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70화 (70/135)

LV.24 대전사 가온 - [1]

드래곤을 물리친 지금, 가온은 예전처럼 활동하면 되었다. 다시 하고와 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나루 또한 떠났는데, 그녀가 남긴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강렬했다.

가온은 왼손에 롱소드를 든 채, 소드마스터 나루의 조언을 되새겼다.

‘원래는 나보다 하수라 가정하고 지도해주려 했지. 대인전 경험이 없는 반쪽 마스터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제보니 그게 아냐.’

‘아니라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발전한 것이더라.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중에 어느 쪽이 잘난지 말할 수가 없는 것처럼, 나보다 못났다고 할 수가 없어. 다른 소드마스터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최적의 경로를 그리던데? 그 방식을 버리거나 고치는 건 아까운 일이야. 쉽게 되지 않을 것이기도 하고.’

‘그러면······’

‘새로 쌓는 게 낫지. 다른 손에. 그러니까 왼손에.’

‘그러니까 대인검술은 왼손으로만 익히라 이 말씀이군요?’

‘그래. 정확히는 왼손에서 검기를 발할 수 있도록 노력해.’

‘쉬운 일입니까?’

‘아니.’

‘어렵다면 얼마나?’

‘웬 소드 엑스퍼트가 소드마스터로 각성하는 것만큼. 나만 해도 이백 년 걸렸다고 했잖아? 처음 검기를 방출하는 데는 삼백오십 년 정도 걸렸으니.’

‘사실상 한 번 더 소드마스터로 각성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군요?’

‘그래. 그래도 가치가 있어. 특히 여기 있는 소드마스터에게는. 왜냐하면······’

가온이 왼손으로 휘두른 롱소드가 짚단을 정확히 갈랐다. 완벽하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은 일격.

‘······대인검술에서 확실히 소드마스터의 수준에 이르렀음을 증명하는 셈이니.’

계속해서 훈련하던 중이었다.

한 남자가 다가왔는데, 가온은 발소리만 들어도 그가 교관임을 알 수 있었다.

“드래곤 잡으시는 거 봤습니다. 정말 놀랐어요. 칼 한 자루로 대체 어떻게······ 초인이 이런 거구나 싶더군요.”

교관은 주변에 널린 잘린 짚단을 보고는 말을 이었다.

“이런 분이어야 소드마스터가 되는 거구나 싶기도 하고요.”

“나 소드마스터 아닌데?”

“그래요, 가온 경. 아무튼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교관이 한숨쉬었는데, 평소에도 칭찬을 자주 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그때와 말투가 달랐다.

부러움, 어쩌면 질투마저 느껴졌다. 하기야 저번에 듣기로, 이 남자는 지구보다 나은 검술을 익히기 위해 아스까지 왔다던가?

“내가 정말 소드마스터 가온이면 교관님껜 좋긴 하겠네요. 그럼 소드마스터의 스승이 되시는 셈이니까.”

가온의 말에 교관이 물었다.

“아, 절 스승이라 쳐줄 수 있습니까?”

“예. 도움이 됐거든요. 많이.”

그제야 교관은 우울해하다 말고 기분 좋게 웃었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웃음. 그 인간미는 인공적인 요소가 아닐 가능성이 컸다.

가온은 그 표정을 보다가 문득 기도를 올렸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NPC 몇몇은 지옥에 떨어진 영혼을 집어넣은 것이라 알려주셨지요? 그리고 이 교관 양반은 아스에 찾아왔다 죽어서 지옥에 간 모양이고요. 아스에서 죽은 영혼은 모두 아스 신들의 소유니······’

가온의 말에 여신께서 답하시었다.

‘아마. 그렇다면 보기 좋지 않구나. 내 대전사의 스승 역할을 한 검객이 지옥에 있다니, 안 될 일이라.’

‘아, 제가 하고 싶던 말이 딱 그겁니다! 혹시 구원할 방법을 알아봐주시면······’

‘네 여신은 그러리라.’

그로부터 한 시간 지나, 가온은 하고와 대결했으며 게임오버 당해 기기에서 나와야 했다.

이후로는 구글에 자기 이름을 치며 시간을 죽이던 와중이었다.

‘가온?’

여신께서 부르시매 가온은 반색했다.

‘교관 영혼, 벌써 알아보셨습니까?’

‘알아보도록 지시를 내리긴 하였으나 지금 내 대전사를 부른 것은 그 일 때문이 아니라.’

