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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4판타지-32화 (32/135)

LV.4 오크 요으 - [1]

가온은 평소에 폴리모프 주문으로 모습을 바꾸고 다녔는데, 맘에 드는 동양인 남자의 외형을 하나 정해서는 외출할 때와 게임을 할 때 모두 사용했다.

그 외형이 소드마스터의 것임을 들킨 지금, 외출용 외모를 따로 만들기로 한 바였다.

가온이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주문의 힘이 현실을 바꿔놓았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외모가 변했다. 드래곤이 보았더라도 그 재주를 흉내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거울 앞에서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여신께서 물으시었다.

‘가온아. 어차피 들키지 않을 만한 외모를 꾸미는 것이라면 굳이 공들일 일이 아니건만. 내 대전사는 대체 어째서 몇 시간째 거울 앞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느냐?’

“여신이시여. 이건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원래 게임을 시작할 때는 커스터마이징에 몇 시간 정도 할애할 가치가 있는 법입니다.”

‘게임을 시작할 때? 정말 내 대전사가 현실과 오락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 맞느냐?’

“예, 물론······.”

‘네 여신은 걱정스럽다. 누누이 말했기로, 그 오락을 네 여신은 좋아하지 않노라.’

“예, 압니다······”

여신께서는 이후로 한참을 전자오락은 만악의 근원이라느니, 대부분의 사회적 문제가 그놈의 전자오락에서 비롯된다느니 설교하시었다.

가온이 힘겨워하던 중, 여신께서 문득 말씀하시었다.

‘사실 그 오락 덕에 좋은 점이 하나 생기기는 하구나.’

“어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대전사는 외출 자체를 꺼렸으나, 그 오락을 한 뒤로는 외출의 빈도가 부쩍 늘었나니.’

“아, 확실히 그렇긴 하군요. 삼십 년 연속으로 외출하지 않은 적도 있었으니까.”

‘네 여신의 가슴이 찢어지던 세월이었다. 그나마 지금 자주 나서게 된 것은 그 오락이 현실과 흡사하여 내 대전사에게 바깥 세상에 대한 관심을 돌려준 것이 아닌가 하노라. 그런 이유로 네 여신은 조금은 기껍다.’

그 말씀에 가온은 어색하게 웃었다.

여신께서는 자신을 무슨 히키코모리처럼 말씀하시는데, 사실 히키코모리가 아니더라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었다.

후긴에 사는 사람이라면 아마 모두가.

*******

아스에서 민주주의의 위상은 지구에서 공산주의의 위상과 흡사하다. 이런 유머가 아스의 인터넷에 떠돈다.

‘민주주의와 조별 과제가 실패하는 원인 :

- 세상의 진리를 깨우친 드래곤과 방금 대마 빨다 온 오크가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음.

- 소드마스터와 그 소드마스터한테 십만 명 모여 덤벼도 썰릴 고블린의 정치적 결정권이 동등해야 한다고 주장함.’

취지는 좋아도 결과가 끔찍하다는 점에서 지구인들은 공산주의를 비웃는다.

아스인들이 민주주의를 비웃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를 표방한 아스 국가들은 모두 뒤틀렸거나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민주주의의 처참한 실패 사례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곳은 다름 아닌 가온의 조국이었다.

후긴 공화국. 신들에게 버림받은 나라.

회색빛 뱀파이어들의 왕국.

성직자가 소녀를 강간하다 침입해온 도둑에게 살해당하는 나라. 그 도둑은 양팔이 잘리고 강간당하는데, 그 강간범도 강간당하고는 별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며 웃어넘기는 나라. 그 모든 사건이 신문 1면에는 실리지 못하는 나라.

이 끔찍한 치안의 부재는 공권력의 마비에서 비롯되었다.

어찌나 공권력이 무시당하는지, 어느 뱀파이어 패밀리는 현 대통령을 조직원들 사이에서 배출해냈음에도 후긴 내부에서 서열 5위 조직에 불과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서열 1위에서 4위 조직은? 당연히도 모두가 뱀파이어 조직이었다. 6위에서 19위 조직도 전부.

그렇듯 뱀파이어들은 사실상 후긴을 장악했다.

