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워프 마르쿤 - [1]
“그러니까 현재 카르세에서 세틴 시 시장선거가 진행 중이고······ 이대로면 여신께서 밀어주시는 후보가 낙선될 것 같단 말씀이시지요? 그래서 대전사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고요.”
가온의 물음에 여신께서 답하시었다.
‘그렇다.’
“하지만 고작 시장선거에 대전사가 나서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대통령 선거도 아니고······”
‘필요한 일이라. 네 여신의 대신전이 마침 그 시에 있으니, 웬 우파 정치인이 뽑히었다간 네 여신의 신전에 불합리한 지방세가 부과될 수 있음이라.’
“그렇다면 사제들을 시켜, 신도들에게 몰표를 명하시면······”
‘이미 명했노라. 그런데도 네 여신의 후보는 당선이 어려울 상황이고. 신들이 신도들에게 특정 후보를 뽑도록 명할 때, 그 명에 따르지 않아도 천국에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사특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래, 네 여신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줄었노라.’
“가장 신도 수가 많은 여신님을 겨냥하여 만들어진 악법이지요. 그래도 여전히 신도들은 신께서 명하는 후보를 뽑는다고 아는데······”
‘만약 위협이 가해지거나 그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신의 명령과 다른 후보를 뽑노라. 그리고 지금, 그 위협이 가해지는 상황이라.’
여신께서 한탄하시는 가운데, 가온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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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우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한국인이며, 기자다.
다른 세계, 카르세에서 이루어지는 이곳 시장 선거장에 파견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대통령 선거도 아닌 시장 선거를 취재하러 올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3차 대전이 다가오는 지금, 이런 시장 선거마저 한국인들에게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인 기자는 시장 후보자들을 보며 신음했다.
‘기호 2번 노동협동조합당 소속 마르쿤······“
마르쿤은 드워프였다. 그것도 삼백 살이 넘은.
마르쿤은 대차원문이 열리기 전 세상을 기억했다. 그 사실은 마르쿤이 장검정권이 벌이려는 대전쟁에 찬성한단 사실을 의미했다.
“기호 2번 마르쿤! 기호 2번 마르쿤! 노동협동조합당 만세!”
마르쿤의 선거 도우미들이 외치는 가운데, 한국인 기자는 차분히 기사에 쓸 내용을 적어내렸다.
「노동협동조합당 소속 마르쿤.
노동협동조합당이라 하지만, 줄여 말하자면 파시스트들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2차 대전의 망령들.
공장만 보면 때려 부수고 싶어 안달 난 족속들.
지구의 기술이 전래 된 이후, 아스에서 독보적이었던 드워프들의 제철기술은 그 우월적 가치를 잃었다. 드워프의 최고급 무기보다 양산된 지구제 소총 한 자루에 더욱 고등한 기술이 발휘되었으며, 심지어 훨씬 강력하단 사실은 드워프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
이제 당연히도 사람들은 드워프의 공방보다는 공장을 더 좋아한다.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거기서 생산된 물건들은 장인들의 수공업품보다 더 싸기 때문이다.
여전히 몇몇 드워프들은 최고급 시계 등을 만들며 장인 대접을 받지만, 여전히 그들의 상처 입은 자존심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 어떤 드워프 기계장치도 스마트폰 하나보다 못하다는 사실은 여전히 드워프들의 수치다.
그래서 나이든 드워프들은 대차원문이 열리기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드워프 파시스트들이 참마황에게 전차와 전쟁골렘들을 제공하는 이유다.
물론 구시대적 꼴통들답게, 드워프 파시스트들은 당연히도 시민들에게 인기가 없다. 원래대로라면 역사책에나 나와야 할 저들의 파시스트 정당도 마찬가지다.
원래라면 저 드워프 족속이 선거에 출마한들 1% 이상을 받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참마황이 그들을 후원하고 있다. 그리고 독재자가 후원해주는 상황이라면 가장 인기 없는 후보조차 선거에서 승산이 생기는 법이다」
기자는 투표장 앞에 모인 일단의 무리를 노려보았다. 그들의 종족은 각기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다들 칼을 한 자루씩 차고 있었다. 선거장에 가져오기 적합하지 않은 물건.
