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45화 (45/135)

LV.3 우드엘프 나리 - [2]

저 앞에 거대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저 안에 이복동이 갇혀 도움을 구한 바였다.

여기까지 차를 태워준 것은 지존무쌍이었다. 가온은 새삼 감사를 표하며 물었다.

“수고비 줄까요?”

의외로 지존무쌍은 거절했다.

“아냐, 됐어. 복동이 돕는 건데 뭐. 그런데 나까지 도울 필욘 없지? 일 끝나면 차 태워주러 로그인 할 테니까 전화해요.”

그리 말하더니 지존무쌍은 로그아웃했다.

가온은 기분 좋게 웃고는 숲에 발을 디뎠다. 왼손에 칼, 오른손에 권총을 쥔 채.

그러다가 수풀 너머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뿔 달린 말이었다. 은빛 갈기가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짐승.

“유니콘?”

가온의 표정이 구겨진 가운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도움말 : 몬스터입니다!

몬스터를 죽이십시오!

예로부터 원주민들에게 경외 받는 짐승을 죽이는 것은 정복자들에게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일제가 조선반도에서 호랑이들을 죽이도록 장려한 것처럼 말입니다.

피식민지의 생태계를 정복하십시오. 당신의 정치인들이 이 땅에 ‘문명화’를 베풀었다며 자랑스러워 하게 도우십시오.

이 땅을 문명인들이 살기 더 편안하게 바꾸십시오!」

죽이라는 시스템 메시지 따윈 필요하지 않았다. 무조건 죽였을 것이다.

가온은 유니콘을 좋아하지 않았다. 순결을 중시하는 그 습성이 가온의 원수를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하고 이 새끼······”

살의를 눈치챈 모양이다. 유니콘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물론 소용없는 일이었다. 약 사 미터 달렸을 때, 유니콘은 제 등 뒤에 무언가가 올라탔음을 느꼈다.

떨쳐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목에 바로 칼이 박혔으므로.

가온은 그 죽음을 비웃고는, 계속 숲을 걸어 나갔다.

*******

4판타지 온라인은 전쟁 게임이지만, 모든 플레이어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유일하게 현실과 똑같다시피 한 가상현실 게임 아닌가. 여기서 총질만 하기는 너무 아까운 일이다.

현실성 그 자체가 가치가 있었다. 자연스레 눈 내리는 지형에서 스키만 타는 플레이어도, 검술만 연습하는 사람도, 사냥을 즐기는 플레이어도 생겨났다.

이 중에서 사냥을 즐기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뭔가 죽이는 데 집착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 게임에서 사냥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보통 게임에서 사냥이라 하면 정해진 장소에 정해진 몬스터가 있어 한바탕 싸우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 게임은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사냥 또한 그렇다.

이 게임에 말하는 사냥이란 현실의 사냥과 같다. 어디 있는지 모를, 배회하는 목표를 찾아서 죽이는 일.

당연히도 위험한 데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냥을 원하는 사람들은 흔히 호위를 고용했다. 사람 하나 고용하는 가격이 죽으면 잃어버릴 장비 가격보다는 싸기 때문이다.

이복동이 맡은 일 또한 사냥 관련 호위였다. 그리고 지금, 이복동은 일에 실패할 위기에 처했다.

이복동을 고용한 ‘사장’이 말했다.

“이러다 다 전멸하겠는데······”

사장과 이복동은 이 숲에 갇혔다.

단순히 이 두 명만 갇힌 것이 아니었다.

돈을 준다는 점에서 ‘사장’이라 불리는 고용주들만 열 명이요, 그들이 고용한 호위의 수는 일곱 명이었다.

원래는 더 많았다. 사장은 다섯 명 더 있었고 호위는 열 명이 더 있었다.

그들 모두 죽고 말았다. 활을 든 엘프 한 명에게.

게임 속 죽음이지만 심각한 일이었다.

다들 좋은 총을 들고 이 숲에 들어왔다. 이 숲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의 두개골과 가죽은 워낙에 두껍고, 어지간히 좋은 총이 아니고서야 단번에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총이란 곧 비싼 총인 법이라, 죽음으로 상실했다가는 상당한 금전적 피해가 발생했다.

이복동만 해도 지금 죽었다가는 백만 원 넘게 잃어버릴 위기였다.

“지원 불렀죠. 정말 오는 거 맞아요?”

누군가의 질문에 이복동은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숲속에 화전민 마을이 있었고, 전화기가 있어 통신을 보낼 수 있었다.

