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40화 (40/135)

LV.? 소드마스터 반지성 - [4]

“나 웃겨 죽어 정말! 나 집에 가면 바로 가온 경 팬클럽 가입할래······”

“그만 웃어라, 응? 귀한 구경도 잘했으니 이제 일해야지. 아, 회장님 다음 지시······ 언데드 군단 후퇴시키라고······”

“예? 예. 바로 조치할게요.”

후임 직원은 지시를 따르면서도 그 눈은 모니터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 우연히 찾아낸 저 소드마스터는 정말이지 관음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 외모의 근사함이든, 그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언동이든 간에······.

그렇듯 저 멀리서 칼잡이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자들이 또 있었다.

지상이 아닌 천상에.

「놀라울 만치 훌륭하오. 솜씨가 한순간에 확 늘었군? 정말이지 그대 대전사의 존재는 천상의 드높은 기준에도 기적이오, 화로여. 그 마술쟁이에게 일을 시킨 보람이 참으로 넘쳐. 그 일을 시킬 때만 해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칼과 전쟁의 신이 말했고, 불과 화로의 여신께서 답하시었다.

「그 마법사에게 그리 잔혹한 짓을 명한 것은 크나큰 죄악이었다, 전쟁. 그 마법사에게도, 그 소년들에게도. 천상은 끔찍한 죄를 저질렀노라」

「그대 대전사는 그 덕에 살아있는 것 아니오? 다른 세계에 머물지 않았다면 혁명의 불길이 마지막 그레이엘프마저 태우고 말았을 테니. 이제, 그 불길을 기독교 왕국에도 피워줄 때가 왔소. 그대 대전사가 전장에 나설 때가 참으로 기대되는군」

「허튼 기대를 하지 않음이 옳으리라」

「아니, 기대할 거요. 복수의 전쟁을. 그대 대전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그러지 않고서야 전사이기 전에 한 명의 사내인가?」

「그만. 전쟁은 주제넘은 강요를 그치라」

「복수하게 명하지 않는다면? 그대 대전사를 패배자로 있게 내버려 둘 작정이오? 그것이 정녕 여신의 뜻인가?」

「누군가가 온기를 원하거든, 화로의 여신은 화로를 내주리라. 화로 앞에 앉은 그대가 패배자냐 묻는 일 없이. 무엇에게서 도망쳐왔느냐 묻는 일 없이」

「견딜 수 없이 시린 겨울에나 그러시오. 봄이 찾아왔음에도 불 앞에 주저앉아 있게 둘 순 없소. 당신의 대전사는 이겨내야 하오. 화려한 복수를 통해 굴욕적인 과거를 갈음해야 해. 그리고 전쟁이 보기에, 그대 대전사에겐 이겨낼 능력이 너무나도 넘치는군」

「물론 이겨내야 하리라.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필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서다. 내 대전사를 위해 그리 조언하는 것은 아닌 듯한데. 전쟁」

불과 화로의 여신께서 말씀하시매 칼과 전쟁의 신이 한숨 쉬었다.

「참 지극히도 감싸시는군. 정말 어미보다 더 감싸고 있어」

「그것이 이 여신의 본질이니」

「감싸다 못해 저 허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마저 못 듣게 하는 건 무슨 심보요? 분명 그대 대전사는 옛 친우와 겨루며 비장한 대사를 외쳤음이 분명하건만. 전쟁 신이 전사의 외침을 듣지 못하게 방해하다니」

「필요한 조치였노라. 그대 같은 어리석은 신은 여신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리」

*******

전투가 끝난 지 이십 분 뒤, 모여있던 랭커들 앞에 웬 해골이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이런 등장을 아까 겪어보았지만 랭커들은 다시금 놀랐다.

다행히, 리치의 목적은 온건했다.

「작별을 고하고자 왔네」

“아······ 물러가는 건가? 군대와 함께?”

「그래. 잘 싸웠던가?」

“음, 아주······”

「그렇다면 고용주에게 가서 나중에 또 고용해달라 전해주시게. 지구인들의 전쟁에 끼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거든. 카샤드 불사왕 폐하께서도 이번 싸움에 기뻐하실 거라 전해주고」

그리 말하는 언데드 리치의 안광은 희열로 빛난다.

실제로 지금 이 리치는 기뻐하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카샤드가 이끄는 리치들은 적극적으로 지구인들의 싸움에 끼어들어 그들의 피해를 늘렸다. 혹은 아스인들의 편에 서서 지구인들을 상대로 싸워 그들을 죽였다.

