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1 길드장 류시범 - [1]
「매카시 상원의원, 본인이 뱀파이어임을 인정하며 일갈」
“뱀파이어는 인종의 하나일 뿐. 남들과 식성이 조금 다름을 이유로 한 비난은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에 보낸 나치의 언동과 같아”
「매카시 의원, 1950년에 공산주의와 얽힌 국제뱀프자본의 위험성을 설파한 과거 행적 부정 (······)」
「불과 화로의 여신께서 변함없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시다」
「프란치스코 교황, 이번 사건에 대해 지구의 18억 기독교인들을 대표하여 입장을 발표」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 21세기에 테러는 결코 순교의 길이 될 수 없으며, 양쪽 교인들 모두에게 오직 평화만이 있기를 주님께 기도드릴 것”
「가온 경, 3차 대전에 참여할 계획이 없음을 넌지시 밝히다」
「엄근오 의원, 거듭 감사의 뜻을 표해」
“자칫하면 지구인들의 1/3이 잠재적 적으로 돌변할 수 있었던 참사를 막아주신 것. 한국인들을 대표해 깊이 감사드릴 일이며, 소드마스터의 위협을 이유로 한 탈원전 계획은 역시 시기상조 (······)”
「충격. 엄근오 의원, 소드마스터 반지성을 민족 영웅이라 주장」
“반지성이 없었으면 한국은 아직도 일본에 독립배상금을 지불하느라 등골이 빠졌을 것. 사소한 과로 덮을 수 없을 만치 그분의 공이 커. 한민족은 그분께 감사할 줄 알아야”
「반지성 국립묘지 안장 계획,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 6724명을 무차별 살인한 악마를 국가유공자 예우라니 웬 말인가?」
가온이 신문을 노려보자 여신께서 물으시었다.
‘어찌하여 눈에 분노가 서렸느냐, 가온아? 갑자기 지구의 소식을 보며 이를 악물다니, 새삼 지구 문명에 대한 복수심이 떠오른 것이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네 기사가 너무 적게 나왔음에 분노하는 것이구나······’
“예.”
여신께서는 달래듯 말씀하시었다.
‘내 대전사의 위업을 찬미하는 기사를 보고 싶거든 종교신문을 보면 되지 않으랴?’
“그것들은 이미 스크랩 끝났고, 몇 번씩 반복해 읽으면서 뇌내 되새김질도 끝난지라······ 그리고 사실 지구 쪽 반응 보는 게 훨씬 짜릿한데요.”
‘그래서 매일 규칙적으로 네이버에다 내 대전사의 이름을 입력하는 것이더냐? 그것이 무슨 신성한 일과인 것처럼, 아침 점심 저녁마다 네 여신이 명하는 식사마저 거르면서 그것만은 꼬박꼬박?’
“예. 아스에선 죄다 소드마스터 눈치 보느라 절대 비난 조로 기사 쓰질 못하는데, 지구 쪽 기사는 그렇지 않으니까 혹시 제 칭찬 올라오면 엄청 객관적으로 칭송받는 느낌이더군요.”
여신께서는 한숨 쉬시더니 말씀하시었다.
‘정 내 대전사가 자신에 대한 기사를 원한다면, 지금 저 기사를 다시 읽으면 되리라. 사실상 저기 나온 네 벗에 대한 기사는 내 대전사의 기사나 다름없으니.’
“반지성이 기사가 제 기사나 다름없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국인들이 갑자기 네 벗의 묘를 세움은 내 대전사의 호의를 얻기 위함이라.’
“예? 아······ 반지성일 영웅 대접해주면 그 친구였던 제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거군요. 그러니까 저한테 잘 보이려고······ 빡대가리들인가?”
‘내 대전사는 고상한 말을 쓰라! 그리고 한국인들에 대한 비난도 그치라.’
“하지만 그런다고 제가 좋아할 리가 없는데······”
‘그 사실을 저들이 어찌 알겠느냐? 저들은 그저 평화를 갈망할 뿐이거늘.’
