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16 길드장 강주석 - [1]
“어우 씨, 우리 복동이 불쌍해서 어떡하지? 전쟁 나면 끌려가는데······”
“공익인데 제가 왜요?”
“예비군 아직 안 갔어? 공익도 전쟁 나면 끌려가는 거야 인마.”
이복동과 지존무쌍이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처를 보니 국회의원 엄근오였다.
“전화 좀.”
자리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는 전화를 받았다.
“내 연락처는 어찌 알고?”
전화기 너머 엄근오는 우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례를 사과드립니다, 경. 돈을 써서라도 긴급히 경의 연락처를 구한······」
“긴급히? 왠가.”
「가온 경께서 만찬회에 나타나질 않으시니, 각국 인사들이 당황하고 있어서······ 방금은 제게 웬 대사가 이렇게 묻더군요. 전군에 긴급경계태세를 발령해야 하는 게 아니냐 고 말입니다」
“영국인이었나, 프랑스인이었나?”
「둘 다였습니다······」
“그거 좋군.”
엄근오가 안절부절 못하는 가운데, 가온은 잠시 잔인한 상상을 했다.
‘이참에 루브르 박물관이랑 대영박물관에 깜짝 방문하면 내 이름이 네이버 검색어 순위 1위 찍겠는데.’
양국에 깜짝 방문하기는 쉽다. 텔레포트 몇 번이면 되니까.
방문 당한 두 나라는 소드마스터가 아무런 전조 없이 자국에 나타났음에 경악할 것이다. 그 방문이 다른 종류의 선전포고일지 몰라 두려워하리라.
자신은 충분히 그들을 두렵게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이번만은 넘어가 주지.’
가온은 자비를 발휘하기로 했다. 스마트폰의 인터넷 창을 보면서.
‘이미 1위 찍었으니.’
자신의 방문이 한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준 모양이다.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엔 가온에 대한 관심이 폭발한 마당이었다.
검색어 순위 1위, 가온 팬클럽 주소. 가온이 흡족하게 웃던 그때였다.
검색어 순위가 변동했다. 새로운 검색어들이 부상했다.
‘참마황’, ‘3차 대전’, ‘한국 멸망’ ‘전쟁 시 한국 부동산 영향’ 따위 키워드가 ‘가온’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냥 방문해?’
가온이 굴욕과 분노를 느끼며 이를 갈던 그때, 전화기에 흐르던 침묵이 깨졌다.
전화기에서 엄근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온 경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왜 제국주의자들의 눈치를 보아 행동해야 하나 싶으시겠지요. 물론 부당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일로 인해 심히 난처해질 수 있는 저희를 위해서라도 모쪼록 돌아와 주시면······.」
가온은 분노를 숨기지 않은 채, 전화에 대고 말했다.
“내 그러지.”
폴리모프를 해제하는 데에는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감―」
가온은 텔레포트했다.
“―사합니, 억!”
그 앞에 엄근오가 있었다.
가온은 무표정하게 물었다.
“이제 됐나?”
“예? 예! 그럼······”
연회장에 들어서니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가득했다.
그 외국인들은 가온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쭈뼛거리면서 다가와 허리 숙여 절했다.
“가온 경? 만나 봬서 영광······”
가온은 그쪽을 쳐다보지 않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표정한 채, 입 또한 열지 않았다. 철저한 무시.
외국인 대사가 말을 더 해도 되나 고민하는 가운데, 가온은 엄숙한 표정으로 ‘급한 일 생겨서 가봄ㅠ 음식값 계산했으니 걱정 말고’란 메세지를 두 친구 후보에게 보냈을 뿐이다.
결국 만찬이 끝날 때까지 가온과 말을 섞는 데 성공한 외국 인사는 없었다.
한국만이 이 소드마스터와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그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지, 그러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엄근오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
“아니, 내 쪽에서 사과해야지. 미안하네. 일단 이만 가볼까 하는데, 괜찮겠나?”
“예, 제가 배웅하지요.”
둘을 태운 리무진이 천천히 움직이던 와중이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지, 아까부터 계속 입술을 달싹이던 엄근오가 입을 열었다.
“결국 한국도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뭔가 방법이 없겠습니까?”
“전쟁을 피할 방법이라면, 나야 모르지. 세상 정세에 어두운 야인 아닌가.”
“참마황은 가온 경을 아주 존중하는 모양이던데요. 한 말씀 해주시면 도움이 될지도······”
“누군가의 말 한두 마디로 바뀔 생각이 아니야. 한국을 전쟁에 참여시키겠다는 그 발상은 하루아침에 떠오른 게 아니니까. 참마황은 꽤 전부터 그리 마음먹고 있었네.”
