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반지성 - [2]
모두의 불안과 달리 사냥은 성공적이었다.
기어이 가온은 토끼라 불러야 할지, 저주받은 괴생물이라 불러야 할지 모를 생물들을 잡아 오는 데 성공했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일행 중에 우드엘프들이 많았는데, 그 모두가 사냥의 명수였다. 숲에 사는 종족은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소리를 듣고 근처에서 움직이는 것을 파악했다. 그것이 큰지 작은지, 사냥감인지 아니면 피해야 할 괴물인지도.
물론 그레이엘프도 엘프였다. 가온은 첫날에나 좀 허둥댔을 뿐, 며칠 뒤에는 금세 익숙해져서 우드엘프들의 사냥을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가온의 할 일에 광원 제공하기에 사냥하기가 추가된 셈이었다.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반지성은 가온을 따라 사냥에 참가하며 그 사실을 확인했다.
“또 괴물······”
산양의 뿔을 가진 흑마가 질주해오고 있었다.
도망칠 수 없다고 판단한 가온이 외쳤다.
“싸워!”
흔히 짐승을 사냥할 때는 미끼 역할이 필요한 법인데, 가온이 그 역할을 자처했다.
한편 반지성은 노예 혹은 친구로서 그 뒤에 섰다.
이후로는 사투가 벌어졌다. 고작 말 한 마리 상대하는 데 스무 명이 달려들었지만 싸움은 결코 여유롭지 않았다.
괴물의 힘이 지나치게 강했다. 몸 곳곳에 칼이 찔린 와중에도 괴물은 미쳐 날뛰었다.
결국 싸움은 수십 분을 끌었다.
정면에서 도발하던 가온이 목을 그어서야 괴물은 비명 질렀다.
그 목에서 피 분수가 쏟아져 나왔지만 괴물은 죽지 않았다. 기어이 살아서 도망쳤다.
이곳에서 사는 괴물들이 모두 이런 식이었다. 모두 이상하게 강했고, 이상하게 생명력이 질겼다.
이런 괴물들을 상대로는 살아남았다는 데만 만족해야 할 판이었다.
“잘하셨습니다, 사제님!”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로 가온은 웃었다. 일행에게 자신감을 보이기 위한 미소.
미끼 역할을 하는 동안 그 팔이 부러졌음을 눈치챈 것은 그 옆에 있던 반지성뿐이었다.
가온과 함께 피를 뒤집어쓴 반지성은 속으로 신음했다.
‘몸이 날랜 우드엘프들로 사냥단이 구성돼서 망정이지, 인간들이 왔으면 진작 대여섯 명 죽었겠네······’
그 불길한 예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맞았다.
며칠이 흘렀다. 엘프들과 인간 노예 한 명으로 구성된 일행은 몇 번이고 사냥을 마쳤다.
인간 소년들은 자기네도 그럴 수 있다 믿었다.
“저희도 싸우겠습니다.”
“위험한데······”
가온이 만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제님도 사냥에 나서시는데 저만 빠질 순 없죠!”
인간 소년 그숨은 호기롭게 말했는데, 주변 인간 소년들도 불안한 표정으로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인간 소년들도 사냥 무리에 꼈다.
그리하여 최초로 소년들 사이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냥 도중에 인간 소년 두 명이 죽었다.
조그만 사슴의 발길질이 소년 둘의 갈비뼈를 으깨버린 것이다. 짐승의 발길질을 엘프라면 쉽게도 피했겠지만 인간 소년들은 그러지 못했다.
입에서 피를 흘리는 시체 두 구.
조그만 소년의 몸뚱이였지만 옮기는 것은 끔찍한 중노동이었다. 가온과 함께 시체를 옮기며 반지성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시체 두 구 앞에서 소년들은 대화를 나누었다.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천국이나 지옥 아니면 환생하러 가겠지······”
“어떻게? 천상과의 연결도 끊겼는데 내세에 갈 수가 있나? 신의 힘조차도 여기 닿지 않는 마당인데······”
모두 사제를 바라보았지만 가온은 그 물음에 대답해줄 능력이 없었다.
장례조차 제대로 치를 능력이 없었다. 아스의 장례 풍습은 화장이지만 크게 불을 피울 땔감조차 없었던 탓이다.
가온 혼자서, 묵묵히 인간 소년을 묻었다.
*******
이로써 인간 소년들은 사냥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냥에서 빠졌다.
