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4 길드장 류시범 - [4]
생물의 몸 일부를 훼손한 것이지만 마치 지형의 일부를 파괴한 것 같다.
가온은 드래곤의 목 위에서 자기가 만들어낸 파괴 현장을 확인했다.
비늘을 벗겨내고 피부마저 제거하자 꿈틀거리는 근육이 드러났다.
근육 하나하나의 선이 마치 거대한 나무의 뿌리 같다.
애초에 생물의 근육은 질긴 법이지만 드래곤의 근육은 아예 톱을 가져와야 끊을 수 있을 만치 굵고 질기다. 소드마스터라 해도 근력마저 오거만큼 초월적인 것은 아니다. 검기 없이 이것을 잘라내려면 고생깨나 할 것이다.
그러나 가온이 칼을 휘둘렀고, 드러난 근육들은 종이처럼 북북 잘려나갔다.
계속 제 몸을 해치도록 드래곤이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
“‘KIAAAAAAAAAAAAAAAAAAAAK―!’”
드래곤이 비명 지르며, 몸을 요동쳤다. 목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가온을 떨쳐내려 애썼다. 원시 드래곤들이 그랬던 것처럼.
드래곤의 목 위에 있는 가온이 느끼기엔, 세상 전체가 요동치는 것 같았다.
그 감각이 즐거웠다.
옛날에 싸울 때 그랬듯, 가온은 비늘을 붙잡고 이리저리 이동했다. 엘프다운 민첩함과 소드마스터다운 예리한 감각으로. 익숙한 상황에 완벽한 회피 동작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칼질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 고난스러운 와중에 그 작업은 빠르고도 경쾌해보였다.
실제로도 지금 가온은 너무나 즐거웠다.
거대한 괴물과의 싸움, 절로 옛날이 생각난다. 하루하루가 죽을 것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보람찼던 옛날이.
거듭된 칼질이 드래곤의 상처를 더욱 벌렸다.
드래곤은 더 참지 못했다.
가온을 짓이겨버리려는지, 드래곤이 목을 땅에 들이박았다.
폭발하듯 솟구치는 흙먼지 폭풍. 벙커버스터가 지면을 강타한 듯 끔찍한 충격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정작 노리던 표적에는 아무런 상처를 주지 못했다. 가온은 텔레포트하여 그 공간에서 벗어났다.
너무나도 쉬운 위기 탈출, 이 역시 경험한 상황이었다. 새삼 놀라거나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않았다.
“‘Krrrrrrrrrrrrrr······’”
목을 거세게 부딪친 것은 드래곤에게도 견디기 힘든 충격이었다.
드래곤의 전진이 완전히 멈추었다.
드래곤은 더 날갯짓할 기운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서 거대한 진동을 일으키며, 발과 날개를 무의미하게 퍼덕였다. 목에 달라붙은 무언가를 떼어내기 위한 발버둥.
지성적인 판단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에인션트 드래곤은 빗맞히기에는 지나치게 큰 표적이다.
「명중!」
집중된 포격이 드래곤의 거대한 몸뚱이 여기저기를 타격했다. 거대하고 두꺼운 비늘들이 마치 자갈처럼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강력한 화력이 비늘에 새겨진 보호의 주문을 벗겨내자 파괴는 가속되었다.
최후의 발버둥으로 드래곤은 도주를 시도했다.
“‘마디쿨 라 솔렘······’”
텔레포트. 가온은 아주 간단한 주문만으로 막아냈다.
그로써 드래곤은 도주마저 포기하고 죽음이라도 늦추려는 모양이었다. 주문으로 자기 몸에 냉기를 퍼뜨려 상처를 얼리려 했다.
이 역시 가온이 가로막았다.
여신의 권능으로 피워낸 불이 순식간에 상처를 덮으려던 냉기를 지워버렸다. 이로써 드래곤의 모든 저항은 무력화되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가온이 마지막으로 칼을 휘둘렀고, 정확히 급소를 노린 바였다. 결을 타고 살을 잘라내었다. 대동맥을 완전히 터뜨렸다.
활화산처럼 피가 터져 나왔다.
드래곤의 견고한 몸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체내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피가 터져 나왔다.
드래곤의 등 위로, 피는 비처럼 쏟아져내렸다.
「축하합니다. 살아있는 드래곤의 피를 뒤집어 쓰고서 살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예로부터 위대한 존재를 죽이고 그 피와 살을 취하는 것은 영웅들에게 대단히 이로운 일이었습니다.
지구의 마오리족은 위대한 자를 죽이면 그 마나가 자신에게 깃든다고 믿었습니다. 아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믿음이었지요!
