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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4판타지-63화 (63/135)

프랑스인 로랑 - [2]

1957년, 소드마스터 가온이 돌아왔을 때. 프랑스가 느낀 공포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당시 후긴 공화국의 수뇌부는 자신들한테 혁명하는 법을 전수해준 프랑스에 이렇게 문의했을 것이다.

‘선배님들, 우리가 죄다 죽여버린 왕족의 일원 하나가 돌아왔는데 현대적으로 무장한 데다 잘 훈련되기까지 한 우리 강군을 궤멸시켜버렸습니다. 이 경우엔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 질문에 프랑스는 침묵했을 것이다. 그들 또한 알지 못했으므로.

당시 프랑스는 자신들은 혁명 반군에 무기를 지원했을 뿐 정확히 어찌 하라 지시한 적은 없으며, 그레이엘프 왕족들이 죽은 것은 자기네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변명했을 뿐이다.

그때 그랬듯, 지금 프랑스인들은 겁에 질려있었다.

프랑스인들의 공포를 보며 대리만족하는 아스인들이 많았다.

그들이 저열하다 폄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천상의 신조차도 지금 이 광경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판 아닌가.

「저게 바로 지구에 어울리는 신이다! 지구 쓰레기들에게 주제를 알려줄 공포의 신!」

칼과 전쟁의 신이 외치자, 불과 화로의 여신께서는 탐탁찮아 하시었다.

「전쟁은 체통을 지키라」

「미안하지만 그럴 수가 없소. 내 이런 광경을 보기 위해 살아왔으니! 그거 아시오, 화로여? 종전 후에도 지구의 쓰레기들은 거들먹거렸소! 종전협상을 먼저 제안한 주제에, 막상 전쟁이 끝나니 자기네가 평화를 적선해준 것이라 주장했지! 피해를 더 감수했다면 아예 끝장낼 수 있었다고!」

「화로의 여신은 모르는 일이다. 그때 여기 없었으니」

「그러니 대신 알려주리다. 지구 쓰레기들이 그딴 망발을 그만둔 것이 언제인 줄 아시오? 화로 그대가 대전사를 데리고 돌아왔을 때라오! 그대의 불길이 후긴의 배신자들을 태운 그때, 기독교 왕국은 기어이 겸손을 배웠지!」

「그런데도 만족하지 못했나?」

「당연히 만족하지 못했지! 난 저들이 겸손을 넘어 굴종을 배우길 원하오. 그대 대전사는 지구의 쓰레기들에게 누구보다 좋은 선생이니, 그 또한 가르쳐주리라 기대하고 있소」

「허튼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전쟁?」

「그대야말로 이만 저 위대한 걸작을 놓아주시오! 그대 대전사는 기어이 봄마저 화로 앞에서 보냈지만, 여름이 다가오고 있소! 계속 화로 앞에 있다간 몸이 익어버려. 싫어도 온기에서 벗어나게 될 거요!」

화로의 여신께서 느끼시기에 즐거운 대화가 당연히 아니었다.

여신께서 눈살을 찌푸리신 와중에, 신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신이시여. 중대한 질문들 드리고자 합니다.’

대전사의 기도에 여신께서 응답하시었다.

‘말해보라, 가온.’

‘저 지금 네이버 검색순위 1위 찍었습니까?’

여신께서는 잠시 옥음을 잇지 못하시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야 터뜨리듯이 대전사에게 하문하시었다.

‘가온아, 제발! 이 상황에도 그런 질문을 해야겠느냐? 정녕?’

‘아니, 그래도 궁금한데······’

‘방금까지만 해도 내 대전사는 분노로 가득차있지 않았더냐?’

‘시간이 좀 지나니 차분해지더군요. 역시 얘네는 범인이 아니지 싶습니다. 잘못을 숨기는 어린애도 아니고, 정말 저희 갑옷이 있었다면 진작 반환했을 테니까요.’

‘그리 여긴다면 별 일 없이 돌아올 작정이냐?’

‘예. 겁만 좀 주고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오래 묵은 가학심을 좀 해소할까 하는데, 그 정도는 괜찮겠지요? 어쨌건 당장 이 쓰레기들한테 선전포고할 생각은 없습니다.’

‘평화가 당분간은 계속되리란 말이냐?’

