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26화 (26/135)

LV.19 칼잡이 가온 - [1]

4판타지 온라인은 세간에 악명이 자자한 게임이다.

단순히 사행성 게임이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애초에 이 게임을 평범한 사행성 게임으로 취급하기는 어렵다. 가상현실 게임 아닌가. 그것도 현실의 전쟁을 지나칠 정도로 세세히 구현한.

게임의 틀부터가 그렇다. 각 세력 간의 경쟁에서 플레이어 개개인의 활약보다는 전술과 전략, 물자 보급이 더욱 중시된다. 이 게임의 사행성은 물자 보급 과정에 생겨나는 요소일 뿐이다.

그것은 RPG라기보다는 워게임에 가깝다. 간부들의 지휘 능력과 병사 개개인의 숙련도를 시험하고 향상을 유도하는 전쟁훈련.

몇몇 사람들은 이 게임이 아스의 전쟁을 위한 군사 시뮬레이션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러니까, 이 게임을 하는 것은 아스의 전쟁을 돕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사실상 제3차 대전의 발발을 유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개발사 회장은 지구에 원한을 품은 드래곤이며, 얼마 전 장검정권의 집회에도 참석한 바였다. 게임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익이 전부 전쟁 자금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은 누가 봐도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게임 내 플레이어들은 그런 의혹에 관해 어찌 생각하느냐면,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전쟁 시뮬레이션이고 뭐고 무슨 상관인가? 돈이 벌리는데.

그리고 어느 그레이엘프 또한 그런 의혹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게임이 제3차 대전의 발발을 돕건 말건,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

가온이 4판타지 온라인 팬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그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제가 있었다.

소드마스터 흉턴은 정말 죽었나? 아니면 살았나?

- 해치웠나? 해치웠나? 해치웠나? 해치웠나? 해치웠나???

- 아 폭격 좀 한다고 소마 안 죽는다고~ 폭격으로 무조건 죽일 수 있음 하고 그놈 미군한테 백 번은 죽었게?

- 하고 걘 서전트 점프로 1.2km 이동할 수 있어서 그런 거고!!! 흉턴 같은 뚜벅이는 항공폭탄 막 떨구면 그냥 죽는다고!!!

고작 NPC 하나를 죽이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4판타지 온라인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특정 소드마스터를 죽일 경우 게임 내에 다시 생겨나긴 하는가? 다시 생겨난다면 얼마나 시간이 지나서야 그러는가?

이 모든 것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소드마스터도 죽은 적 없는 까닭이다.

웬 소드마스터 하나가 수십만 명의 군대를 가로막아 우승자의 탄생을 저지하고 있는 지금, 그런 종류의 정보는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가온이 유일하게 진실을 안다는 우월감 속에서 댓글들을 확인하던 중이었다.

게시판에서 웬 대화가 보였다.

- 흉턴 정말 죽었으면 죽은 증거 좀 봤으면 좋겠다. 그럼 진짜 안심하고 이 전장 저 전장 다 참가하는 건데

- 근데 뭔 수로 죽은 거 확인함 ㅋㅋㅋ 지금 죽은 증거 보일 수 있음 현실 퓰리처상 감임

가온의 입가가 씰룩였다. 주목받을 기회임을 확신한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잠시 후, 사이트에는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한 소드마스터가 최후를 맞이하는 영상.

예상했듯 반응은 열렬했다.

- 흉턴 킬! 흉턴 킬!

- 테러리스트 쉑 소금 뿌린 민달팽이 됨 ㅋㅋㅋㅋㅋㅋㅋ

순식간에 댓글이 수백 개가 넘어갔다. 가온은 놀라운 동체시력으로 그것들을 읽어내리다가 충격을 받았다.

“내 칭찬은?”

다들 영상을 찍어낸 자신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찍었느냐느니, 정말 잘 찍었다느니 하는 칭송이 우르르 달려야 정상 아닌가.

가온이 분개하던 와중이었다.

여신께서 말씀하시었다.

‘영상의 앞부분을 모조리 편집하여 내 대전사의 분전이 나오지 않은 탓 아니겠느냐? 통탄스럽게도, 내 대전사가 가진바 무력을 숨기는 전개에 심취한 탓이로다. 참고로 네 여신은 그런 전개를 좋아하지 않노라. 곁에서 지켜보자면 실로 답답하기 짝이 없어 감저를 물 없이 여러 개 섭취한 것과 같기에.’

‘여신이시여. 그렇다고 제가 직접 싸우는 부분을 공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랬다가는 제가 소드마스터임을 들킬 것이잖습니까?’