‘그렇다면?’

‘내 대전사의 도움이 필요하노라. 설명보다는 바보상자를 가동함이 낫겠구나.’

여신의 말씀에 따라 가온은 TV를 켰다.

한국 뉴스. 그분과 관련된 뉴스가 나오는 중이었다.

「어쩌면 현실이 될지 모를 전쟁 가능성에 대비하여 (······)

카르세―한국 차원문 터미널을 폐쇄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청와대는 소문이 루머에 불과하다고 일축했으나 (······)

차원문을 둘러싼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간의 시위가 격화되고 있습니다」

TV에 나온 단체는 둘이었다.

우선은 보수단체.

예전부터 그랬듯, 차원문을 폐쇄하라 시위하고 있었다. 그들의 피켓에 적힌 한 문장.

「위험요소에 불과한 차원문을 즉각 폐쇄하라!」

그에 맞선 종교단체의 피켓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천국의 문을 닫지 마라!」

*******

참마황이 협박에 가까운 선언을 한 뒤, 한국 정부는 그 선언이 별 대단한 위협이 아닌 것처럼 굴려고 애썼다.

참마황의 협박은 그저 도발에 불과하다고. 북쪽 흡혈귀가 툭하면 핵을 날리겠다며 으르렁대듯 참마황도 비슷하게 군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설명하려 했다.

그 노력이 나름의 효과가 있어 당장 한국인들은 예전과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긴 했다.

그럼에도 전쟁의 소문은 확산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전쟁이 날 경우, 한국과 카르세 연방을 연결하는 차원문이 참마황의 침공에 대단히 유용하게 쓰일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잠재적 적국의 침공로를 차단하라!’

수많은 보수단체들이 차원문의 폐쇄를 주장했다.

주장만 하는 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차원문 터미널에 몰려와 길을 가로막고 시위를 벌였다.

그들과 맞서는 종교단체도 있었는데, 다름아닌 화로의 여신을 모시는 신도들이었다.

‘만약 차원문을 폐쇄한다면 여신과 우리의 거리는 물리적으로 멀어지고 만다! 그러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터미널 주변에서 양 시위대가 서로를 노려보는 가운데, 당연히 국가기관이 구경만 하지는 않았다.

양 시위대를 바라보며, 경찰들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아니, 보수단체에 왜 하필 기독교 보수단체까지 섞여 가지고······”

양측이 충돌하기라도 하면, 그게 신문에 나기라도 하면 이런 제목이 될 것이다.

‘기독교도들, 또 화로의 신도를 다치게 하다!’

얼마 전 아스의 테러와 강제로 연관 지어서는 국제신문에 내보낼 것이다. 마치 한국인들이 평화의 여신을 핍박하는 것처럼, 전쟁을 원하는 것처럼 내보낼 것이다.

굉장히 보기 좋지 않을 것이다.

긴장한 경찰들의 앞에서 화로의 신도들이 소리쳤다.

“우리는 천국에 가고 싶다! 천국의 문을 닫지 말라!”

한편, 남자 하나가 차원문을 나왔다. 남자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기도를 올렸다.

“천국의 문을 닫지 말라니 저게 뭔 소립니까? 설마 아스가 천국이라 믿나? 아스의 어떤 나라보다 한국이 훨씬 살기 좋은데. 예히나탈 빼고.”

가온의 물음에 여신께서 답해주시었다.

‘차원문이 열려있어야 지구에서 죽어도 그 영혼이 아스의 천국에 갈 수 있으리란 주장이다. 내 대전사도 알다시피, 그 주장은 사실이고.’

“그러니까 자기들이 천국에 가야 하니, 곧 참마황이 군대를 보낼지도 모를 통로를 남겨두라 시위하는 거군요?”

‘그렇다.’

“이쪽도 저쪽도 막장이네.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네 여신의 신도들을 여기서 멀어지게 하라.’

여신의 말씀에 가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쉬운 일인데요. 단순히 그걸 원하셨다면 한국 교단에 전화 한 통 거시면 되지 않았겠습니까? 굳이 대전사씩이나 나설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귀찮으냐?’

“귀찮은 건 아니고, 재의 왕자씩이나 돼서 너무 자주 출장을 다니면 세상과 단절 중인 비극의 소드마스터 설정이 망가지니까······”

여신께서는 깊이 한숨 쉬시더니 말씀하시었다.

‘대전사를 놀려두기엔, 느낌이 좋지 않노라.’

