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11 요으 - [2]
“오랜만이네?”
가온의 말에 요으는 어색하게 웃었다.
“오랜만이란 느낌이 안 드네요으. TV에서 자주 봬가지고······ 아주 거하게 하셨던데요으.”
“어쩌다보니.”
“요새 TV 틀면 다 가온 경 칭송뿐이에요으. 솔직히 좋겠어요으. 저라면 제 얘기가 매체에 언급되면 하루종일 보면서 히히 웃을 거 같은데······”
가온은 정색했다.
“소드마스터씩이나 돼서 그리 한가할 거 같으니?”
“아, 모욕처럼 들리셨다면 죄송해요으······”
“어차피 아스인들 칭찬은 들어도 기분 좋지가 않아.”
“왜요으?”
“인터넷에 소드마스터 욕 하나 올리면 어떻게 되나?”
“소드마스터를 숭상하는 칼잡이들이 찾아와서 회 뜨죠으.”
“그 탓에 솔직한 평가가 없지. 사람들 시선 의식해서 가식적인 반응만 잔뜩인데, 그래서 그네들 칭찬에 몰입이 안 돼.”
아스인들의 칭찬에 몰입이 안 되는 이유가 하나 더.
요으와 만나기로 한 이 장소는 시내였다.
가온은 후긴의 거리를 둘러보았다. 이때 느껴지는 감정이라곤 하나였다.
낯설다. 자신이 기억하는 그 거리와 너무 달라져서 더욱 그렇다.
레이디의 명예를 위해 몇 번 발 디뎠던 인천조차 여기보다는 더욱 익숙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아예 외국이면 그러려니 하건만, 그마저 아니었다. 외국도 조국도 아닌 제3의 국가가 여기 있었다.
가온은 시내에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래서 봐라니는 잘 지내고?”
“예, 덕분에······”
“한번 볼까? 아, 집은 이미 구했지?”
요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집으로 안내했다.
얼마쯤 걸어가던 가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주변에 흉물들이 늘어선 탓이었다.
사람들이 죄 떠나고 없는 폐허인 모양이었다.
하늘 위로 솟아오른 십자가들.
지금은 폐쇄된 기독교 교회들이 주변에 널려있었다. 다가가기만 해도 저주받으리라 생각하는지, 그 주변에는 발자국조차 없이 잡초만이 무성했다.
딱 옛날에 뱀파이어가 살 만한 광겅이었지만, 돈 많은 현대의 뱀파이어들이 살 만한 곳은 아니었다.
“설마 이 근처가 집은 아니겠지?”
“맞는데요으······”
“왜 이렇게 거지 같은 데 사니?”
“이 정도면 괜찮은데······”
“아니, 형이 돈 많이 줬잖아. 부자 동네 좀 가지.”
“그게······”
요으가 뭔가 말하려던 차였다.
가온은 뭔가를 느끼고는 혀를 찼다.
“역시 질 안 좋은 동네답게 깡패들도 많나보네”
“깡패요으?”
“웬 놈들이 따라붙고 있어.”
그 말에 요으의 낯이 굳었다.
“누가 따라오는지 알 것 같네요으······”
“그래?”
둘이 멈춰선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깡패들은 과연 요으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일단의 오크들이 성큼성큼 걸어와 둘 앞에 섰다. 가온은 저들이 요으와 함께 마약을 팔려던 그 오크들임을 알아보았다.
그중 가장 거대한 오크가 위압적으로 양쪽 어깨를 흔들더니, 요으를 향해 윽박질렀다.
“이 인간놈 그때 그놈이지? 요으 이 새끼 구해줬단 놈. 그 뒤로 친구 먹었나? 요으 이 씹새, 형제를 버리고 인간이랑 어울려? 어디서 복권 당첨돼서는 본성이 드러나가지고. 돈 생기니 형제들은 안중에도 없다 이거냐?”
요으는 잔뜩 움츠러들어서는 반박했다.
“돈 절반이나 나눠줬잖아. 왜 형제들을 안중에도 없다고으······.”
“그거 받고 떨어지라 이거냐? 요으, 그게 브라더한테 할 소리야? 병신같이 쬐끄매가지고, 인간들한테 처맞고 다니는 거 누가 챙겨줬는지 잊었냐? 누구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있는지 이해를 못해? 어, 등신아? 이해 못하냐고!”