‘예. 그리하여 여신께서 기쁨을 드릴 수 있었다면······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말해보라.’

‘지금 네이버 첫페이지에서 검색어 순위 찍히게 스크린샷 좀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여신께선 찍으실 줄 모르실 테니까, 신도 중 하나에게 그러라고 명령해주시면 좋겠는데요.’

여신께서 불타오르는 분노를 느끼시는 가운데, 정확히 그 분노를 궁전의 프랑스인들 또한 느끼고 있었다.

옛 원수들의 한 가운데에서, 재의 왕자는 홀로 멀거니 서있었다. 아무 말 없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칼도 뽑아들지 않은 채, 침묵만으로 모두에게 공포를 안겨주고 있었다.

겁에 질린 프랑스인들은 망령처럼 서있는 엘프를 보았다. 그 얼굴에는 생기가 없었다. 모든 감정이 전소해버린 것처럼.

‘재······’

잿더미에서 날아오른 불사조. 그 불사조는 후긴 민주주의의 꿈과 2차 대전 이후에도 남아있던 프랑스 제국의 꿈을 동시에 앗아가버렸다. 이 소드마스터의 존재가 드러난 이유로, 영국과 프랑스는 그 자국에 원전을 짓는 일 따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 이유에서 지금도 프랑스 수뇌부들의 태도 또한 ‘철저한 저자세’였다. 복종을 보이는 가운데 분노가 지나가기를, 미천한 하인처럼 바랐다.

겨우 연회가 마련되었지만 아무도 수저를 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목에 뭔가 넘길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 와중에 재의 왕자가 입을 열었다.

“음식에 독을 탔나보군. 아무도 먹지 않는 걸 보니.”

그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린 순간, 많이 먹기 대회가 열렷다.

걸신들린 것처럼 음식을 먹어치우는 참석자들을 재의 왕자는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결국 대화는 많이 먹기 대회가 끝난 뒤에야 열렸다.

속이 거북한 가운데, 로랑 의장은 열심히 해명에 나섰다.

“프랑스가 혁명을 지원했으니 도난품 또한 챙겼으리란 세간의 인식은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 유력한 도난범은 영국입니다.”

당시 대영제국 소속 선박이 혁명이 일어나는 동안 후긴의 수도 항구에 잔류해있었으며, 혁명이 끝나고서야 출항했다고. 어쩌면 그 선박에  갑옷 한 벌이 실려있었을지 모른다는 점을 로랑 의장은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니 유감스럽지만, 저희는 이 점에 대해 알지 못하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보단 미국이 더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할 말은 그게 다인가? 알지 못한다고.”

“예? 예.”

“그 모든 원인을 제공했으면서.”

“깊이 사죄드리······”

“이후의 일은 책임질 수 없다고.”

재의 왕자가 주변의 사람들을 훑었고, 그 시선의 의미를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했다. 다름아닌 원수들을 바라보는 시선인 것이다.

상상력이 공포를 키우는 가운데, 침묵이 흘렀다.

언제 끝나리란 기약 없이 계속, 계속.

한 의원은 이 끔찍한 침묵을 견디지 못했다.

용기를 내어 입을 열어 뭔가 말을 꺼냈다.

의원으로서는 이런 말을 꺼내고 싶었다. 그 갑옷을 우리가 훔치진 않았지만 확실히 책임이 있으니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혹시 찾아서 돌려주는 데 성공한다면 그땐 아국을 조금이나마 용서해줄 수 있느냐 묻고 싶어했다.

그러나 공포 속에서 언어능력은 심히 저하되었다. 그런 이유에서 의원이 한 말실수는 다음과 같았다.

“갑옷을 주면 프랑스에 다신 안 올 겁니까?”

이 순간, 그 말을 들은 모두가 두 눈을 부릅떴다.

몇 명은 벌벌 떨며 재의 왕자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방금 전과 비교할 수 없는, 그야말로 머리가 하얗게 되는 무언가를 느꼈다.

완전히 타버린 재와 같았던 왕자의 낯에 열기가 돌아왔다. 아주 약간이지만 선명하게.

“줄 갑옷이 있었나?”

재 속에서 타오른 불씨의 이름은 분노였다.

집착이기도 했다.

가온이 물었다.

“어디에?”

감히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모두가 떨기만 하는 가운데, 로랑 의장이 외쳤다.