그런 숭고한 행위는 비루한 인간의 육체를 보다 견고하게, 나약한 영혼을 보다 초월적으로 만들어줍니다. 혹시 신을 만나거든 능력껏 그 피를 흘리게 해보십시오. 영원히 늙어죽지 않는 불멸자, 반신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MP가 영구적으로 200 늘어납니다」
[Mana Point 45/95 → 45/295]
와, 이것까지 재현했나? 진짜 보통 게임이 아닌데.
가온은 속으로 감탄하며 성장의 쾌감을 만끽했다. 그리 즐거운 와중에도 표정은 냉정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바였다.
과연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참호 속에서, 벌판에서, 철조망 뒤에서.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가온이 올라탄 드래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거대한 존재의 죽음을.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비명과 환호가 동시에 터져나왔다.
당연히도, 환호는 백골부대 쪽이었다.
“와 씨발!”
이후로도 전투는 몇 시간이고 계속되었지만 결과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아스의 부대는 소드마스터니 드래곤이니 하는 비대칭 전력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그런 전력이 없으면 지구의 군대를 당해낼 수 없다.
지구 진영의 특권으로, 백골부대의 전차와 전투기가 전장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주력 전차 부대가 골렘과 오거들을 정리하는 동안, 드래곤의 죽음을 확인한 류시범은 예비 전차들을 출격시켰다. 그 전차들은 종심돌파와 전과확대라는 제 본분을 아까 이미 끝마쳤다.
승리가 확정된 시점에 류시범에게 웬 메시지가 나타났다.
「귀하의 솜씨에 깊이 감복한 바, 패장이 감히 어려운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게임 시스템 메시지.
플레이어들의 통신을 전화와 무전에 의존케 하는 이 게임에서 저런 메시지는 희귀했는데, 거대 길드장들만의 특권이었다.
통신을 보낸 저 인물 또한 거대 길드의 장이었다. 그러니까 당장 상대하고 있는 조선인민군의 사령관일 터였다.
“부탁?”
「물러주시요, 제발」
적 사령관의 애원에 류시범은 어이가 없었다.
“무르긴 뭘 물러? 알까긴 줄 아냐?”
「그러지 말고 제발. 전 장성 동지는 늘그막에 느긋하게 노는 것이지만 난 앞날이 매달렸단 말이요. 어차피 이겨봤자 노획물 독차지하지도 못하잖소? 내가 따로 이천만 원 줄 테니까 부하들이랑 갈라 먹지 말고 혼자 드시면······」
뇌물을 주겠다는 말에 류시범은 조금도 혹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했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야. 너 뭐 하는 새낀데 장성씩이나 돼서 승리를 구걸해. 네가 그러고도 군인이야? 창피한 줄 알아, 새끼야!”
「제발······」
“꺼져, 인마!”
저쪽 메시지 또한 격해졌다.
「이 간나 새끼, 니가 그러고도 오래 살 거 같으니? 나 좆되면 너도 무사하지 못해. 기필코 담가버릴 테니까 각오해두라」
“남한 영화가 북한에도 유행한다더니, 너 신세계에서 좀 감명 깊게 봤구나? 왜, 연변 거지들이라도 보내게? 뇌물로 꼴랑 이천 주겠단 그지 새끼가 그럴 돈이나 있나?”
류시범은 그리 쏘아붙인 뒤 바로 예비대를 출격시켰다. 퇴주하려는 적을 추격하여 전과확대를 하기 위한 결정타다.
병력이 움직이고, 움직이는 가운데 머지않아 전투는 끝났다.
이쪽이 쫓고 저쪽이 도망치는 구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승자가 권리를 취할 시간이 찾아왔다. 약탈의 시간.
모든 프로게이머들이 사랑하는 이 시간에도 백골부대는 엄격한 군기를 유지했다. 저기 널린 모든 것이 돈이지만 백골부대원들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후 상황을 대비코자 각자의 위치를 지켰다.
이복동과 지존무쌍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뺏어, 뺏어!”
미리 가져온 트럭을 타고 전장을 달렸다.
중간중간 멈춰서 비싸 보이는 물건만 챙겨 실었다.
그리 신나게 달리는 중에 미처 도망치지 못한 적들의 반격이 있었다. 물론 소용이 없었다.
“우리 제다이, 강한 제다이!”
지존무쌍이 웃으며 운전하는 가운데, 가온은 트럭의 맨 앞에서 칼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날아오던 총알은 무력하게 튕겨나갔다.
결국 반격 비슷한 것을 하려던 적은 그대로 이복동의 총알에 꿰뚫리거나 트럭 바퀴에 짓밟힐 뿐이었다.
그리 진격하는 중에 저 멀리서 특이한 무리가 보였다. 초록 피부의 도망자들.
