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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4판타지-33화 (33/135)

LV.4 오크 요으 - [2]

구출한 여자애의 이름은 봐라니였다.

가온의 손에 이끌려, 갑자기 다른 장소에 오게 된 봐라니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만 갸웃거렸는데, 그나마 아는 사람인 요으가 여기 있어서 평온한 것 같았다.

“요으, 뭐야? 엄마가 나 데려오랬어?”

“응? 응.”

“바쁠 텐데 고마워!”

요으가 고개를 숙였다. 봐라니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가온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바닥을 노려보듯 고개를 떨구었다.

가온이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이 상황은 비극적이었다. 애써 구출하러 왔더니 여자애는 이미 뱀파이어에게 물려버린 것이다.

이 사실에 가온은 죄책감을 느낀바, 더없이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진심으로 미안해. 내가 쓸데없는 짓 안 하고 좀 더 일찍 왔더라면······”

“좀 더 일찍 왔음 뭐가 어떤데요?”

봐라니의 물음에 가온은 입술을 달싹거렸다. 이제 어떻게 말해야 하나. 지금 상황을 직접 설명해야 하나, 아니면?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떼어 겨우 말했다.

“내가 널 더 일찍 구출했을 테고, 납치된 넌 뱀파이어가 안 됐겠지.”

봐라니가 고개를 저었다.

“구출이요? 저 납치 안 됐는데? 엄마가 거기 데려다 줬어요.”

“엄마가?”

자식을 팔다니? 가온은 어찌 그런 패륜이 일어났는가 싶어 경악했다.

그러나 봐라니의 다음 말은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예. 뱀파이어 될 수 있댔어요. 뻥 아니었어요. 그래서 엄청 좋은데?”

“그래서 좋다니, 그건 또 무슨······”

“선생님이 장래희망 물어보면 나 맨날 이렇게 대답했어요. 뱀파이어 될래! 그럼 선생님이 난 예쁘니까 될 수도 있을 거라며 칭찬해줬다?”

봐라니는 뱀파이어가 무슨 ‘대통령’ ‘연예인’과 비슷한 단어인 것처럼 그리 말했다.

봐라니가 실실 웃는 가운데, 충격 속에서 가온은 생각했다. 뱀파이어의 이미지가 어떻던가?

‘나 어릴 때만 해도 뱀파이어라면 나병 환자만도 못한 취급이었는데. 나병은 사제라도 잘 만나면 치료할 수 있지, 물려서 뱀파이어 된 건 치료도 못 하니까······’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가온은 겨우 떠올렸다.

현대에 이르러 뱀파이어들은 자기네 사회적 이미지를 귀족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물이 눈앞에 있었다.

“엄마가 거짓말 안 해서 꿈 이뤘어요! 막 눈도 루비처럼 반짝이고! 피부도 하얘지고! 이젠 꼬부랑 할머니도 안 되고!”

봐라니의 말에 가온은 애써 태연한 척 물었다.

“그래서, 뱀파이어 돼서 좋다 이거니?”

“네! 근데 오빠도 뱀파이어에요?”

“아니.”

“오빠 엄청 잘 생겼는데? 뱀파이어 정말 아니에요?”

봐라니의 머릿속에 뱀파이어의 이미지란 그저 아름답고 고귀한 무언가인 듯했다.

가온은 차마 그 환상을 깰 엄두가 내지 않았다.

“여기 스마트폰 줄 테니까 유투브 보고 있을래?”

“네!”

가온은 봐라니를 앉혀두고, 여전히 울상인 요으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본인은 좋아하는 거 같은데. 너무 심각하게 굴 필요는 혹시 없는 건가?”

요으의 대답은 가온의 기대와 달랐다.

“아뇨으, 충분히 심각한 상황 같아요으······.”

“왜? 혹시 멋대로 납치해와서 뒤탈 있을까 봐 그러나? 어차피 내가 데려온 거 안 들켰으니까, 도로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될 거 같은데.”

“아뇨으, 그게 아니라······ 뱀파이어 된 거 자체가 문제 같아요으.”

요으는 봐라니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더니 가온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쟤, 애완 흡혈귀 된 거예요으.”

“애완 흡혈귀가 뭔데?”

