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37화 (37/135)

LV.? 소드마스터 반지성 - [1]

백두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거대 길드다.

그러나 규모에 비해 장비가 초라하다. 후원자가 많이 붙지 않아 자금적으로 빈약한 탓이다.

그래서 해안 방어 능력은 수도 적은 일본인들이 훨씬 뛰어날 정도였다.

“쪽바리들, 쏴라 쏴!”

일본의 영토는 조그만 섬 하나였는데, 거기서 나온 화력은 무시무시했다.

폭격기들이 출격했다. 요란한 폭탄 세례, 유령선들 주변으로 물보라가 마구 솟구쳤다.

심지어 일본인들이 지닌 해안포의 수는 백두 길드가 지닌 것보다 몇 배나 많았다. 그들이 퍼붓는 화력에 바다가 뒤집히고 있었다.

“발포! 발포오!”

한편 백두 길드에서도 필사적이었다. 몇 문 없는 해안포를 모조리 동원해 유령선들의 접근을 막으려 했다.

다행히, 유령선들의 방어력은 터무니없이 빈약했다. 어느 공격이든 명중만 하면 큰 타격을 받다 못해 선체가 두 쪽으로 갈라져서 가라앉았다.

계속해서 바닷속에 삼켜지는 유령선들. 조금 전만 해도 수평선을 가득 채웠던 그 배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랭커들의 입에서 탄식이 절로 나왔다.

“뭐야 저거?”

4개 사단이고 뭐고, 저것은 아예 상륙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 아닌가.

아무래도 소드마스터를 상대하기는 요원해 보이는 상황이다.

하필이면 지금, 그 소드마스터가 출현했다.

저 멀리 있는 일본의 섬에.

“반지성이야!”

저 멀리 소드마스터의 존재는 뚜렷했다.

육안으로 볼 때, 반지성의 형체는 점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반지성이 휘두르는······ 칼에 실린 검기. 그 빛나는 에너지만큼은 모두의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하기야 16m 길이 빛 덩어리를 못 볼 수야 없는 법이다.

크기가 곧 파괴력이다.

그 빛 덩어리가 횡으로 크게 휘둘러지고 나면, 멀리서도 보이는 35미터짜리 빛의 선이 그어진다.

해안포대 하나가 거대한 빛의 선에 닿더니 초토화되었다. 포며 포대며, 포대가 있던 절벽까지 모조리 폭발하듯 갈라지며 무너졌다.

포격이라도 가한 것 같은 장면에 모두가 잠시 할 말을 잃은 가운데, 가온이 무덤덤하게 물었다.

“저격수 친구야, 저 거리에 맞힐 수 있니?”

가온이 묻자 저격수는 조금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요. 애초에 너무 멀고, 너무 빠르게 움직입니다.”

“하긴 그렇지?”

애초에 저격수는 저 괴물이 총알 한 발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혼자서 자연에 상처를 새겨넣는 초인의 존재란 가히 초자연적인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포성이 천둥처럼 울리고 있었다. 포성에 귀가 아파 올 때마다 유령선들은 수 척씩 가라앉고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는 고요해졌다. 결국 모든 유령선들이 격침되고 말았기에.

임무를 마친 폭격기들이 돌아오자 반지성은 부리나케 숨었다.

이로써 모든 상황은 종료된 것으로 보였다.

“씹, 결국 다 가라앉았네. 고용주한테 어찌 보고 하지?”

이현우의 말에 가온이 물었다.

“너희 잘못도 아닌데 왜?”

“저희 잘못 아니든 뭐든 거금을 날렸잖아요? 속 쓰릴 겁니다.”

그 말에 가온이 고개를 저었다.

“내 보기엔 돈 안 날렸어.”

그 말에 동의하는 이가 있었다. 사람이 아닌 누군가가.

「잘 아는군그래」

머릿속으로 직접 울리는 정신파. 리치 아니면 드래곤의 언어전달 수단이다.

지금 여기 나타난 것은 드래곤이 아니었다.

“리치!”

랭커들은 이 자리에 나타난 언데드를 보고 기겁했지만, 가온은 이 상황을 전에 경험해보았다.

