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1 길드장 류시범 - [2]
경찰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뜨기만 반복했다.
방금 텔레포트를 잘 아는 것처럼 굴었지만 실제 보기는 처음이었다. 경찰조차 접할 일이 없는 마법 아닌가. 일상과 동떨어진 판타지.
경찰은 입을 뻐끔거리다가 겨우 말했다.
“그래도 고작 게임 트러블 가지고······ 특급 마법사씩이나 돼서 사람 죽이러 올 리가······”
“왜, 특급 마법사면 너무 대단한 분이라 엉덩이가 무거울 거다 이건가? 그런 거 평범한 사람들의 환상이야. 나만 해도 현피 여러 번 해봤는데.”
“현피를?”
“그래. 현피 뜻은 알지? 현실 PK. 인터넷상에서 일어난 일 현실에서 해결하는 관습.”
“아, 그러고 보니! 가온 씨 현피 되게 잘하기로 유명했지! 세 번이나 때려 눕혔어!”
지존무쌍이 거들자 가온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광스러운 승리의 나날이었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기묘해졌다.
가온은 근엄한 목소리로 변명했다.
“말해두겠는데 세 번 다 정의로운 싸움이었다. 두 놈은 내가 숭상하는 레이디를 여왕벌이라며 모욕했지. 다시는 키보드를 그따위로 놀리지 못하도록 실컷 두들겨줬어.”
“세 번째는?”
경찰의 물음에 가온이 대답했다.
“레이디인 줄 알았더니 실은 남자였던 그 넷카마.”
지존무쌍이 신나게 소리쳤다.
“아주 악질이었는데 가온 씨가 찾아가서 게임 접게 만들어줬지!”
“나쁜 자식, 사랑했다······.”
이쯤 되면 고위 마법사에 대한 환상이 깨질 법도 하다.
그러나 경찰들은 가온이 바라는 대답, 그러니까 ‘고위 마법사란 게 생각보다 별 대단한 것 같지 않으니 살인 청부도 받을 만하다. 바로 수사에 나서야겠다’는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아무튼······ 안 돼요.”
“대체 왜?”
“웬 놈이 텔레포트해서 나타났다는 주장부터가 순 추측 아닙니까? 애초에 잠자다가 현실감 넘치게 꿈꾼 것일 가능성이 더 크고······.”
“이미 살인 협박을 받았다니까?”
류시범이 고함치자 경찰은 횡설수설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저 주장만으로 수사할 수는 없는 법이라느니, 수사에 나설 증거가 너무 없다느니.
말이 늘어질수록 류시범의 표정은 굳어져 갔다. 이미 거절하기로 정해놓고서는 나중에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급기야 경찰의 입에서는 웬 소설 이야기까지 튀어나왔다.
“애초에 추리소설에도 마법사는 등장시키면 안 되는 법입니다. 밀실 트릭인 줄 알았지만 실은 수백 미터 바깥에서 텔레포트한 거다, 즉 수백 미터 근처 모두가 용의자다. 이딴 식이면 대체 어떻게 해결합니까?”
“텔레포트 쓸 줄 아는 마법사는 희소하잖아? 용의자를 그들 한정으로 좁히면 되지.”
“그런 건 안 됩니다. 애초에 텔레포트 쓸 줄 알면서 신고 안 한 마법사가 범인일 수도 있고······”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런 식이면 총기 범죄는 어떻게 수사해?”
“아무튼 안 돼요. 법이 그렇습니다.”
독일과 일본의 고위층은 아스를 미개하다 깔보면서도 마법을 동경했다는 것,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은 상류층에게 신분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다는 것, 더 나아가 법마저 마법사에게 유리하게 제정했다는 것, 그런 일본 형법을 베껴오는 과정에서 한국 형법마저 마법사들에게 유리해졌다는 것.
그 장황한 역사 배경을 경찰이 이 자리에서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답답해하는 가운데, 이복동은 예전에 겪은 비슷한 일을 떠올렸다.
고등학생 시절. 부잣집 일진들이 뒤통수에 날려댄 에너지볼트.
수준 낮은 마법사들이 쓰는 기초 마법임에도 끔찍했다.
한 번은 정말 제대로 맞아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기절한 적이 있다.
구급차까지 왔지만 경찰은 한 번 오고 말았다.
처벌조차 없었다. 분명 근처에 마법을 쓸 줄 아는 일진이 있었는데도 그 일진은 경찰에 잡혀가지 않았다. 단순히 마법을 쓸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마법 범죄의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대놓고 마법을 썼는데도 일이 흐지부지 처리되자 일진들은 거리낌이 없어졌다. 이후로 찌질이들을 괴롭히는 데 더 다양한 마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파이어볼트까지 날아왔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이복동은 살기 위해서라도 자퇴해야 했다.