“지구 독재자 중에······ 차우셰스쿠? 예, 차우셰스쿠가 처음 만든 건데요으.”

이어진 요으의 설명은 이러했다.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 독재자요, 공산계 뱀파이어이기도 하다.

드라큘라의 후예를 자처하는 그 뱀파이어 공산당 독재자는 자국 내 출산율을 늘리길 원했다.

독재자답게, 강압적인 산아 정책을 강행했다. 낙태와 피임을 하는 여성들을 사형에 처하거나 모든 여성에게 넷 이상의 아이를 낳게 하는 식으로.

당연히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마구잡이로 태어난 아이들은 애지중지 키워지지 못했다. 산모가 죽어 버려지거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

결국에는 고아원을 가득 채우다 못해, 마피아들에게 붙잡혀 이곳저곳으로 수출되었다. 소년병을 원하는 군벌에게, 소아성애자에게, 아동포르노 업자에게.

이때 차우셰스쿠는 아이들이 ‘수출’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부족한 외화를 벌어온다는 점에서 수출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 그러니까 마피아가 아니라 자국이 직접 수출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정부가 직접 인신매매를 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차우셰스쿠는 이 상황을 뱀파이어답게 해결했다.

“부하 뱀파이어들을 시켜, 예쁜 어린애들을 골라서 늙지 않는 뱀파이어로 만들어 판 거죠으. 이젠 인류가 아니랍시고 비싼 애완동물로······”

다른 뱀파이어들이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다.

뱀파이어 군주들은 아무나 뱀파이어가 될 경우 뱀파이어의 귀족적 이미지에 손상이 갈까 우려했다. 그런 이유로 뱀파이어의 양산을 엄금했는데, 차우스셰스쿠의 경우에는 아예 뱀파이어를 가축으로 전락시킨 셈이었다.

차우셰스쿠를 뱀파이어로 만들어준 뱀파이어 군주는 당연히 분노했다.

카샤드 서기장의 총애를 받는 차우셰스쿠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러는 대신, 차우셰스쿠가 이번 일을 주도했노라 주장한 부하 뱀파이어들을 처분하도록 명령했다.

결국 차우셰스쿠의 부하 뱀파이어들은 대거 숙청되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어린 뱀파이어들도 그때 거의 다 죽었다.

그렇듯 일단 애완 흡혈귀가 되고 나면 목숨마저 위태롭다고 했다.

늙지 않는 언데드로서 영생하기는커녕 서른도 못 돼 죄다 죽는다고. 누군가에게 들킬 것 같다 싶으면 상위 뱀파이어가 명령을 내려 바로 죽여버린다고.

“어린앨 뱀파이어로 만드는 게 뱀파이어들 사이에서도 금기면 그냥 신고하면 되는 거 아냐?”

“그게, 요샌 뱀파이어 패밀리들 사이에 돈이 쪼들리면 만들어서 판다던데요으. 만드는 게 금기지 유통까지는 금기가 아니니까, 들키면 옛날에 차우셰스쿠가 만든 거라며 우긴다고······”

“그래도 결국 애완 뱀파이어는 들키자마자 처분되고?”

“예으, 아마.”

요으가 추가로 설명하길, 애완 흡혈귀는 토 나오게 비싼 가격에 팔린다고 했다.

단순한 소아성애자에게만 수요가 있는 것이 아니다. 뱀파이어가 되어 영생하고 싶은 재력가들도 수백만 달러를 내어 애완 흡혈귀를 구매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애완 흡혈귀의 운명은 끔찍하다고 했다.

재력가들은 자기가 비싼 돈을 주고 산 애완 흡혈귀가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들어주길 기대하겠지만, 바라는 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애완 흡혈귀들은 아주 조금의 피만을 나눠 받은 최하위 뱀파이어다. 다른 이를 뱀파이어로 만들어줄 능력이 없다.

뒤늦게 사실을 알고 화가 난 데다 어린애를 돈 주고 샀음을 들키기 싫은 재력가들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애완 흡혈귀는 아무런 소음 없이 처분된다.

처분 방법은 지나치게 쉽다. 햇볕 드는 베란다에다 잠시 내놓으면 깔끔한 재 한 무더기가 남아있을 뿐이니. 그 후에 진공청소기 좀 돌리면 끝이다.