“친우의 나라임을 생각해주셔서라도, 제발······”
가온은 그 친우는 영웅 따위가 아니라 연쇄살인마라고, 전쟁이 벌어져 한국인들이 죽어 나간다면 기뻐할 거라고 쏘아붙이려다 말았다.
생각해보니 친우는 아니더라도 친우 비슷한 이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을 터였다. 친구 후보들을 포함해서, 가온이 알고 지내는 거의 모두가 한국인들이었으니까.
그 점을 고려하여 말했다.
“그래, 내 말이라도 해보지. 도움이 될 정보를 얻으면 전해주겠고.”
이토록 호의적인 대답을 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오늘 겪은 골치 아픈 일들로 시체 같았던 엄근오의 표정에 생기가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차원문을 통과해 텔레포트 몇 번을 하니, 바로 자신의 요새였다.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오늘 아쉽게도 검색순위 1위에서 탈락해버린 자신의 팬카페에 들어갔다.
상당한 글들이 새로 올라와 있었다. 가온 경 잘생겼다느니 어쩌느니 칭송들을 즐기던 중이었다.
웬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가온오빠사랑 : 3차 대전이고 뭐고 한국은 걱정 없을 거임.
가온 오빠가 한국 편이잖아?
친구 나라를 지켜주겠지! 평화를 수호하는 화로의 여신의 대전사기도 하고
이 웃기는 의견에는 놀랍게도 웃기는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가온러브 : 가온 오빠 한국을 지켜주세요!!!
나여고생인데 : 난 가온 오빠 믿어!!
다이아 : 여신님이 평화를 지키라 하셨지? 여신님 말씀 들어! 안 그러면 떼찌한다!!
가온은 좋아하다 말고, 짜증을 느꼈다.
‘웃기는 인간들······’
전쟁에 끼라느니 전쟁을 막으라니. 둘 중에 뭔가 하라는 것은 질색이다.
가온은 그 게시글을 나와서는 계속 마우스만 따닥거렸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게임에 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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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 늘 그렇듯 가온이 향한 곳은 검술 교습소였다.
평소 같으면 가온이 가장 먼저 들어왔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어제 열심히도 다른 글들을 탐독하다가 너무 늦게 잠이 든 탓이다.
과연 선객들이 이미 있었다.
한 ARMA 회원이 가온을 보며 반색했다.
“아, 가온 씨! 들어왔네!”
왜 저리 반가워하나? 의아함을 느끼며 가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아주 늦게 접속했음에도 검술 교습소가 한산했다.
“왜 이리 사람이 줄었어요?”
가온의 물음에 ARMA 회원은 한숨쉬었다.
“몇몇이 이제 여기 접속 안 할 거래. 오프라인 모임에만 나올 거라나······.”
“예? 왜요?”
“이 게임이 아스 회사에서 파는 거잖아? 회장은 주전파 드래곤이고. 이 게임에 들이는 돈이 다 한국 침략에 쓰일 건데 어찌 계속 이 게임을 할 수 있느냐 이거지. 아예 가상현실 기기를 팔았다는데, 졸지에 ARMA 회원 이 할이 하루 만에 증발했어······”
“사람들 행동 참 빠르네요.”
“가온 씨는 겜 안 접을 거지?”
“예, 저야 뭐.”
그리 대화를 나눈 뒤에는 연습을 시작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조금도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지겹게도 또 방해꾼이 있었다.
검술 교습소에 지존무쌍이 걸어와 말을 건넸다.
“가온 씨? 의뢰가 들어왔는데 이번엔 받아줄 거지? 우리 일 안 한 지 꽤 됐잖아, 응?”
가온은 짜증스레 물었다.
“소드마스터 관련된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싫어.”
“아니······ 이건 진짜 중요한 일인데······”
“중요한 일?”
“그게, 한국의 운명을 위한 거래!”
가온은 뭔 의뢰길래 나라의 운명씩이나 걸렸나 싶어 가보기로 했다.
백두 길드에서 나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백두 부길드장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가온 씨가 류시범 씨와 친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이 도시도 무사할 수 있었다고 들었고요.”
“그런데?”
“알다시피 백두 길드와 백골부대가 전쟁 중이잖습니까? 이게 한국에 참 안 좋은 일이거든요. 서로 싸우면서 힘 깎이면 프로게이머들 전체 파이가 줄어들어요. 모두 돈을 못 벌게 된단 말입니다. 가뜩이나 어제 뉴스 때문에 돈 많은 유저도 많이 접고, 스폰서들 후원이 줄어서 돈 벌기 더 힘들어질 판인데······”
“아스와의 전쟁 때문에 역시 사람들이 많이 접고 있나?”