그러니까 엘프와 노예 하나가 어둠 속으로 떠나면 인간 소년들은 마법사 곁에 붙어 옹기종기 불안에 떨어야 했단 소리다.
“씨발 놈의 거인. 좆같은 거인······”
모두 그 망할 거인이 차원문에서 떠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그놈의 거인은 절대 차원문에서 떠나지 않았다. 혹시 떠났을까 싶어 몇 번이고 찾아가봤지만 마찬가지였다
1년 뒤에도, 2년 뒤에도. 거인은 차원문 앞에서 미동조차 없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나자 소년들은 미쳐갔다.
여기 오기 전, 어른들은 2년쯤 지나면 훈련을 마치고 나오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어른의 말이 으레 그렇듯, 거짓말이었다.
그 누구도 이렇게 오랜 세월 갇혀있어야 한다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
4년째.
소년들은 어둠 속에서 또 다른 거인을 봤다.
그 거인은 온몸에서 희미한 빛을 내며 돌아다녔다. 인간의 머리가 달린 괴물을 씹어먹으며.
여기 사는 괴물들은 잘 죽지 않는다. 몸이 씹히는 와중에도 괴물은 내내 인간처럼 비명 질렀다.
끔찍한 스트레스, 괴물과 함께 소년들도 발작적으로 비명 질렀다.
어둠 속에 괴물이 많았다. 너무 많았다.
“두렵습니다, 사제님. 너무 두려워요······”
덜덜 떠는 소년들을 진정시키는 것은 당연히 사제의 몫이었다.
자신과 나이 차가 거의 나지 않는 소년의 손을 붙잡고, 가온은 기꺼이 그들의 괴로움을 들었다.
정신상담. 그렇게 가온의 임무 하나가 추가되었다.
오늘도 겁에 질린 소년 하나를 달래준 뒤, 가온은 불침번을 섰다.
겨우 눈을 붙여서는 제일 일찍 일어나 취사 준비를 했다. 노예인 친구와 함께.
“자넨 쉬지?”
반지성의 말에 가온은 국자를 들었다.
“됐어.”
이제 가온은 국자를 젓는 솜씨가 익숙하기 그지없다. 그것을 본 반지성은 속으로 감탄했다.
‘왕자라더니. 그것도 왕위계승자······’
어떻게 노예가 하는 일을 자기가 할 수 있느냐 비꼬던 오만한 귀족 사제는 여기 없다.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려 발버둥치는 사제가 있을 뿐이다.
모두가 일어나자 식사를 차린 뒤, 가온은 괴물들과 싸우러 어둠 속에 발을 디뎠다. 반지성이 그 뒤를 따랐다.
계속해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니까, 7년이 흘렀다.
*******
7년 동안 모두 어둠에 익숙해졌다. 엘프가 아닌 반지성마저 어둠 속에 뭐가 돌아다니는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 사실은 적이 어디서 오는지, 언제 오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7년째에는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면 아무도 안 죽을 거 같은데.”
그리 말하면서 가온은 웃었다. 친구가 오랜만에 웃는 걸을 보며 반지성은 안도했다.
그 누구도 죽지 않도록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뭐, 여전히 사람들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이 어둠 속에서 그들은 7년이나 살아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들은 이제 거인이 차원문에서 떠났는지 보러 가지도 않았다. 모두 나가기를 체념한 것 같았다.
그러나 어둠 너머의 괴물들은 체념마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7년 하고도 335일 되는 날,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거의 소리 없이. 그래서 그 감지가 늦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거대한 날짐승을 보며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드래곤? 여기 왜······”
날아온 드래곤은 주둥이를 벌렸다.
드래곤은 인간 하나를 물었다.
그리고 씹었다.
뼈가 부러지는지 와그작 하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드래곤은 그리 한바탕 식사를 마치고서야 만족했는지 물러갔다.
또 다시 누군가의 죽음.
벌벌 떨고 있던 사람들의 위아래 턱이 마구 떨렸다. 겨우 잊고 지냈던 공포심이 되살아났다.
“나가야 해!”
웬 인간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여기서 나가야 해!”
“어떻게.”
웬 우드엘프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이자, 인간은 계속 외쳤다.
“문이 어딨는지 알고 있잖아! 가로막고 있는 거인을 쫓아내면 돼!”
그 말에 가온이 대답했다.
