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 드래곤 아타락시아 - [2]
이복동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영상 속에서 자신도 적을 꽤 많이 죽이긴 했다. 그때 보인 솜씨가 맘에 든 것일까?
그러니까, 자신이 높이 평가 받은 것일까? 돈 주고 고용할 만큼?
기대 어린 설렘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나는? 나는요?”
지존무쌍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는데, 어딜 봐도 이 중년 남자를 고용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영상에도 나오질 않았으니 어필할 요소조차 없지 않은가.
그러나 여자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용이요? 괜찮죠.”
이쯤 되면 이복동도 자기를 좋게 봐서 스카우트하려는 게 아님을 알 만했다.
가온도 그 이유를 눈치챘는지 표정이 어색하게 변해있었다.
이복동은 한숨 쉬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우릴 고용하면 가온 저 양반이 세트로 딸려올 거라 여기는 거지? 특전 물품이 탐나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 구매하는 셈······’
가온이 물었다.
“용병 고용하려는 거 보니까 아가씨도 최종보상 받아서 엘프 되시게? 하지만 인간 캐릭터신데요. 엘프 되려면 엘프 캐릭터여야 한다던데, 아스 진영에서 캐릭터 새로 만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엘프 되려는 건 아니고, 어느 목적하에 팀을 좀 꾸리고 있어요.”
“목적이요? 어떤?”
“소드마스터 킬(kill)이요. 정확히 말하자면 가온 킬.”
가온은 헛기침할 뻔했다.
“그걸 왜?”
“알잖아요? 그 소드마스터를 못 잡으면 결국 최종보상 얻지 못하리란 거. 어떻게든 잡아낼 방법만 찾아내면 스폰서들이 현금을 무슨 보드게임 돈마냥 갖다 바칠걸요. 그래서 가온 씨는 왜 이 게임하세요? 돈이 궁하신 건 아니라 하셨고.”
“검술 연습하려 합니다.”
“영상 보니까 플레이어들 전투에도 끼시던데?”
“소드마스터가 나온다길래. 잘난 검술 좀 직접 보려고 그랬죠.”
“그럼 소드마스터 상대할 기회가 많으면 좋겠네요? 저 나름 정보통 있어서 소드마스터 나올 만한 데마다 보내드릴 수 있는데.”
“그거 좋은 제안이긴 한데요. 역시 계약으로 묶이는 건 좀.”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흔쾌히 대답하며 여자는 이복동과 지존무쌍을 바라보았다. 지존무쌍은 헤헤 웃었지만, 이복동은 움츠러들었다.
여자가 말했다.
“그런데 가온 씨 능력 좀 볼 수 있을까요? 영상에 나온 그대론지 좀 보고 싶은데······.”
다른 두 명을 고용하겠다면서 왜 이쪽 능력을 테스트하느냐?
가온은 그리 거절하려다 말았다. 남이 꺼낸 제안으로 능력 자랑할 기회는 흔히 오는 것이 아니었다.
“뭐 그러죠.”
네 명이 사격 훈련소에 향했다.
가온은 유명인이었고, 그 입장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 되었다. 반응 또한 뜨거웠다.
“찬양하라! 회장님 납셨다!”
그 시선과 반응들이 부담스러울 만도 하건만, 여자는 태연했다.
여자는 그저 총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정말 그쪽에 쏴도 돼요?”
“예.”
탕 하는 소리, 발사된 총알은 가온이 최대한 대충 휘두른 것처럼 보이고자 노력한 칼질에 맥없이 튕겨 나갔다.
총을 또 쏘았고, 가온은 연이어 튕겨내었다.
이미 영상에서 보여준 일이지만 새삼 탄성을 자아낼 만한 일이었다. 만화에서야 흔한 일이지만 애초에 인간의 동체 시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와 씨발!”
사람들이 박수치는 가운데, 여자도 감탄했다.
“총알을 진짜 튕겨내시네······”
다음은 속사 능력 테스트.
가온을 알아본 사람들이 죄다 몰려온 가운데, 가온은 그들에게서 더 격렬한 칭찬을 끌어내고자 애썼다. 남몰래 입술을 달싹여 헤이스트 주문까지 걸었는데, 설령 이 앞에 마법의 조종인 드래곤이 있었다 한들 그 주문 시전을 알아차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완성된 주문이 그 혈류를 가속시켰다. 연속으로 오른손에 쥔 권총을 쏘았다. 탕탕탕탕탕!
