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44화 (44/135)

LV.11 사격수 이복동 - [1]

백골부대는 일반 게이머들이 혐오할 조건을 대부분 충족하고 있다.

길드장의 정치 성향은 우익이요, 길드 차원에서 신규 플레이어들을 갈취한다. 같은 한국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깡패처럼 군다.

그래서 백골부대는 4판타지 한국 플레이어들의 공적이지만, 그렇다고 백골부대와 나머지 한국 길드 간의 전쟁이 활발한 것은 아니다.

다른 한국 길드들의 입장에 백골부대는 상대하기 지나치게 만만찮은 곳이다. 전 장성이 지휘하는 군대답게, 잘해봤자 민병대 수준에 불과한 나머지 길드들을 쉽게 압도한다. 그 탓에 백골부대가 근처에서 뉴비들을 괴롭히고 있어도 다른 길드들은 내버려 둬야 할 정도다.

백골부대의 입장에도 다른 한국 길드와 맞붙는 것은 썩 이롭지 않다. 재벌들이 백골부대 길드장 류시범을 후원하는 이유는 김일성의 우승을 저지하라는 것이다. 한국 유저들을 제패하는 것이 아니라.

백골부대와 다른 한국 길드가 가끔 시비가 붙어 붙을 때가 있긴 하다.

그러나 장기전이 되지는 않는다.

피해가 커질 것 같다 싶으면 백골부대가 먼저 물러난다. 조선인민군과 상대하는 마당에 양면전선을 열고 싶진 않은 까닭이다.

그래서 백골부대가 백두 길드를 향해 행군을 시작했을 때, 한국 플레이어들은 일베와 근첩의 대결이 벌어지겠다며 비웃기는 했어도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백두 길드장 강주석이 기분을 상하게 했으니 어느 정도 보복을 하겠지만 그게 전부일 거라고. 아예 사생결단을 내는 지경에 이르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생계가 걸린 일 아닌가. 먹고 사는 문제 앞에 자존심은 가벼운 법. 결국에는 적정선에서 퇴각하리라고 예상했다.

모두의 심각하지 않은 관심 속에서 양 길드가 서로 만났다. 마주치기 무섭게 전투를 시작했다.

모두가 예상했듯 백골부대의 승리였다.

백두 길드가 후퇴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백골부대도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백골부대의 행군은 멈추지 않았다. 전진에 전진을 거듭했고, 지나가는 길에 협조하지 않는 길드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쳐서 점령했다.

결국에는 백두 길드의 영역을 포위했다.

정말로 사생결단을 내려는 것이 분명했다.

“저 새끼들 미쳤나?”

이쯤 되면 모두가 경악했다. 한국 플레이어들이 평소 백두 길드를 근첩 길드라며 놀리기는 했지만, 정말로 무너지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한국 최대 규모 길드가 무너졌다가는 한국 세력 자체가 크게 약화하는 것이다. 그 경우 한국인들의 돈벌이가 크게 힘들어지고 만다. 약소 세력에 큰돈을 투자하고 싶어하는 후원자들은 없으므로.

백두 길드를 돕기 위해 각 길드에서 지원병력을 보냈다.

급기야는 전선이 형성되었다.

양 병력이 죽고 죽이다가, 죽은 병력은 24시간 뒤에 부활하여 다시 전장에 복귀한다. 그런 식으로 지속적인 증원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 전투는 밀다가 밀리길 반복하며 늘어진다.

전투는 며칠 내내, 심지어 일주일 넘게 계속되었다. 실제 전쟁처럼.

아무런 이득 없이 물자가 끝없이 소모되자 각 길드장들이 비명 지르는 가운데, 곳곳에 지원요청이 쇄도했다.

지원을 요청받은 길드가 이득 없는 전투에 끼고 싶지 않아 중립을 선언하면? 중립을 인정하는 진영 따윈 없다. 은근한 압박 혹은 노골적인 협박으로 협조를 요구했다.

가온이 머무는 도시 또한 협조하도록 협박당한 도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도시는 놀랍게도 중립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그 사실에 시장 정진영은 감사를 표했다. 다름 아닌, 이 도시에 머무는 아스인에게.

“가온 씨가 직접 요청해주셨다지요? 양쪽 길드장한테요. 이 도시에서 계속 수련해야 하는데 전쟁에 휘말리면 방해되니까 괜히 건들지 말아 달라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놀랍게도, 양쪽 길드장 모두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얼마 전에 침공했던 백골부대조차 이 도시를 우회하여 지나갈 정도였다.

덕분에 도시는 평화로웠다. 그 거주민들과 도시의 주인들도.