“저흰 알지 못합니다!”

물론 가온은 그 대답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 알지?”

“그것도 잘······”

“왕쯤 되면 알겠지. 너희 왕을 만나야겠다. 당장 불러와.”

진작 피난보낸 대통령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

“대통령께서는 지금 여기 오실 상황이······”

“그렇다면 내가 가지.”

그 말에 로랑 의장은 다시 한 번 몸을 떨었다. 최고통수권자를 엘프 형상의 전략병기와 만나게 할 수는 없다. 그 전략병기가 잔뜩 분노한 상황이라면 더욱.

“너희 왕, 어디 있나?”

가온의 말에 로랑 의장은 침묵했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말해.”

가온이 독촉했지만, 로랑 의장은 아직 뾰족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너희 왕이 올 때까지 남아있길 바라나?”

이후로도 침묵이 흐른 끝에, 가온이 칼을 뽑을까 고민하던 그때, 비로소 로랑 의장은 자신이 할 말을 정했다.

로랑 의장이 외쳤다.

“아니, 꺼져라!”

모두가 그 말에 기겁하여 숨을 들이켰다.

한편 가온은 무덤덤하게 물었다.

“싫다면.”

“그렇다면 어느 쪽이 원하는 바를 따라야할지 정해야겠지! 너희 아스엔 이럴 때 쓰는 관습이 있지 않나?”

헤묵은 아스의 전통이 지구에서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로랑 의장은 냅킨을 냅다 던졌다.

냅킨이 조금밖에 날아가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지는 가운데, 로랑의 장이 말을 이었다.

“결투다. 펜싱 대학대회 준우승자의 실력을 보여주지.”

결투? 소드마스터랑? 칼로?

모두 의장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결투를 신청받은 가온은 그 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한번 보지.”

결투를 받아들이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가온이 오른손으로 칼을 뽑았다.

칼이 얼굴의 반을 가렸다. 그 얼굴에서 재가 흩날렸다.

1957년 이후, 모든 프랑스인들은 재를 두려워한다.

그것을 살육 시작의 신호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비명지르며 뛰쳐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둘뿐이었다. 눈앞의 소드마스터를 향해, 로랑 의장은 맞서싸울 듯 자세를 잡고 있더니······

뒤돌아서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가온은 빠르게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와중에 계속 달리면서 로랑은 마구 중얼거렸다.

“아쿨라스 아누라스 아도니파 나카카 오수스······”

마법이었다. 헤이스트 주문.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외운 결과, 보람이 있었다.

가속된 다리가 로랑을 빨리도 멀어지게 했다.

이 와중에 재의 왕자는? 달려서 쫓아오나?

아니었다. 가온은 뒤늦게나마 뒤따르기 시작했지만, 뛰어서 오지는 않았다. 옛 그레이엘프 왕족들이 그렇듯,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마법까지 동원하여 도망치려는 로랑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가온은 그저 걸었다. 산책이라도 하듯 여유롭게.

로랑이 지하로 내려갔다. 잘 움직여지지 않는 손을 애써 움직여 철문을 잠갔다.

그러고는 계속 뛰다가 불안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아······’

벽에 재가 파고들더니, 시원스럽게도 통로를 만들었다. 순식간에 뚫린 통로로 가온은 계속 걸어왔다.

저런 침입자를 대비해 엘리제 궁전의 지하는 복잡하게 건설되어 있었다. 마치 미로처럼. 그리 만들어둔 보람이 있었다.

로랑은 계속 달려 복도를 맴돌며 뛰었다. 반면 가온은 그리 바삐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도망자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듣다가, 나중에야 일직선으로 걸어와 거리를 좁힐 뿐이다. 일직선으로, 간결한 지름길을 만들어서.

그렇기에 저쪽은 걸어오는데도 불구하고 거리는 도저히 멀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궁전의 지하는 무한한 공간이 아니다. 저쪽이 설령 굼벵이와 같은 속도로 기어오더라도 언젠가는 따라잡힐 것이다. 그것을 알지만 롤랑은 계속 뛰고 뛰었다.

뿌리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다.

‘이러다 지쳐 죽겠다. 그 전에······’

로랑은 저 하늘 너머, 말 그대로 하늘 너머에 있는 자들에게 애원했다.

‘지팡이······ 빨리 좀 떨어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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