이 훈련소 시설은 게임 배경과 달리 현대적이었다. 사격 표적이 자동으로 오르내리는 것은 물론 장전에서 사격으로 이어지는 속도를 측정하는 기기까지 있었다.
“0.1!”
저게 측정 가능한 최소치임을 고려하면 실제 속도는 훨씬 빨랐을 수도 있었다.
“신기록 훌쩍 넘은 거 아닌가 이거? 노진구급인데······”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가운데, 가온은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이 정도면 합격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당연히 합격 이상인데, 기네스 도전은 안 해보세요? 현대 속사 최고 기록이 0.16초인가 그럴 건데?”
“올림픽도 그렇고, 인간 외 종족은 기록인정 안 해준다더군요.”
“아, 인간 아니셨구나······ 혹시 엘프세요? 마침 이름도 가온이고, 진짜 소드마스터신가?”
가온은 정색했다.
“절대 아닙니다.”
“믿는 신께 맹세코?”
가온은 서둘러 합의를 시도했다.
‘여신이시여?’
여신께서 간절한 부름에 응답하시었다.
‘정녕 네 여신을 팔 셈이냐, 가온아? 은화 서른 냥도 아닌, 고작 설정을 지키기 위해서? 내 대전사의 신앙심이 참으로 놀랍도다.’
‘아······ 죄송합니다.’
‘농담이다. 네 여신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도 좋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회개하겠습니다!’
‘회개할 것까지야. 어차피 내 대전사는 몇 시에 잠들겠단 쉬운 맹세마저 매번 어기지 않느냐? 그에 비하면 별로 대단한 배교는 못 되리니.’
가온은 잠시 사죄 기도를 드린 뒤에 맹세했다.
“맹세코.”
“너무 뜸 들이신 거 같은데······ 아무튼 테스트는 이 정도면 된 거 같아요. 완벽했어요!”
가온이 웃는 가운데, 여자가 이복동과 지존무쌍을 바라보았다.
뒤늦게 저 여자의 목적을 떠올린 가온이 말했다.
“그런데 저 두 명과 제가 꼭 세트는 아닙니다. 그 점 알아두셔야 하는데요. 전 언제든지 이 겜 그만둘 수도 있고, 괜히 저 둘한테 저 꼬시라 하시는 건······”
“그럴 일 절대 없어요! 절대 귀찮게 안 해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여자는 그리 맹세하더니, 두 지구인에게 말했다.
“그럼 두 분, 계약서 쓸까요?”
지존무쌍이 웃으며 물었다.
“직접 만나야 될까요?”
“팩스로 보내도 되긴 되는데. 그냥 메일로 하죠!”
*******
이복동은 메일로 온 계약서를 읽어내렸다.
계약 기간 6개월, 월 400만 원. 보너스 지급 가능.
이복동으로서는 충분히 감지덕지한 계약 내용이지만 만족스러운 계약은 아니었다.
‘계약 자동연장 없음······ 가온도 아니고, 우리랑 장기계약 맺을 이윤 없다 이거지.’
이복동은 이런 계약이 최대한 오래 가기를, 이런 계약을 자기 능력으로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 노후까지 대비하는 것이 이복동의 소원이다.
한참 고민한 끝에, 메일에 적힌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귀찮게 왜 너 따위가 전화하느냐 욕하지 않길 빌며.
다행히 휴대폰 너머 목소리는 친절했다.
오늘 들었던 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이복동 씨? 계약 관해 궁금한 게 있나요?」
“예. 그 전에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저도 당연히 아는 일이지만, 이 계약······ 제가 어디 가면 따라와 줄 누구 보고 제안하신 거잖습니까······”
「뭐 그렇죠」
“이런 스카우트 제안······ 제 능력으로만 받으려면 어째야 할까요? 그러니까, 장기 계약이 가능하려면······”
「글쎄요? 전 잘 모르겠는데. 굳이 추측을 말씀드리자면 용병 몇 명 고용하는 것 이상의 값어치를 홀로 해내야 하지 않을까요?」
“몇 명 이상의 값어치라면······”
「오늘 가온 씨가 보여주신 것처럼 속사 능력을 놀라운 수준으로 단련하시는 건 어때요? 빨리 쏘면 많이 죽일 수 있으니 몇 인분 할 수 있잖아요」
“그런 능력을 갖추려면 사격 훈련을 얼마나 해야 할지······”
“글쎄요. 몇 인분 할 수준 갖추려면 몇 년은 연습해야지 않을까 싶은데?”