물끄러미 리치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익숙한 해골. 착각이 아닌 것 같았다.

리치가 말했다.

「구면이군. 그렇지? 내게서 스켈레톤 중대를 고용한 분 아니신가」

가온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 리치구나. 그런데 그걸 기억하나?”

「기억하지 물론. 온기 넘치는 시체 수백 구와 금전까지 얻게 해준 고마운 분을 어찌 잊겠나? 그토록 훌륭한 거래 상대방을 잊을 리가 없네. 아무리 골통에 든 게 없어도 말이지」

리치가 그리 말하며 정신적으로 웃었다.

그리고 가온은 리치가 나름 유머 감각을 발휘했음에 주목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저번에 잡은 드래곤조차 아무런 지성이 없는 것 같더만. NPC들 AI 차이가 왜 이래?’

물론 지금 그걸 신경 쓸 상황은 아니었다.

이현우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댁이 저 유령선들 지휘자요?”

「그래」

“그런데 고용한 돈 안 날렸다니······ 배가 다 가라앉았는데?”

「물론 그렇지. 탑승객들도 물론. 그러나 불사자들······ 그러니까 언데드들은 익사하지 않아」

그 말의 뜻은 그로부터 십여 분 뒤에 알게 되었다.

파도 속에서 웬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물에 피부가 불어버린, 그래서 더욱 흉측해 보이는 좀비들. 거기에 일부의 스켈레톤들이 바다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선박은 그저 행군속도를 빠르게 하는 수단일 뿐이야」

리치가 부연하는 가운데, 저 공포 영화 같은 장면에 랭커들은 눈을 크게 떴다.

해안 방어에 나서야 할 자들도 태평하지 못했다.

반지성을 찾고자 정찰하던 전투기들도 부리나케 해안 방향으로 선회했다.

해안에 닿은 언데드들은 지나치게 많았다. 그 모두를 죽이기엔, 전투기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탄들은 충분하지 않았다.

우글거리는 언데드들이 섬을 포위했다.

스켈레톤과 좀비들. 언데드들은 총을 감싸고 있던 방수천들을 찢어버리더니, 돌격했다.

이제는 포성보다도 비명이 더욱 커졌다. 일본 섬도, 한국 플레이어들의 영토도 마찬가지였다.

“씨발 뭐야아아아아아아!”

다들 미친 듯이 총질하고 기관총을 쏴댔지만, 물결치며 다가오는 언데드의 군세를 막기란 턱없이 부족했다.

총알보다 많은 적들이 파도를 헤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반송장으로 이루어진 해일이 닥쳐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1차 방어선이 뚫렸다.

그 뒤로도 여러 진지들이 함락되는 가운데, 언데드들이 계속해서 다가왔다.

일반 플레이어들의 입장엔, 소총탄으로 잡기 어려운 스켈레톤은 물론 좀비들마저 악몽 같았다. 좀비들은 다리 관절이나 머리통만 날리면 무력화된다는 점에서 스켈레톤보다 낫지만, 일일이 급소만 날리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잘 죽지도 않는 적들이, 이쪽을 능가하는 규모로 밀어닥쳤다.

이 와중에 백두 길드는 아비규환 상태였다. 누가 뭘 하려 해도 막을 수 없을 만큼.

“진짜 이게 뭔······”

고용주가 의도한 상황, 그러나 지켜보는 입장에 달갑지는 않았다.

언데드들의 군세는 지나치게 압도적이었다. 이대로면 백두 길드가 멸망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지성이 하나 잡자고? 그건 너무한데······’

가온은 일본의 섬을 바라보았다.

아까 폭격기들을 피해 숨었던 반지성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특유의 거대한 칼을 휘둘러, 자신을 덮치려 드는 언데드들을 마치 수수깡인 듯 잘라내고 있었다.

검의 크기가 크기인지라 밀려오던 언데드들은 초 단위로 수십 마리씩 잘려나갔는데, 반지성 한 명이 어지간한 기관포보다 나을 지경이었다.

‘이 상황에 반지성 때려잡겠다고 나섰다간 욕 엄청 먹겠고······’

설령 욕을 먹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가온은 이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다.