「참마황이 자기 추종자들에게 지시를 내린 가운데, 드워프들은 자기네 선거를 도우면 드워프제 칼을 주겠다며 꼬드긴 모양이다」
투표장에 들어가려는 세 명을 칼잡이 하나가 붙잡았다. 투표자 한 명을 억지로 밀어내고는, 그 자리에 자신이 끼었다.
그리고는 나머지 두 명과 함께 투표장에 들어갔다.
「드워프들의 선거를 돕기 위해, 칼잡이들이 나섰다.
소드마스터인 참마황을 추종하는 정치깡패들. 일명 제국 소드 엑스퍼트들이다.
칼잡이들이 선거를 돕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카르세 연방에서 투표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선거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3인 1조로 하게 돼 있는데, 이 조마다 칼을 든 칼잡이가 한 명 섞인다.
당연히 이 한 명의 존재는 압도적이다. 나머지 두 명의 투표자는 칼잡이의 눈치를 보고 칼잡이가 원할 만한 후보를 뽑아야 한다. 케케묵은 부정선거 방식」
기자는 여기까지 쓰다 말았다. 손이 아파서는 아니었다.
참견하는 인간들이 있었다.
아니, 인간이 아니었다.
웬 드워프들이 물었다.
“뭐 쓰는 거요? 일기 쓰나?”
기겁한 기자는 말을 흐렸다.
“아무것도······”
드워프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눈 째졌네. 징그럽게. 일본인인가?”
“아니, 한국인이요!”
아스에 한국의 이미지가 좋다는 걸 믿고 그리 외쳤지만, 드워프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아, 은혜도 모르고 약속을 어기는 족속? 여기가 어디라고 겁도 없이 기어 들어와?”
“예, 예. 잘못했습니다. 떠나겠······”
“우리가 안 쳐다볼 때 돌아오려고 그러지? 그리 내버려 둘 순 없지. 이거······ 마셔.”
드워프들이 웬 병을 내밀었다. 끔찍한 냄새가 풍기자 기자는 겁에 질렸다.
“이거 뭡니까······”
“아주까리기름. 마시자마자 화장실 뛰쳐가라, 응?”
기자가 발악하는 가운데, 드워프 둘이 기자의 양팔을 붙잡았다. 나머지 한 명의 드워프가 기자의 입에 병 속 내용물을 쏟아부으려 했다.
드워프들의 키는 1.4m도 안 되지만 옆으로 널찍한 덕에 그 근력은 우월하다. 기자는 반항하지 못했다. 기어이 기름 한 방울이 목을 넘어가려던 그때였다.
“뭐 하는 짓입니까? 그만두세요.”
웬 사람 좋아보이는 아스인 청년이 거기 있었다.
드워프들은 청년의 목에 걸린 불사조 문양을 알아보고 신음했다.
“불과 화로의 여신님의 사제로군.”
“예. 여신님의 뜻을 빌려 부탁합니다. 그 남자를 풀어주십시오. 불을 쓰는 드워프 장인분들이 그 권위를 무시하지는 않겠지요? ”
드워프들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순순히 사제의 말을 따랐다.
겨우 풀려난 기자는 헐떡거리며 감사를 표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 이 정도로.”
그리 말하면서도 가온은 떨떠름했다.
현장에 직접 오고 나니 대강 무슨 상황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여신께서는 단순히 세금이 걱정되어 대전사를 여기 보냈다 말씀하셨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했다.
만약 저들이 미는 후보가 패배한다면? 그 결과 주화파인 화로의 여신께서 지지하는 후보가 승리한다면? 주전파인 장검정권의 기세는 주춤하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쟁 가능성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상 주화파와 주전파의 힘겨루기 같은데······’
전쟁에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 자신이 이런 정치적 자리에 오는 것은 탐탁잖은 일이었다.