이복동은 맥이 빠졌다.
“그런 훈련을 몇 년이나 하긴 좀. 총 잘 쏘는 거, 사회에서 쓸모도 없는데······ 이 게임이 얼마나 오래 갈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훈련이든 뭐든 빠른 기간 내에 할 수 있어야 하는데요. 미래를 대비하게 바짝 돈 모으려면······”
이복동은 그리 말해놓고서 아차 했다. 저 여자에게 투덜거릴 일이 아니었다.
과연 돌아온 대답은 쌀쌀맞았다.
「미래를 신경 쓸 거면 공부를 하거나 자격증을 따야지, 생판 남한테 자기 미래 신경 써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내가 복동 씨 엄마도 아니고」
“죄송합니다······”
「이 게임 끝나면 생활이 막막해요? 전공이나 자격증 없나요?」
이복동은 죽어가는 목소리로, 들릴락 말락 하게 대답했다.
“예······”
「복동 씨 드래곤이에요? 그래서 세월이 성장을 담보하나요?」
“예?”
「나이 먹기만 하면 커지고 세지고 그러냐고요. 이대로 시간 흐르면 에인션트 이복동 되고 그러는 거 아니죠?」
“아니죠, 인간이니까······”
「그럼 뭐라도 해요. 자격증 습득이든 사격 연습이든 간에」
이복동은 울고 싶다 못해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싶어졌다.
분을 삭이는 중에 전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요. 나이 먹으니 잔소리만 느네. 딸한테 이럴 때마다 매번 안 싫은 소리 들었으면서 도무지 고치질 못해. 다시 말하지만 정말 미안해요」
이복동은 차마 저 여자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닙니다······.”
통화가 종료된 뒤, 잠시 엎드려 있던 이복동은 가상현실 게임기기 안에 들어갔다.
가온에게 가서 그 여자가 애까지 있는 모양이라고 알려줄 생각이었다.
오늘 대충 보니 가온은 그 여자한테 친절하던데. 유부녀인 데다 나이도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여자라고 잘 대해 줄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약자가 떠올릴 법한 치졸한 복수였지만, 막상 가온을 찾아가고 나니 그럴 맘은 사라졌다.
검술 교습서에서 가온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쉬지 않고.
‘오전부터 계속하더니······’
열심히 하는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줄은 알지 못했다. 그걸 방해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이복동은 게임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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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아타락시아는 기분이 울적하다.
노인이 흔히 그러듯, 과거의 향수에 젖어 든다.
지금 그녀의 둥지는 여기 이 마천루지만 예전 그녀의 둥지는 훨씬 원시적이었다.
아린 벌판의 아린 산, 그 거대한 활화산에 난 큼지막한 동굴 하나.
거기서 아타락시아는 남편과 함께 어린 딸을 돌보며 살았다.
남편은 호전적이었다. 둥지 주변에 지구 원숭이들이 어슬렁거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아린 산 영주의 자격으로 불법 침입자들을 불태우며 다녔다.
지구인들은 이 골치 아픈 짐승을 둥지째로 짓이기기로 한 모양이었다.
지맥을 뒤흔드는 항공 폭탄 수십 개. 둥지를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남편이 죽었다. 그 배 아래 웅크려있던 어린 딸도.
천상의 과수원에 최초로 감이 열린 이래, 모든 드래곤들은 새끼를 끔찍이 아낀다.
그러니까 아타락시아가 런던과 교토를 불태운 것은 충분한 복수가 못 되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넘게 지난 지금도 아타락시아는 딸을 추억한다. 그녀가 잔소리할 때마다 크롸롸롸 하고 위협하던 조그만 해츨링을.
아타락시아가 계속 눈 감고 있자니, 웬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억을 방해하는 그 목소리에 아타락시아는 화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엄마, 뭐해? 빨리 뽀로로 틀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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