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61화 (61/135)

LV.17 길드장 강주석 - [3]

강주석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고작 성욕 좀 못 참은 걸 가지고 길드장을 내쫓는 게 말이 되나······”

그 말에 오상덕이 쏘아붙였다.

“내로남불 이전에 이미 넌 인기가 없었어, 새끼야! 이미 단물 다 빠진 항일 전선 고집하느라 수익은 줄기만 하고. 스폰서도 안 붙고. 길드장이란 놈이 길드원들 이익을 생각 안 하는 게 말이나 되나? 이제 우리 길드 최대 수익이 뭔지나 아니?”

“길드원들이 내는 회비······”

“그래, 우리 길드원 중 구천 명은 그냥 길드 회비나 내면서 자기 할 일 하는 사람들이지. 사실상 우리 고객님들이라고! 그 사람들이 진짜 자기 부하인 줄 아는 것마냥 이래라저래라 통제나 하려들어? 주는 거 없이? 미친 거지 아주!”

강주석은 반박하려다 눈을 크게 떴다.

“너희······”

강주석의 시선이 부길드장의 옆에 선 간부들에게 멈추었다. 부길드장이 습격할 때 함께 죽었던 고위간부들.

자신과 함께 숙청된 줄 알았더니, 죽었다 부활해서는 다들 부길드장 편에 선 모양이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 강주석을 지지하는 길드원은 없었다. 단 한 명도.

“애초에 진짜 자기 부하들한테도 그따위로 통제하는 건 말이 안 돼. 한국인들이 지닌 골드를 보존해야 해? 아니, 왜? 길드원들이 자기 돈 어찌 쓰든 그걸 왜 간섭해?”

훈계가 계속되는 가운데, 강주석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필요한······”

“필요한 뭐?”

“필요한 일이었어.”

“뭐가. 남들 못 놀러가게 해놓고 지만 놀러가는 거?”

사람들이 웃는 가운데, 강주석은 죄인처럼 변명했다.

“그건 잘못한 일이지만······ 골드 막 쓰지 못하게 통제하는 건 필요한 일이었다고.”

“그러니까 왜, 새끼야!”

“전쟁이 일어날 거니까. 우리가 막아야 해.”

“전쟁? 그건 또 뭔······ 아 씨, 알겠다. 너 또 그 지랄 하려는 거지? 흉턴을 늙어죽게 만들어야 한다고?”

“그래, 곧 출현할 흉턴의 군대를 한국인들이 막아야 해.”

강주석의 말에 오상덕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화내려다 말았다.

이내 한숨을 쉬었다.

“너 그 지랄하다가 류시범이랑 평화협상 파탄낼 뻔했던 거 기억 안 나냐? 여기 이 분들 아니었으면 진짜 우리 길드 재정파탄으로 망할 뻔했는데. 생각해보니 류시범이한테 시비 걸어서 전쟁이나 일으킨 것도 너였네? 씹새. 진짜 도움 안 되는······ 아무튼 제발 게임에서 적 수장 죽이자는 미친 소리 좀 그만해라, 응?”

“미친 소리가 아냐. 필요한 일이야.”

“그만!”

“오상덕이, 너야말로 그만 비웃어라. 진짜 필요한 일이란 말이야. 넌 그럴 생각없지? 그러니 내가 구심점이 돼야 해. 한국인 게이머들을 뭉치게 해서 흉턴을 막아야······ 그래야 한국이 안전해지는······”

“그만하라고, 그놈의 애국팔이 좀! 질린다 이제!”

“다시 말하지만, 참마황이 보상을 받아 늙어죽을 염려가 사라지자마자 바로 전쟁이 일어날 거다. 그 즉시 한국이 초토화될 거라고. 반드시 막아야 한단 말이야······”

“참마황이 보상 받자마자 전쟁이 일어나? 그건 또 어디서 주워듣고 떠올린 거냐?”

“내가 떠올린 게 아냐. 정부에서 비밀리에 부탁받은 거야. 한국 최대 길드의 수장으로서 한국인들을 단결시켜 달라고.”

“씨발 진짜. 자꾸 손발 오글거리게 하네. 미친 새끼야. 정부가 게임에서 막 지령도 내리고 그래? 왜, 그런 지시 받았음 인터넷에 인증하고 사람 모으지 그랬냐?”

“안 돼.”

“왜?”

“비밀리에 지시받은 거라 했잖아. 정부 차원에서 흉턴 막으라 지시한 게 드러나면 카르세를 자극할 거란 말이야. 원랜 너희들한테 말하는 것도 안 되는 건데······”

“그럼 그냥 말하지 말지, 왜 나불거려?”

오상덕의 핀잔에 강주석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노려보는 길드원들을 향해 말했다.

“이러면 안 된다, 너희들.”

“뭐가.”

“내가 너희한테 이득을 못 준 건 사과한다. 하지만 지금 이득이 중요한 게 아냐. 나라의 미래가 걸렸어. 다들 자기 이득만 챙기다간 나라 망하고 다 죽는 거야. 개돼지가 아니면 뭐가 중요한 줄 알아야지.”