전화기를 보자마자 이복동은 울면서 가온을 불렀다. 자기가 아는 가장 강력한 병력을.

그리고는 침울해졌다.

어쩔 수 없이 가온을 불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무슨 민폐인가. 자립계획이 처음부터 망가져 버렸다.

그러나 지원병력을 부른 보람은 확실했다.

저 멀리서 총소리가 울렸다.

“와, 확실히 지원이 오긴 왔네.”

사람들이 감탄하는 가운데, 총소리는 갈수록 가까워졌다.

“그런데 지원병력 얼마나 부른 거야? 수고비 얼마나 줘야 하나 몰라. 설마 총값보다 비싼 건 아니겠지? 그럼 큰일······”

“그건 괜찮아요. 돈 욕심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다면야 뭐······”

사장들이 좋아하는 가운데, 마침내 수풀을 헤치고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남자의 모습을 보고 모두 눈을 크게 떴다.

“혼자서 왔어요?”

누군가의 질문에 가온이 멀뚱히 대답했다.

“네.”

“어떻게? 여기 몬스터들 우글거리는데. 혹시 그쪽엔 몬스터들 없나?”

“아니. 몬스터들 많던데?”

“그럼?”

사장들이 영문을 몰라 당황한 가운데, 호위들은 가온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아, 저분, 가온······”

“유명해요?”

사장의 물음에 호위가 대답했다.

“엄청 유명합니다.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선 모르는 게 간첩인······. 복동 씨, 저 유명인 대체 어떻게 불렀어요? 알고 지내는 사이예요?”

“예, 뭐.”

“인맥 개쩌시네······”

저 유명인을 전화 한 번에 불러냈다니? 프로게이머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이 이복동에게 집중되었다.

이 순간, 이복동은 비참함과 우월감을 동시에 느꼈다.

한편 가온이 물었다.

“자, 그래서 다들 여기서 탈출해야 한다고?”

사장이 허겁지겁 대답했다.

“예. 이러다 다들 중고차 한 대씩 잃게 생겼어!”

“중고차 잃으면 안 되지. 바로 갑시다. 길 외워뒀으니까 따라와요.”

사장이 기겁하여 외쳤다.

“아니, 바로 가면 안 돼! 그러다 죽어!”

“죽는다니, 왜? 몬스터들? 내가 만나면서 다 죽였어요. 또 나오면 내가 다 죽일 테니 걱정 뚝.”

그 말에 사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몬스터도 무섭긴 한데, 문제는 그게 아뇨! 웬 저격수가 문제야!”

“저격수?”

“예! 웬 귀쟁이가 활 들고 우릴 몇이나 쏴죽였어요! 그 탓에 여길 벗어날 수가······”

가온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귀쟁이란 말 쓰지 마요. 듣는 귀쟁이 기분 나쁘니까.”

그 말에 사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엘프세요?”

“그런데?”

“엘프도 이 게임 하는 줄은 몰랐는데······ 엘프들은 숲에 틀어박혀서 잘 안 나오지 않나? 전자기기랑 담쌓고······”

“엘프들마다 다른 거지 뭘. 아무튼 귀쟁이 금지, 오케이?”

“오케이.”

“그것만 지켜주면 돼. 좋아. 그럼 갑니다.”

가온이 앞장선 가운데, 나머지 사람들은 초조하게 뒤를 따랐다.

그리고는 기겁했다.

마주친 몬스터들은 모두 크고 강력했지만 모두 몇 초 만에 죽어 나갔다.

맨 먼저 만난 다이어울프, 집채 만한 주제에 바람처럼 잽싼 놈이었지만 가온이 쓱 내민 칼날에 뱃가죽이 찢어져 죽었다.

나무에서 기습해온 바실리스크. 가온이 보지도 않고 쏜 총알에 석화의 마안이 모조리 터져나가 죽어 버렸다.

“개 쩔어!”

순수한 감탄, 가온은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으며 무표정하게 걸어 나갔다.

그러다 머리 위에서 웬 소리가 났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가온은 그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그러나 못 들은 척 그쪽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계속 앞을 보며 걸어가던 와중이었다.

바람을 헤치고,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그러리란 것을 가온은 이미 알고 있었다.

덕분에 자기 등을 관통하려던 화살을 너무나도 쉽게 쳐낼 수 있었다. 뒤돌아서지도 않고, 그저 등 뒤로 칼만 휘둘러서.

“와 씨발!”

주변 사람들이 죄다 자신의 실력에 익숙해진 탓에 요새는 총알 좀 튕겨낸다고 칭찬을 듣지 못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이 비명 지르듯 감탄을 지르자 가온은 행복해졌다.