“그러긴 했는데 왜?”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요. 약소한 선물도 말입니다.”

정진영이 내민 약소한 선물, 꽤 큰 금액이 적힌 수표를 보고 가온은 손을 저었다.

“됐어요. 나 돈 많아.”

“그건 잘 아는데, 그래도 사례를 하지 않을 수가······”

“정 고마우면 검술 교습소에 사람들이랑 같이 먹게 간식 좀 보내주던가. 고작 십수 명 먹으면 되니까 너무 많이 보낼 것도 없고.”

사례를 값싸게 할 수 있음에 정진영은 감격했다. 괜한 전쟁에 끌려가지 않게 된 것만 해도 엄청난 이득이라 수천만 원은 기꺼이 바칠 수 있었는데.

한편 ARMA 회원들에게 자기 위상을 은근슬쩍 드러낼 수 있게 되었음에 가온 또한 만족했다.

확실히 지금 가온의 게임 내 영향력은 실로 강력한 것이었다.

가온이 요청한 결과가 도시 전체에 알려진 바, 이제 가온은 단순히 돈이 많다는 이유로 회장님 소리를 들을 뿐만 아니라 아예 신 대접을 받고 있었다. 인맥마저 강력하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아, 도시의 수호자 가온 경이시여! 제 숭배를 받으소서!”

시내를 걷기만 해도 몇몇 플레이어들이 장난스레 절해오는 마당이었다. 이 상황이 가온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지존무쌍은 만족하지 않았다.

“시장이 주는 돈, 거절할 거면 나 주라 하지. 가뜩이나 요새 일이 없는데······”

지존무쌍의 말에 가온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일이 없다니? 전쟁이 한창이라더만.”

“그런 전쟁엔 못 껴요. 한쪽 진영에 끼면 다른 진영이랑 원수 되잖아?”

뭐 가온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싸우러 나가는 일이 없으면 수련에 매진할 수 있다.

그래서 매일 14시간 넘게 수련하는 가운데, 이복동도 하루 여섯 시간씩 훈련했다.

이복동은 이제 사격 훈련은 물론 저격수 훈련까지 받고 있었다. 놀랍게도 사격 훈련소에는 그와 관련된 커리큘럼이 존재했다.

그리 수련과 수련으로 보내는 일주일이 흘렀다.

고작 일주일 훈련했다 하여 실력자가 되기는 어렵지만, 초보였던 누군가에게 기초적인 능력이 생길 만한 시간이기는 하다.

그러니까 옛 기준에서는 실력이 대폭 늘어난 셈이다.

그리 늘어난 실력이 이복동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하도 일이 없어 지존무쌍이 초조한 가운데, 이복동은 홀로 짐을 꾸렸다.

“왜, 어디 가게?”

지존무쌍의 물음에 이복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하러요.”

“일? 얼마짜리 일인데?”

“일당 11만 원짜리 일이요.”

그 말에 지존무쌍은 기겁했다.

“아니, 고작?”

“고작이라니, 하루 일치곤 많은데······”

“그래봤자 우리가 지금껏 번 거랑 비교하면 푼돈이지! 그딴 잡일하는 중에 큰일 들어오면 어쩌려고? 가온 씨랑 같이 일하면 수백만 원쯤 버는 거 알잖아. 차라리 여기서 쭉 대기하면서 일 들어오는 거 기다리는 게 이득이야.”

“그래도, 혼자 할 수 있는 일 혼자서 해보게요. 혹시 같이 하실래요? 가온 형 없이 우리 둘이서만······”

지존무쌍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이복동은 홀로 일을 하러 떠났다. 비싸게 주고 산 저격총 한 자루를 든 채.

이 결정이 지존무쌍이 보기에는 영 탐탁스럽지 않았던 모양이다.

수련하던 가온에게 와서 하소연했다.

“가온 씨가 뭐 섭섭하게 했나? 글쎄 가온 씨 빼고 일하자던데? 대체 왜 그런대. 혹시 가온 씨가 섭섭하게 했나?”

“그런 적 없는데······”

가온은 떨떠름하게 대답하다 말고, 이복동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는 웃었다.

기분 좋은 웃음.

그 웃음의 이유를 몰라 지존무쌍이 당황한 가운데, 가온은 여신께 기도드렸다.

‘이복동이 그 녀석, 생각보다 괜찮은 놈입니다. 저한테 그만 들러붙고 자립하려나 보네요? 어쩌면 나중엔 녀석과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 말에 여신께서 물으시었다.

‘이미 친구가 아니더냐?’