“어떻게······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위험하다고 안 해? 이대로 늙어 죽게 만들 셈이야? 난 이제 소년도 아니야! 이미 스물다섯이야! 아, 엘프들은 안 늙지?”
그리 말하며 인간은 엘프들을 노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엘프들은 빠지든가! 사정 급한 인간들끼리 알아서 해볼 테니!”
그 말에 몇몇 인간들이 무기를 들었다. 그러고는 어둠 속으로 나아가려는데, 가온은 그들을 가로막으려다 말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만 싸우게 둘 순 없지요.”
“그럼?”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위험한 일이니, 다른 분들은 남고······ 몇몇 분만 가서 과연 거인에게 공격이 먹히는지 안 먹히는지나 시험해봅시다.”
반지성이 말했다.
“내가 뒤따르지. 어차피 나도 늙어죽기 전에 나가야하는 건 마찬가지니.”
가온이 고개를 까닥여 감사를 표했다. 반지성은 애써 웃어 자신감을 드러내 보였다.
그래, 나름대로 자신이 있긴 하다. 사냥부터 싸움까지. 그동안 어찌나 칼을 많이 휘둘렀는지 모를 지경이다.
덕분에 힘이 부쩍 늘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늘었는데, 요즘에는 괴물이 단칼에 베여나갈 정도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거인을 상대로도 통할지도 모른다.
공포와 은근한 기대 속에서 열 명이 전진했다.
칠 년 전부터 그랬듯, 거인은 차원문에 웅크려 있었다. 그 사실에 문득 분노를 느낀 가온이 외쳤다.
“공격!”
인간들이 마구 달렸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전술이고 뭐고 없었다. 다들 그저 눈에 보이는 거인의 신체 부위에 칼을 마구 휘두르기 바쁠 뿐이었다.
이 와중에 거인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소년들은 더욱 세게 칼을 휘둘렀다.
가온도 붙어서 칼을 휘둘렀다. 그 힘이 여기에서 제일 강했다.
거세게 공기를 가른 칼이 거인의 피부를 살짝 찢었다.
“와, 사제님 공격이 먹혔······”
누군가가 환희하는 가운데, 거인도 방금 그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거인에게서 반응이 있었다.
거인이 얼굴을 살짝 돌렸다.
그리하여 그 얼굴과 차원문이 살짝 어긋나자, 그 틈새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 순간, 모두 잠시 몸이 굳었다. 몇몇은 눈이 부셔서. 몇몇은 오랜만에 보는 햇빛에 감격해서.
그때 거인이 손을 휘저었다.
이 거인이 이토록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줄은 모두 처음 알았다.
거인의 큼지막한 손은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휘둘러졌다. 그리고 초월적인 속도와 중량이 합쳐지면?
충격파가 발생했다. 그 끔찍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졌다.
죽음이 퍼져나갔다.
비명조차 없었다.
누군가는 배가 터져서, 누군가는 머리가 찢어져서 죽었다. 다른 대부분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었다.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모두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가운데, 가온과 반지성만이 몸을 일으켰다.
전의는 이미 상실했다. 대적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는 어렵지 않았다.
“도망······”
반지성이 중얼거리자 가온이 말을 받았다.
“도망칠 필요도 없어. 시체나 수습하지.”
반지성은 거인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인은 다시금 차원문에 얼굴을 들이박고 있었다.
방금 손 하나만 휘저었을 뿐 더 움직이지 않았다.
손을 휘저은 것은 공격이라기보다는 주변에 꼬여든 모기를 떨쳐내려한 것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모기가 몰려들었다 하여 하던 일을 그만두지는 않는 법이다.
그야말로 아무 성과가 없는 죽음이었다.
근력이 무시무시하게 세진 덕에 이제 시체를 옮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각자 시체 하나씩을 옮기는 중에 가온이 중얼거렸다.
“그들을 막아야 했는데.”
반지성이 혀를 찼다.
“무슨 수로? 다들 미쳐 날뛰는 중이었는데. 거기서 막아봤자 더 큰 사고를 쳤을걸.”
“그래도 막아야 했어.”
다음 순간, 반지성은 기겁했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옆에서 걷는 친구에게서.
‘이 친구는 차원문이 막혀버린 그 날도 울지 않았는데.’
칠 년치 억울함이 한꺼번에 밀려온 것 같았다. 반지성은 이 엘프가 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반지성은 위로하려다 말았다. 위로될 만한 상황이 아니니까.