말로는 반지성을 죽이겠다느니 어쩌느니 했지만 가온은 사실 반지성을 해치우는 데 별 의욕이 없었다.

이미 여러 차례 이겨본 상대와 굳이 싸운들 실력 증진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승리한들 그리 칭송받을 만한 일조차 아니다. 지금 이 상황에는 특히.

결국, 가온은 맘을 정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선언했다.

“난 그냥 쟤네 도울래.”

이현우가 말을 받았다.

“쟤네면? 백두 애들이요?”

“어. 쟤네 저러다 함락되면 재산 다 잃고 알거지 되는 거잖아. 그럼 얼마나 불쌍해?”

“그건 그렇긴 한데, 우리 고용주가 용납할까요?”

“내 경우엔 용납하고 말고도 없을걸? 나 애초에 고용 안 됐거든.”

“어, 고용 안 되셨어요? 그럼 맘대로 하셔도 돼죠.”

이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릴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랭커들도 지금 이 상황에 반지성을 해치러 나서는 것은 회의적이었다. 지금 반지성을 잡겠다고 나섰다간 거의 영토를 크게 잃기 직전인 한국 최대 길드에 찍힐 것 아닌가. 아무리 스폰서가 있다 한들 대놓고 이미지를 망치는 것은 피하고 싶다.

그러나 지존무쌍은 이미지 같은 고상한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아, 가온 씨, 그러기야?”

지존무쌍이 애원했는데, 가온이 멋대로 행동하면 고용주가 자길 고용한 보람이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가온은 방해받고 싶지도,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도 않았다.

“전리품 얻으면 다 줄 테니까 뚝!”

그리 짧게 말한 뒤, 뭔가 말하려던 지존무쌍을 무시하고 달려나갔다.

악취 나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좀비와 스켈레톤들이 총을 들었음에도 막상 날아오는 총알은 많지 않았다. 아무리 방수천으로 감쌌다지만 배가 침몰하는 과정에 죄다 침수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가온은 놈들에게 정면으로 달려나갈 수 있었다.

왼손으로 칼을 잡은 가운데, 언데드를 상대로 총은 별로인즉 평소 오른손에 쥐던 권총은 허리에 찼다.

그렇다고 오른손은 노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가온은 공격 주문을 쓸 수 있다.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평소에는 공격 주문을 쓰느니보다 다른 주문을 쓰는 게 나은지라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전에 마나의 총량이 대폭 오른바, 꽤 강대한 수준의 마법 행사가 가능했다.

굳이 주문을 외울 필요도 없었다.

가온이 손을 휘저었다. 그 손길에 전장에서 피어오르던 불길이 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저기 뭐······”

놀라울 만치 크고 화려한 불놀이. 가온이 왼쪽으로 손을 휘두르면 불길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휘두르면 오른쪽으로 쇄도했다.

마력이 크게 소모되지 않는, 그래서 대규모로 발휘할 수 있는 화염 조종 주문이다.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살덩이의 파도를 휩쓰는 불길의 파도.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던 좀비 소대가 화염에 휘감겼다.

강렬한 화염은 반쯤 죽은 송장들에게도 효과가 충분하다. 좀비들의 손가락은 방아쇠를 당길 수도 없게 서로 눌어붙었다. 이미 거의 다 죽어있던 전신의 신경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순식간에 무력화된 좀비 무리를 지나, 불길은 다른 언데드 무리를 휩쓸었다.

뼈 무더기 스켈레톤들.

그들에게는 훨씬 효과가 좋았다.

불에는 정화의 힘이 있는 법. 그들의 뼈를 아교처럼 연결하고 있던 원혼들은 불에 닿을 때마다 어김없이 녹아내렸다. 전신의 연결이 끊겨 허망하게 쓰러져갔다.

계속해서 손을 휘젓고, 불길로 전장을 휘저었다.

불길이 지나가는 곳이 곧 사람이 지나갈 길이었다. 가온이 크게 손을 휘젓자, 언데드의 물결 한가운데에 지나갈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이 채워지기보다 더욱 빨리, 가온이 달려나갔다.

저기에 지휘부 건물이 보였다.

