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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4판타지-65화 (65/135)

LV.11 오크 요으 - [1]

아스인들은 지구인들에게 열등감이 있다. 아스의 모든 국가는 지구의 개발도상국 수준으로 가난한 데다 2차 대전은 사실상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는 탓이다.

열등감 해소 방식은 으레 저열한 법이다.

지구에서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 아스인들은 그것을 자기네 기쁨으로 여긴다. 지구에서 벌어진 어느 일이 자기네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도 깔볼 만하다 싶으면 순식간에 아스인 모두의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도, 아스의 누군가가 지구인에게 승리한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수많은 아스인들의 축제거리가 된다.

심지어 아주 압도적으로 승리한 일이라면? 더 나아가 지구인들에게 크나큰 굴욕을 주는 방식으로 승리한 일이라면?

그것은 축제 이상의 무언가로, 마약처럼 사람들은 취하게 만드는 위대한 정신적 자위거리가 된다.

이번 재의 왕자가 벌인 일이 딱 그런 부류의 일이었다.

모든 아스의 TV가 이번 일을 마치 올림픽 우승마냥 방송하고 있었다.

「간악한 영국과 프랑스 마족들이 벌였던 강도질이 드디어 발각되었다!

음흉한 이리떼와 같은 마족들은 후긴 백성의 위대한 보호자 가온 전하의 엄중한 질타 앞에 벌벌 떨었다!」

후긴의 뉴스에서 채널을 돌리니 카르세의 뉴스가 나왔다.

카르세는 아예 이번 일로 감명을 받다 못해 위인으로 받들기로 한 모양이었다. 아예 재의 왕자란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를 방송하고 있었다.

「크나큰 시련을 이겨내고 원래 세계로 귀환하신 가온 경께서는 역도들을 상대로 (······) 지구 쓰레기들이 스스로를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낸 최악의 물건, 핵폭탄조차 그 옥체를 상하게 하지 못했으며 (······)」

화면이 버섯구름과 거기서 걸어나오는 그레이엘프를 비추었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장하고 웅장하게 만들어두었다.

카르세 방송계의 형편없는 기술력을 고려하면 굉장히 솜씨를 부린 셈이었지만 가온은 그걸 보며 감탄할 수 없었다.

‘내가 무슨 헐크인 것처럼 묘사해놨네. 그때 죽는 줄 알았는데.’

이후로도 방송은 재의 왕자가 얼마나 지구의 군대에 공포인지, 지구인들이 그걸 상대할 방법이 없어 얼마나 쩔쩔매는지, 뒤늦게 소드마스터를 비롯한 초인들을 육성하고자 애를 썼지만 얼마나 꼴사납게 실패하고 있는지를 내보였다.

왜 저런 방송을 내보내는지는 알 만했다.

전쟁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때 이쪽에 엄청난 영웅이 있노라 광고하는 것은 훌륭한 프로파간다가 될 터였다.

다른 채널들도 죄다 비슷했는데, 마치 가온이 3차 대전에 참전하는 것이 거의 확정인 것처럼 방송하고 있었다.

가온은 보다 말고 TV를 껐다. 그러고는 참회의 기도를 올렸다.

‘결국 평화를 깨뜨리는 데 일조했군요. 화로의 대전사가 말입니다. 여신께서 저를 어찌 비난하신들 달게 듣겠습니다.’

가온의 말에 여신께서는 우울하게 답하시었다.

‘아니, 탓하지 않겠다. 내 대전사에겐 그럴 권리가 있었으니. 물론 이번 내 대전사가 벌인 일이 네 여신을 기쁘게 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예. 그러니 네이버 검색순위 스크린샷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괜찮으니, 주리라. 이미 신도를 시켜 대전사가 바라는 것을 얻었나니.’

‘정말 괜찮은데······’

‘네 여신은 탓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비록 내 대전사가 대가로 주기로 한 기쁨을 주지는 못했으나, 모름지기 신은 신도보다 관대해야 하는 법이라.’

‘아니. 그게 아니라. 이젠 한국에서 관심 받아봤자 부정적인 관심일 거 같아서요. 한국 입장엔 제가 적국의 동맹으로 가담하겠노라 선언한 셈 아닙니까? 그러니 지금 한국 인터넷 기사 보면 욕만 잔뜩일 거 같아서 보기 싫어가지고······.’

여신께서는 잠시 침묵하시다가 여쭈시었다.

