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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4판타지-39화 (39/135)

LV.? 소드마스터 반지성 - [3]

‘미친······’

가온은 땅을 구르면서 속으로 비명 질렀다.

낭패.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노리던 저격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겠다, 손에서 칼까지 놓쳤다.

심각한 일이었다. 땅에 떨어뜨린 그 칼은 아다만티움 칼이었다. 예비용 롱소드를 허리에 차긴 했지만 강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아다만티움 칼이 아닌 이상 소드마스터와 대결할 수는 없다.

그 사실을 반지성도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야! 막지 마!”

일어난 가온이 떨어진 칼을 주우려니, 반지성이 그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공격해왔다.

어쩔 수 없이 가온은 뒤돌아서서 도망쳐야 했다. 마지막 남은 MP를 헤이스트 주문에 소모하며 마구 달렸다.

그리 가속된 속도를 반지성은 맨몸으로 따라잡았다. 반신은 단순히 팔심만 셀 뿐만 아니라 각력마저 초월적이다.

사백 미터쯤 쫓기고 쫓았을 때, 가온의 MP가 거의 다 떨어졌다. 죽음을 직감한 가온은 비명 질렀다.

“저리 가!”

그리고 놀랍게도, 반지성이 그 외침에 응했다.

반지성이 다른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데로 달려가고 있었다.

“저놈이?”

이 순간 가온은 살았다며 기뻐하지 않았다.

반지성은 자비를 베푼 것이 아니었다. 다른 적을 노리려 할 뿐이었다.

반지성은 아까 저격수가 총을 쏘았던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가온이 칼을 잃은 지금, 반지성에게 위험도 순위가 바뀐 것이다.

가온은 그대로 계속 도망쳤다. 죽어라 달리면서 무전기에 대고 경고하는 겸 따졌다.

“저격수 팀, 지성이 그쪽으로 가니까 튀어! 그리고 왜 머리를 안 노렸냐? 헤드샷이 저격의 기본 아니야?”

무전기에서 저격수들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건 FPS 게임에서나 그런 거고, 현실에선 보통 몸통을 노립니다」

“나한텐 머리 쐈잖아?”

「그건 그때 제 위치에선 머리 맞힐 각밖에 안 나와서······ 실제로 몸통 쐈다면 피하기 더 어려우셨을 겁니다. 머리 젖히는 식으로 가볍게 못 피하셨을 테니까요」

확실히 넓은 과녁을 쏴야 덜 빗맞으리란 것은 분명하다. 괜히 맞히기 어려운 머리만 쏠 이유도 없다. 소리보다 빠른 납덩어리 앞에 나약한 인간의 몸뚱이는 어디든 급소니까.

그러나 반지성은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 반신이다.

“다음부턴 머리를 쏘렴. 어느 반신이 몸통에 구멍 하나 뚫렸다고 죽니?”

「몸통 쏴선 안 죽습니까?」

“잔뜩 쏘면 물론 죽지. 심장 같은 급소 맞혀도 죽고. 하지만 복부 같은 곳에 한두 발 맞힌 건 가뿐히 재생······”

무전기 너머에서 비명이 울리더니, 말이 끊겼다.

반신이 기어이 두 저격수를 찾아내 처치한 모양이다.

침묵 속에서 가온은 힘없이 전장을 둘러보았다.

언데드들이 계속 물결치는 가운데, 백두 길드원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해일 앞에서 저항해봤자 통째로 휩쓸릴 뿐이다.

아무리 봐도 승산은 없어보였다.

가장 솜씨 좋은 저격수 팀이 죽었다. 게다가 반쪽 소드마스터마저 무력화된 지금, 다 끝장이었다.

단순히 자신이 24시간 접속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언데드들이 이 땅을 점령하기 직전이었다. 이대로면 저 불운한 길드와 그 가입자들은 가진 재산을 모조리 잃고 말 것이다.

이 와중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가온은 힘없이 본진으로 돌아왔다.

이복동과 지존무쌍, 그리고 백두 길드장 강주석이 함께 있었다.