“은근슬쩍 널 쫓아내는 게 나라의 미래를 신경 쓰지 않는 비애국적인 일이 되는구나?”

“내 설명 못 들었냐? 내가 국가의 지시를 받았고, 구심점이 되어야······”

강주석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지만, 그 누구도 그 말을 듣고서 한국의 미래를 위해 강주석을 계속 길드장에 앉혀놓아야 한다 생각하지 않았다.

강주석의 말은 그저 길드원들을 더욱 화나게 했을 뿐이었다. 그 대표로서 오상덕이 입을 열었다.

“이 새끼 진짜 반성이 없네. 도저히 못 참아주겠다. 여러분? 마침 우리 길드에서 주요회원 천 명만 여기 모였으니, 즉결 투표합시다. 이 새끼 척살에 동의하는 사람?”

그 말에 길드원들이 하나둘씩 손을 들었는데, 어느새 하늘을 향한 손은 천 개가 되었다. 그것을 본 강주석의 낯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한편 상황을 지켜보던 가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척살?”

오상덕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 뭐. 게임에서 뭐 하는 거 보이면 바로 죽인다든가, 이 새끼가 속한 길드에 압박 준다든가 뭐 그런······”

“그러지 마라.”

“길드 내부 일인데······”

가온은 화내려다 말았다. 이게 고작 게임이며, 자신이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임을 자각했다.

애써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전에 도와준 걸로 강주석이가 부탁 뭐든 하나 들어주기로 했거든. 그거 길드장으로서 한 약속이니까 이제 새로운 길드장인 네가 들어줘야 하는 거 같은데, 맞나?”

“그렇지요. 그런데 그게 지금 왜?”

“그 부탁 지금 쓰자.”

오상덕은 그 말뜻을 조금 뒤에야 이해했다.

“척살하지 않는 걸로 부탁의 권리를 쓰시겠단 겁니까?”

“그래. 강주석이, 곱게 보내줘라. 모르나? 전 통치자는 예우해줘야 하는 거다. 그게 법도라고.”

오상덕은 전 통치자를 예우해야 하는 법도 같은 건 알지 못했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리 은혜를 입어놓고 이런 쉬운 부탁 하나 못 들어드릴 순 없지요. 알겠습니다. 곱게 보내주지요.”

결국 그리 결정되었다. 강주석은 이 시간부로 백두 길드의 수장이 아니었으며, 자신이 직접 길드장 자리를 오상덕에게 인계함으로써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잠시 후, 백두 길드원들은 떠나갔다.

이 자리에 남겨진 강주석은 울기 일보직전이었다. 겨우 울음을 참고는 가온을 바라보았다.

“또 도와주셔서 감사하지만, 지금은 예를 표할 정신이······”

“괜찮으니까 로그아웃해서 쉬어라, 응?”

가온의 말에 강주석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가온 옆에 선 두 남자를 보고는 말했다.

“아, 도와주셨으니 사례금 드려야지요······ 제 지갑이 길드 본진에 있어서 못 찾아올 거 같네요. 그래서 골드로는 못 드릴 거 같은데. 계좌 번호 말씀해주시면······”

그 말에 대답한 것은 지존무쌍이었다.

“난 사례금 됐어요.”

그 말에 놀란 이복동은 지존무쌍의 얼굴을 보았다.

거기 드러난 비장한 표정, 그 표정이 이복동의 마음마저 굳힌 모양이었다.

이복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워낙 정신상태가 좋지 않아서일까? 강주석은 호의에 감사를 표할 정신도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로그아웃했다.

셋만 남겨진 가운데, 가온이 의문스레 물었다.

“사례금을 왜 거절해? 그걸 원해서 도와주자 한 거 아냐?”

지존무쌍은 우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긴 한데, 이젠 못 받지.”

“왜?”

“불쌍하잖아. 길드장 자리에서 내쫓기고, 저 인간 이제 아무것도 없는 거 아냐? 내가 자존심이 있지, 불쌍한 사람 돈은 안 뺏어.”

그리 말하면서 스스로가 자랑스러운지 지존무쌍은 애써 태연하게 웃으려 했다.

그리고 이복동이 끼어들었다.

“그 아저씨, 불쌍하게 됐을진 몰라도 돈은 많을 건데요?”

“뭐? 왜? 지갑도 길드에 있어서 뺏겼다는데. 백두 길드 거지로도 유명했고.”

“그래도 국내 최대 규모 길드고 그 수장인데 돈이 없을 수가 없죠.강주석 그 아저씨, 언젠가 인터넷에 수익자랑 올렸던 거 같은데? 그땐 대강 십 억쯤 됐던 거 같네요. 그게 일 년 전이니까 지금은 통장에만 수십 억일 거 같고.”

지존무쌍이 그 말에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더니 혼이 나간 표정으로 가온에게 물었다.

“지금 가서 달라고 할까?”

가온은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찼다.

“그러든가.”

*******

그로부터 며칠 뒤, 기어이 지존무쌍은 강주석에게서 사례금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가온에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가온은 그보다 강주석의 처지에 관심이 있었다.