한숨을 쉬더니, 가온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이번에 참 많이도 죽긴 했지.”
가온이 그걸 누가 모르냐고 소리치기 전, 반지성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참에 장례를 집행하게.”
“장례를?”
“성대하고 엄숙하게. 사제답게 말이야.”
가온은 여전히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장례를 치러봤자 소용없는 일이야. 천상과의 연결이 끊겨 신들께서 그 영혼을 거둬주지도 못하시는 판인데······”
“지금 신은 중요하지 않아. 아스에선 몰라도 우리 지구에선 신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장례는 그 자체로 위안을 주었어.”
“가짜 위안엔 가치가 없어!”
“아니, 가치가 있네.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산 자들에게 의미가 있어. 산 자들을 위해 장례를 치르게.”
“산 자를 위해서?”
“그래, 당연히 살아있는 나를 위해서도. 나야말로 지금 위안이 절실하다네. 그래 주겠나, 친구?”
그리 말하면서 반지성은 어색하게 웃었는데, 딱히 위안이 필요해보이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위안을 주려는 표정이다. 위안은 사제인 자신이 줘야하는 것인데.
“내······”
이 순간, 가온은 이 친구가 어느새 어른이 된 것 같다고 느낀다.
착각이 아니다. 이제 반지성은 스물다섯 살이고, 그 얼굴은 명백히 엘프보다 나이가 들었다.
“······내 그러지.”
잠시 후, 시체를 모두 한곳에 옮겼다. 그 앞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온이 선언했다.
“장례를 집행하겠습니다.”
모든 자원이 부족한 세계였지만, 이번만큼은 아끼지 않고 자원을 썼다. 기름이며 얼마 없는 땔감까지 써서 불을 피웠다.
그 앞에서 사제가 기도문을 읊었다.
“재를 더럽다 여기지 말라. 재 속에서 불사조가 날아오를 테니.”
불이 일렁인다. 죽은 자들은 그 아래에 재가 되어간다.
“재를 거부하지 말고, 그 속에 편히 묻히라.”
일렁이던 불이 치솟는다. 사람들이 순간 놀랐지만, 기도에 집중하는 가온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기도를 올렸다.
“여신이시여. 재에 묻힌 불씨를 거두소서.”
그리고 기도에 대답이 돌아왔다.
‘네 여신은 기꺼이 그러리라.’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 천상에서 나는 것이었다.
“당신께선?”
가온의 물음에 불과 화로의 여신께서 응답하시었다.
‘네 여신이 왔노라.’
그 순간, 가온이 외쳤다.
“여신께서 이 자리에 임하셨다!”
그 말을 증명하듯, 여신께서 사제의 입을 빌려 말씀하시었다.
“‘이제 여신이 너희와 함께하리라.’”
불길이 치솟았다. 용오름처럼 힘있게 솟구친 불은 새의 형상과 같은 연기를 피워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저 사제가 연기하는 것이 아님을 모두 확신했다. 저게 정말 신의 목소리임을 그냥 알 수 있었다.
환희. 더없는 환희가 모두에게 찾아왔다. 심지어 아스의 신과는 인연 없는 조선인마저도 감격에 겨워 엎드려 절을 했다.
당연히도, 사제의 반응이란 말할 것도 없었다.
지극한 감격 속에서 가온이 물었다.
‘어떻게?’
여신께서 대답해주시었다.
‘네 여신은 닫혀버린 그 문을 언제나 지켜보고 있었다. 방금 문이 조금이나마 열린 것을 보았노라. 그 즉시 들어왔나니.’
‘하지만 다시 닫혔는데······’
‘다시 닫히리라 짐작했기에 네 여신은 아예 정신을 여기로 옮겼다. 너희가 나갈 때까지, 네 여신 또한 여기서 나가지 않으리라. 네 여신은 이제부터는 내 대전사와 함께하리라.’
‘대전사라 하셨습니까? 하지만 그건 신도 중에 가장 강력한 전사만 맡을 수 있는 자리 아닙니까? 전 별로······’
‘이 세계에 있는 네 여신의 신도 중에선 가장 강해 보이는구나. 아니냐?’
그 말에 가온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눈물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예. 그렇지요.’
다음 날, 가온은 다시 사냥에 나섰다.