“예, 뭐······ 이대로면 갈수록 돈 벌기 힘들어질 거 같은데요. 더 늦기 전에 빨리 한국 유저끼리 전쟁을 그만둬야 합니다. 그러려면 평화 협상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류시범 그 인간은 우리쪽 평화의 사절을 아예 만나주지도 않습니다. 가온 씨가 같이 가주시면 만나줄 것 같은데, 동행을 부탁드려도 될지······”
“한국의 운명이 걸렸단 말도 있던데, 그건 또 뭔데?”
“아, 그게요. 우리 길드장이 주장하는 건데······”
백두 부길드장은 떨떠름한 말로 무언가를 설명했다.
다 듣고 난 가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러지.”
*******
류시범도 어제 뉴스를 봤다. 아스와 한국의 전쟁 가능성을.
그 암살범이 한 말은 사실이었다.
‘참마황이 게임 보상을 얻어 새 육체 얻는 동시에 전쟁이 벌어질 거랬나?’
그 말마저 사실이라면? 자신은 한국이 전쟁에 휘말릴 날을 실제로 앞당기고 있었던 셈이다.
정말 자신이 잘못했나?
류시범은 잠시 죄책감을 느끼려다 말았다.
어쨌건 자신은 죽을 뻔했고, 그 사실에 분노를 느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사실 종교와 국적 모두 바꿔버린 지금 후회하긴 늦었기도 하다.
하려던 일을 계속할 것이다.
게임에서나마 참마황에게 봉사하는 일을.
그 봉사의 하나에는 소위 ‘쩔해주기’가 있었다. 버스라고도 부르는 행위. RPG에서 저레벨 플레이어의 레벨을 쉽게 올리도록 도와주는 행위다.
그리고 지금 쩔을 받는 플레이어는 소름 끼칠 만치 거물이었다.
실제 소드마스터가 게임에 접속해 있었다.
한 나라 독재자의 우승을 홀로 막고 있다시피 한 소드마스터 가온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참마황은 아는 소드마스터 중 하나를 게임에 파견보냈다.
소드마스터 나루가 말했다.
“나 기관총 쏘라고?”
“예.”
“귀 아픈데. 활은 없나?”
“말씀드렸다시피 적을 많이 죽여야 강해질 수 있는데, 활로 적을 죽이자면 느릴 겁니다. 기관총으로 한꺼번에 쏴 죽이는 게 레벨 업이 빠르지요. 그리 레벨 업을 여러 번 하시면 기본적인 신체능력을 확보하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야 직접 칼을 들고 싸우시는 게 효율이 좋을 겁니다. ”
“음······”
나루는 잠시 기관총을 만지작거리더니 신음했다.
“뭐 이리 복잡하게 생겼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장전이나 기타 조치는 이미 다 돼있습니다. 그냥 방아쇠만 당기시면 됩니다.”
“나 방아쇠 당길 줄 몰라.”
류시범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루 공께선 1차 대전이랑 2차 대전 모두 참전하셨다고 들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니? 너도 나이를 먹어봐라. 새로운 걸 배우는 게 힘들어질 테니. 어린 친구가 왜 이리 어른 존중을 할 줄 모르지? 조선 사람들은 유교를 익혀 단 한두 살 차이만으로도 깍듯해진다더니 배교자가 여기 있네.”
또다시 엘프에게 유교로 공격당하는 상황, 류시범이 얼이 빠지던 중이었다.
무전을 통해 부하에게서 보고가 들어왔다.
「길드장님? 백두 길드에서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또?”
「예. 그리고 또 휴전 요청입니다. 자신들이 사절단이라 주장합니다」
“등신들이, 뭔 게임에서 사절단 타령하고 지랄이야? 그냥 다 쏴버려.”
류시범이 명령을 내린 잠시 후였다. 무전기에서 다급한 통신이 전해져왔다.
「아니, 이게 뭔? 사절단 중에 한 명이 칼로 총알을 막는······ 내 무전기 뺏지······ 어린놈의 자식이 어디서 어른 말씀하시는 데 총질이야! 류시범이 너 인마, 국적 바꿨다고 바로 유교 버리기냐? 야, 넌 또 왜 어른이 쓰는 물건 뺏으려 하니? 뭐? 원래 네 거라고? 어른이 좀 쓰자는데 이런 버릇 없는······ 그래, 더러워서 준다 줘. 다시 받아!」
“누군지 알겠군.”
류시범이 신음하는 가운데, 통신병은 움츠러든 목소리로 물어왔다.
「어찌 대처해야겠습니까?」
류시범은 신음하며 말했다.
“모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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