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58화 (58/135)

LV.17 길드장 강주석 - [1]

결국 세틴 시장에 당선된 것은 드래곤이었다.

주화파와 주전파 모두가 그 사실에 분노했다. 심지어 천상의 신조차도 말이다.

‘내 대전사만이 집 밖에 나가는 법을 잊은 줄 알았더니, 다른 신도들 또한 마찬가지였구나! 다들 투표날에 화로나 지키고 있었다니! 믿을 수 있느냐, 가온? 투표하러 나가지 못했으매 용서를 비는 참회 기도가 지금 네 여신의 귓가를 가득 채우고 있노라!’

여신께서 불타오르는 분노를 표출하시는 가운데, 정작 그분의 대전사는 투표 결과에 썩 관심이 없었다. 그때 우연히 만난 옛 인연들이 머리를 꽉 채운 마당이었다.

가온은 인터넷에 그림자 엘프를 쳐보았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검색 결과가 쏟아져나왔다.

‘그림자 엘프들. 2차 대전 이후 지구 열강이 놔주지 않은 식민지들의 해방에 뛰어들었으며, 쿠바 혁명에 적극 참여하여 남미에서 CIA를 뿌리뽑았고······ 카스트로를 향한 암살 시도를 막아내는 동시에 볼리비아에 잠입하여 체 게바라를 구출······’

그 유명한 혁명가와 찍은 우드엘프의 사진을 보았다. 아는 얼굴이었다.

그밖에도 수많은 역사적 흔적이 인터넷에 빼곡한 가운데, 가온은 한숨쉬었다.

‘거기에 이라크전이며 기타 분쟁까지······ 다들 참 열심히도 살았네. 소드마스터인 나보다도.’

가온은 저들이 뭘 하는지 알아보려 하지 않고 수십 년을 보냈다.

그들과 친하지 않았거나 그들이 뭘 하든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러 그들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던 것에 가깝다. 한심한 패배자의 꼬락서니를 한때 자신이 이끌었던 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쪽에서 먼저 연락하지도 않음으로써 완전히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들이 어찌 지내는지 알게 된, 심지어 자신에 비하면 너무나도 약한 그들이 동족을 위해 온갖 활약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 지금, 가온은 허송세월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부끄러움에 이어 느끼는 것은 분노다.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원수에 대한 분노. 자신을 세 번 패배시킨 유니콘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다 그놈 때문인 것 같다.

‘그때 유니콘한테 지지만 않았으면 진작 모든 걸 끝낸 건데. 영국이든 프랑스든 이미 싸그리 불태웠을 테고······ 유니콘이 그짓거리만 안 했으면 왕가를 재건했을 수도······’

망상과 후회 속에서 가온은 몸을 일으켰다. 새삼 자신의 목표를 상기했다.

원수인 유니콘을 죽여야한다.

결국 해야 할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가온은 게임에 접속했고, 사이버 매춘업소에 들어가 하이엘프를 불러냈으며 창을 깨고 날아온 하고에게 칼을 겨누었다.

“덤벼.”

그러고는 또 다시 한 시간 못미치게 싸우다가 게임오버 당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

“결국 이 도마뱀이 당선됐군. 42%에 달하는 지지율로.”

“그녀가 내세운 후보는?”

“36%······ 그런데 그녀? 감히? 여신님이라 경칭을 써서 부르시오.”

“원한다면야······ 그래, 아무튼 화로 여신님의 후보가 얻은 지지율이 그 파시스트 드워프들보다 많다는 건 그나마 낫군. 파시스트 난쟁이 놈은 32%라니까······ 셋 합쳐서 100%를 훨씬 넘는거 같은데?”

“아스식 민주주의는 원래 그러니 신경 쓸 거 없소. 아무튼 생각보다 여신님의 신자들이 영향력을 보였음은 고무적인 일이오. 생각보다 아스인들 중에 주화파가 많은 거 같은데. 어떻게 여신님께서 천상의 의석 50%는 못 넘는 건가? 그러기만 한다면 그분께선 천상의 의회에서 단독으로 전쟁을 저지하실 수 있을 텐데······ 표정이 왜 그렇소?”

“맘에 들지 않아서 그렇지. 아까부터 화로의 여신께 지나치게 의지하려 하잖소. 여신을 그녀라고 불렀다고 화내는 것도 그렇고, 솔직히 못마땅해.”

“왜?”

“평화를 원하는 신이건 뭐건, 결국엔 다른 세계의 여신 아닌가? 결국 두 세계가 사생결단을 내게 되면 누구 편을 들지는 뻔한 일인데······ 정말로 그 여신이 무조건적인 평화를 원했다면 그 말도 안 되게 강력하기로 소문난 대전사를 어떻게든 자신을 위해 움직였지 않을까?”