오크들이 도망치고 있었다.
하이엘프로만 이루어진 조선인민군에서 극히 드문 종족이었다. 그렇기에 왠지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저놈들 따라잡아!”
이복동과 가온이 총격을 가하는 가운데, 내달린 트럭이 나머지 오크들마저 짓밟았다.
오크들의 시체 한 가운데에서, 지존무쌍은 실실거리며 트럭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실망했다.
“아니, 뭐야. 무기들이 왜 시체들 손에서 안 떨어져?”
이복동이 대답했다.
“이 오크들, 아스인인가보네요.”
“아스인이면 뭐 어떤데?”
“아스인들 캐릭터 생성할 때 기본 지급된 무기, 계정귀속이라 교환도 안 되고, 죽어도 빼앗기지 않는다던데요······”
“에이, 뭐야 그게? 아스인만 엄청 챙겨주는구만.”
툴툴거리면서도 지존무쌍은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어쨌건 주울 전리품이야 널린 것이다.
트럭 짐칸의 용량이 곧 가져갈 수 있는 소득의 한계나 다름없었다.
그 많은 전리품을 챙길 권리는 완벽히 보장될 것이었다. 누구의 역할이 컸는지 모두가 보지 않았는가.
지존무쌍과 이복동이 다시 트럭에 올라타던 와중이었다.
‘저놈 언제까지 죽은 척하려고?’
가온은 특유의 청각으로 한 오크가 아직 죽지 않았으면서 쓰러져있는 것을 알아챘는데, 그 오크가 기습해오기를 모른 척 기다리고 있었다. 불의의 공격을 멋지게 무력화하고서는 동료들에게 감탄을 받기 위해서.
그러나 죽은 척하던 오크는 공격해오지 않았다.
오크는 눈을 크게 뜨더니, 이렇게 물어왔다.
“가온 경?”
가온이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후긴에 사는 그 오크? 오크면서 말라빠졌고 덩치까지 작은 그?”
“예 맞아요으. 그쪽도 가온 경 맞······”
가온은 눈을 부릅떴다.
가온은 이 인간 남자의 얼굴이 맘에 들었기에 게임에서나 외출할 때나 애용하곤 했다. 그것을 언젠가 만난 저 오크가 알아본 모양이었다.
죽여서 입막음? 죽여봤자 부활할 테니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 죽었다 부활해서는, 이 게임에서 가온이 자길 죽였노라고 동네방네 퍼뜨리고 다니게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
가온은 드래곤과 싸울 때보다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오크의 앞에 도달했다. 쓰러져있던 오크의 몸을 부축해주는 척하며 귀에다 속삭였다.
“입 좀 다물어. 살려줄 테니까.”
오크가 고개를 끄덕였고, 가온은 오크를 트럭에 태웠다. 사실상 납치였지만 오크는 반항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한 시간 후, 트럭은 짐칸에 가득 찬 전리품과 함께 아군 진지로 돌아왔다.
트럭에서 네 명이 내렸는데, 그중 오크가 있었지만 사살당하지는 않았다.
가온이 말했다.
“이 오크 양반 죽이지 말고 냅둬요.”
방금 드래곤을 죽이고 온 남자의 말을 무시할 인원은 없었다. 애초에 다들 오크가 살아있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슬슬 백골부대원들도 자기 몫을 챙길 차례였다.
결국 살육과 약탈에 전념하는 지구인들 사이에서 오크 하나가 덩그라니 서 있게 되었다.
한편 가온은 이복동과 지존무쌍과 함께 본부로 향했다.
사령관, 길드장 류시범이 웃으며 반겨주었다.
“찬양하라. 영웅의 귀환이다!”
그러면서 류시범은 가온에게 다가와 그 어깨를 두드리고, 거세게 껴안았다. 그 다음에는 허리 숙인 채 악수를 걸었다.
‘갑자기 왜 이리 친한 척······’
이복동은 당황스러웠지만 가온은 신경쓰지 않았다. 자기 활약을 보고 감탄해서 그러려니 뿌듯해 했을 뿐이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정말 대단했어! 이 류시범이, 진심으로 감복했습니다 정말!”
그리 칭송하면서 류시범은 내내 웃었다. 단순히 아첨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승리의 기쁨 때문만도 아니었다.
소드마스터의 활약을 본 지금, 류시범은 실제로 기분이 좋았다.
소드마스터, 초인 중의 초인. 한 명 한 명이 역사적 거물인 그들이 이 게임을 한다는 것은 류시범에게 상당히 기꺼운 일이었다.
류시범은 자기 길드원 대부분이 날건달임을 안다.
군인 길드를 자처하지만 장교 출신들은 몇 없다. 나머지는 죄다 허송세월하다가 한몫 잡으려 게임에 뛰어든 백수 출신이다.