지존무쌍이 눈을 크게 떴다. 가온이 아까 들고 갔던 칼과 지금 든 칼이 다른 것을 알아보았다.

“아다만티움 칼 잃어버렸어요?”

“응.”

“미친······”

지존무쌍이 비명지르듯 욕설을 내뱉었다. 그 칼을 잃어버린 전술적 심각성을 파악한 것일까?

아니었다.

“그거 삼백만 원짜리 아뇨? 너무 아깝네 정말······”

지존무쌍의 말에 옆에 있던 강주석마저 눈을 크게 떴다.

“삼백만 원짜리 아이템 잃어버리셨다고요?”

“어쩌다보니······”

“어디서 잃어버리셨습니까?”

강주석의 물음에 가온이 반문했다.

“그건 왜 묻니?”

“삼백만짜리 칼, 되찾아오겠습니다.”

가온은 허 하고 웃었다.

“저기 좀비들 득실거리는데? 그거 챙기겠다고 좀비들이랑 실랑이 벌이다간 꼼짝없이 죽어. 나도 어쩔 수 없이 회수 포기하고 그냥 돌아왔다, 인마.”

“칼 회수를 위한 결사대를 꾸리겠습니다. 이쪽 도와주시려다 큰돈 잃게 할 수는 없으니.”

“아니, 제 코가 석잔데 뭔······ 너희 지금 망하기 직전 아니냐?”

“그렇죠. 하지만 망해도 깔끔하게 망할 겁니다.”

그리 말하는 강주석의 눈이 불안으로 흔들린다. 절망스러운 와중에 멋진 척하려 노력하는 모양이다.

가온은 감사를 말해야 하나, 사과를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결국 결정하지 못하고는 여신께 한탄했다.

‘저 친구가 절 괴롭게 만드는군요. 생각해보면 이거 제 탓인데······’

여신께서 물으시었다.

‘내 대전사의 탓이라니?’

‘제가 반지성 잡는 데 동참하지 않았으면, 그 고용주 아가씨도 언데드 군단을 고용하지 않았겠지요? 그러니 제 잘못으로 이 꼴이 된 셈 아니겠습니까.’

‘내 대전사의 잘못이라 단정 짓기는 어렵노라. 내 대전사는 당시 할 일을 했을 뿐이라. 사태를 일으킨 주동자가 아니지 않으냐?’

‘그래도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군요. 그렇다고 딴 방법으로 도와주자니 참 어려운 일입니다. 며칠 전이었음 그 모기들한테 돈 받아다 저 친구들 금전적 피해를 보상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며칠 전에 모기들한테 그리 굴어놓고 손 벌리긴 체면이 서지 않는군요. 그때 너무 심하게 갈궜어요······.’

‘그렇다면 어쩔 테냐, 가온아?’

‘책임을 지진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긴 해야겠지요.’

가온이 강주석에게 말했다.

“칼 챙겨줄 필욘 없고. 나 지금 다시 지성이랑 맞짱 뜨러 갈 건데, 엄호나 해주라?”

그 말에 강주석이 물었다.

“솜씨가 엄청나게 좋으시단 건 이미 잘 압니다. 그래도 소드마스터를 이기진 못하시잖습니까? 아까야 저격을 노리고 시간을 끄신 거지만, 지금 우리 중에 그만큼 솜씨 좋은 저격수도 없는데·····”

“저격수 없어도 돼.”

“그럼 어떻게?”

“상대가 안 되도 덤벼보긴 해야지.”

“승산이 있습니까?”

“그냥 싸워선 물론 없지. 그 승산 높이도록 부탁할 게 있는데······”

가온의 말을 듣고 난 강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온은 씩 웃더니, 다시 전장으로 달렸다.

마나의 회복속도는 마나의 총량에 비례한다. 이 게임에서도 그 법칙이 적용되었다.

덕분에 가온의 MP는 부족하나마 다시 차오른 상태였다. 헤이스트 주문을 걸고 달릴 수 있었다.

계속 달린 그곳에 옛 친구의 얼굴을 한 소드마스터가 있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가온은 반가이 인사했다.