여신께서 위로하셨지만, 그러신다고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가온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나한테 잘 보여서 어쩌려고?
‘평화를 갈망해서 그런다니······’
그 이유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전쟁이 다가오는 지금, 이미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자신에게 잘 보일 이유라면 하나뿐이다.
이 유명한 소드마스터에게, 참전하지 않는 걸 넘어 아예 전쟁을 막아달라 부탁하기.
소드마스터인 자신이라면 같은 소드마스터인 참마황이 두렵지 않을 것이요, 평화를 설하는 거대 종교의 유력인사로서 반전을 주장할 당위성이 있다고 여긴 것이리라.
가온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정확히 어느 정도로 달갑지 않으냐면, 저번에 참마황이 자신에게 전쟁에 끼라며 몇 시간 동안 설득했던 그때만큼 달갑지 않았다.
전쟁에 끼라고 부추기는 자들이나 전쟁을 막아달라고 부탁하는 자들이나 가온에게는 모두 짜증스럽기 그지없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가온의 의무인 것처럼 굴었다.
귀찮게.
‘난 그냥 게임이나 계속하고 싶은데······.’
가온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텔레포트.
사방이 방탄유리로 밀폐된, 가상현실 기기 안에 들어갔다.
*******
스카우트를 받았지만 이복동과 지존무쌍의 게임 내 일과는 변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바로 계약금까지 지급했지만, 당장에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알아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시대로 일할 때마다 추가금을 주겠다고도.
비정상적으로 좋은 조건이었지만 이복동은 행복해지지 않았다.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이복동은 그날 이후로 사격 훈련소에 들어가 사격을 연습했다.
첫날에는 여섯 시간 내내 연습했다. 이튿날에는 네 시간 내내.
그러다 지쳐서 나자빠진 후, 자신에게 그 잘난 아스인과 같은 집중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절망했다.
이후로는 하루 두 시간씩이라도 연습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나흘째인 오늘도 지루함과 공허함을 느끼면서나마 계속 연습하던 중이었다.
“요샌 복동이나 가온 씨나 훈련만 엄청하네?”
지존무쌍이 헤실헤실 웃으며 들어와 말을 걸었다.
참 생각 없이 사는 사람 같으니.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난 이복동이 말했다.
“왜요? 당장 중요한 용무 없으면 훈련 방해하지 마시고······”
“용무? 있지 물론! 진짜 좋은 일이야, 진짜 좋은 일!”
“좋은 일이요?”
“응. 돈 엄청 벌 수 있는! 설명해줄 테니까 얼른 따라와, 응?”
이복동은 지겨웠던 훈련을 중단할 이유가 생겼음에 감사하며, 굳은 얼굴로 지존무쌍의 뒤를 따랐다.
마찬가지로 훈련을 방해받은 가온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온의 표정 또한 좋지 않아 보였지만 지존무쌍은 헤헤 웃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받아온 임무를 자랑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실력 있다고 아무 곳에나 싸우러 못 가는 거 알지?”
지존무쌍의 말에 이복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돈 될 만한 전장은 거대 길드들이 꽉 잡고서는 일반 플레이어들 접근을 차단하니까요.”
“그렇지, 완전 적폐지! 그런데 그 거대 길드에서 우리를 딱 짚어서 참전 요청을 보냈네?”
“우리를 지정했다고요?”
“그래!”
이복동으로서는 정확히 누굴 지정했는지는 알 만했지만,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보수는요······”
“참전 요청에 응하는 것만으로도 십오만 원씩 챙겨주고, 전리품은 죽인 만큼 다 챙겨도 된대! 이거 되게 좋은 조건이다? 거대 길드 쪽 전장은 스케일도 엄청 커서 전리품도 엄청 챙길 수 있잖아. 그것도 비싼 장비로만 잔뜩······”
그 말에 이복동은 혹했다. 비싼 장비가 큰돈이 된다는 것은 요새를 털었을 때 경험해봐서 알고 있었다.