정치적 야망 달성을 위한 지배는 아니었다. 뱀파이어들에게 후긴은 돈벌이 도구에 불과했다.

정말이지 뱀파이어들의 사업은 마약에서 최신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 뱀파이어들은 후긴에서 돈이 될 만한 것이라면 스마트폰이든 시체든 뭐든지 팔아치웠다.

시체마저 판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다. 후긴 국민 누군가가 죽으면 그 시체는 화장되는 것이 아니라 카샤드 서기장에게 두당 10달러 정도에 팔렸는데, 덕분에 예히나탈 사회주의 연방의 스켈레톤들은 절반 이상이 후긴 출신이었다.

시체만이 아닌 산 사람 또한 좋은 거래대상이었다.

인신매매.

왜소한 오크, 요으의 옆집 이웃에게 일어난 일이 마침 그것이었다.

*******

가온은 요으가 아주 수준 낮은 부탁을 해오리라 생각했다.

자신을 괴롭힌 더 큰 오크를 혼쭐내 달라든가, 바이크를 사고 싶으니 대출받게 보증 좀 서 달라든가. 뭐 그런 오크다운 부탁 말이다.

왜, 가뜩이나 오크들은 멍청한데 저 오크는 코에서 발음이 새는지 말투까지 어눌하지 않은가. 다른 오크들보다도 훨씬 지능이 낮아 보인다.

그 정도로 멍청한 오크라면 소드마스터쯤 되는 거물을 동네 힘센 형쯤으로 여기고 대뜸 부탁해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 오크가 멍청한 부탁을 하는 상황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

그리 생각했던 가온은 자기 편견을 반성했다.

요으의 부탁은 이타적인 것이었다. 심지어 소드마스터쯤 되어야 해결할 수 있을 법한 일이기도 했다.

“옆집에 여자애 하나가 사는데요으. 초등학교 2학년쯤 되는데, 이쁘거든요으. 그리고 뱀파이어들이 이쁜 여자애를 좋아해요으. 흡혈하기엔 처녀 피가 최곤데 어릴수록 처녀일 가능성이 높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이유로. 이 동네에선 꼭 그런 것도 아닌데······”

요으의 말에 가온은 내리깐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잡혀갔다 이거지?”

“예으. 오크답게 총 들고 돌격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막상 하자니 용기가······”

용기가 있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뱀파이어 저택에 들이닥친다니?

뱀파이어 패밀리들은 일종의 재벌이다. 재벌가 저택의 방비는 당연히도 굳건하다. 왜소한 오크 한 명이 아니라 오크 소대가 몰려 가더라도 함락시킬 수 있을지 어떨지 장담할 수 없을 것이었다.

물론 방금 드래곤 하나를 잡고 온 소드마스터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맘마저 편한 것은 아니라, 가온은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좋아. 그 여자애, 구해줄게.”

“고마워요으. 정말 고마워요으!”

정말 바라던 일이었는지 요으는 절하다시피 허리를 숙여댔다.

가온은 혀를 찼다.

“감사는 됐고······ 어느 놈들이 잡아갔는데?”

“그라노트 패밀리라고, 제약 사업하는 뱀파이어 놈들이요으.”

“그라노트?”

“알아요으?”

“알긴 아는데······ 그래. 일단 그 저택으로 안내나 좀 해줄 수 있니?”

요으는 시키는 대로 했다.

잠시 후, 가온은 가히 중세 성채에 가까운 저택를 보았다. 정말로 요새에 가까웠다. 담장이 가히 성벽에 가깝다는 점에서 특히.

방비 또한 요새처럼 철저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텔레포트 방지 물품들로 아주 도배를 해놨네. 엄청 비싸서 펜타곤 같은 데나 깔리는 건데. 확실히 뱀파이어 놈들이 돈 많이 벌긴 하나보지.’

그렇다고 소드마스터가 발 디디기 어렵지는 않았다.

저택의 멀리서, 가온은 주변에 떨어진 돌을 주웠다. 그리고는 냅다 던졌다.

돌은 그저 일직선으로 날아가 부딪히고 추락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당구의 초고수가 일으킨 기적 같았다.