이번에는 엘프와 노예 하나만 사냥에 나선 것이 아니었다. 인간들도 함께였는데, 모두 죽음을 감수한 바였다. 이제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으므로.
물론 대놓고 앞에 세우지는 않았다. 그래서 인간들은 칼 한 자루씩을 들고 후방을 지켰는데, 그래서 다른 이들의 전투를 구경할 여유가 있었다.
그중에서 한 엘프에게 모두 주목했다.
“아니, 사제님 저리 잘 싸우셨나?”
그 감탄을 반지성도 공유했다. 가온을 보며 생각했다.
‘평소보다 잘 싸우는 거 같은데? 그것도 훨씬······’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가온은 어제보다 훨씬 잘 싸우고 있었다. 그 칼질은 수려했고, 낭비가 없었다. 하루 만에 어떻게?
즐거워보이는 가온의 표정을 보고서 반지성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저 친구. 평소에는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싸웠다. 누가 죽을지 몰라 언제나 긴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신께서 강림하시어 희망을 얻은 지금은 아니다.
어깨에 힘이 빠졌고, 동작은 훨씬 더 자연스러워졌다. 덕분에 이제 가온의 움직임은 마치 춤추는 것처럼 보였다. 춤사위 한 번이 괴물 하나의 죽음을 동반했다.
지금껏 함께 싸워온 우드엘프들조차 그 솜씨를 보고 놀라는 가운데, 사냥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괴물을 죽였고, 많은 전리품을 얻었으며 죽은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의 존경 속에서 가온은 캠프로 돌아왔다.
식사를 준비하려 하고자 가온이 냄비를 들었다. 그것을 반지성이 만류했다.
“이제 하지 마십시오.”
“응? 왜 존대?”
“드디어 친구가 아니게 되었지 않습니까? 신과의 연결이 끊긴 사제는 노예와 동급이라 하셨지만 이제는 아니니까.”
그 말에 가온은 잠시 놀랐다가 웃었다.
“아직도 그 말 기억하고 있었나? 철없는 시절에 한 소리인데.”
“그래도······”
“뭐, 너무 어이없는 친구 신청이긴 했지. 취소하고 싶을 만해. 그러니 다시 신청하자면······ 내 친구가 되어주겠나, 지성이?”
반지성은 울지 않으려 애쓰며 대답했다.
“기꺼이.”
*******
이후로도 사투의 나날이었지만, 반지성은 슬슬 이 생활에 여유를 느끼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조차 마찬가지였다.
모두 계속해서 싸웠고, 힘과 실력이 동시에 늘었다. 그러다 가끔 한두 명 죽으면, 전만큼 심각해지지 않았다.
덕분에 싸우다 말고 잡담할 여유까지 생겼다.
반지성도 다른 이들과 함께 즐거이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이 무리의 인원들은 이 지구인 노예를 자기네 일원으로 인정한 지 오래였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길, 장유유서의 규율은 지고하기에 단 한 살이 많아도 연장자의 말에 따라야······”
반지성의 말에 한 우드엘프가 의문스러워 했다.
“자네가 말하는 게 정말 유교가 맞나? 내가 아는 조선독립군들은 열 살 차이가 나도 서로 대등하게 친구를 하고 그랬는데?”
“아니, 지금 조선인 앞에서 유교를 가르치려는 건가?”
“그건 아닌데······”
사실 반지성도 제대로 기억나서 말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조선 땅에서 살아온 시간보다 여기서 살아온 시절이 훨씬 길지 않은가. 웬만한 조선의 것들은 죄다 잊어버린 지 오래다.
반면 아스의 것에는 완전히 익숙해졌다.
반지성의 아스어는 이제 조금도 어눌하지 않았다. 아스 말을 잘하다 못해 발음이 상당히 고급스러워졌는데, 왕족 친구와 어울린 덕이었다.
한편 뇌리에서 흐릿해져가는 조선을 계속 기억하기 위해, 반지성은 매일 잠들기 전 조선을 추억했다.
산골짜기에서만 살아서 많이 만나보지도 못했던 조선 사람들. 그들을 기억하려 애썼다.
추억 속에서 그들은 아름답다. 이제 반지성의 기억 속에서 조선인들은 모두 엘프 못지않은 미인이다.
“대한 독립 만세.”
반지성은 버릇처럼 중얼거렸다. 조선에 관한 말들을.
