 믿고 지구 기업에 한 투자가 번번이 실패하여 네 여신은 세무조사를 두려워하게 되었노라. 모쪼록, 이번 예언 또한 틀리면 좋겠구나.’
가온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대답하려던 때였다.
신경이 곤두섰다. 온몸의 털이 뻣뻣하게 서는 것 같은 감각.
공기가 변했고, 그 자그마한 단서만으로도 온몸의 신경이 경고하고 있었다.
가온이 몸을 일으킨 가운데, 신도들은 두 박자 늦게 반응했다.
가온이 보는 방향을 모두가 바라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저게 뭐야?”
“폭탄?”
푸른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눈을 찌를 듯, 아주 강렬하게.
푸른 빛은 차원문 터미널에서 방출되고 있었다. 차원문을 자주 통과해본 사람이라면 저 푸른 빛이 차원문 특유의 빛이라는 것을 알아볼 것이었다.
차원문은 특유의 강력한 에너지를 광에너지로 바꾸고 있었다.
짧은 시간, 그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아니, 빛뿐인가?
아니었다. 빛만 강렬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빛과 함께 에너지 또한 증폭되고 있었다.
“차원문이 커지고 있어······”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차원문이 터미널의 천장을 부수고 그 위에 존재감을 드러낸 덕이었다.
차원문은 위로, 옆으로 커져가고 있었다. 눈에 보일 만치 빠르게. 강렬한 빛을 뿜으며.
대체 왜?
알 수 없었다. 어쨌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상담을 하다 말고, 가온은 텔레포트했다.
*******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카르세 연방에 뿌리내리지 못한 개념이 있는데, 바로 언론의 자유다.
카르세는 소드마스터의 고향 아닌가. 결투의 관습이 생겨난 본고장.
어떤 방식의 모욕이든 결코 참아 넘기지 않는 결투 문화는 언론인들에게 비판 정신을 앗아갔다.
비판해야 할 대상이 자기보다 결투에서 강할 것 같다면 특히 그랬다.
그래서 기사에 쓸 내용이 초인 국가원수와 관련되었을 때, 카르세 언론인들의 논조는 모 나라 언론인과 비슷해지곤 했다.
「남조선 마족들은 은혜를 모르는 족속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남조선 마족들은 옛 약속을 지키라는 참마황 폐하의 정당하신 요구에 아직도 답을 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차원문 주변으로 군대를 옮기는 경악스러운 도발행위를 하였다!
아린 벌판의 적법한 영주이시며 제국 변경백이시자 선제후이시며 연방 대통령이신 용맹한 참마황 폐하께서는! 엄하신 아버지의 마음으로 마족들을 꾸짖고자 참마검을 단호하게 휘두르셨다!
그리하여 너희 조선 마족들이 충격을 받았다면, 부끄러움을 알고 급히 달려와 슬피 울며 참마황 폐하께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
차원문이 커진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기계로 공기를 불어넣는 풍선처럼 커진다.
커진 차원문을 가둬두기에 터미널 건물은 좁다. 너무 좁다.
차원문 터미널을 구성하던 벽과 사물들이 녹아내리거나 부서진다.
차원문. 사물과 생물을 다른 차원에 연결 시켜 주는 그 문은 지금 그 편리한 기능을 잃었다.
증폭되는 과정에서 지금 차원문은 오로지 끔찍한 열,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힘이 담긴 에너지일 뿐이다.
아주 강렬한 에너지. 거기 닿은 모든 것을 부수고 녹인다.
온갖 기둥과 벽이 녹아버린 끝에, 터미널은 붕괴했다.
“엄마!”
사람들은 열에서 피해 달아나야 했다.
벽과 천장이 무너져내리는 와중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비규환의 현장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가온이 중심에 서서 기도했다.
“여신이시여!”
여신의 권능이 퍼진다. 차원문의 열이 사라진다.
그러나 차원문 특유의 불가해한 힘은 남았다.
사물의 구성을 재구축하는 힘. 분해와 조립. 원래 차원문과 달리 지금은 조립이 빠졌다.
계속해서 차원문이 커지는 가운데, 온갖 사물이 부서진다. 터미널 천장이 파괴되고, 바닥이 붕괴하고, 사람은······.
“억······”
가까이 다가온 푸른 빛. 그 앞에서 숨도 못 쉬던 남자는 공포 속에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 몸은 다른 장소에 있었으며 자신을 옮겨다 준 누군가는 거기 이미 없었다.
가온은 계속해서 텔레포트를 반복했다. 구출과 구출의 반복.
그러나 0.3초마다 이동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면 어떻게? 몸으로 때워야 한다.
텔레포트를 거듭하는 동시에, 가온은 칼을 뽑았다.
쏟아지는 콘크리트 가루 사이에서 재가 흩날렸다.
사람들의 이동에 걸리적거리는 사물을 자르고, 벽을 통로로 바꾸었다.
그리 작업하는 와중에도 차원문이 커지고 있었다. 그 가공할 에너지가 모두를 삼키고자 사방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죽는 사람, 떨어진 무언가에 뭉개져서 죽거나 직접적으로 휘말려 죽는 사람이 계속해서 나왔다.
가온은 구출하는 와중에도 그 모두를 확인하며 생각했다.
이번 일을 저지른 놈은?
오래 생각할 여유 따윈 없었지만, 답은 바로 나왔다.