‘그 기사에서 네 여신이 칭찬만 따로 읽어주랴?’

가온은 조금 고민하고는 대답했다.

‘예.’

*******

‘가온 그 적폐 새끼, 이번만은 칭찬해주지.’

이미리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국회의원을 바라보았다. 값비싼 시계를 찬 국회의원은 여기 수행원과 기자들을 이끌고 와있었다.

소드 엑스퍼트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는 이 체육관에.

이례적인 일이었다.

비대칭전력을 얻겠다며 한국 정부가 추진한, 이미리가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반쯤 방치되어 있었다. 일반인들은 이 프로젝트의 존재조차 알지 못할 정도였다.

이미리가 보기에, 일을 추진한 한국 정부에서도 이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두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아니면 크게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거나.

지금은 아니었다. 모든 면에서 대우가 개선되었다.

100만 원도 안 되는 소드 엑스퍼트들의 월급은 이제 두 배로 뛰었다. 형편없던 검술 프로그램은 전문가들을 초빙해 싹 갈아엎었으며 체육관은 아예 국가대표 선수들이 쓰는 곳으로 새로 마련되었다.

게다가 이제 한국 국민 모두가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될 터였다.

“역시 이번 프로젝트는 가온······ 경을 상대하기 위한 것입니까? 이번 일로 새삼 초인이 벌일 수 있는 일에 충격을 받아서······”

기자의 말에 국회의원이 대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이 프로젝트는 예전부터 진행된 거예요. 가온 경은  한국의 친구고요······”

진심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가온 경께서 한국의 적이 되신다면?”

기자는 대충 동의를 받은 셈치고 이어서 질문했는데, 국회의원은 바라는 대답을 내주었다.

“뭐 그런 경우엔 한국에 소드마스터가 있어야 하겠지요······. 가온 경께서 1초도 안 되는 순간마다 텔레포트하시는데다 현대무기 대부분을 무력화하시는데요. 그런 말도 안 되는 분을 확실히 잡을 방법은 역시 이쪽에도 소드마스터가 있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이쪽 소드마스터가 텔레포트 방지 유물을 장비하고 가온 경과 맞붙어주기만 해도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달라붙어 버티면서 텔레포트만 못 하게 막아줘도 그분을 상대하는 데 군에서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가온은 적이 아니란 말은 짧게 하더니, 적이 된 경우의 일은 참 길게도 설명했다.

역시 이번에 그 엘프가 벌인 일로 프로젝트에 관심이 쏠린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이미리가  새삼  그 ‘적폐’에게 감사하는 가운데, 국회의원은 우렁차게도 기자들에게 말했다.

“자, 이분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검객들입니다. 소드 엑스퍼트들! 한국의 희망이죠!”

기자들의 카메라가 이미리와 다른 소드 엑스퍼트들을 향했다.

이미리는 다른 소드 엑스퍼트들을 흘긋 보았는데, 다들 민망한 눈치였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다. 다들 여기 와서 시간이나 대충 떼웠던 것이다.

“혹시 실력을 보여주실 수?”

기자의 말에 국회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참에 간단한 대회나 하나 열어보죠. 다들 검술 대결해봐요. 괜찮죠?”

다른 소드 엑스퍼트들은 괜찮지 않아보였지만, 이미리는 괜찮았다.

곧 검술 대련이 시작되었다. 간단한 무작위 일대일 대결이었는데, 이미리는 맨 처음 붙은 다른 소드 엑스퍼트를 상대로 이겼다.

“아······ 졌어요.”

아미리에게 패배한 소드 엑스퍼트는 쉽게도 패배를 인정했다.

별로 분한 표정도 아니었다. 애초에 별로 진지한 놈이 아니었다.

이미리는 그 사실에 열받았지만 다음 상대들을 차례차례 이겨나갔다. 그러면서 카메라의 주목을 받았고, 짜릿한 우월감을 느꼈다.

‘그래, 나는 이런 쾌감을 느낄 자격이 있어.’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노력했던가?

하루에 쉬는 시간은 세 시간밖에 없었다. 나머지 시간은 전부 검과 함께 보냈다. 정말이지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심지어 퇴근 후에도 연습하기 위해 가상현실 게임까지 했고, 그 비싼 계정비를 내느라 매일 라면에 무말랭이만 먹어야 했다.

이미리는 생각했다.