한편 기겁하기는 화살을 쏜 저격수도 마찬가지였다.

숨 삼키는 소리가 작게 나더니, 저격수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다람쥐처럼, 나무들의 가지 위를 가볍게 뛰어다니며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숲속에 사는 엘프다운 몸놀림. 도저히 추격할 수 없어 보였지만 가온은 씩 웃었다. 그 역시 엘프 아닌가.

가온이 나무를 순식간에 오르더니, 가지 위를 밟고 밟아 추격을 시작했다.

등 뒤에서 또다시 들려오는 감탄을 배경음 삼아 저격수의 뒤를 바짝 쫓았다.

저격수도 빨랐지만 가온이 훨씬 빨랐다.

약 백 미터쯤 달아나서 따라잡힌 저격수는 도주를 포기했다.

저격수가 뒤돌아섰다. 그 얼굴을 마주한 가온은 휘파람을 불었다.

“오.”

나무에서 짜낸 섬유로 만든 옷, 그리고 맨발.

전형적인 우드엘프 여자였다. 엘프답게 당연히도 미인이었다.

가온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 레이디. 내 칼은 원래 비정의 극치이나 그대의 아름다움을 봐서 이번만큼은 빗겨나가도록 하지.”

그 말에 우드엘프가 가온을 노려보았다.

“왜 갑자기 토 나오는 소리를 하세요.”

지나치게 신랄한 대답, NPC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었다.

여신께서 달아오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시는 가운데, 가온은 당황하여 물었다.

“혹시 그쪽 NPC 아니에요?”

“NPC? 뭔지 몰라도 그건 아니고······ 그쪽은 누구세요? 소드마스터신 거 같은데.”

우드엘프 여자의 물음에 가온은 정색했다.

“절대 아닙니다.”

“화살을 튕겨내시던데요?”

“그건 그냥 제가 검술이 뛰어나서.”

“아니, 화살만 되도 막기 엄청 어렵다던데? 소드마스터가 아니고서야 화살을 칼로 튕겨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들었어요. 우리 언니가 그랬어요.”

“언니 분이 누굽니까?”

“나루요. 알죠?”

아는 이름이었다. 슬프게도.

“알죠. 소드마스터 이름을 어찌 모를까. 그래서······ 나루님 동생 분이면 당연히 우드엘프시겠네요. 우드엘프들은 이 게임 잘 안 할 텐데, 어쩌다?”

“사전조사를 하러 왔어요.”

“사전조사요? 정확히 뭔 조사를 하겠단 것인진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그게 여기서 플레이어들 학살하는 거랑 상관있는 일입니까?”

“상관은 없어요.”

“그런데 왜?”

“그 인간들이 동족을 죽이잖아요. 어떻게 보고만 있어요? 당연히 막아야지요.”

상상외의 대답, 가온은 잠시 멍해졌다가 여신께 기도를 올렸다.

‘여신이시여. 요즘 만나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제가 생각보다 게임과 현실 구분을 잘하는 편 아닙니까?’

‘종말의 징조로다.’

여신께서 한탄하시는 가운데, 가온은 설득을 시도했다.

“이건 게임입니다. 오락. 알죠? 여기 나오는 모든 것엔 생명이 없어요. 당연히 여기 나오는 엘프들도 생명이 없고요.”

“아뇨, 진짜 살아있던데요.”

“아닙니다. 다 가짜예요.”

“인간 같은 헛소리 좀 마세요. 움직이는 모든 것엔 영혼이 있어요.”

우드엘프 여자는 마치 자연법칙을 설명하듯 그리 말했다.

가온은 황당함을 느끼려다 말았다. 문득 이 게임에 우드엘프 소드마스터들이 등장하지 못한 이유를 떠올렸다.

‘우드엘프들은 사진이나 영상에 찍히면 영혼 일부가 빨려 나간다고 믿지? 그래서 게임에 자기 모습이 등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게임 출연도 거부했다고······’

21세기에도 우드엘프들은 자기들끼리 폐쇄적으로 살아간다. 그 탓에 옛 미신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런 우드엘프가 보기에 여기서 살아 움직이는 엘프가 NPC인지 뭔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을 터였다. 평범한 우드엘프라면 영화 속 우드엘프에게도 영혼이 있으리라 믿을 것이므로.

“아무튼, 싫어하신단 건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말 잘해서 다 돌려보내죠.”

“돌려보내요? 안 돼요. 복수를 해야 해요.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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