단순히 병력으로 쓸 시체를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스인들 사이에 그들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었다.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언데드가 아무리 끔찍해도 마족보다는 낫다는 논리로, 결국 아스인들은 카샤드에게 시체를 제공하는 데 동의했다. 사자가 언데드가 되지 않도록 화장하던 장례 풍습마저 포기한 채.

거기에 소비에트 연방은 제국주의자들을 물리치는 데 쓰라며 무기를 지원해주었다.

무기와 병력이 합쳐지니 군대가 되었다. 아스 역사 최초의 언데드 군대가.

군사력에 힘입어 결국에는 나라까지 하나 세우는 데 성공했다.

뱀파이어들과 함께 동굴과 지하에 처박혀 지내던 옛날에는 감히 바랄 수 없던 영광이다.

이 모든 것이 카샤드 폐하, 혹은 서기장 동지의 영도 덕분이다.

카샤드의 뜻에 따라, 리치들은 앞으로도 계속 아스를 위해 싸울 것이다. 지구인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자기 졸개로 만들 것이다.

결국에는 천국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반송장 군대를 필요로 하는 신들이 그 문을 열어줄 때까지.

「가능하면 또 전쟁을 일으켜주면 좋겠군. 지구인들」

NPC치고는 너무나도 즐거운 감정을 실어 중얼거리더니, 리치는 사라졌다.

이현우는 문득 역사 지식을 떠올렸다.

‘결국 2차 대전의 승자는 언데드뿐이요, 그들은 3차 대전을 그 누구보다 바라고 있을 것이라던가?’

3차 대전이 다가오는 지금, 아스에서 만든 게임 내 NPC가 그런 대사를 말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이현우는 그 의미를 고민하려다 말았다. 다가오는 전쟁이고 뭐고, 당장은 전후 처리가 우선이었다.

“기관총이며 진지며 다 망가졌고······ 그나마 야포가 그럭저럭 멀쩡해서 다행이네요. 다 어르신 덕분입니다.”

강주석이 그리 말하며 깊이 인사했다. 다른 길드원들과 함께.

가온은 씩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말고 가온 씨라 불러.”

“가온? 그러고 보니······ 진짜 소드마스터 아닙니까?”

“절대 아닌데?”

이후로도 칭송이 계속되었는데, 평소라면 가온은 근엄한 표정으로 그 칭송에 관심이 없는 척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가온은 정말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저 계속 웃었다. 어찌나 기분 좋게 웃는지, 누가 보면 지나치게 실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저 칼잡이를 우습게 보지 못할 것이다.

소드마스터와 한 시간 가까이 맞상대한 작자 아닌가. 한 전장에서 개인이 그리 돋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저 양반은 현실에서도 천 명 넘게 혼자 태워죽일 수 있고, 소드마스터랑도 이기진 못하더라도 맞짱은 뜰 수 있다 이거지. 진짜 괴물인데······’

이복동은 이제 저 아스인에게서 열등감을 느끼거나 동경하길 포기했다. 열등감이든 동경이든, 격이 비슷한 존재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이복동의 열등감과 동경은 좀 더 현실적인 인물들을 향했다.

저 아스인만큼 초월적인 활약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돋보인 자들.

랭커들을 향해 이복동이 말했다.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동료분들 중에 저격수분들은 정말 반지성 가슴에 총알 박아주셨다죠?”

“예, 뭐.”

“아무도 못해낸 위업인데요.”

“위업은. 결국 못 죽였는데? 어차피 치명적이지 않을 테니 일부러 맞아준 게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하고.”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건드리지도 못했는데 유일하게 일격을······ 거듭 말씀드리지만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저도 그럴 수 있게 될까요? 연습하면?”

아첨치고는 상당히 열정적이었다.

그래서 이현우는 기분 좋게 대답했다.

“보장은 못해도, 당연히 지금보단 훨씬 나아지겠지? 아무튼 열심히 한다고 손해 볼 건 없으니······ 열심히 해요.”

이복동은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가온은 결국 잃어버린 아다만티움 칼을 변상해주겠다는 강주석의 제안을 ‘너희 피해가 클 텐데 그럴 돈 있음 복구에나 전념하라’고 거절함으로써 모두를 감동하게 했다.

강주석이 말했다.

“정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니 약속하겠는데, 나중에 뭔 부탁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정말?”

“예, 정말.”

그 대화를 끝으로 모두가 떠났다.