“얼른 나가서 대한 독립에 기여해야지. 이제 내 솜씨도 엄청나게 괜찮으니, 그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바로 나가게 되는 일은 없이, 계속해서 시간이 흘렀다. 그와 함께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예전과는 달리, 괴물들에게 당해 죽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인간들은 늙어서 죽었다. 하나둘씩.
이 세계에 온 지 61년 되는 날, 마지막 아스인이 죽었다.
*******
사제가 장례를 준비하는 가운데, 나머지 사람들은 마지막 아스인 앞에 모였다. 그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서.
“이젠 정말 엘프만 남았군. 늙어 죽지 않는 종족. 그리고 조선인 한 명도······”
임종을 기다리며, 늙은 마법사는 반지성을 쳐다보았다. 그다지 주름 없는 거 얼굴을 보며 말했다.
“여전히, 자네는 별로 안 늙었군.”
“동양인은 상대적으로 동안이라 그래.”
반지성의 말에 마법사는 말했다.
“다 늙어서 헛소리는. 괴물들과 싸웠기 때문이야. 신성한 괴물들의 피를 뒤집어쓰는 과정에서 그들의 신성을 흡수한 거지. 나도 인간들에게 빛 제공한다는 핑계로 꼼짝도 안 했고······ 다른 인간들이 게으름 피우는 가운데 자네만은 열심히 움직였어. 노력이 보상을 받은 거야. 자네는 그 보상을 얻을 자격이 있어.”
죽음이 임박한 순간, 죽음에서 멀어진 인간을 보며 마법사는 질투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반지성은 지극한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물론, 이대로 나가지 못한다면 긴 수명은 오히려 저주가 되겠지. 이 땅에 영원히 갇혀있게 될 테니······ 그리되지 않길 비네. 노력에 보상이 아니라 벌이 주어지는 것은 지나치게 잔인한 일이야. 자네들에게 그런 비극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네.”
마법사가 눈을 감더니 유언을 남겼다.
“꼭 나가길 빌어······”
그리 떠나면서, 마법사는 웃었다. 처연하게 웃었다.
신의 존재를 느끼는 아스인은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다.
이제 반지성은 그 사실을 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진정한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자신 또한 아스인과 같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갔나?”
“그래.”
“그럼······.”
늘 그렇듯 가온이 장례를 집행했다.
화장을 위해 강렬한 불을 피웠는데, 이제 그러기 위해 연료를 소모할 필요는 없었다. 여신께서 그 몸에 깃드신 지금, 가온은 그 누구보다 강력한 사제였다. 그 의지에 반응해서 신성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아주 강렬하게.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저 하늘까지 닿도록.
이렇게 불을 세게 피우면 위험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사람은 여기 없었다.
오랜 싸움으로 달라진 것은 가온과 반지성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원래 몸의 한계를 초월하여 강해진 바였다.
“재를 더럽다 여기지 말라. 재 속에서······”
가온이 기도하는 가운데, 우드엘프가 중얼거렸다.
“오네.”
괴물들이 오고 있었다.
우드엘프는 그 발소리로 적의 강약을 파악했다. 꽤 많이 오고 있었지만, 피할 필요는 없었다.
“괜찮겠네. 상대할 수 있겠어.”
곧이어 이 자리에 괴물들이 당도했다. 짐승의 몸에 인간의 머리가 돋아난 그 괴물들이.
새로이 명명되길, 신성한 괴물들이었다. 추방된 신들과 함께 이 땅에 버려진 괴물들.
이 세계에 처음 온 날, 모두가 겁에 질려 달아나게 만든 그 괴물들.
그 끔찍한 괴물들을 상대로 여기 모인 자들은 당당히 섰다. 장례현장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싸움을 시작했다.
모두의 맨 앞에서 사제가 칼을 휘두른다.
불 속에서 재가 흩날린다.
그것이 검무와 같다고 반지성은 보면서 느낀다. 검으로 기적을 펼치는 것 같다고. 검을 따라 재가 흩날리는 것 같다고 느낀다.
“······불사조가 날아오를 테니.”
아니, 단순히 느끼는 것만이 아니다.
눈의 착각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일렁이고 있는 재, 그 찬란한 재를 보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소드마스터······”
*******
일행의 사제가 소드마스터가 되었다. 초인 마스터. 그 능력이 실로 놀라운 나머지, 세상을 구할 준비가 된.