돈을 절반이나 나눠줬다는 말에 가온은 이미 분노한 마당이었다. 그 사실을 숨기지 앞으로 앞으로 나섰다.
“그래서 생명의 은인이니 반으론 만족 못하고, 앞으로도 빨대 꽂겠다고?”
“넌 빠져라, 쓰레기야. 왜, 뜰래? 싸우다 뒤지면 우린 천국 가지만 넌 지옥 간다, 병신아······”
가온은 그 말의 의미를 잠시 후에야 알아챘다. 폴리모프한 인간 형상을 보고 저러는 모양이다. 굳이 오해를 정정하지는 않고 요으에게 물었다.
“쟤네 지금 천국 보내줘도 되나?”
“그건 좀······”
“그럼 적당히 두들길게.”
무시당하는 게 싫었던 것일까?
“죽인―다!”
거대한 오크가 포효했다.
오크 특유의 전투 함성. 그러나 담배로 오염된 폐와 성대로 내지른 그 함성은 위압감이 없다. 지저분하다. 청각에 예민한 엘프로서 가온은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래서 달려든 놈의 안면에 주먹을 휘두를 때 힘을 많이 빼긴 했지만, 충분히 많이 빼지는 않았다.
거대한 오크는 송곳니가 날아간 채로 저 멀리 날아갔다. 다른 오크들이 달려들었고, 모두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다.
그 모두를 때려눕히는 데는 이 분도 걸리지 않았다.
‘오크들 이민 괜히 승낙했네.’
가온이 혀를 차는 가운데, 가장 먼저 나가떨어졌던 거대한 오크가 비실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요으는 조심스럽게 그 앞에 다가가 말을 걸었다.
“카록스? 이미 돈은 줬고으, 그 정도면 그동안 보살펴준 값은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다신 안 봤으면 좋겠어.”
“왜······”
“약 파는 건 지겨워. 미래도 없는 멍청한 일이야.”
“미래? 네가 엘프인 줄 아냐, 병신아! 마흔이면 뒤질 새끼가 자기 피를 부정해······ 형제를 버리는 씹새! 돈에 눈이 멀어가지고! 이대로 넘어갈 거 같―아!”
가온이 중얼거렸다.
“덜 맞았네.”
거대한 오크 카록스가 움찔하는 가운데, 요으가 외쳤다.
“더 때리시면 죽어요으!”
결국 요으의 부탁에 따라 둘은 그곳을 떠났다. 쓰러진 오크들을 뒤돌아보며 가온이 한탄했다.
“저것들 때문에 좋은 집에 이사 못간 건가? 좋은 집 구해봤자 오크들한테 들키면 이사가야 할 테니까.”
“예으······”
“돌겠네. 내가 검기 보이면서 감히 소드마스터의 분노를 감당하겠느냐며 협박할 수도 없고”
“저랑 처음 만나셨을 땐 검기 쓰지 않으셨어요으?”
“그땐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 슬픈 일이 있었거든.”
“슬픈 일이요으?”
“그래. 아주 슬픈 일. 자살충동마저 느껴질 정도로······.”
요으는 감히 이 역사적 소드마스터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비극적인 분위기에서 둘은 요으의 집에 들어섰다.
조그만 흡혈귀가 둘을 반겨주었다.
가온을 본 봐라니가 눈을 크게 떴다.
“어, 잘생긴 오빠!”
“그래, 요즘 어때? 잘 지내?”
“너무 좋아! 요으가 엄마보다 더 착해!”
요으가 웃었는데, 정말이지 기분 좋게 웃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우울했던 분위기가 밝아지기는 순식간이었다. 집 곳곳에 널린 흡혈팩을 보며, 가온 또한 자신이 구해낸 이 조그만 흡혈귀가 잘 지낸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꼈다.
앞으로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봐라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법사가 될 거예요! 대마법사!”
대마법사란 말에 가온은 표정관리하려 애쓰며 정정해주었다.
“요즘엔 대마법사라 안 한단다. 그 직함 달고 있던 양반이 사고쳐서 안 좋은 고유명사가 돼버렸거든. 고위 마법사라 하렴.”
