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워프 마르쿤 - [2]
계속해서 가온은 투표소 앞을 지키고 섰다.
뒤이어 다른 칼잡이들이 지원하러 왔지만, 그들이 아무리 몰려와도 정체를 숨긴 소드마스터를 쫓아낼 수야 없었다.
어느덧 수백 명이 넘는 적들을 상대로 가온이 승리를 거듭한 가운데, 기자는 새삼 놀라면서도 불안하게 물었다.
“이대로 계속 이기다 보면 소드마스터가 오는 것 아닙니까?”
가온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소드마스터는 오지 않을 겁니다. 고작 시장 선거에 마스터가 오는 것은 격이 맞지 않지요. 소드마스터씩이나 돼서 그 정도로 한가할 리도 없고.”
“우드엘프 소드마스터들은 비교적 하는 일이 없다던데요.”
“우드엘프들은 여기 못 오지요. 대낮에 거리를 활보했다간 사진 찍힐까 봐 겁날 테니.”
이 와중에 사람들은 안심하고 투표장에 발을 들였다.
가온은 그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이쪽에 표를 주지 않을 법한 종족을 골라냈다. 오크들과 오크만큼 수명 짧은 고블린들, 그리고 드워프들을.
가온에게 거부당한 투표자들은 터덜터덜 물러갈 뿐, 감히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기자는 충격을 받았다.
‘미친······’
사실상 지금 가온은 세틴 시의 모든 투표자들을 통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장검정권은 투표자들을 통제하기 쉽도록 시내에 투표소를 딱 하나 만들어둔 것이다.
그러니까, 단 한 명에게 거의 모든 투표자들이 통제되고 있었다.
도시의 인구수에 비해 투표하러 온 사람들이 지나치게 적기는 했지만, 그 사실을 고려해도 심히 놀라운 일이었다.
놀라운 만큼 비민주적인 일이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기준이 조금 다른 아스인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한국인 기자가 보기에는 심히 그러했다.
“그나마 죽는 사람이 안 나오는 게 놀랍군요.”
보다 못한 기자가 비꼬았더니 가온은 웃을 뿐이었다.
“선거하는데 사람이 왜 죽겠습니까? 여기가 지구도 아닌데.”
기자가 신음하는 가운데, 또다시 한 무리의 칼잡이들이 도전하러 왔으며 몇 분 만에 모두 패배하고는 떠났다. 계속. 계속.
기자는 이 상황을 대체 어찌 기사로 써야 하나 고민했다. 정치깡패들의 민주정 유린이 끝났나 했더니 그 다음에는 정치깡패보다 강한 사제 전사에 의한 유린이 시작되었다?
심경이 복잡한 가운데, 기자는 애써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쨌건 이제 저 드워프들이 당선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게 민주적으론 별로 좋지 않은 일이지 몰라도, 한국인들에겐 좋은 일이었다. 전쟁광들의 정치적 자리가 하나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기자는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제님의 활약 덕분에 한국 내 화로 여신님의 신자가 더 많이 늘겠군요. 교단의 힘을 몸소 보여주시고 계시니······.”
“한국엔 가정을 이루지 못한 독신이 많아서 여신님의 신도가 비교적 적다고 알고 있는데요, 제가 힘 좀 보여준다고 늘겠습니까?”
“요즘엔 달라졌습니다. 젊은이들이 죄다 열정적으로 여신님의 신전에 몰려가는데, 결혼도 마구 하고······ 전쟁의 위기에 사후세계가 걱정되는 모양입니다. 정말이지 참마황이 일갈한 이후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게임에서 김일성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던 엄근오 그 양반, 원래는 양쪽에서 또라이 취급받았는데······ 진짜 한국이 위험하단 게 밝혀진 요즘에는 선지자 취급이니 원.”
중얼거리다 말고 기자는 얼어붙었다.
또 한 무리가 투표장 앞에 다가왔는데, 선거인들이 아니었다.
피선거인과 그 추종자 무리였다. 파시스트 드워프들이 여기 찾아온 것이다.
물론 가온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드워프들을 향해 웃으며 도발했다.
“그대들도 결투하러 왔나? 아니라면 내 쪽에서 결투를 신청하지.”
시장 후보 마르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피선거인들은 결투를 거절할 권리가 있소. 이미 다른 피선거인들과 결투 중이나 다름없으니.”
“그럼 왜 왔나?”