“또 예언입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기꺼이.”

가온은 지금 인간 남자의 모습을 한 채,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화로의 문양을 달고 시위대에 다가왔다.

“위험······”

경찰들이 경악하여 제지하려 했지만, 가온은 당당하게도 걸어와 시위하는 종교단체 앞에 섰다. 그러니까, 자기 교단의 신도들 앞에.

여신의 권위를 빌어 그들에게 말했다.

“우선 제가 대신전에서 나온 사제임을 밝히겠습니다! 자, 여신의 지엄한 권위를 빌어 고하노니, 물러나십시오! 여러분.”

지금 가온은 확성기 하나 들고 있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는 여기 있는 모두에게 울렸다. 모두가 그 사실에 놀랐다.

모든 신도가 가온을 바라보는 가운데, 가온은 계속해서 말했다.

“차원문이 열린 동안에만 영혼이 이쪽 천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꼭 한반도에 차원문이 열려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차원문이 지구 어디에 있든, 양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가온이 말하는 동안 모두가 잠자코 들었다. 모두 아스에서 온 사제의 권위를 존중했다.

그럼에도 불안한지 누군가가 물었다.

“애초에 닫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닙니까? 천국으로 통하는 문은 하나라도 더 많아야 좋은데······”

그 물음에 가온은 입 다물라 다그치지 않았다. 조금 생각하더니 말했다.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사실은 조그만 틈만 있어도 충분하지요. 여신께서는 구원하러 오실 겁니다. 믿고 물러나십시오.”

힘있고 부드러운 목소리. 듣는 이에게 안심을 주면서 따르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사제의 설교였다.

그렇기에 갑자기 나타난 그 사제의 말에 모두가 순종했다.

“자, 여신께 기도합시다. 재 속에서······”

“불사조가 날아오르리라.”

여신의 신도들이 합창하더니, 일제히 사제가 가리킨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위를 그만두고, 차원문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경찰들이 보기에는 거의 기적쯤으로 보였다.

감동한 경찰이 와서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제님!”

가온은 씩 웃으며 말했다.

“감사는요. 그런데 정말 차원문을 폐쇄하려는 겁니까?”

“설마요. 그랬다간 바로 전쟁이죠. 카르세가 한국 통해서 식량 수입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그게 끊기면······”

“그럼 왜?”

“소문이 와전된 겁니다. 얼마 전에 국방부가 예비군 사단 몇 개의 위치를 옮겼는데, 그 사단들이 차원문에 꽤 가까워지긴 했습니다. 그걸 가지고 군을 동원해 차원문을 막으려 한다는 헛소문이 돌더니 이젠 아예 폐쇄하려 한단 소문이 돼버렸어요.”

“차원문 터미널 근처엔 군 주둔 못하게 돼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러면 안 되지요. 어디까지나 차원문 협약에 맞게, 저쪽 신경 거슬리지 않게 아주 조금만 움직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이 됐네요······.”

대화하는 중에 웬 목소리가 저 멀리서 울려 퍼졌다.

“안보 제일!”

“악마의 문을 닫아라!”

보수단체 시위대였다. 화로의 신도들이 물러난 걸 제 승리로 여기는지 기세가 드높아져 있었다.

“이제 저 양반들만 치우면 좋겠는데.”

경찰의 한탄에 가온이 물었다.

“저들도 제가 처리해드릴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문명인다운 방식으로. 그러니까, 결투 신청해서 진 쪽이 물러나도록 강요하지요. 칼 한 자루 저쪽에 주셔서 사생결단 낼 수 있게 허락해주시면······”

경찰은 정색했다.

“안 됩니다.”

가온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물러섰다.

뭐, 이쪽 할 일은 다 하긴 했다. 일단 여신의 신도들은 다 이동시키지 않았나.

당분간은 멍하니 폼 잡고 있기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한 아줌마가 다가왔는데, 그 목에 화로의 문양이 걸려있었다.

아줌마가 가온에게 질문했다.

“본토 신전에서 파견된 사제님이라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여신님과도 더욱 가까운 분이겠지요?”

분명한 사실이었다.

“예, 아마.”

“늘 그분의 말씀이 고팠습니다. 신도들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저희들에게 상담을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신을 풍족하게 하는······”

고해성사라도 하고 싶은 것일까?

소드마스터씩이나 되는 대전사가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주 해본 일이긴 했다. 가온은 조금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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