‘여신이시여. 아시다시피 대전사의 신념은 자유로워도 되노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까?’
가온이 따지자 여신께서 대답해주시었다.
‘네 여신은 물론 그리 말하였지. 물론 네 여신은 대전사의 신념을 존중하노라. 내 대전사가 정 원한다면 12시 이전에 자는 것으로 요구를 바꾸리. 그러길 원하느냐?’
‘아닙니다. 대전사씩이나 되어 신념 가지고 여신님께 봉사할 기회를 걷어찰 순 없지요.’
기도를 마친 가온은 멀뚱히 서 있던 기자에게 말했다.
“기자님? 홀로 계시면 위험할 듯한데······ 따라오십시오.”
“예? 예······ 그런데 사제님이라고 하셨습니까?”
“불과 화로의 여신님의 사제입니다. 부정으로 가득 찬 이 선거를 정화하러 여기 왔지요.”
“어떻게······ 저들은 전쟁 신의 지지자들입니다. 화로의 여신님의 말씀조차 듣지 않을 것 같은데요······”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칼을 써야겠지요.”
그리 말하면서 가온은 왼손으로 칼을 뽑아 보였다.
그 의미를 알아챈 기자는 놀랐다.
“소드 엑스퍼트십니까?”
“그것도 실력 좋은.”
“대단하군요. 화로의 여신께서는 가장 강력한 소드마스터를 대전사로 두고 계시지만, 그 대전사는 평화에 뜻이 없어주전파들을 쉽게 막지 못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가온 경 말고도 딴 검객들의 지지를 받고 계셨을 줄은······”
가온은 어색하게 웃으며 기자와 함께 걸었다.
투표장이 앞에 있었다.
아까부터 그랬듯, 칼잡이들이 투표장 앞에 진을 치고는 투표자들의 선택을 도와주는 중이었다.
그 칼잡이들에게 다가간 가온이 말했다.
“자네들, 칼 좀 쓰나 보군?”
칼잡이들이 반응했다.
“그렇다면?”
“결투다. 패배자는 투표를 포기하고 떠난다. 받아들이겠나?”
패배자가 떠나야 하는 결투의 관습을 모르는 칼잡이는 없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결투를 거절하는 칼잡이도 없다.
칼잡이 중 하나가 가온과 싸우기 위해 나섰고, 패배했다.
약 이 초 만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가온은 덤덤하게 다음 도전자를 불렀다.
“다음.”
또 다른 칼잡이가 결투에 나섰고, 또 패배했으며, 다음 칼잡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후의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온은 나머지 검객들 하나하나와 결투했다.
소드마스터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전투 감각에 의지하지 않은 채 왼손으로 검술만을 발휘했다. 그러면서 매번 새로운 검술을 파악함에 즐거움마저 느꼈다. 자기보다 낮은 실력자들과 상대하는 것이지만 경험이 풍부해지는 것은 그 자체로 검술 증진에 도움 되는 것이다.
그 상승을 느끼면서 가온은 웃었다. 즐거워서 웃었고,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도 여유가 넘쳐 보였다.
그리 패배시킨 칼잡이가 쉰 명이 넘어섰을 때는 검술에 문외한인 기자마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지? 지치지도 않네.’
한 명이 이토록 많은 칼잡이들을 패배시키는 상황에 불합리함을 느낀 모양이다.
한 젊은 칼잡이가 따졌다.
“이거 이상하게 강한데. 혹시 화로의 여신께서 보내신 가온 경 아니십니까? 그렇다면 격에 맞지 않는······”
가온이 적반하장으로 화내려던 그때였다. 가온을 대신해서, 다른 칼잡이가 분노를 토했다.
“감히 소드마스터의 존함을 그따위로 입에 담아?”
젊은 칼잡이는 다른 칼잡이들마저 모두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에 당황했다. 뒤늦게나마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소드마스터가 되기를 희망하는 칼잡이들, 소드 엑스퍼트들에게 소드마스터들이란 가히 신과 같은 존재다. 감히 소드마스터를 폄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절대.