“경고하러 왔소, 사제님. 이만 물러나시오. 이미 지치셨을 텐데, 이쪽은 가장 강력한 증원 병력을 파견한 참이니.”
“증원병력? 소드마스터라도 오나? 일개 시장 선거에? 그건 반칙이지. 정말 그렇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무엄한 것들!”
“소드마스터는 아니오······ 준신(准神)들이 올 거요. 그림자 엘프들이.”
“그건 또 뭔가?”
소드마스터가 오지 않으리란 말에 가온은 이미 안심한 바였다. 여유롭게도 드워프들을 비웃었다.
“못 들어보셨나? 우드엘프들에게 새로 생긴 특수부대요. 우드엘프 최고의 소드 엑스퍼트들이요, 어둠 속의 칼날이지.”
“사춘기 중학생들에게 단체명을 지어달라 부탁했나보군.”
“비웃을 일이 아니오. 그들의 악명은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요······ 말해두겠는데, 개인적으로 난 불의 여신님을 경외하오. 대장장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잖소? 그분의 뜻을 받드는 사제님이 다른 신이 보낸 전사에게 욕보이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소. 이미 충분히 활약하셨으니, 이만 떠나시길 간곡히 권하오.”
여전히 가온은 웃었다.
“어둠 속의 칼날이 왜 대낮에 투표를 방해하러 온단 거지?”
“그들은 어둠 속의 칼날이지만, 대낮에 활동하오. 다른 우드엘프들과 달리 사진 찍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니.”
왜 사진 찍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느냐 물을 필요는 없었다.
마침 그 우드엘프들이 여기 온 것이다.
‘악명 높은 그림자 엘프’들의 얼굴을 본 순간, 가온의 낯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정말 저들의 경고대로 물러나야 했다고 후회했다.
저 엘프들을 보기만 해도 가온은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림자 엘프라 불린 저 우드엘프들은 강대한 영혼을 지녔음을. 사진을 찍혀서 영혼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들 신경 쓰지 않을 만치 강대한 영혼을 지녔음을 알 수 있었다.
그 강대한 영혼은 이백 년 넘게 치른 신성한 괴물들과의 사투를 통해 얻은 것임도 알 수 있었다.
다른 세계에서, 이백 년 넘게 함께였던 우드엘프들을 보며 가온은 움츠러들었다.
한편 그림자 엘프들은 기세등등하게 이 투표장을 포위했다. 그러니까, 수십 명의 우드엘프 칼잡이들이.
여기 모인 투표자들이 움츠러들었다.
그림자 엘프라는 냉정한 이미지의 이름답게, 그들은 노인들에게도 굽히지 않았다.
“이런 늙은이를 겁박할 건가?”
인간 노인의 말에 우드엘프는 웃었다.
“늙은이? 이백 살은 잡쉈나, 아가씨?”
트롤 노인이 나서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난 삼백 살인데 나는 노인으로 인정해주나?”
“116살 위로는 다 동갑이지, 친구.”
유교교육을 받은 보람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 옛 인연의 모습을 보며 가온은 감탄할 정신도 없었다.
저들을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얼마 전 저들이 자신을 보고 싶어한다고, 만나러 오라고 말을 들었지만 실제 당장 만날 생각은 없었다.
백수들은 동창회에 잘 나가지 않는다. 옛 인연들에게 자신을 가장 멋진 모습으로 기억에 남게 하고픈 심정이다. 예전에 비해 잔뜩 초라해져버린 현재의 자신이 아니라.
마찬가지 이유에서 가온은 자신의 지금 모습을 옛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완벽한 폴리모프 주문으로 모습을 숨기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안심이 되지는 않았다.
이제 자신이 보호했던 이들을 때려 눕혀야 하나? 정말?
가온이 정말 물러날 것을 각오하는 가운데, 한 그림자 엘프가 가온을 바라보았다.
가온이 아는 얼굴, 오림이란 이름의 우드엘프가 입을 열었다.
“목걸이 문양 보니 그냥 검객이 아니라 사제 같은데. 맞나?”
“그런데······”
“신성의 증거 좀 보여주겠나? 재 속에서······”
오림이 운을 띄웠고, 가온은 마저 기도문은 외웠다.
“불사조가 날아오르리다.”
기도에 응해, 가온의 손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여신의 증거를 본 우드엘프들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그들은 서로를 돌아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뒤돌아섰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디 가!”
드워프의 외침을 우드엘프는 무시했다. 계속 걸어가다 말고, 문득 다시 뒤돌아서서는 이쪽을 바라보았다.