참마황이다. 참마황이 저지른 짓이다. 그 말고는 이런 일을 벌일 누군가가 없다.
이유는 몰라도 참마황은 분노했을 것이다. 분노를 표출했을 것이다.
‘미쳤어.’
한국은 초인 지도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초인 지도자의 권력은 지도자 개인의 초인성에서 나온다. 사람들의 지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지도자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초인 지도자 참마황은 전쟁을 바란다. 같은 피해자로서 전쟁에 동참하지 않으려 하는 한국에 분노를 표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는 초인의 특성상, 그 분노는 아무런 외교적 수사와 정치적 고려 없이 표현될 수 있다. 바로 지금처럼.
지금 벌어지는 것은 아마 참마황이 한국에 전하는 항의 표시일 것이다. 분명했다.
‘정말 미쳤어.’
한 아이를 향해 텔레포트한 그 순간, 붕괴하는 천장이 가공할 무게를 담고 떨어져 내렸다. 피하자니 시간을 낭비할 것 같았다.
가온은 대충 주먹을 휘둘러 떨어지는 파편을 튕겼다. 아이가 비명질렀다.
“어흐······”
파편의 무게가 상당했다. 가온의 주먹에 피가 흘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신다운 가공할 재생능력은 말도 안 되는 터프함을 제공했다.
그래서 웬만한 신체 손상쯤은 알고서도 감수할 수 있었다.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운데,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나올 것 같았다.
차원문이 한 노인을 집어삼키기 직전이었다.
소드마스터가 직전이라 말하면, 그것은 정말 직전이다.
구할 수 있을까? 아슬아슬한데, 구출하려다간 이쪽도 위험하다······.
판단은 0.1초 만에 끝났고, 다음 순간에는 행동에 나섰다.
0.3초 찰나의 순간, 저 앞에 나타난 가온은 노인을 집어던졌고 가온 혼자 거기 남겨졌다. 그와 동시에 땅을 박찬 덕에 차원문이 가온의 온몸을 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반신은 삼켰다.
예상한 바였다. 0.3초 뒤 또 텔레포트하여 차원문에서 멀어졌다.
잠시 땅을 굴렀던 가온의 상반신에는 다시 하반신과 바지가 복구되었다.
가온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움직였다.
그 와중에 웬만해서는 해제하기 어려운 폴리모프가 풀렸다. 지금처럼 신체가 과격하게 변형되는 순간에 신체에 걸린 그 마법은 풀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가온이 두 명을 더 구출하여 자신마저 터미널 바깥으로 나왔을 때, 사람들은 회색 머리칼의 엘프를 보게 되었다. 피투성이 엘프.
“괜찮으십니까!”
경찰이 여러 이유에서 경악한 가운데, 가온은 지시를 내렸다.
“부상자들, 한 데 모아!”
“예?”
“빨리!”
가온의 폴리모프는 완벽하다. 성대마저 변형시킨다. 그래서 목소리마저 매번 달라지지만, 몇몇 신도들은 그 목소리가 아까 그 사제의 그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목소리에 실린 힘이 비슷한 덕분이다.
그들이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한 보수단체 회원이 질문했다.
“함부로 다친 사람 옮기면 뼈가 부러지거나 해서 더 위험한 건······”
가온은 설명 대신 기도를 올렸다.
‘여신이시여.’
아스인에게 기도란 구체적인 결과를 내놓는 행위다.
‘그래, 가온.’
누워있던 부상자의 상처에 새 살이 돋는다. 눈에 보일 속도로.
다른 세계 신의 기적. 그것을 본 누군가가 거들었다.
“시키는 대로 합시다. 빨리.”
고개를 돌려보니 기독교 보수단체 회원이었다. 봉사활동 경험이 있는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벌써 들것을 만들고 있었다.
모여있던 모든 사람들이 부상자을 옮기는 가운데, 다쳐서 누워있던 남자는 흘긋 고개를 돌렸다.
푸른 빛을 발하는 거대한 에너지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고층 건물보다 높고, 거대한 광장보다 훨씬 넓어진 에너지.
사람들은 저것을 뭐라 불러야 하는지 안다.
“대차원문······”
양 세계를 강제로 통하게 하는 그 문이 지금 한반도에 생겨난 것이다.
아린 벌판에 생겨난 그 문을 닫는 것은 카르세 연방의 오랜 숙원이었다. 그런데 닫고 싶어 안달 난 그것을 굳이 또 하나 만들다니?
지구인들이 점령한 아린 벌판과 달리, 자신들이 확보한 영역에 만들어낸다면 통제할 수 있단 계산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건, 그 지시에 반대한 정치인 따윈 없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누가 감히 검기를 좍좍 뿜어내는 초인에게 맞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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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게 됐기로, 참마황이 이번 일을 벌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참마황은 한국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는지, 차원문을 폐쇄하리란 소문에 신경이 곤두선 마당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이 몇 개 사단을 조금 차원문에 가깝게 배치한 그때, 조금 의심스러울 수는 있어도 문제 삼기는 어려운 그 조치를 참마황은 기어이 문제 삼기로 했다고.
연방 마법사들을 시켜, 폐쇄할 엄두조차 나지 못하도록 차원문을 부풀리도록 지시했다.
이날 죽은 사람은 서른아홉 명이었으며, 그중에는 아스인이 다섯 명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