‘비극의 수련자 설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여간 내 대전사는 이백삼십 세가 넘어서도 그 감성이 사춘기 소년의 그것이로다.’

‘그런 이유만은 아니고. 제 신원이 노출되면 행동도 달리해야 해서 그게 좀. 게임에서라도 맘 편히 행동하고 싶은지라······ 여신께서도 아시다시피, 현실에서 저는 맨 모습으로 산책도 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여신께서 잠시 말씀이 없으셨다.

죄책감을 느낀 가온이 말을 이었다.

‘밤이 늦었군요. 이만 잠들겠습니다.’

‘정말이냐, 가온? 오후 열 시밖에 안 되었는데도?’

‘예.’

‘장하다, 내 대전사!’

가온은 정말로 즉시 잠들어 여신의 기쁨이 되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4시 34분이 되자마자 벌떡 일어나 바로 게임에 접속함으로써 여신의 분노가 되었다.

딱 사망으로 인한 접속 불가가 해제되는 시간이었다.

*******

도시에 자기 캐릭터를 등록한 경우, 사망 시 그곳에서 부활할 수 있다.

가온은 원래 자기가 지내는 도시에서 부활했고, 바로 검술 교습소에 향했다.

그리고는 바로 연습을 시작했다.

새벽부터 오전까지 계속, 일 분도 쉬지 않고.

지켜보던 교관이 평가했다.

“자세며 동작이 훨씬 좋아진 것 같은데요. 눈에 띌 정돈데. 뭐 깨달은 거라도 있었습니까?”

“강적이랑 붙어가지고.”

“강적?”

가온은 흉턴과의 대결을 떠올렸다. 그 영상을 편집하면서, 그 결투를 몇 번이고 보았다.

일종의 지침이 되는 결투였다.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지침.

지금까지는 그런 지침이 없었다. 그동안 검술을 열심히 수련해오긴 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기계적인 습관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가온은 이것이 정말 자신에게 도움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어느 때보다 열띤 의욕 속에서 가온은 왼손에 잡은 칼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이미 새벽부터 휘두른 마당이지만, 오후까지 계속. 그 집중력은 교관의 진심 어린 감탄을 자아낼 만한 것이었다.

슬슬 다른 이들이 접속할 시간이었다.

“방가방가!”

“가온 씨 진짜 열심히네!”

접속한 ARMA 회원은 가온에게 씩 웃어주더니, 자기 연습을 시작했다.

가온은 이제 도시의 최고 유명인사였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태도였다.

이미 가온도 ARMA 회원들이 자신을 주목하길 기대하지는 않게 되었다. 가온이 파악하건대, 여기서 검술 연습하는 저들과 일반 게이머들의 생리는 완전히 달랐다.

ARMA 회원들은 다들 현실에서 직장이 있었다. 이 게임에서 돈 벌겠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 게임에서 누가 유명한지는 저들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가온으로서는 나름대로 달가운 태도였다.

계속해서 ARMA 회원들이 접속했다. 그들의 대화가 가온의 귀에 들려왔다.

“이미리 이제 여기 안 온다던데?”

자기 탓, 가온이 움찔하던 차였다.

다른 ARMA 회원이 말했다.

“잘됐네요.”

“아니, 홍일점이 사라진다는데 뭐가 잘됐어?”

“싸가지가 어지간히 없어야죠. 걔 저 노골적으로 무시하잖아요.”

“미리 걔가 널 왜 무시해?”

“지잡대 출신이라고요.”

“아니, 미리 걘 고졸인데?”

“어, 그래요?”

“응. 그런데 걔가 왜 대졸을 무시하겠냐? 뭐 다른 이유 있는 거 아냐?”

“저야······ 모르죠.”

다행히 가온을 추궁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온이 그 사실에 안심하며 계속 검술 수련에 열중하던 와중이었다.

교습소에 손님이 찾아왔는데, 이복동이었다.

수련을 방해받은 가온은 싫은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복동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누가 형 좀 보자는데······.”

“뭐 하는 놈인데 나보고 오라 가라야?”

“스카우트······”

“뭐?”

“스카우트 하고 싶대.”

*******

“소드마스터 하나 죽였다길래 기대했더니······ 어째 영 별로네.”

“드디어 하나 죽은 건데 왜 그리 심드렁하세요?”