드워프가 좋아하려던 그때, 우드엘프가 입을 열었다.
“사제님? 가온에게 안부 전해주시오. 나중에라도 반드시 웃는 얼굴로 만나자 전해주고.”
가온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내 그러지.”
그러고는 끝이었다. 이제야말로 우드엘프들은 모두 물러갔고, 드워프들은 멀거니 남겨졌다.
여유를 되찾은 가온이 비웃었다.
“다른 지원병력은 없나?”
“없소.”
“그럼 이제 포기하고 떠날 텐가?”
“아니.”
드워프 마르쿤은 한숨 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제님? 이렇게 실력이 좋으신 걸 보니 교단 내에서 권한도 크실 것 같은데······ 협상합시다.”
“협상을? 항복이 아니라?”
“여유 부리실 때가 아니오, 사제님. 이대론 양쪽 다 패배할 거요.”
“뭔 소린가?”
“이쪽도 낙선하겠지만 여신님께서 내세운 후보 또한 낙선할 거란 말이요. 화로 여신님의 신도들은 생각만큼 많이 투표하러 나오지 않았소. 가정적인 평화주의자들······ 다들 겁많은 자들 아니오? 전쟁 분위기에서 평화에 표를 던지러 나올 만큼 간 큰 이들이 별로 없지. 실제 수에 비해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오. 아마 진작 겁에 질려 다들 문밖으로 나오지도 않았을걸. 그러니 여신께서 내세운 후보는 여신님의 신도 수에 비해 생각보다 표를 받지 못할 거요.”
가온은 투표장의 사람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저리 많은데?”
“내 보기에 저들은 여신님의 신도들이 아니오.”
“그럼?”
드워프는 포스터에 달린 한 후보를 가리켰다.
가온은 포스터에 그려진 이름을 읽었다.
“무소속 키우스페눔?”
마르쿤은 침통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드래곤이오. 외부의 개입이 없을 경우, 그러니까 이대로면 당선될 확률이 가장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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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워프들은 드래곤을 싫어한다. 수천 년 넘게 황금과 보물을 뺏겨온 전통 탓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드래곤이 당선되면 안 되노라 주장하는 드워프들의 목소리엔 감정이 실려있었다.
“지구인들은 전투기와 RPG를 들여오면 드래곤들이 겸손해질 거라 주장했소. 가공할 현대무기면 피와 비늘로 이루어진 그 거대한 몸조차 무력하니까, 더는 잘난 척하지 못할 거라고. 하지만 실제론 어떤가? 이제 드래곤들은 동굴이 아니라 마천루에 산다오. 기업을 지배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부의 왕국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그 어느 때보다 드래곤들의 아성은 견고하지. 덕분에 그들의 오만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소. 여전히 그들은 신과 자신들이 동급이라 생각해.”
“그래서?”
“물러나주시오. 다시 칼잡이들을 불러와 투표를 강제할 수 있게. 오만한 드래곤이 당선되지 않도록 말이야. 강조하건대, 드래곤들에게 정치 권력을 줘선 안 되오. 그랬다간 드래곤들이 지상을 지배할 거요.”
“고작 한 종족의 세계정복 음모론이 내가 너흴 도와야 할 이유인가?”
“젠장, 이대로면 신들께서 체면이 깎일 거란 말이오! 신들께서 밀어주는 후보가 아니라 신을 무시하는 드래곤이 당선된다 생각해보시오. 그 얼마나 끔찍한 신성모독이오? 그 투표 결과가 얼마나 천상의 권위를 깎을지 생각해보시란 말이오.”
그 말에도 가온의 뜻이 변하지 않은 것 같자 드워프는 이어서 말했다.
“사제님께서 지금 물러나 주신다면, 그래서 우리가 당선된다면 귀 교단에 면세 특권을 드리겠소. 저 도마뱀 놈은 절대 그래 주지 않을 거요. 법을 어기는 게 자기 신용을 깎아먹는다 생각할 테니.”
실제 그럴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드래곤들은 그 어느 종족보다도 법을 준수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수천수만 년을 사는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여 사회적 신용을 깎는 것은 지나치게 큰 손해라 생각하는 까닭이다.
드래곤 후보들이 투표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다. 용언(龍言)이라 하여 자기네 말에 힘이 실렸다 믿는 그들은 공약에서마저 거짓을 고하지 않을 것이니까.
‘어쩔까요? 면세 특권이라는데.’
