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54화 (54/135)

LV.? 소드마스터 하고 - [1]

고대의 신들이 지상을 꾸밀 때, 엘프의 창조에 신들의 성욕이 관여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늙지 않고 아름다운 종족이라니? 딱 이상적인 애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종족 아닌가.

그러나 엘프의 수가 수십만에 이르러, 엘프들이 차지한 영토가 세상의 삼 할이 되었을 때, 신들은 자기네 실수를 깨달았다.

말도 안 되게 우월한 종족은 당연히도 세계를 정복해버릴 수 있다. 늙지도 않으니 언젠가 세상을 꽉 채워버릴 수 있다.

인구가 300억쯤으로 늘어난 엘프들이 하등한 인간을 가축 삼는 미래는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다.

그런 미래를 막기 위해 신들이 움직였다.

달과 순결의 여신을 보내어 엘프들에게 그녀에 대한 신앙을 강요한 것이다.

소수의 엘프들은 반발하여 다른 신을 모셨지만 대부분의 엘프들은 이 신앙을 받아들였다.

*******

완벽한 가상현실이란 지나치게 놀라운 기술이다. 현실의 과학을 월등히 초월한 기술 아닌가.

그 놀라운 기술을 고작 게임에만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일이다.

스스로 자기네 게임을 비하하곤 하는 4판타지 플레이어들은 흔히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가상현실이면 싸구려 야겜으로 출시했어도 이딴 망겜을 내는 것보다는 훨씬 더 벌었을걸!’

기어이 기다리던 기능이 추가된 셈이었다.

4판타지 플레이어들은 흥분 속에서 업데이트 내용을 살폈다.

그리고는 조금 실망했다. 기대한 만큼 자유로운 기능은 아니었다.

“플레이어끼리 성행위 불가. 일반 NPC와도 불가. 특정한 시설에서 특정한 몽마 NPC와만 가능······”

“특별한 시설이 뭐야?”

“몽마관이라는데······”

“아, 나 그거 라노베에서 봤어.”

게임사로서는 아예 게임의 장르를 바꾸는 것은 싫었던 모양이다.

새로운 기능은 어디까지나 특정 시설에서 특정 NPC와만 가능했다. 그것도 꽤 비싼 요금을 내고서.

“한 번 즐기는 요금이 오천 골드······ 오천 골드면 현재 시세로 얼마지?”

“한 칠만 원?”

“아니, 뭐 그리 올랐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만 원쯤 아니었나?”

“요새 전쟁 탓에 물자 소모 심했잖아. 덩달아 골드 소모도 늘어나서 올랐지 뭐.”

모두가 투덜거리는 가운데, 가온 또한 두 명 앞에서 투덜거렸다.

“이게 뭔 짓거리야? 전쟁 게임에 대체 사이버 매춘을 왜 넣어?”

“전쟁과 매춘은 의외로 밀접한······”

이복동이 중얼거리다가 가온이 노려보자 입을 다물었다.

지존무쌍도 의견을 내놓았다.

“확실히 이거 미쳤어! 한 번에 칠만 원이 뭐야? 현실에서 하는 거랑 별 차이도 없잖아. 너무 비싸······”

“그래서 안 할 거지?”

가온의 물음에 지존무쌍은 말을 흐렸다.

“아니, 하긴 할 건데······.”

“비싸다며?”

지존무쌍은 맥없이 웃었다.

“뭐, 가온 씨 덕분에 벌어둔 게 있으니까. 한 달에 한두 번은 괜찮을 거 같은데······”

가온이 한숨 쉬는 가운데, 여신께서 물으시었다.

‘네 여신이 자리를 비켜주랴, 대전사여?’

‘아닙니다. 됐습니다.’

가온은 딱 잘라 대답했다. 실제로 이번 컨텐츠를 즐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요금이 비싸서도, 단순히 다른 종족보다 성욕이 약한 엘프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가온은 저번에 자신이 성불시킨 우드엘프의 영혼을 떠올렸다.

그 일을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게 불쾌해지곤 했다. 이틀 가까이 게임을 쉬었을 정도로.

그리고 놀랍게도, 업데이트는 다음 날 바로 이루어졌다. 보통 이런 컨텐츠 업데이트는 예고 후 몇 달 뒤에야 이루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소름 끼치게 빠른 일이었다.

“저게 뭔·····”

그 어느 때보다 북적거리는 도시, 한 방향으로 향하는 인파를 보며 가온은 혀를 찼다.

한편 지존무쌍은 그 인파에 섞이고자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복동이, 같이 가야지?”