“감히, 주제도 모르고······ 너 같은 놈은 칼을 잡을 자격이 없어!”
한 칼잡이가 칼을 휘둘렀다. 달인의 솜씨다웠다. 젊은 칼잡이의 손목은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젊은 칼잡이는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감히 따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직도 다른 칼잡이들의 기세가 흉흉하다. 자칫하면 목이 날아갈 것 갔다.
한편 칼을 휘두른 칼잡이는 가온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무례를 끼쳐 죄송합니다. 이걸로 용서해주십사······”
“용서하지.”
그리 말하더니, 가온은 손목이 잘려나간 젊은이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입술을 달싹이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잘려나간 손이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이미 한 번 자른 걸로 처벌은 끝냈으니 이걸로 넘어가지. 그럼, 다음 도전자?”
“접니다.”
경의를 표하며 또 다른 도전자가 나섰다.
당연히도 그 또한 패배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하고도 수십 분 지나, 가온은 기어이 투표장에서 모든 칼잡이들을 쫓아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상황에 기자는 감명을 받았다.
정치깡패들이 이렇게 깔끔하게 물러날 줄은 몰랐다.
하기야 무례한 자에게 호의를 보여준 덕이지 결투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악심을 품고 보복하러 올 것 같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정말 완벽합니다! 이제 할 일 다 하셨으니 떠나시는 겁니까?”
기자가 호들갑을 떨자, 가온은 이상하다는 듯 기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할 일 다 했다니? 아직 투표가 끝나지 않았는데요.”
칼잡이가 없어진 지금, 세틴 시민들은 자유로이 투표하러 들어가고 있었다.
가온은 그러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투표장에 들어가려던 한 명의 어깨를 붙잡고, 가온이 말했다.
“자네. 덩치가 좋아 보이는 것이 잘 싸우겠군. 충분히 맨손으로도 칼잡이와 맞붙을 만하겠어? 자, 결투다.”
가온에게 붙잡힌 오크는 어물어물 말했다.
“아니, 난 결투하고 싶지 않······”
“그럼 패배를 받아들이는 셈이군? 패자는 신성한 관습에 따라 이 장소를 떠나도록.”
그 장면을 바라보던 기자는 기겁하여 물었다.
“방금 그 오크는 칼도 안 들었는데요. 정치깡패가 아닌 거 같은데, 왜 결투를 신청하셨습니까?”
“딱 보니까 주전파인 드워프들 뽑을 거 아닙니까. 수명 짧은 오크니까 얼른 전쟁 나가 죽고 싶어 안달 났겠지요. 천국 쉽게 가게 말입니다.”
“그럼 그 뜻을 꺾으려고······”
“예.”
기자는 황당했다.
“부정을 정화하러 오셨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왜?”
“지금 이쪽 뜻을 강요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저들이 하기 싫은 결투를 강요해서······”
“그러면 안 됩니까?”
“당연히 안 되지요. 결투 강요라니, 장검정권이나 할 법한 정치깡패짓······”
“말도 안 되는 소리. 결투의 관습은 수천 년 이어진 전통인데 누구 잣대로 그 가치를 깎아내리지요?”
가온이 지나치게 당당히 말했기에 기자는 자신이 잘못한 건가 의심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민주주의가 아닌······”
가온은 기자를 대단히 한심하다는 듯이 보더니, 설교했다.
“아스식 민주주의입니다. 자기 뜻을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고 어둠 속에서 종이 한 장 몰래 넣는 지구식 선거엔 명예가 없지요? 뜻을 이루는 방식이 마치 비겁한 암살자의 그것과 같습니다. 그에 비하면 정정당당하게 실력과 신념을 겨루는 아스의 방식은 기사의 그것이라, 이 얼마나 명예로습니까? 한국인들도 민주주의 국가라면 모름지기 이쪽을 본받아야 합니다.”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랐던 기자는 고민 끝에 겨우 입을 열었다.
“아,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