“지성아, 형 못 알아보겠니? 나야 나! 내가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이 모습 하고 있지만 실은 네 오랜 전우이자 의형제인 가온이란다. 형 폴리모프 엄청 잘 쓰는 거 네가 모를 일 없지? 그런 형한테 칼 휘두르기 있기 없기?”

반지성이 가온에게 칼을 겨누는 가운데, 가온은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너보다 한 살 많으니까 연공서열을 생각해서 져주지 않을래?”

반지성은 대화를 거부했다.

들이닥치는 16미터짜리 칼을 가까스로 피해내며 가온이 외쳤다.

“너 지금 흉턴한테 개털릴 때 형이 안 도와줬다고 보복하니? 못 도와준 거야! 너도 나 하고한테 털릴 때 안 도와준 거 형이 뭐라 안 했잖아. 서로 돕고 어쩌기엔 당시 우리 둘 다 너무 힘들었잖니? 힘든 사람끼리 다투지 말자, 응?”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충돌을 피하려 했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소드마스터가 펼치는 공격을 쉽게 회피해낼 수는 없다.

또 다시 죽을 위기를 넘겼다. 가온의 목 위로 거센 풍압이 지나갔다.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만들어낸 진공 탓이다. 머리칼이 뭉텅이로 잘려나갔다.

“칼에 감정실었냐? 너 인마, 혹시 진짜 지성이 본인 아냐? 사실 로그인 중이라서 NPC인 척 나 패는 거지? 다 들켰네. 너 죽었다. 현피 뜰래? 형 지금 인간 몸뚱이라 그렇지 현실에선 킹왕짱이야. 한국에 밀입국해서 현피로 두들겨 팬 놈이 세 명 넘는다? 네 명째 되고 싶니 정말?”

계속 외치자니 여신께서 말씀하시었다.

‘가온아, 지켜보는 자가 있거든 비웃다 못해 웃다가 숨이 넘어가리라. 그런 참혹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입 좀 다물면 안 되겠느냐?’

‘듣긴 누가 듣는다고 그런 말씀을······’

여신께는 다행스럽게도, 가온이 입을 다물었다.

포성과 함께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백두 길드에서 이쪽에 포를 쏘고 있었다.

그 포격이 두 소드마스터를 직격하지는 않았다.

그런 목적의 포격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시커먼 연기가 마구 터져나왔다. 순식간에 주변은 연막으로 자욱해졌다.

백두 길드에서 연막탄을 쏴주고 있었다.

가온이 요청한 대로였다.

아까 가온이 말하길, 자신은 엘프답게 청각이 예민하여 눈이 가려져도 괜찮지만 인간인 반지성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러니까 연막 속에서는 자신에게 승산이 생길 것이라고.

거짓말이었다. 둘은 빛이 거의 없는 세상에서 싸우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 덕에 가온의 청각은 엘프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일 정도였다.

반지성도 마찬가지라, 그 앞에서는 투명화 주문마저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연막을 뿌려달라고 한 것은 반지성의 눈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너 이제 형한테 죽었다.”

가온이 왼손에 쥐고 있던 롱소드를 오른손에 바꿔 쥐었다. 소드마스터를 상대로는 무의미한 강철제 롱소드는 이 순간 최고의 병기가 되었다.

검신을 타고 흘러나오는 잿빛 검기.

물리적 충격을 무효화하는 검기의 특성상 양쪽의 근력 차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소드마스터들 사이에서 대전 승률 1위는 팔마저 가느다란 우드엘프 여자일 정도다.

가온이 검기를 드러냄과 동시에 반지성의 경계심이 더욱 커졌다.

반지성이 자세를 바꾸더니, 덤벼들었다.

검기 두른 양쪽 칼이 부딪친 순간 가온이 소리쳤다.

“좆밥이네!”

반지성의 공격을 가온은 아까보다 훨씬 쉽게 방어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여유가 있었다. 단순히 막아낼 뿐만 아니라, 적의 공격을 관찰할 수 있었다.