그로써 이제 모든 것이 끝날 줄만 알았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여신께서 설명해주시기를, 차원문을 가로막은 거인은 상상 이상으로 초월적인 존재였다. 초인 소드마스터조차 그 앞에서는 빛바랠 정도로.
‘낫과 농경의 신이구나. 실로 오랜만에 보나니.’
여신께서 말씀하시매 가온이 말했다.
‘처음 들어보는 신이로군요. 게다가 저 거인은 신이라기엔 지성이 없어보이는데······’
‘고대 신이다.’
여신께서 부연해주시었다.
‘수만 년 전, 천상에서 전쟁이 있었다. 패한 고대의 신들과 그 수하들은 여기 갇혔노라. 빠르게 존재하는 시간만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 신들의 의도대로, 아득한 시간이 저들의 자아를 무너뜨린 모양이다. 그리 이성을 잃은 뒤에도 자유를 갈구하는구나.’
그리 초월적인 적임이 드러났음에도 가온은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번 거인에게 가서 힘껏 싸워보았지만 역시나, 거인을 거기서 물러나게 만드는 것은 무리였다.
그럼에도 과연 소드마스터라, 가온은 신과 싸운 후에도 몸 성히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정도만 해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덕분에 사람들 사이에는 전보다도 더 여유가 생겼지만 가온은 아니었다.
능력이 생긴 만큼 책임도 커졌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첫날에 그랬듯, 가온은 다시 마법 공부를 시작했다. 하루 14시간 넘게 새로운 마법을 익히고자 애썼다.
그 비정상적인 노력의 근원은 반지성도 이제 알았다.
워낙에 성실한 친구라, 가온은 불안을 노력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러니까 저 친구는 지금 많이 불안하다는 것을 알았다.
불안 속에서 한 노력이라도 효과는 확실했다. 불과 한 달 만에, 가온은 그 어렵다는 텔레포트 주문을 익히는 데 성공했다.
이후로 그 주문을 어찌나 자주 반복해서 쓰는지 반지성은 셀 수도 없었다. 고대부터 존재했다는 리치 카샤드가 평생 써온 텔레포트보다 여기서 가온이 사용한 텔레포트가 훨씬 더 많을 것이었다.
그 반복 숙달의 효과마저 확실했다. 0.5초마다 이동하는 가온을 보면 반지성은 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가 그리 노력하는데, 그 또한 여유를 가질 수는 없었다.
가온은 가온대로 고대 신과 싸우느라 사투를 벌이는 가운데, 반지성 또한 사투를 벌였다.
이제 일행 중에 소드마스터가 있어 더는 전력이 부족하지는 않았음에도 반지성은 필사적으로 싸웠다.
혼자서라도 어둠속으로 나아갔다.
저쪽에서 먼저 오지 않으면 이쪽에서 먼저 다가가 싸웠다. 칼을 휘둘러, 신성한 괴물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천둔검법으로 말이다.
사실 우드엘프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받는 검술은 아니었다. 동작도 고작 여섯 개뿐이요, 동작 하나하나가 워낙에 커서 천둔검법으로 누군가를 대련에서 이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괴물들을 상대로는 의외로 쓸모가 있었는데, 어쨌건 동작이 큰 덕에 위력이 큰 덕분이었다. 그리고 괴물들을 상대로는 그 장점 하나면 충분했다.
덕분에 괴물들을 상대로는 반지성이 저 우드엘프 검사들보다 잘 싸울 지경이었다.
어둠 속에서, 이제는 말버릇이 되어버린 구호를 포효하듯 외쳤다.
“대한 독립 만세!”
그 외침에 어둠 속에서 반응이 돌아왔다.
무언가가 여기로 날아왔는데, 이제 반지성은 어둠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바였다. 감각만으로도 뭐가 날아오는지 알 수 있었다.
“드래곤······”
여신께서 강림하신 이후로는 원시 드래곤이라 명명된 괴물이었다. 천상의 과수원에 첫 감이 열리기 전, 지성 없는 짐승이었다던 옛 드래곤. 바깥 세상의 드래곤들처럼 마법은 쓰지 못했지만, 그 육탄전 능력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적이었다.
이때 반지성의 머릿속에 살아남아야겠다드니 어쩌느니 하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저들을 물리쳐, 저 멀리서 싸우고 있을 친구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도움이 될 자신이 있었다.
자신도 강해졌다. 놀랄 만큼.