이번 전과에 모두가 만족한 가운데, 지존무쌍만은 울상이었다.

전장에 떨어져 있어야 할 전리품들은 언데드들이 후퇴하며 모조리 챙겨갔다. 그래서 이번 수입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씨······ 계약이고 뭐고 앞으론 그냥 무시할까? 아무래도 그냥 딴 전장 향하는 게 낫지, 지시대로 싸우는 건 손해 같은데······”

그러나 네 시간 뒤, 지존무쌍은 고용주와의 계약 청산 계획 따윈 집어치우고 실컷 웃었다.

고용주는 놀라울 만치 통이 컸다. 전과가 만족스럽다는 이유로, 보너스라며 천이백만 원이나 입금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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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아타락시아는 직원 둘이 보내온 영상을 보았다.

우습기까지 한 영상, 소드마스터가 비극적으로 죽어버린 옛 친구에게 헛소리를 지껄이는 영상을 보며 아타락시아는 눈을 크게 떴다.

그 영상은 어느 추측을 가능케 했다.

“이 남자, 이젠 과거에 개의치 않나?”

그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두 인간 남자를 그들의 쓸모에 비해 지나치게 큰돈을 주고 고용한 보람이 있다.

아타락시아는 기꺼이 지갑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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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이복동은 도시에서 훈련에 전념했다.

그동안은 하루 두 시간만, 그것도 집중하지 않고 시간만 흘려보내는 식으로 훈련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이복동은 자기 실력이 그 랭커들처럼 훌륭해지기를 원했다.

그 결과 한 명 몫을 충분히 할 수 있기를. 제힘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기를. 진정한 의미에서 자립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 이유에서 이제 이복동은 하루 여섯 시간을 집중해서 훈련에 전념했다. 이런 노력을 공부에 썼다면 전교 순위권에 들 수 있었을 것이요, 그랬다면 꽤 좋은 대학에 들어가 취직하여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니고 있지 않았을까 자조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노력의 진지함이 무색하게도, 이복동은 저 아스인을 보면 자기가 별로 노력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저건 대체······’

가온 또한 이후로 계속해서 훈련했다.

검술 교습소에서 검을 휘두르고 휘둘렀는데, 다른 일이 없으면 하루 열네 시간은 기본으로 훈련했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와 같았다.

그러니까 교관이 새삼 감탄한 것은 다른 이유였다.

가온의 신청 하에 교관과 둘은 대련했다. 저번 대련에서도 그랬듯 이번에도 가온이 압도적으로 이겼다.

그러나 교관의 반응은 저번과 완전히 달랐다.

“처음 보는 검술인데, 수준이 높군요. 대체······”

교관은 내용 면에서 높이 평가했고, 가온은 만족했다.

모름지기 검술에서는 강함과 약함, 부드러움과 굳셈을 나누어 구분한다. 교관이 가르치는 유럽식 롱소드 검술 또한 마찬가지다.

그 개념을 예전 자신의 동작에 섞었다. 약하게 휘두르는 듯하다가 강하게. 부드러운 듯하다가 굳세게.

그리 칼을 휘두르면서 머릿속에 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회색 속에서 빛나는 불티의 이미지.

재 속에서 튀어 오르는 불티. 잘하면 화로 속에 옮겨질 불꽃이 될 수도, 불사조가 되어 날아오를 수도 있는······.

명확한 이미지를 목표 삼아서, 새로 체득한 검술을 맹렬하게 훈련했다.

이후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훈련하다 보면 늘 방해자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동안은 지존무쌍이 주로 방해자였다.

그러나 지존무쌍이 천이백만 원씩이나 되는 거금을 얻어 여유로워진 지금, 방해자는 다른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류시범 그 친구가 습격을 당했으니 도와달라고?”

가온의 말에 백골 길드에서 파견된 남자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예. 부디······ 이런 일을 부탁드릴 만큼 실력 좋은 분은 가온 씨밖에 모르겠더군요.”

가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왜 굳이 나한테? 솜씨 좋은 경호원이 필요하면 랭커들한테 부탁하든가. 이번에 알게 됐는데 내가 소개시켜줘?”

“랭커들이요? 아뇨, 그 사람들한텐 안 됩니다. 한국은 총기 규제 국가입니다. 현실에선 총 못 들고 다녀요······”

“현실에서 총 못 들고 다니는 게 뭐가 문젠데?”

“그야 길드장님, 현실에서 습격 당하셨으니까······”

짜증 내려다 말고, 가온은 눈을 크게 떴다.

“현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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