“그럼 고위 마법사 될래!”
“지금 마법 배우곤 있고?”
“아니, 선생님이 없어서······ 사실 마법 쓸 줄 아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가온은 설령 상대가 조그만 여자애일지라도, 그 앞에서 자기 능력을 자랑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으스대듯 손에 불을 피워보였다. 눈부실 만치 찬란한 여신의 성화(聖火)
여신께서 한숨쉬시는 가운데, 봐라니는 눈을 크게 떴다.
“마법 쓸 줄 알아요?”
“어.”
“오빠, 요으 친구죠?”
“그런데 왜?”
봐라니는 잠시 망설이더니,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그럼 오빠가 와서 가르쳐줘요! 돈 아끼고 좋잖아?”
요으는 당황했다.
자신이 대신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했다. 보통 사람에게 무료로 강의해달라 하는 것도 무리한 부탁이건만, 소드마스터씩이나 돼서 조그만 어린애 가르치자고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요으의 예상과 달리, 가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
봐라니가 좋아하는 가운데, 요으는 놀랐다.
결국 그날, 가온은 몇 권의 책을 텔레포트하여 가져와서는 봐라니를 기쁘게 했으며, 몇 가지 주문 시범을 보이기까지 했다.
즐거운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봐라니가 잠든 가운데, 가온이 물었다.
“브라더들한테 돈 절반 줬댔지?”
“예, 죄송스럽게도으······”
“더 줄게. 봐라니 마법 배우고 싶다니까, 맨드레이크도 사먹이고 그래. 전이랑 똑같은 계좌로 주면 되나?”
요으는 움츠러들어서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지금도 맨드레이크 살 돈은 충분한데. 이미 너무 많이 주셨잖아요으? 사실 삥 뜯긴 것도 아니라, 반은 제가 준 거예요으. 여기서 더 주실 필요는······”
예의상 거절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부담스러워 하는 듯했다. 그러나 가온은 기어이 스마트폰의 은행 앱에 들어갔다.
“괜찮아. 어차피 내 돈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나?”
“세금에서 나가는 거라 하셨죠으. 정부에서 소드마스터한테 보조금을 주나봐요으?”
“아니, 모기들이 빨아온 거야.”
요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후긴 국민들한테서요으?”
“그래. 아, 후긴 말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이민 갈 생각은 없나?”
그리 대화하는 중에 가온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니 지존무쌍의 전화였다. 가온은 전화를 받으려다 말았다.
‘소드마스터 가온이 그런 일을 벌인 뒤에 이 가온이 연락도 끊기고 며칠 접속을 안 하면······ 정체를 암시하는 복선처럼 느껴지겠지? 다시 게임 접속하면 은근한 존경의 시선이 돌아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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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무쌍은 소총 한 자루를 들고 한탄했다.
“가온 이 양반은 어디로 간 거야······ 전화도 안 받고······”
한탄하며 게임 속 전장을 바라보았다. 지금 지존무쌍은 다시 백골부대와 함께하고 있었는데, 웬 대규모의 적과 맞닥뜨렸다.
아스인, 아마 카르세인들로 이루어진.
처음 겪는 일이었다.
4판타지 온라인은 카르세 연방에서 출시한 게임이지만 정작 카르세인들은 많지 않았다. 계정비가 무료임에도, 가난한 카르세 사람들의 입장에는 기기 대여비를 내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까닭이다.
카르세인들은 어찌나 다들 가난한지, 이 게임이 돈이 된다는 게 알려진 데다 군사훈련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이 게임을 즐기도록 보조금을 지급함에도 당장 내야할 약간의 돈마저 부담스러워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카르세 연방에 가상현실 기기 무료 대여 이벤트가 열렸다고 했다.
그리하여 온통 한국인들만 들끓던 이 게임에 새로운 세력이 탄생하고 말았다.
오크, 엘프, 트롤 따위 온갖 종족들로 이루어진 아스의 군대가 저기 있었다.
수만 명쯤 되어보였는데, 만 명이 모이면 최대 규모 세력으로 인정받는 이 게임에서는 두드러질 정도의 대군이었다.
4판타지 온라인에서 최대 인구수를 자랑하는 한국 게이머들도 저들을 막기는 힘들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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