지존무쌍이 웃으며 묻자 이복동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 전 훈련하러 갈게요.”

“아니, 왜?”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얼굴 내보이기 쑥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복동이 입 다무는 가운데, 가온은 훌륭하단 의미로 웃으면서 엄지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지존무쌍을 훈계했다.

“지존무쌍 아재도 돈 아껴야지, 응? 평소에 돈, 돈 거리면서 왜 이런 데 돈 쓰려 해. 실제 애인이랑 정 나누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번 즐기고 끝나는 데 왜 돈을 써?”

지존무쌍은 평소에 가온에게 아첨하는 수준으로 살갑게 굴었지만, 지금만큼은 예외였다.

불쾌감마저 느껴질 만치, 퉁명스레 대꾸했다.

“아니, 가온 씨는 나 같은 인간 중년 나부랭이 이해 못 하지.”

“내가 왜 이해를 못해?”

“가온 씬 우드엘프라 순결 지켜야 하는 거잖아?”

“우드엘프라고 다 성행위 안 하는 거 아닌데? 생각보다 많은 우드엘프들이 애만 안 가지면 순결하단 마인드야. 숲에서 엄청나게 즐겨대.”

“그래도······ 가온 씬 나 이해 못 하지.”

“왜?”

“가온 씨는 잘생겼잖아. 난 아니라고.”

그리 말하더니 지존무쌍은 기어이 새로 생긴 몽마관인지 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가온이 그 심정을 이해할 이유는 없었다.

가온은 배신감마저 느끼며 검술 교습소에 향했다.

그 안에서 열심히 칼을 휘두르던 와중이었다.

한 남자가 접속했는데, 이틀 동안 접속하지 않았던 인원이었다. 그것을 알아본 가온은 반색했다.

“오, 희엄 씨! 돌아왔어요? 플레이어들이 참마황 무찌를 거란 광고 보고 돌아온 거 맞지?”

“어, 음. 예.”

“잘 돌아왔어! 그럼 어서 칼 들고······”

“아, 다시 연습할 거긴 건데······ 오늘은 말고”

그 말만 듣고도 가온은 이 남자가 무얼 하러 게임에 복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어색하게 웃더니, 몇몇 짐을 챙기고는 교습소를 나섰다.

‘하여간 인간들이란.’

속으로 욕설을 지껄이며 가온은 훈련을 재개했는데, 사실 요새 훈련만으로 진전은 크지 않았다. 혼자서 하는 훈련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검술 교관의 가르침마저 요새 와서는 썩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젠 모든 면에서 저보다 나으신데 말입니다······ 대련이야 원하시면 언제든 해드릴 수 있지만, 별 도움은 안 될 것 같네요. 이렇게 빨리 늘 줄은 몰랐습니다. 언제 봐도 놀라운 재능에 노력이 합쳐지니 정말······”

어쨌건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훨씬 나은지라, 가온은 칼을 휘둘렀다.

그러면서 땀을 흘리던 와중이었다.

약 두 시간 지나, 검술 교습소에 지존무쌍이 벌컥 들어왔다.

“가온 씨! 역시 여기 있네!”

불만이 가득했던 가온은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날 왜 불러.”

“지금 가온 씨 도움이 필요한데······”

또 일인가? 사이버 매춘에 돈 써서 더 벌고 싶어졌나? 가온은 단호하게 거절하리라 맘먹고는 무슨 도움이 필요하냐 물어보았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에 눈을 크게 떴다.

*******

“노골적인 성애 표현, 성기 표현······ 이거 허가 누가 내줬어요? 아니, 게임위에 심의받은 적이나 있나?”

“정확히는 게임 자체는 심의하고 허가해줬지만, 이번에 생겨난 새로운 내용은 심의한 적이 없지요.”

“처음에 한 번 심의받았음 끝인가?”

“물론 아니죠. 보통 게임이면 새로운 뭔가를 추가할 때 한국법에 저촉되면 내지 못합니다.”

“그럼 아무런 상의 없이 그냥 낸 거다 이거지? 하여간 아스 새끼들, 전쟁 자금 충당하려고 별짓을 다 하네. 그래서 이걸 그냥 놔둘 거야?”

“그냥 놔두지 않으면요?”

“당연히 한국 서비스 못 하게 막아야지. 지금 바로!”