‘그 새낀 지금 서울대에서 정식 마법사 과정 밟고 있댔지 아마······.’
이복동이 속으로 분을 삼키는 가운데, 지존무쌍이 성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 해주시겠다?”
“일단 보고는 올려보겠습니다. 저희 선에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신변 보호는?”
“바라신다면 그것도 요청해보겠습니다. 바로는 안 될 것 같긴 한데······”
몇 가지 약속을 하더니 경찰들은 물러갔다. 무안한 얼굴로 허리를 숙이며.
결국 당장 무언가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하기야 모든 것이 불명확한 가운데, 동네 경찰들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남겨진 사람들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다들 얼떨떨한 기분으로 아무런 영양가 없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스폰서들한테 도움 요청해봤어요?”
지존무쌍의 물음에 류시범은 우물쭈물 대답했다
“경호 인력 보내 달라 부탁하긴 했는데, 아무도······”
“아니 왜? 젊어지기 싫나?”
“모르지······”
“그래서 정말 김일성이 암살자를 보낸 거 같아요?”
“아마. 살해 협박도 그 쫄따구가 했고, 김일성쯤 되면 마법사 암살자쯤 부릴 것 같으니까······”
“리치들은 질량이 적어서 텔레포트 잘한다고 했나? 그럼 카샤드가 김일성 요청 받고 리치를 파견해준 거 아닐까요?”
“아니면 김일성이 직접 온 것일 수도 있지······. 김일성 텔레포트 잘하잖아? 그 새끼 축지법이 얼마나 유명한데······”
“그거 개소리 아니었나?”
“아냐. 김일성 실제로 텔레포트 잘해······ 맨드레이크 엑기스를 무슨 물처럼 마셔대서 체내 마력도 엄청나고. 뱀파이어라서 정상 체중보다 훨씬 가볍기도 하고. 그러니까 자기 젊어지는 데 방해되는 날 처리하러 몸소 행차한 걸 수도······”
류시범은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불안증세도 이쯤 되면 경찰들이 상대해주지 않을 만도 하다.
‘혹시 정말 피해망상 아냐?’
이복동이 그리 의심하던 때였다.
가온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단 거처부터 옮기는 게 어때?”
류시범은 지금 이 아스인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바로 예, 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온이 나머지 둘에게 말했다.
“둘은 돌아가. 이 친구는 내가 챙겨줄 테니까······”
결국 둘만 남았다. 바로 여관에 가기로 했다.
류시범이 자가용에 올라탔고, 가온이 옆자리에 앉았다.
차량이 여관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가온이 물었다.
“그런데 정말 꿈꾼 거 아냐?”
이 아스인까지 이러긴가? 류시범이 질겁했다.
“아니요!”
“소리치진 말고······”
가온은 귀찮은 듯 중얼거리며 쪽지에 무언가를 적었다.
쪽지를 본 류시범은 씩씩거리려다 말았다.
‘지금 도청 중.’
류시범이 두 눈을 부릅뜬 가운데, 가온이 말했다.
“사실이 그렇잖아. 눈에 보이는 피해도 없고.”
“아니······”
류시범은 눈치껏 대화를 이어나가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상황 자체가 너무 갑작스럽고 두려운 것이다.
결국 가온만 홀로 중얼거리면서 쪽지에 계속 적어내렸다.
“솔직히 경찰들이 귀찮아 할 만해. 솔직히 뭘 어쩌란 건지 모르겠잖아?”
‘오늘 밤에 또 올 것 같음. 시끄럽게 굴기 전에 처리하고 싶을 테니까.’
한참을 떨던 류시범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럴지도 모르죠.”
“나도 당장 어떻게 도와야할지 모르겠거든. 내일 일해야 하니까 일단 돌아가 볼까 하는데, 괜찮나? 일단 여관까지 배웅해주긴 할게.”
“예······”
대화하면서 가온은 저 멀리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
계속해서 같은 배기음, 차 한 대가 따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뒤돌아보거나 백미러를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여관 앞에 차가 멈췄다.
“그럼 불안 좀 가라앉히고. 잘 자.”
미행하던 차량이 저 멀리에 멈춘 것을 확인한 뒤, 가온은 홀로 여관을 나와 길을 걸었다.
약 삼백 미터 걸은 뒤, CCTV가 없는 곳에서 자신에게 투명화 주문을 걸었다. 그리 모습을 숨긴 뒤에 텔레포트했다.
아까 류시범이 들어선 여관방으로.
홀로 남겨진 류시범은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가온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류시범은 기겁했다가 안심했다.