싸구려 목숨.

이 여자애는 그런 신세가 되었다고 요으는 말했다.

“심지어 언데드가 되었으니 천국에도 못 갈 거 같은데, 이제 불쌍해서 어쩌죠으? 물려서 뱀파이어 된 뒤에 자살하지 않으면 자발적 언데드로 여겨져서 천국 못 간다던데, 그렇다고 바로 죽여줄 수도 없고······”

가온은 그 관습법이 폐기되었노라 알려주려다 말았다.

어차피 언데드 관련법이 없더라도 이 소녀는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다. 후긴 사람 아닌가. 신들에게 버림받은 나라의 국민.

가온은 우울할 때면 자주 그랬듯,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여신이시여.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침통함을 금치 못하시던 여신께서 말씀하시었다.

‘뜻대로 하라. 가온.’

‘제가 정말 맘대로 해도 되겠습니까? 여신께서도······’

‘다시 말하노니, 뜻대로 하라. 네 여신은 내 대전사가 무얼 하든 탓하거나 말리지 않으리라. 그저 도우리라.’

가온은 감사를 표할 기력조차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쉬고, 고민하다가, 또 한숨 쉬었다.

그리 한참을 뜸 들인 끝에 겨우 입을 열었다.

“일단 이 여자애, 들키면 죽을지 모른단 건 걱정하지 마라.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정말요으?”

“그래. 여신께 따로 합의 없이 맹세코.”

요으는 눈을 크게 떴다.

“고마워요으! 정말 고마워요으!”

울면서 외쳐대는 요으를 애써 뿌리쳤다. 두 명을 다른 곳에 보낸 뒤, 가온은 잠시 동안 후긴의 거리를 걸었다.

스마트폰을 들며 생각했다.

요으, 그 오크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그 뱀파이어들이 자신을 후원하고 있다는 것은 알까? 후원자를 건드리기 껄끄러워 굳이 인간 모습으로 폴리모프까지 해서 일을 몰래 처리하려 한 것임을 알까?

‘순수하게 감사만을 말한 걸 보면 무지한 듯 보였지만, 아까 역사 지식 제법 있었던 걸 보면 또 모르지. 소드마스터에게 밉보이기 싫어 일부러 모르는 척했던 걸지도······’

어느 쪽이건 제 할 일을 해야 했다.

후긴 시내에 우뚝 선 마천루를 보았다. 저 역시 뱀파이어들의 소유였다.

그 건물 어딘가에 적힌 전화번호에다 전화를 걸었다.

뱀파이어가 아닌 일개 말단 직원이 전화를 받았지만, 상관없었다. 곧 위쪽에 전해질 테니.

「예? 예, 알겠······ 용서······ 무례를······」

가온은 자신의 후원자들에게 연락했다.

후긴을 지배하는 뱀파이어 재벌들을 소집했다.

*******

후원자와 피후원자의 관계는 후원자가 우세한 법이다.

가온과 뱀파이어들의 경우에는 그 반대다.

소집령을 내린 지 불과 삼십 분만에 모두 모임으로써 뱀파이어들은 그 사실을 증명했다. 즐기던 파티며 비즈니스를 모두 중단하고 달려와 여기 모여서는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의 복종에 재의 왕자는 만족한 기색이 아니었다.

그 표정을 살피고자 슬쩍 고개를 들어 올린 뱀파이어는 그만 재의 왕자와 시선을 마주치고 말았다.

뱀파이어가 질겁하는 가운데, 가온은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어디서 더러운 눈알을 보이지.”

“용서해주십시오, 용서해주십시오!”

“내 눈이 더럽혀진 거 같은데, 내 눈을 뽑아내야 하나? 아니면······”

가온이 눈 감은 가운데, 뱀파이어가 외쳤다.

“제 것을! 제 것을 뽑겠습니다!”

뱀파이어는 말한 대로 했다. 제 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서는 뽑아냈다.

피 대신 재가 흩날린다.

뱀파이어가 숨죽여 끅끅대는 가운데, 다른 뱀파이어들은 소리 없이 비명 지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재의 왕자, 공화국의 군대를 홀로 박살 낸 저 소드마스터의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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