‘형과 동생이죠. 제가 위쪽인. 친구는 동등한 관계여야 성립하는 법이잖습니까? 지금은 제가 걔에게 일방적으로 이득을 주는 관계고요. 동등하지가 않죠.’

‘소드마스터쯤 되면 동등한 관계를 갖기 어려울 것이라.’

‘예. 그 점에서 반지성은 정말 귀하고도 좋은 친구였습니다. 서로 등 맞대고 싸우는 데다 같은 소드마스터까지 되었으니까. 완전히 동등했죠. 옛날 지존무쌍과도 좋은 친구였습니다. 서로 이득이나 누가 위인지 따지지 않고, 그냥 재밌게 놀 수 있었죠.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요.’

여신께서는 대전사가 무얼 말하려는지 이해하시었다.

모름지기 친구란 동등한 관계여야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복동은 가온의 도움을 받는 입장이니 동등하지 않다. 즉 친구가 아니다.

그러나 이복동이 가온에게서 벗어나 자립한다면, 둘은 동등해질 수 있다. 즉 친구가 될 수 있다.

‘그 말은 내 대전사의 연락처가 또다시 대폭 늘 수 있다는 말이냐?’

‘예. 기뻐해 주십시오.’

‘네 여신은 기꺼이 그러하리라!’

여신께서는 진정으로 기뻐하시었고, 가온도 기뻐했다.

가온은 자신 곁에 친구가 있었던 시절을 기억했다. 힘들었던 시절, 그 시련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했던 우정을.

그 친구와 연락할 수 없게 된 지금, 가온은 친구가 절실했다.

그러나 그 기쁨이 무색하게도 곧 연락이 왔다.

이복동에게서 온 것이었다.

도움 요청.

「이러다 죽겠어요. 가진 장비 다 잃고. 비싼 저격총 샀는데······」

“그러니까 괜히 고집 피우지 말고 가온 씨랑 같이 일하든가 하지, 이게 뭔 일이야······”

지존무쌍이 투덜거리는 가운데, 가온이 물었다.

“당연히 도와줘야지. 그래서 어디로 가면 돼?”

이복동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장소를 말했다.

듣고 난 가온이 중얼거렸다.

“거길 대체 왜 갔니. 우드엘프들 숲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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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는 흔히 수렵채집으로 사는 사람들은 한곳에 머물러 지낼 수 없다고 가르친다. 농경해야만 안정적인 식량 수급이 가능하여 정주할 수 있게 된다고. 수렵채집만으로는 주변의 식량이 고갈되기에 떠날 수밖에 없다고.

그러나 옛 조몬인들의 경우, 수렵채집민이면서도 정주 생활을 했다.

숲이 풍요로웠기 때문이다.

조몬인들의 주식은 견과류로, 도토리와 밤을 주로 먹었다. 단순히 먹을 뿐만 아니라 밤나무를 비롯한 유용한 삼림자원을 적극적으로 관리했다. 그 덕에 수렵채집만으로 한 곳에 머무르며 생활할 수 있었다.

엘프들은 이 말을 들으면 싫어하겠지만, 그 옛 일본인과 우드엘프들의 생활은 흡사하다.

우드엘프들의 숲에는 잣나무와 밤나무 등 주식 삼을 식량을 제공할 나무들이 가득하다. 그런 자원을 잘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엘프 부족 전부가 먹을 식량이 보장된다.

달과 순결의 여신을 믿는 종족답게 인구수가 대폭 늘어나는 일도 없다. 그러니 숲과 엘프만 있다면 그들은 자기네끼리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

이 평화를 깨치는 자들이 있으니, 당연히도 인간들이다.

비료로 쓰겠다며 풀과 나무를 베어가거나 가축을 끌고 와 숲을 황폐하게 만들며, 화전을 일구거나 농지를 늘리겠답시고 숲을 침범하려는 종족.

그래서 옛 아스의 역사는 숲을 지키려는 엘프와 농지를 늘리려는 인간의 대결이었고, 엘프들이 승리했다.

엘프는 늙어 죽지 않는다. 어쩌다가 탄생한 엘프 소드마스터도 당연히 그렇다.

서기 1921년 기준으로 우드엘프 소드마스터는 다섯 명이나 되었고, 덕분에 총인구가 고작 수십만 명에 불과한 우드엘프들의 숲은 전 세계의 삼 할에 가까웠다. 농사짓기 적합한 땅으로 치면 오 할 넘게 차지한 셈이다.

그리고 차원문이 열린 후, 우드엘프들의 숲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숲을 일구려는 화전민들이 총을 들고 오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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