“와, 그럼 받아야······ 다른 제한 사항은 없고요?”
“문제가 있긴 한데, 사소해. 그냥 의뢰주가 좀 평판이 나쁘단 거?”
“의뢰주가 누군데요?”
지존무쌍은 정말 사소한 일임을 강조하려는 듯, 억지로 웃으며 그 이름을 말했다.
“류시범.”
그러나 그 의도와 달리, 이복동은 눈을 크게 떴다.
“백골부대 길드장 류시범?”
잠시 토론이 있었다. 일베 길드의 의뢰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러나 돈이 걸린 지금, 이복동과 지존무쌍은 사실 백골부대가 일베가 아니라는 설을 믿게 되었다.
“그런데 가온 형 의견은······”
과연 가온이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복동이 긴장했다. 저 남자와 별개로 일을 할 능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능력이 당장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한편 지존무쌍은 미리 준비해온 설명을 꺼냈다.
“가온 씨 검술 훈련하려고 게임한댔죠? 검술 증진에 딱! 좋을 만한 적이 거기 있다는데 말이야.”
“검술 증진에 좋을 만한 적이 누군데? 또 소드마스터야?”
“그건 아니고······ 드래곤이요.”
가온은 드래곤이랑 싸우는 게 어째서 검술 증진에 도움에 되느냐 따지려다 말았다. 조금 생각해보더니,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 괜찮네. 저도 동의.”
“아, 그럼······”
지존무쌍이 히죽 웃었고, 참전이 결정되었다.
세 명을 태운 트럭이 전장으로 향했다.
*******
백골부대의 본부에 가는 동안 지존무쌍이 투덜거렸다.
“이거 완전 입대 PTSD 재발인데······”
언제나 군복을 입는다느니, 서로 이름이나 닉네임이 아니라 관등성명을 댄다느니.
백골부대 인원들이 마치 현역 군인들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리고 직접 보니, 거짓말이었다.
현역 군인들은 초소에서 경계 임무 따윈 잊고 열심히 잡담하기 마련이다. 보안을 위해 서로 암구호를 주고받는 절차는 장난스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백골부대 인원들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서 장난기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초소에서 잡담하는 인원조차 없었다.
“신원 확인. 통과!”
그리 외쳐대는 백골부대 인원들의 군복은 게임인데 다림질까지 했는지 각이 서 있었다.
그렇듯 진지한 군인들과 마주하자니 이복동과 지존무쌍도, 심지어 가온조차 질린 기분이었다.
이 와중에 백골부대는 적이 많았다. 그래서 초소도 많았고, 통과해야 할 보안절차 또한 끔찍하게 많았다.
결국 셋은 잔뜩 지친 기분으로 본부에 들어섰다.
“이제야 길드장 얼굴 좀 보겠네.”
어쨌건 몸소 초청까지 했으니 환영해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세 명이 찾아갔을 때, 백골부대의 길드장 류시범은 뭐가 그리 화가 났는지 잔뜩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복동이 움츠러든 가운데, 지존무쌍은 헤헤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명성 높으신 장군님을 뵙습니다. 퇴역 장성이라 하셨죠? 높으신 분이었네! 참 존경스럽습니다 이거······”
“다물어.”
지존무쌍의 표정이 굳었다. 이 와중에 이복동은 감히 끼어들 엄두도 못 내고 고개를 숙였다.
“뭐 그리 화가 나셨는지······”
“너 뭔데 나한테 함부로 말 거냐?”
“아, 죄송······”
“다물라고.”
그리 쏘아붙이더니 류시범은 굳어버린 지존무쌍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가온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그리고 넌 뭐야. 왜 인사 안 하냐?”
가온은 류시범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물었다.
“아저씨 몇 살인데?”
“58. 자식아.”
“뭐? 58?”
“그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이백 살 넘은 엘프가 일갈했다.
“어리이이이이이인 노오오오오오오옴 자식이이이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