나는 승리할 권리가 있다고. 전국민의 주목을 받을 만하다고.

“드디어 결승!”

연승한 끝에 다른 상대와 붙게 되었다.

상대방의 얼굴을 본 이미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놈······’

매일 와서 설렁설렁하는 놈. 다른 놈들처럼 아예 와서 잡담만 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시간에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면서 한두 시간 정도 연습하는 놈.

자긴 일단 연습을 하긴 한단 식으로 다른 수련생들보다 낫다며 자위하고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이미리가 보기엔 더 역겨운 놈이었다.

다른 놈들보다 더 굴욕적으로 패배시킬 것이다. 그리 결심한 가운데, 대결이 시작되었으며······

“승자, 박성후!”

심판의 선언을 이미리는 잠시 믿지 못했다.

‘내가 졌어? 왜?’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거듭 곱씹어보았다. 물론 일어난 일은 하나였다.

이미리가 졌다.

‘이건 말도 안······’

6살부터 검을 잡았다. 고교 졸업 이후로 몇 년 간 검을 손에서 놓긴 했지만 인생의 대부분이 검과 함께였다.

‘이게 다 공무원 시험공부 때문이야. 9급 되겠답시고 4년이나 낭비를 해서······’

이미리가 열심히 머릿속으로 변명하는 가운데, 그 충격이 얼마나 큰지 사람들은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국회의원은 승자에게 관심을 주었다.

“오, 이 아가씨도 강했는데 총각은 훨씬 강하구나. 엄청 훈련 열심히 하셨나 봅니다?”

노력에 대한 칭찬, 승자 박성후는 쑥스러워 했다.

“아······ 사실 이 아가씨가 더 열심히 해요.”

그 말에 국회의원은 즐거워했다.

솔직한 대답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럼 더 좋군요.”

“예?”

“왜, 인간 소드마스터들은 다 천재 중의 천재였다 하지 않습니까? 엘프들은 오랜 세월의 힘으로 한 이백 년쯤 걸려 경지에 오를 수 있지만, 인간은 그런 게 안 되니까 처음부터 압도적인 재능을 지녔어야 한단 거죠. 그러니까 이 업계에서는 무엇보다 재능이 중요하다 이 말입니다.”

“아, 예······”

“물론 그런 재능을 지닌 사람들 중에서도 소드마스터는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역대 소드마스터는 불과 스무 명이지만, 크게 이름을 떨친 검객들의 수는 수없이 많았음을 기억하세요. 그 모두가 필사적으로 노력했음에도 소드마스터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더욱 노력하셔야 합니다. 훈련을 실전처럼······.”

국회의원이 연설을 시작한 가운데, 이미리는 울 것 같았다.

‘씨발······’

*******

기어이 여신께서는 한 인터넷 기사를 골라 거기 적힌 가온의 칭찬을 읽어주셨지만, 가온은 행복해지지 않았다.

여신께서 읽어주신 칭찬이 충분히 많지 않았던 탓이다.

‘역시 욕이 많은 거 같은데······’

당연한 일이었다. 중립이라 하던 이 소드마스터가, 난데없이 지구의 두 국가를 상대로 선전포고 비슷한 것을 해버린 것이다. 한국에 전쟁을 건 것이 아니라지만 한국에 도움될 일은 결코 아니었다. 한국의 적에 이로운 일을 하리란 점에서 잠재적 적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알고 지내는 한국인들에게는 미안한 일을 저지른 셈이다.

그런 이유에서 지금 가온은 게임에 로그인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하고와 싸우러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로그인하는 상황 자체가 꺼려진 탓이었다. 그 과정에서 알고 지내는 한국인들을 마주할 테고, 지금 가온은 그들을 배신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인 아닌 다른 지인과 만나고 싶어졌다.

스마트폰에서 몇 안 되는 연락처 하나에 전화를 걸었다.

“요으? 형인데.”

오크, 요으는 익숙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

「가온 경? 안녕하세요으!」

“요즘 잘 지내니?”

「예, 덕분에」

“형이 뭐 도와줄 건 없고?”

「도움이요으? 아뇨으, 저번에 크게 도와주셨는데 더 바랄 수는······」

요으가 부정했지만, 지금 가온은 억지로라도 만나고 싶은 기분이었다.

“음, 그래도 도움 주면 좋을 것 같은데, 한번 만날까?”

그 말에 요으는 조금 주저하더니, 가온이 바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예, 그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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