길드장 자리에서 쫓겨난 이후로도 강주석은 4판타지 온라인에서 은퇴하지 않았다.

툭하면 접속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인 도시에서 연설했는데,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한국인들은 단결해야 합니다! 한국 게이머들이 모여 참마황을 막아내야 합니다! 참마황을 늙어죽게 해아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은 폐허가 됩니다!

한국의 미래를 생각해주십시오!」

위의 내용을 연설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도 자주 올렸다. 지금 가온이 보는 글 또한 강주석이 올린 글이었다.

“내로남불 씹새, 애국팔이 하는 쓰레기······”

그 댓글창을 보고서 가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강주석이 올린 글에는 평소에도 욕설 댓글이 달리긴 했지만, 거대 길드장에게 욕하다가  프로게이머 생활에 지장이 올까봐 우려했는지 많지는 않았다.

지금은 아니었다. 모든 댓글이 욕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나마 점잖은 댓글조차 ‘게임소설 작작 보라’는 비웃음뿐이었다.

그렇듯 몰락은 순식간이다.

가온이 보기에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웹서핑을 하던 와중이었다. 문득 인터넷 기사 하나가 가온의 눈에 들어왔다. 그 제목이 가온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우울감을 저 멀리 날아가게 만들었다.

「프랑스, 수십 년 만에 후긴 국보 도난범으로 드러나?」

가온은 서둘러 TV를 켰다.

관련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우연은 아니었다. 모든 채널에서 관련 내용을 방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TV 속 화면이 웬 달리는 차량을 비추었다. 그 차량은 달리다가 폭발했다.

「14시 39분, 고속도로를 달리던 프랑스 공무차량이 IED에 파괴되어 그 자리에서 싣고 있던 짐들을 쏟아냅니다」

일단의 무리가 멈춘 차량의 짐칸을 뒤지는데,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그 물건을 높이 들어올린다.

가온이 아는, 모를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TV 속 여자가 말했다.

「후긴의 국보인 아다만티움 전신갑옷입니다」

회색에 가까운 칠흑의 갑옷. 그 사진을 본 TV 속 남자가 읊조렸다.

「아름답군요······」

「물론 아름답지요. 대장장이 신께서 손수 만드신 신물(神物)이니까요. 원래 소유주는 화로의 여신이셨으나, 만 년 전 그레이엘프들이 숲을 떠나 화로의 여신께 귀의했을 때, 여신께서 그들에게 하사하셨습니다. 후긴 엘 왕국이 혁명 반군에 전복된 시기에 유실되었지요」

「지금까지는 어디에 있는지 몰랐습니까?」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이 귀중한 유물을 도난한 세력으로는 혁명 반군을 지원한 프랑스가 유력시되었으나, 지난 수십 년간 프랑스 정부는 그 사실을 부정해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드러난 아다만티움 갑옷은 진품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익명의 세력이 프랑스에서 탈취한 그 갑옷을 카르세에 넘긴 바에 따르면, 이 아다만티움 갑옷은 레플리카라는데요. 약 육십 년 전에 만들어진 복제로 추정된다 합니다」

「복제품이었다면 프랑스를 도난범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까?」

「충분히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다만티움 전신갑옷은 후긴의 왕권신수(王權神授)를 증명하는 국보입니다. 그레이엘프들은 이 갑옷을 왕궁 제단에 두고는 제단에 그 어떤 외부인도 발 드이지 못하게 했지요. 심지어 왕궁에서 일하던 시종들조차 그 갑옷을 실물로 본 사람은 드뭅니다」

「누군가가 찍은 사진을 재현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 당시는 사진기가 영혼 흡수의 힘이 있다고 믿어졌던 시절입니다. 당연히, 그레이엘프들은 그 신성한 갑옷을 사진 찍는 걸 허가해줄 리가 없었습니다. 아다만티움 갑옷을 촬영한 그 어떤 사진도 없었단 말이지요」

「아니면 우연히 본 화가가 재현했다든가요」

「아뇨, 이 레플리카는 지나치게 완벽해서 직접 실물을 보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익명의 드래곤을 비롯한 몇몇 증인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주었습니다······ 그 사실은 후긴 혁명과 동시에 유실된 아다만티움 갑옷이 이후로 프랑스에 있었음을 추론케 하지요」

가온은 한동안 이 상황에 어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도움을 구하듯 겨우 기도를 올렸다.

“여신이시여, 이 경우엔······”

대전사의 부름에 응해, 여신께서 말씀하시었다.

‘침착하라, 가온. 경거망동해서는 아니 된다. 교단을 습격한 리치의 예를 잊었느냐? 알다시피 이와 같은 사건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특정 세력이 사건을 조작했을 이유가 너무나도 넘쳐.’

“만약 저게 사실로 밝혀졌을 경우에는요? 그러니까, 프랑스 놈들이 실제로 저희 갑옷을 숨겨놓고 안 주는 것이었던 경우는?”

여신께서 고민 끝에 답하시었다.

‘네 여신 또한 분노를 노래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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