대충 던진 것 같았던 돌은 정확한 계산 하에 궤도를 그렸고, 충돌했다.

땅에 부딪쳤다 대각선으로 튕겼다. 그리 튕겨서는 반대편 벽에 충돌해 또 튕기더니, 정확히 CCTV에 도달해 그 렌즈를 박살냈다.

백 미터 바깥, CCTV로는 감지되지도 않는 거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요으는 시선이 닿지도 않는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서, 가온은 너무나 쉬운 일이라 새삼 놀라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CCTV 다섯 개를 연달아 무력화시킨 뒤, 가온이 돌 하나를 더 던졌다.

이번에는 복잡한 계산 없이, 그저 힘을 실어서 던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담장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마치 포탄에 당한 것처럼.

굉음이 울리는 가운데, 요으가 감탄했다.

“방금 힘으로 부수신 거예요으? 검기도 안 쓰시고으?”

“응. 나 반신이라 오거보다 힘세.”

“와, 그럼 무적이겠네! 소드마스터 중에서 최강이시겠다. 그렇죠으?”

“그게, 검기가 닿은 충격의 대부분을 흡수하는지라 단순히 힘 세다고 최강은 아닌데······”

“그럼 최강 아니에요으?”

“음, 뭐, 최강 맞아······.”

요으가 존경의 눈초리로 가온을 바라보았다. 가온은 어색하게 웃었다.

‘이걸 보면 확실히 오크가 단순하긴 하네. 왜 소드마스터씩이나 돼서 은밀하게 행동하는지도 따로 안 물어보고······.’

그 사실에 가온은 새삼 감사했다. 조용히 손을 내저었다.

“이제 가. 여자앤 알아서 구해올 테니까.”

요으가 고개를 끄덕인 뒤 물러갔다.

혼자 남은 가온은 뚫린 저택의 내부로 향했다. 조용히. 은밀하게.

누구에게도 들키는 일 없이 목표물에 접근하는 것은 가온의 특기 중 하나였다. 그 기습에 소드마스터도 당했을 정도 아닌가.

게다가 엘프 소드마스터 특유의 초월적인 청각은 벽 반대편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다.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소리 없이 걸었다.

창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바람이 여기저기에 부딪혀 작은 소리를 내는데, 가온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물에 부딪혔다 돌아온 소리는 그 자체로 정보가 된다.

바람 소리 몇 번이 귀를 스친 뒤, 가온은 저택의 구조와 그 사물들의 배치를 완벽하게 파악해냈다.

심지어 CCTV의 위치와 그 카메라가 어디를 비추는지도 바람 소리만으로도 완벽히 알 수 있었다.

그 사각으로 지나가기는 어렵지 않았다.

“외벽이 무너졌다! 침입자다. 모두 수색해!”

방금 돌을 던져 요란하게 담장을 부순 보람이 있었다. 저택의 경비원들이 자동소총을 들고 뛰쳐나왔다. 그 무장 상태가 가히 일국의 특수부대 못지 않았지만 가온은 새삼 놀라지 않았다. 저들의 총구가 자신을 향하리라 걱정하지도 않았다.

저택이 온통 부산스러운 와중에, 가온은 태연히 걸었다.

가온은 소리를 듣고 저택의 사람들이 자신과 반대편으로 가는 것을 알았다. 막힘없이 계속 걸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잠긴 문이 보였다.

그것을 살짝 두드리자 저 너머의 공간에 무엇이 있는지가 느껴졌다.

인형과 그림책, 온갖 잡동사니와······ 조그만 인간 여자애 하나.

문이 바깥에서 잠겨있는데, 자물쇠로 잠겨있는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부수거나 해서 소란을 피울 것도 없이 그냥 열 수 있었다.

가온은 내리깐 목소리로 속삭였다.

“안녕, 조용히 하렴.”

과연 여자아이 하나가 방 안에 있었다.

인형을 끌어안고 있던 여자아이가 가온을 바라보았다. 가온도 여자아이를 바라보았기에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래서 가온은 여자아이의 눈을, 달빛을 반사해 번뜩이는 그 시뻘건 눈을 볼 수 있었다.

“오빤 누군데요?”

뱀파이어 여자아이의 질문에 가온은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정의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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