반지성이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펼치는 천둔검법을 보았다.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가온이 마지막으로 저 검술을 본 이후, 반지성은 오랜 훈련을 통해 다른 검술을 습득하고는 흡수했을 것이다. 흡수한 내용을 기존에 익힌 검술에 반영했을 것이다.

가온은 자신도 저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수정을 시도했다.

가온에게도 나름의 검술이 있다. 괴물들과 사투를 벌이며 몸에 새겨진 동작들.

거기에 요새 익힌 롱소드 검술을 섞어본다.

그 작업을 처음부터 해내자면 대단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지금은 쉽다. 눈앞에 이미 변화에 성공한 남자의 검술이 있지 않은가.

다른 작품이 예전과 어떤 점에서 달라졌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자기 작품을 수정할 참고 자료가 된다.

순식간에 작품 수정이 끝났다.

바뀐 작품을 눈앞의 적에게 사용해본다.

연막을 휘감은 재가 흐릿하게, 그러나 세차게 연막 속을 가로지른다. 흐릿함은 부드러움을 중요시하는 롱소드 검술에서, 세찬 부분은 원래 쓰던 동작에서 빌렸다.

소드마스터의 작품답게 서로 다른 두 방식의 조화는 완벽하다.

재는 연막 너머에 있는 적의 목을 향해 정확히 쏘아진다.

물론 계속 가로지르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재의 경로에 백색 광채가 끼어든다.

그 순간을 노리고 있던 재의 반격. 꺼져가던 재가 폭발하듯 흩날리며 백색 광채를 휘감는다. 그리고는 다시 적의 급소를 향해 쏘아지는 재.

반지성은 몸을 틀어 회피한다. 그것을 본 가온은 웃는다.

롱소드 검술의 반격기의 응용,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나름대로 통했다.

처음 펼치는 방식을 시험할 여유가 있다. 다행히 반지성의 검술 완성도는 흉턴의 수준이 아닌 덕이다.

애초에 오랜 세월 쌓아올린 롱소드 검술의 완성도와 한 명이 새로 만들다시피 한 검술의 완성도가 비슷할 리 없다.

그래서 이쪽 작품이 그렇듯, 저쪽 작품도 아직 미완성이다. 지극히 완성에 가까운.

계속해서 재와 백색 광채가 뒤섞인다.

사방이 온통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지만 재와 백색의 존재만은 뚜렷하다.

휘두르고 휘두르면서, 오랜만에 친구와 제대로 어울리는 가온은 기껍다.

두 칼잡이가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그 시절로 돌아온 기분이다. 서로의 발전을 위해 대련을 하듯, 즐거이 칼을 섞고 섞었다.

계속 그러면서 가온은 웃었다. 이대로면 어차피 MP가 부족한 자기 패배라는 걸 알지만 상관이 없다.

계속해서 칼을 휘두른다. 오로지 그 사실에만 집중한다.

적과의 거리를 좁히고, 좁히던 와중이었다.

의외로 대결은 가온의 패배로 끝나지 않았다.

반지성이 힘껏 칼을 휘둘러 가온을 떨쳐내더니,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달아나기 시작했다. MP가 부족한 가온은 쫓아갈 여유가 없었다.

“뭐니? 형 실력 보니 갑자기 현피가 두려워진 거니?”

물론 아니었다.

가온은 연막 너머에서 울리는 발소리들을 들었다.

발소리는 언데드들이 들이쳤던 저 해안을 향하고 있었다.

언데드들이 바다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왔던 곳으로 돌아가 후퇴하고 있었다. 이유는 몰라도 어쨌건.

언데드 군단이 후퇴하니 반지성도 어쩔 수 없이 함께 도망치는 것이었다. 총알 한두 발쯤은 웃으며 맞아줄 수 있는 반신 소드마스터에게도 한계가 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 한 가운데에 홀로 서서 모두의 표적이 되길 원하진 않는다.

결국 연막이 걷힌 뒤, 가온은 살아있었다. 그 사실이 모두를 놀랍게 했다.

“와, 정말 버텼어요? 진짜······”

잠시 후, 환성이 울려 퍼졌다.

그 어느 때보다 기분 좋게 가온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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