“아니, 핵 터뜨리면 소드마스터 죽일 수 있는 거 누가 모르나? 도시에다 대놓고 전략폭격 해버리면 대부분의 소드마스터는 그냥 죽는 걸 누가 몰라? 창의적인 방식으로 처치에 성공해야 가치 있는 데이터지. 핵 터뜨리고 도시 날려가며 죽여봤자······”

“그럼 이번 기록, 전혀 가치 없어요?”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척 보기에 위험한 폭격기들 날아오는데 왜 소드마스터가 왜 도피를 못 했나? 도피를 못 할 만한 이유가 있었나? 폭격기들이 구름에 가려져서 못 봤나······ 뭐 그런 걸 분석하기 위한 참고 자료는 되겠지. 소드마스터들한테 보내주면 나름 전훈이 될 거 아냐?”

“그럼 기록 영상 찾아볼 가치 있는 건 맞죠?”

“응.”

4판타지 온라인의 사건 기록 능력은 강력하다. 몇 시 몇 분에, 어느 장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서버에 고스란히 남는다.

그 기록들을 관리자들은 원한다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관리자로서 직원들은 바로 서버의 영상을 되돌렸다.

달리는 흉턴과 그에 쫓기는 플레이어가 보였다.

“플레이어 하나가 흉턴 유인하는데요.”

“아니, 행동 패턴에 문제 생겼나? 왜 죽자고 쫓아가?”

“위협으로 판단한 거 같은데······ 저 남자가 뭐 그리 위험한진 잘······”

잠시 후, 두 직원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유인하던 남자가 뒤돌아섰다. 그 검에서 회색 재가 물결치는 순간, 둘은 눈을 부릅뜬 채 침묵했다.

폭풍 속의 고요.

약 오 분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함구해.”

“예······. 그럼 이건 폐기······”

“아니······ 보고는 올려야지.”

“누구한테요?”

“회장님께.”

회장이란 말이 나오자 직원은 흠칫했다.

일개 회사원이 회장을 볼 일이 없는 것은 흔한 일이요, 그래서 직원들로서는 같은 회사 건물에 있어도 회장이 다른 세상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 또한 흔한 일이다.

종족부터가 다른, 드래곤을 회장으로 둔 회사들의 경우에는 유독 그렇다.

이곳 회사원들이 딱 그런 경우였다.

레드드래곤 아타락시아. 사회 교과서와 경제 교과서, 역사 교과서에 모두 등장하는 그 에이션트 드래곤을 회장으로 둔 이 회사원들은 회장이란 직함을 신이란 단어와 자주 헷갈리곤 했다.

회장을 저 드높은 천상에 있는 초월적 존재로 느낀단 점에서 특히.

그 유명한 드래곤이 폴리모프 마법을 쓸 수 있어, 평상시에는 평범한 인간 여자의 모습으로 지낸다는 사실은 직원들이 친근함을 느끼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영상 잘 봤어요! 진짜 멋지더라!”

‘스카우트’를 하러 온 인원은 여자였다. 그것만으로도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의 시선을 독차지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 여자는 커스터마이징을 어찌나 잘했는지, 거의 모델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찰랑거리는 금발과 또렷한 이목구비, 자연스러운 미인상. 폴리모프의 달인으로서 게임 커스터마이징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가온이 보기에도 훌륭했다.

지존무쌍도 싱글벙글거리며 여자를 바라보는 가운데, 가온은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영광입니다. 아가씨. 스카우트 하러 오셨다고요?”

“예!”

이 게임에서 스카우트란 누군가의 전속으로 고용되는 계약 제안을 말했다.

대체인력을 쉽게 찾기 어려운 인원, 군 고급간부 출신이나 공군 파일럿 출신들만이 스카우트를 받을 수 있었다. 아니면 그런 고급 인력들만큼 가치가 있는 인원들만이.

그런 고급 인원들을 고용하는 대가는 물론 거액의 봉급이었다.

당연히도, 플레이어들 거의 모두가 바라는 일이었다. 안정적으로 수입을 얻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물론 가온이 바라는 일은 아니었다.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말했다.

“전 좀 그렇습니다. 아가씨. 돈 벌려고 게임하는 게 아니라서요.”

‘아······’

세트로 고용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던 이복동이 실망하던 차였다.

가온이 문득 이복동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친구는 어떻습니까? 이 친구도 잘 싸웁니다. 총 되게 잘 쏘는데.”

여자의 시선을 받게 된 이복동은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저 여자가 왜 자신을 신경 쓸 것인가?

그러나 예상 밖에도, 여자는 이복동에게 나름의 관심을 보였다.

“이 분도 영상에 나온 분이네. 친한가 봐요?”

가온은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이복동을 감동시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복동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여자가 조금 생각하더니,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는 것 아닌가.

“뭐······ 괜찮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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