드래곤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반지성은 껑충 뛰어올랐다.
어둠 속에 묻힌 약점, 드래곤의 거대한 목을 향해, 반지성은 본능대로 칼을 휘둘렀다. 머릿속으로는 아버지께서 내린 가르침을 기억하며.
‘이 동작은 악룡참수다. 여동빈이 칼 한 번 휘둘려 악룡의 목을 베었듯이······’
사실 이 짐승 같은 드래곤들을 이전에도 여러 번 상대해보긴 했다. 지긋지긋하게 상대해본 놈들이었다. 여유가 있었다.
그런 만큼 이 싸움은 그리 드라마틱하거나 처절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반지성의 검기는 그저 반복과 오랜 세월만으로 생겨난 셈이었다.
칼질에 반응이 확실했다.
용의 목이 잘렸다. 용의 뜨거운 피가 샘솟았다.
그것을 반지성은 시각적으로 볼 수 있었다. 빛이 이 자리에 생겨난 덕분이다.
반지성은 자기 검을 타고 흐르는 백색 빛을 보고 눈을 껌벅였다. 그리 놀라다 말고, 살짝 웃었다.
일행에 돌아와 검기를 보여주었다.
“기어이······”
가온이 눈을 빛냈다.
소드마스터 둘이서 몇 번 대련을 해보았다.
반지성이 모두 졌지만 상심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반지성은 그저 목적에만 집중할 뿐이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슬슬 나갈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다음 날, 두 소드마스터가 전투에 나섰다.
맨 처음, 왔던 곳으로 나아갔다.
*******
그 자리에 있던 우드엘프들은 신화적인 싸움이었다고 증언한다.
실제로 그 싸움은 신화에 기록할 만했다. 다름 아닌 고대 신을 상대로 벌인 싸움 아닌가.
사실 이때 우드엘프들이 기억하는 것은 몇 없다. 너무나 신화적인 싸움이었는지라, 눈에 파악되는 것이 몇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다. 재와 백색의 윤무였다고. 듣기만 해도 괴로워지는 굉음이 수백 차례 울렸다고. 천지가 요동치는 듯, 하늘과 땅에 천둥이 치고 신의 포효가 울렸다고. 이 지상에 폭풍이 몰아쳤노라고 감동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폭풍이 걷힌 이후의 일은 목격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
반지성이 칼을 휘둘렀는데, 아주 크게 휘둘렀다. 가공할 위력의 천둔검법. 고대 신의 어깨에 꽤 큰 상처를 내는 데 성공했다.
바로 그 자리에, 텔레포트해서 나타난 가온이 칼을 꽂아 넣었다.
수 시간 걸친 싸움이었지만 비로소 고대 신에게서 피가 치솟았다. 그 피가 두 소드마스터를 뒤덮었다.
두 소드마스터는 몸에서 힘이 솟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칼을 휘둘렀다.
이제 신마저 고통을 느꼈다. 상반신을 크게 움직이다 못해, 하반신마저 움직였다.
흐느끼며, 두 다리를 움직여 걷기 시작했다.
고대 신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끔찍한 모기들을 피해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이미 두 소드마스터의 검기로 말미암아 광원이 충분한 상황이었지만, 거기서 더 밝아졌다. 차원문이 드러났고 거기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반지성이 감격에 못 이겨 몸을 떠는 가운데, 가온은 무리의 리더로서 제 할 일을 떠올렸다. 저 멀리 있는 우드엘프들에게 외쳤다.
“들어가! 다들 들어가!”
우드엘프들은 사제이자 리더의 지시에 즉시 따랐다. 울면서, 혹은 웃으면서 차원문에 차례차례 몸을 던졌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두 소드마스터였다. 반지성은 이 순간 자기 친구가 제 의무를 마쳤음을 깨달았다.
존경의 눈길로 친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가온 형은 영웅이 될 거요.”
“너도지. 지성이.”
그 말의 의미를 헤아려본 반지성은 이내 웃었다.
그렇다. 이제 자신도 영웅이 될 수 있다.
소드마스터 아닌가. 왜놈들도 이 초인을 전장에서 만나면 골머리를 썩는다고 들었다.
자, 이제 검기도 좍좍 뿜을 수 있게 되었겠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세상을 구원할 준비가 된 두 소드마스터가 문을 박차고 나왔다.
원래 세상이 그들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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