가온이 그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 왔다. 옆에 계속 있을게. 티 내지 말고······ 일단 자는 척해.’
류시범은 시키는 대로 했다.
베개 밑에 호신용 식칼을 숨긴 뒤,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어젯밤 자지 못한 탓에 정말 잠들어버렸다.
그것을 포착한 사람이 있었다.
여관방의 공기가 울렸다. 상당한 양의 공기가 사라지고 약 47kg 질량이 여기 나타난 탓이다.
그러나 사람 귀에 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남자는 계속해서 조용히 행동했다.
천천히, 소리 나지 않게 주문을 읊었다.
“아툴수······”
그 주문이 얼음창을 쏘아내는 주문이라는 것을 가온은 알아들었다. 계속 읊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주문을 읊던 그 입이 틀어막혔다.
남자가 발버둥치는 가운데, 제압까지는 불과 이 초도 걸리지 않았다.
읍, 읍 하는 신음.
그 소리에 류시범은 깨어나 불을 켜고는 기겁했다.
“정말 왔······”
“응. 폴리모프했는지 한번 보자.”
가온이 입술을 달싹였다. 마법 해제 주문. 거기에 남자는 조금도 저항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얼굴을 가리고 있던 환영이 벗겨졌다.
드러난 원래 모습은 말끔한 남자였다. 가온은 그 얼굴을 만져보고는 중얼거렸다.
“리치가 아닌데. 당연히 김일성도 아니고······ 친구야. 어디서 왔니?”
남자는 굳은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대답해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나 심문할 줄 모르는데. 넌 아니?”
가온의 물음에 류시범은 말을 흐렸다.
“아뇨······.”
“그럼 죽일까?”
“아뇨!”
“아, 여기서 죽임 곤란해지긴 하겠다. 그럼 살해시도를 사유 삼아 결투로 죽일까? 경찰 앞에 가서 결투 공증받고 죽이면 정당방위 맞지?”
류시범은 혼미한 와중에도 문화권이 너무나도 다른 이 다른 세계 사람을 설득해야 했다. 한국에서 결투는 어떤 경우에도 불법이라느니, 공증인의 존재는 그 위법성을 절대 조각할 수 없다느니.
다 듣고 난 가온이 중얼거렸다.
“친구네 나라 욕하기 싫지만 그건 좀 미개하네. 어쩐지 게임에 패드리퍼들이 너무 많드만, 다 결투가 금지니까 그런 거 아냐?”
그때였다. 입 다물고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당신 아스인이요?”
“그런데?”
남자는 가온에게서 시선을 돌리더니, 류시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류시범 씨. 아스 주전파들에게 협조하고 있다는 의혹이 사실인가 보군요.”
류시범은 눈을 크게 떴다.
“뭔 개소리야?”
“테러리스트 흉턴의 수명 연장을 위해 활동하고 계신 줄로 압니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요. 아닙니까?”
류시범은 잠시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한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서였다.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눈썹을 떨다가 겨우 말했다.
“설마 지금 그 게임에서 북괴들 때려잡은 거 갖고 지랄하는 거냐? 흉턴보다 먼저 김일성이 우승하지 못하게 막는 셈이니, 사실상 흉턴을 돕는 거다 이거고?”
“잘 아시면서 그랬습니까?”
“우리 주적은 북한이야!”
“혼란한 국제 정세에서 적은 언제나 바뀌는 법이죠. 그걸 전 장성께서 모르실 리가 없을 텐데요. 이 불안한 정세에서 그런 반애국적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단 것도 모르실 리 없고.”
마치 이쪽이 잘못한 듯 추궁당하는 상황을 류시범은 참지 못했다. 한 자 한 자 씹어내 뱉듯 말했다.
“김일성이, 엘프 돼서! 천 년 만 년 인민들 고혈 빨지 못하게 막으려는데! 그게 왜 반애국적이냐?”
“전쟁은 흉턴이 엘프의 육체를 얻는 동시에 개시될 거라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전쟁 발발을 돕는 셈인데······ 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모르겠습니까?”
“전쟁이야 지금 중동에서도 일어나는 거고! 한국이랑은 상관없는 일이고! 흉턴이 영원히 젊어져서 전쟁을 일으키든 말든, 그것도 한국이랑은 상관없는 일이고!”
“3차 대전이 다가옵니다. 그때 한국이 무사할 것 같습니까?”
“무사하지 못할 게 뭔데! 한국이 언제 아스 침략했냐!”
“흉턴은······”
남자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류시범은 씩씩거리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
그리 화난 와중에도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북괴들이 보낸 건 아닌 것 같다고. 남한놈 같다고.
그러니까, 자기 조국에서 자신을 치우고 싶어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