“억측은 집어치우고, 그래도 당장엔 그분의 교단이 유일하게 전쟁을 막을 희망인 걸 모르나?”

“그 교세가 아무리 커봤자 전쟁에선 소수파인데 어떻게?”

“드러난 것보다 그분의 권세가 클 수 있으니까! 전쟁채권 판매가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은 점, 기타 여러 정황사실과 이번 투표 결과를 보면 사실 아스인들 중에도 전쟁을 바라지 않은 이들이 바라는 이들보다 많을지 모른단 분석이 있어. 그리고 평화를 바라는 이들은 모두 잠재적 그분의 신도지!”

“그런데 왜 아직도 그분의 신도는 43%에 불과한가?”

“그분의 잠재적 신자들 중엔 침묵하는 다수가 너무 많은 탓이오. 뭐라나. 가정적인 신을 모시면 게이처럼 보인다나? 거기에 전쟁 분위기에서 평화의 여신을 모신다 하면 몇몇 또라이들은 매국노 취급한다고도 하고······”

“도움 안 되는 침묵하는 다수 따윈 됐고. 혼자서 다수를 능가하는 초인은? 화로 여신님의 대전사는 아직도 움직임이 없소? 그게 사실 훨씬 중요한 일인데.”

“파악된 건 없지. 사실 파악할 수도 없고. 그 방공호 위를 위성으로 이십사 시간 찍어봤자 소용이 없어. 킬로미터 단위를 매 초마다 옮겨다니는 슈퍼맨을 어찌 감시하겠나?”

“언제 들어도 참 어이가 없는 슈퍼맨인데······ 대영제국의 공덕은 참으로 놀랍군. 우리 편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를 슈퍼맨을 기어이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애매한 위치로 만들었어. 그놈들, 후긴에서 약탈해온 갑옷도 아직 반환 안 했지 아마?”

“어디 갔는지 모른단 핑계로······ 어쩌면 정말 잃어버렸을지도 모르겠는데.”

“미친 것들. 정말이지 모든 게 엉망진창이야. 하나님, 제발 이 어린 양들을······”

“여신이시여. 가엾은 이들을 구하소서.”

“아, 기도는 나중에 하고. 당장 뭐할지나 좀 정합시다. 일단 그놈의 매춘 추가된 게임이나 금지하고······”

한 달이 지난 뒤, 미국 어딘가에서 열린 이 회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당국 차원에서 게임을 금지한 보람이 없었다. 3차 전쟁의 위기 따위는 성욕을 압도하지 못했다.

언론은 이 조치를 제 2의 금주법이라 조롱했는데, 터무니없이 비싼 이용료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4판타지 온라인의 이용자는 오히려 늘어나버린 것이다. 그들이 게임에서 쓰는 돈은 네 배 가까이 늘었다고도 했다.

*******

업데이트 이후 한 달 뒤, 한국 내 4판타지 온라인의 프로게이머들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골드 수요가 대폭 늘어난 와중에 한국 길드끼리의 전쟁마저 끝나 다시 일거리가 늘어난 것이다. 그 사실은 프로게이머들이 더 많은 일을, 더 비싸게 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복동과 지존무쌍도 그 혜택을 입었다. 가온의 부탁을 받은 백골부대 길드장 류시범은 기꺼이 자신들의 전쟁에 두 프로게이머를 좋은 자리에 끼워주었다.

덕분에 이 한 달 간, 이복동과 지존무쌍은 편히 싸우고 돈을 벌면 되었다.

이 와중에 지존무쌍은 만족하지 않은 눈치였다. 지금 없는 엘프를 두고 투덜거렸다.

“가온 그 양반은 한 달째 저 지랄이네. 유니콘 잡겠다며 달려가서 죽고. 24시간 지나면 또 싸워서 또 죽고······ 괜히 도움 청했어. 게임에서 얼굴 한 번 보기도 어려워졌잖아? 애초에 어떻게 매일 소드마스터랑 싸우는 거래? 아다만티움 칼이 그리 넘쳐나지 않을 텐데. 역시 진짜 소드마스터 가온이라 검기 뿜어서 싸우는 거 아냐? ”

내버려두면 계속 욕만 할 기세라, 이복동은 제지에 나섰다.

“그래도 우리 가온 형 없이도 돈 잘 벌잖아요? 골드 시세도 엄청 늘었고······”

“골드 시세가 늘면 뭔 소용이야? 지출은 더 늘었는데.”

“장비도 별로 비싼 거 안 쓰시면서 지출은 왜 더 늘었어요?”

“물 빼는 값! 요샌 골드 시세가 너무 올라서 한 번에 11만 원이야, 미친!”

“하루 11만 원이면 비싸긴 하네요.”