이 게임에서 프로게이머입네 하는 족속 대부분이 그렇다. 그들은 진짜배기 프로게이머들이 아니다. 이스포츠 선수들처럼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돈을 버는 게 아닌, 남의 물건을 강탈하여 현금화하는 것이 주 수익인 약탈자들 아닌가.
그리 서로 돈을 뺏고 뺏기는 중에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유혈사태가 벌어졌는지, 9시 뉴스를 몇 번이나 장식했는지는 셀 수가 없는 일이다.
덕분에 이 게임의 대외 이미지는 최악이다.
그런 게임에 장성으로서 존경받던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몸을 담았다.
말년에 쉬지도 못하고 이따위 일이나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처와 이혼하면서 재산이 반쪽 되지만 않았더라면, 그 남은 재산을 사기당해 몽땅 잃지만 않았다면 이런 게임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텐데.
수치스럽다. 친척들이나 친구들에게 말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자랑스러운 군 경력을 이따위로 써먹게 되다니? 왕년의 톱스타가 살아남기 위해 저예산 포르노 영화에 출연한 기분이다.
그 와중에 소드마스터씩이나 되는 거물이 자신과 같은 게임을 한다는 것은 류시범에게 퍽 위로가 되는 일이다. 게임 자체의 격은 물론 그 게임을 하고 있는 자기 격까지 올라가는 느낌이기에.
“살펴가십쇼!”
“음.”
세 명이 물러간 뒤, 부관이 다가왔다.
류시범은 그 안면을 보자마자 다시 표정이 일그러졌다.
‘부관 이 새끼도 사고 쳐서 군 장기신청 말아먹은 새끼······ 사회에서 일하기 싫어 이 게임하는 버러지.’
부관은 왜 사령관이 또 기분이 나빠졌는지 몰라 조심스럽게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류시범의 표정은 또 다시 일그러짐으로써 부관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류시범은 부관이 앞에서야 저리 깍듯하게 굴지만, 뒤에서는 자길 틀딱이니 뭐니 멸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길드원 모두가 그렇듯이.
군에 있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류시범은 과거를 추억한다. 하루하루가 고생스러웠지만 영광스러웠던 옛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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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알아봤어도 모르는 척해야지. 응?”
가온의 말에 오크가 대답했다.
“죄송해요으. 이름도 대놓고 가온으로 지으셨길래 숨기시는 줄 몰랐어요으.”
체면을 지키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싶지만, 그래도 몇몇은 자기 정체를 눈치채고 경외해 주었으면 하는 이 복잡한 심리를 가온은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는 대신 윽박질렀다.
“비밀이에요. 오케이?”
“오케이.”
오크의 캐릭터는 거대하고 우락부락했다. 그러나 지금은 왜소한 현실처럼 굴었다.
잔뜩 주눅이 들어서는 어깨가 움츠러들었는데, 근육질 우락부락한 오크 캐릭터로 그러니 우습기까지 했다.
가온은 한숨 쉬며 말했다.
“아무튼 우리가 인연이 있긴 한가보다. 우연도 이 정도면 예사롭지가 않은데. 우리 마주치는 거 이번이 세 번짼가?”
“예, 아마······.”
“이백 살 안 넘을 테니 말 놓을게. 이름이?”
“요으. 요으에요으.”
부모가 왜 그런 이름을 지어주었는지 알 만했다. 가온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래, 요으? 이것도 인연인데 형 연락처 줄 테니까 나중에 연락해라. 부탁할 일 생기면 부탁하고.”
맘 같아서는 소드마스터 인맥이 생겨서 얼마나 좋으니, 소감을 말해보라느니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기로 했다.
가온은 엄숙한 얼굴로 오크에게 작별을 고한 뒤, 게임을 종료했다.
한동안,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장하다. 가온! 이로써 내 대전사가 지닌 연락처가 두 배가 되었나니, 이는 곧 천상의 흥복이라!’
“뭘, 제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여신께서 감격하시던 그때였다.
전화벨이 울렸고, 지존무쌍이 감사를 말하려는 줄 알았던 가온은 냉큼 받았다.
그러나 지존무쌍이 아니었다.
「어으······ 가온 경?」
그 오크였다.
가온은 반색했다.
“요으? 바로 전화하네?”
「부탁할 거 있음 하라고 하셔서요으. 예, 감히 이러기 어려운 일이지만······ 부탁드릴 거 있어가지고······」
그냥 해본 말인데, 정말 부탁하려 하나? 지금 바로?
가온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지금 기분이 좋았기에 관대하게 굴기로 했다.
“부탁할 거, 뭔데?”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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