깊이 고심하시던 여신께서 답을 내리시었다.
‘거부하노라 전하라.’
가온이 여신의 말씀을 전했다.
“거부하겠소.”
그리고 드워프들은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여기서 바로? 일개 사제가 이걸 바로 결정할 수는······ 일개 사제가 아니군. 여신께서 저흴 보고 계시는군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드워프는 잠시 위축된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실제 여신께서 여기 계시다니?
그 사실에 전율하다 말고, 드워프는 이를 악물었다.
감히 여신의 앞에서 부르짖었다.
“위대한 불의 여신이시여,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 땅의 백성들은 너무나도 고통받았습니다! 복수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가온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순순히 여신님의 말씀을 전했다.
“사 할이 넘는 내 신도는 아니지. 그들은 평화를 원하노라.”
“그들 또한 이 땅의 백성입니다! 그들 또한 고통받았습니다! 마땅히 고통의 대가를 지구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전장에 나가서? 따스한 화로를 떠나,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감내해야 합니다!”
“복수는 권리여야 한다. 의무가 아니라. 그리고 너희는 이미 고통받았기에 더 고통받아야 할 의무가 있노라 주장하는군. 그런 불합리한 주장은 이제 지겹다. 너무 지겨워. 더 듣고 싶지 않노라.”
“하지만······”
“더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만 가라. 화로 앞으로 돌아가라.”
드워프들은 여전히 승복 되지 않은 눈치였지만, 그렇다고 신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기지는 않았다.
눈가에 울음기마저 맺힌 채 드워프들은 떠났다.
투표가 계속되었고, 가온은 그들 중에 여신님의 신도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할 재주가 없었다.
‘정말 드래곤이 당선되면 어떡합니까?’
가온의 물음에 여신께서 답하시었다.
‘신앙심이 부족함이 증명된 셈이니, 사제들에게 설교 시간을 더 늘리라 명할 수밖에.’
‘그리고 또한 세금 낸 걸 채워야 하니 헌금도 더?’
‘왜 당연한 걸 묻느냐, 대전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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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부대에 소드마스터가 가입했다는 것은 당장 비밀이었다.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소드마스터 나루는 칼을 들고 전장에 나가지 않았다.
그저 총을 쏘며 레벨을 올릴 뿐이었다. 그러면서 귀가 아프다는 이유로 대충 쏘았다.
그렇듯 나루는 심히 의욕이 없어 보였는데, 류시범이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번에 총 못 쏜다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하신 것도 그렇고. 그다지 이 일에 열정이 없으시군요?”
류시범의 말에 나루가 핀잔했다.
“내가 이 나이 먹고 땀 흘리며 뛰어야겠니?”
“하지만, 빠르게 레벨을 올리시고 중요한 전장에 나서셔야 복수의 전쟁이 일찍 시작될 것 아닙니까? 그래야 참마황이 새 육체를 얻고 전쟁을 개시할 테니까요. 그리고 나루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대전쟁을 바라실 분이니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이 일에 임하실 줄 알았습니다.”
“누구보다 대전쟁을 바라? 내가? 왜?”
뉴스에서 우드엘프 장로들의 전쟁 지지 선언을 들었던 류시범은 당황했다.
“이십만이 넘었던 엘프들이 수만 명으로 줄어들 만큼 많이 죽지 않았습니까? 저번 전쟁에서요.”
“정말 많이도 죽었지.”
“그런데도 원한이 사라졌습니까?”
“원한이야 남았지.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잔뜩 있어.”
“그런데 왜?”
“전쟁이 일어나면 이미 많이 죽은 동족이 더 죽을 것 아니냐. 좋은 일이 아니야. 결코 아니야.”
누구보다 오래 전쟁에 나섰던, 그래서 누구보다 지구에 악명이 높았던 이 소드마스터도 새로운 전쟁을 반기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 사실에 류시범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왜 이번 전쟁에 끼시려고?”
“우드엘프들의 미래를 위해서지.”
“미래라면······”
“연금 기한 연장.”
류시범은 잠시 굳었다가 물었다.
“대체 얼마나 오래 받으시려고?”
“너무 오랫동안 받으면 국고가 부담스러울 테니, 우리 종족 모두가 딱 내 나이만큼만 받으면 좋겠어.”
“양심이······”
작게 말했지만 엘프의 귀에는 들렸다. 그날 류시범은 이 오래 산 엘프가 검술뿐만 아니라 레슬링에도 능하다는 사실을 배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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