“22만 원이야······.”

“업소 하루에 두 번이나 간다고요? 매일? 그럼 한 달에 육백 만? 미쳤어요?”

“그래, 내가 미쳤나보다. 이러다 월세 걱정하게 생겼어. 역시 가온 그 양반이랑 붙어다녀야 돼. 그럼 하루만에 한 달 수입 버는 건데······”

듣다 못한 이복동이 말을 꺼냈다.

“정 없으면 제가 돈 빌려줘요?”

“됐어. 너나 나나 없이 사는 처진데. 내가 누구한테 빈대를 붙니? ”

이번에 이복동은 새삼 감동하지 않았다. 그저 익숙함을 느꼈을 뿐이다.

‘저번에도 저 비슷한 말을 한 거 같은데.’

그리 생각하고는 이복동이 물었다.

‘가온 형한테 빈대 붙는 건 괜찮고요?“

나름 비꼬는 것이었지만, 지존무쌍은 쉽게도 대답했다.

“그건 괜찮지.”

“왜요?”

“그 양반은 돈이 많잖······ 아, 움직인다.”

이복동도 잡담을 관두고 일에 집중했다. 지금 막 목표가 노출되었다. 부사수가 그 사실을 캐치한 가운데, 사수인 이복동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소리에 이어 저 멀리에 꿈틀거리던 적이 쓰러졌다. 지존무상이 소리쳤다.

“나이스!”

백골부대는 다시 숙적인 조선인민군과의 싸움에 나섰고, 두 프로게이머가 쓰러뜨리는 적들 또한 그들이었다.

또 한 명의 북한 병사를 쓰러뜨린 뒤, 이복동이 중얼거렸다.

“지금 우리 김일성 괴롭혀도 되는 거예요? 엄근오인가 그 양반이 예전에 주장한 내용대로면 김일성이가 우승해야 우리가 안전해지는 건데.”

“그래도 김일성이가 우승하게 내버려두면 안 되지.”

“왜요? 빨갱이라서?”

“김일성이 우승해버리면 게임 서비스 종료될 거 아냐? 엔딩 난 셈이니까. 그럼 우리 돈도 얼마 못 벌고 다시 딴 일 알아봐야 하는 거야.”

이복동은 그래도 전쟁을 감수할 수는 없지 않느냐 따지려다 말았다.

‘어느 쪽이 나은지 모르겠네.’

확실히, 전쟁이 오건 말건 이복동으로서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은 실제로 재능이 있었던 모양이다. 고작 두 달 만에 실전투입된 마당이지만 제법 많은 적을 쓰러뜨렸고, 저번에는 솜씨 좋다며 칭찬까지 받았다.

이제야말로, 이복동은 자기 힘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정말이지 맘이 편하다. 가능하면 계속 이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편 이복동의 보조이자 긴급시 수송담당으로서 지존무쌍 제몫을 해내며 돈을 벌고 있었다.

역시 이복동이 보기에는 이것만으로도 완벽해보였지만, 지존무쌍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업데이트 이후 지존무쌍은 업소에 툭하면 갔다. 이복동에게는 두 번씩 간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세 번 갈 때도 많았으며, 지금껏 번 돈에도 불구하고 돈이 쪼들렸다. 심각하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역시 하나였다. 소드마스터로 의심되는 그 엘프 말이다.

그리고 며칠 뒤, 기어이 지존무쌍은 그 엘프가  그들과 함께 일에 나설 이유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오늘도 가온은 로그인하자마자 업소로 다가가고 있었는데, 지존무쌍은 그 앞을 가로막고는 같이 할 일이 있다며 외쳤다.

가온은 바로 거절하려 했다.

“소드마스터랑 관련된 일이라도 관심없는데? 요새 실컷 붙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둘이서만 일하면 안 돼? 듣자하니 류시범이 그 친구가 잘 챙겨주고 있다던데, 왜 거기서 일하지 않고?”

“류시범한텐 따로 말하고 나왔어! 이번 일은 꼭 해야한단 말이야. 가온 씨 도움이 꼭 필요해!”

어지간히도 싫은지, 가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존무쌍은 초조한 마음에 외쳤다.

“단순히 돈 때문에 돕자는 게 아냐······ 우리 아는 사람이 한강 다이빙할 위기라니까!”

“자살할 위기라고? 누가?”

“강주석! 백두 길드장!”

별로 친하지도 않은 류시범을 돕겠다고 이미 나섰듯,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매몰차게 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한 마당이었다.

지존무쌍은 열심히 알아온 정보를 설명했다.

과연 가온은 귀 기울여 듣더니, 불쾌하게나마 이번 일에 관심을 보였다.

“강주석이 부길마한테 쿠데타를 당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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