“아니, 그건 좀······”

“그냥 현행법상으로도 명백한 위반 아니야? 성적 표현에 관대한 일본만 해도 성기 직접 표현은 불법이야! 하다못해 떡 치는 게임에도 모자이크를 씌우는데, 이게 뭔······ 보고서 보니까 가관이네. 실제 성행위랑 아무 차이가 없다고? 오르가즘도 느낄 수 있어? 그럼 게임 내에서 도파민 같은 뇌내 화학물질도 분출하나 본데, 사실상 전자마약 아냐 이거? 이걸 금지 안 하는 게 말이나 되나?”

“그래도 이 게임이 보통 게임이 아닌 걸 고려해야 합니다. 이 게임사 회장은 아타락시아입니다. 누군지 알죠?”

“그래, 교과서에서 보긴 봤지. 런던 공습, 교토 공습한 반제국주의 드래곤······ 그래서 게임 중지시키면 그 도마뱀이 서울을 공습하겠대?”

“그건 아니더라도, 원한을 사거나 하는 식으로 자극해서 좋을 게 없지요. 전쟁이 다가온 지금 적을 늘리는 건 현명하지 못한······”

“아, 그래. 전쟁 났을 때 후환이 두려워 전쟁 자금 충당하게 내버려 두겠다 이거지? 뭔 미친 소리를······”

“단순 후환이 두려워서 내버려 두려는 건 아닙니다.”

“그럼?”

“아시다시피 흉턴의 젊음과 이 게임은 밀접히 관련돼있습니다. 그리고 영향력 있는 몇몇 플레이어들은 이번에 자신들이 연합해 흉턴의 회춘을 저지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아니 씨,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리 아들 중학생인데, 걔한테나 먹힐 소리네.”

“게임 하나가 그리 중요하다니 웃기긴 하지요. 하지만 이 경우에는 예외로 쳐야······”

“아니, 생각을 해봐. 흉턴이 게임에서 뭘 달성하지 못해 늙어 죽을 지경이라 쳐보자고. 그럼 엄청 절박하겠지? 그렇담 저쪽은 군대라도 동원해서 목적을 이루겠고. 그걸 민간에서 어떻게 막아? 만약 고작 민간 차원에서 막을 수 있다면 그건 저쪽에서 일을 썩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단 얘긴데, 그럼 사실 저쪽은 그다지 절박하지 않다는 얘기잖아. 어찌어찌 막아봤자 별 대단한 성과는 없으리란 거고.”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은 있지 않습니까? 설령 그 게임이 엄청나게 중요하단 게 드러나더라도, 우린 그 게임에 병력을 동원해 흉턴의 목적 달성을 막는 등 정부 차원에서 뭘 할 수가 없는 처집니다. 저쪽을 지나치게 자극할 게 뻔하니까요. 그 와중에 민간 차원에서 도움 될 만한 뭔가를 하겠다는데, 굳이 막을 건······”

“아, 그래? 그럼 맘대로 해요. 아스 새끼들이 사이버 매춘을 하든, 뇌내마약을 뿌리든 다 내버려 두라고······”

*******

“매춘업소에 하고가 나타났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가온의 물음에 지존무쌍이 대답했다.

“그게, 웬 친구가 거기 가서 서비스 받으려다 생긴 일인데······”

몽마관에는 웬 몽마 NPC가 있다고 했다. 그 몽마 NPC에게 자기가 원하는 이성을 말하면 그 모습의 이성과 즐길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웬 남자가 몽마를 자기가 원하는 이성으로 변신시킨 순간, 창문을 뚫고 웬 남자 엘프가 나타났다고. 그 칼이 달빛으로 빛났다고 말했다. 그 달빛이 자신을 베어버렸다고도.

“검기 쓰니까 소드마스터인 모양이고. 엘프인데 ‘그’ 가온은 아닐 테고, 우드엘프 소마들은 이 게임 출연 못 했으니까 소거법으로 하고 아뇨?”

“아니, 그런데 그놈 세계수 근처에나 나오는 놈인데 인간 도시인 여기 왜?”

“그거까진 모르지.”

너무 이상한 일이라 당장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로그아웃하여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놀랍게도 도시에 하고가 출현했다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것도 이 도시뿐만 아니라, 이번 업데이트가 적용된 각 도시에서 하고 출현 목격담이 인터넷 사이트에 즐비했다.

하고는 특정한 조건에서 나타난다고 했다.

그 조건이란 어이없게도 간단했다.

나물아비 : 그러니까 엘프랑 하려고 하면 하고가 딱~! 나타나는 거라고?

태동아 : 그런 듯?

진갑 : 아니 이것들이 평소엔 귀쟁이니 뭐니 부르면서 다 엘프랑 못 즐겨 안달이여?

인터넷 글을 확인한 뒤, 가온은 다시 로그인했다. 그 어느 때보다 굳은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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