사방이 좀비 무리에 둘러싸인 가운데 저항하는 무리가 있었다.

웬 두 명이 지휘부 옥상에서 기관총을 쏴대는 중이었다.

기관총이 불을 뿜을 때마다 좀비들이 잔뜩 쓰러지기는 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었다. 슬슬 총열이 과열되고 있었으니.

가온이 그 주변에서 아까 하던 짓을 마저 했다. 또 다시 불길이 주변을 휩쓸었고, 순식간에 수십 좀비들이 무력화되었다.

덕분에 쉴 틈이 생겼다.

옥상의 기관총 사수는 누가 자신을 도와주었는지 알아보았다.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영상보다 더하시네? 혼자 주인공이야 아주. 마검사 간지 작살······”

그 옆에 있던 남자가 쏘아붙였다.

“간지? 왜놈 말 쓰지 마라.”

“아, 예. 길드장님.”

기관총 사수 옆, 백두 길드장 강주석이 가온을 바라보았다.

강주석은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물었다.

“떠나라니까 아직도 안 떠나셨습니까?”

“상황 보고 참전했다.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서. 그런데 너야말로 왜 안 튀었니? 여기 가진 재산 많을 테니 얼른 옮겨야 하는 거 아냐? 그러지 않고 왜 직접 싸우고 있대?”

“항일 길드의 수장이 제 재산 지키자고 내뺄 순 없죠. 왜놈들이 보고 비웃을 것 아닙니까.”

그 순간, 가온은 여신께서 왜 그토록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라 말씀하셨는지 이해했다.

‘미친놈인가?’

게임에서 일본인들을 무찌르는 걸 정말 숭고한 항일투쟁쯤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가온이 보기에도 비정상적인 일이었다.

다행히 그밖에는 나름 정상인 것 같았다.

강주석은 지금 상황에 합당한 행동을 했다.

저 아스인의 판타지스러운 활약을 직접 보기까지 한 마당이다.

가중석은 고개를 깊이 숙이더니 감사를 표했다.

“사실 도와주실 필요가 없었는데······ 제가 몹쓸 말을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도와주시다니, 정말로 고맙습니다.”

“감사는 됐으니까 일단 싸우는 데나 집중하자, 응?”

“거듭 감사······”

가온은 양심상 이 상황에 잘난 척할 수는 없었지만 쿨한 척하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말없이 뒤돌아서서는 껑충 뛰었다. 좀비 하나의 머리를 짓밟으며 껑충 뛰었다.

적들 한가운데에서 칼과 불을 휘둘렀다.

불길 한 가운데에서 날뛰는 검사란 시각적으로도 화려했다. 불이 전장을 휩쓸고 휩쓸었다. 재산을 간수하고자 도시에서 도망치려던 사람들마저 멀거니 바라볼 정도였다.

그리 관심을 독차지한 마당이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가온은 새삼 격세지감을 느꼈다.

천 가까이 해치웠나? 그런데도 적은 줄어든 것 같지가 않다.

불과 백 년 전이었다면 혼자 수백의 적을 해치우는 마법사의 존재만으로 그 전투는 이긴 것이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전장은 지나치게 거대해졌고, 거기서 소모되는 병력 또한 지나치게 많아졌다.

결국 한계가 찾아왔다. MP가 전부 소모된 뒤, 가온은 칼과 총을 휘둘렀다.

마구잡이로 쏘고 베어 넘겼다.

드넓은 전장에서 칼잡이 하나의 존재가 크게 도움 될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싸웠다.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옛날에도 그랬으니까.

흘러내리는 땀도, 점차 굳어가는 팔다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무아지경으로 좀비의 목을 떼어내고 스켈레톤들의 관절을 부수길 거듭했다.

그러길 한창, 지원군이 도착했다.

백골 길드원 한 무리가 가온에게 다가와서는 말을 전했다.

“고생 많으십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온은 힘든 티를 내지 않으며 대답했다.

“감사는 나중에 하라니까.”

“단순히 감사만 전하러 온 게 아니라, 부탁이 있어서······ 반지성 잡으러 오셨다고 하셨죠.”

“그런데?”

“혹시 지금 잡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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