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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4판타지-25화 (25/135)

LV.19 대전사 가온 - [3]

「막았습니다! 막았습니다! 아무도 안 죽었······ 아, 가온입니다! 소드마스터 가온입니다!」

긴급 속보. TV 속 생중계 방송은 생생하다 못해 호들갑스럽기까지 했다.

덕분에 식당 내 모두의 시선이 TV에 꽂혀있었다.

이복동과 지존무쌍도 마찬가지였다. TV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느라 잠시 식사할 생각들을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오 분이 지나서야 TV 속 상황이 종료되었다.

TV 속 리포터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시청자들이 몰입하도록 일부러 법석을 떨었던 것이 아니라, 정말 동요했던 모양이었다.

「아······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만약 테러가 그대로 성공했다면 제2의 사라예보 사건이 되었을 수도 있죠 이거」

「너무 비약이지 싶기도 하지만······ 또 모르죠. 아시다시피 전쟁은 조건이 갖춰진 상황에 불씨 하나 튀면 바로 일어납니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 다 아시다시피, 지금 별 시답잖은 일로 전쟁 일어나고도 남을 상황이에요」

「예, 그러니까 이번 일 막은 건 전쟁의 불씨를 꺼뜨린 거나 다름없죠. 정말 잘 막아줬습니다. 물론 지구인들을 위해 그러신 것은 아니겠지만, 가온 경께 새삼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정말······」

잠시 후 TV는 무표정하게 서 있는 회색 머리칼의 엘프를 비추었다.

마침 식당에는 꽃다운 여고생들이 있었다.

“씨발, 좆나 잘생겼어!”

꺅꺅거리는 소리들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지존무쌍이 말했다.

“멋있긴 개뿔. 가온 저 귀쟁이 저거 적폐야 적폐. 저 귀쟁이 하나 때문에 몇 명이 고생이야?”

이복동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밥이나 먹지 왜 자꾸 말 걸어······’

애초에 여기 나온 것 자체가 이복동의 뜻이 아니었다.

지존무쌍이 자꾸 만나서 밥 먹자고 권유하는데, 딱 잘라 거절할 용기가 없어서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말투는 자기도 모르는 중에 퉁명스러웠다.

“우리 가온 덕에 돈 벌잖아요.”

“응? 아, 그 가온 말고! 저 소마 말야. 내가 군 시절에도 저 양반 존재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글쎄, 소드마스터가 철조망 자르거나 텔레포트해서 침입해올 경우를 대비해야 한답시고 경계근무를 별 지랄맞게······”

이복동으로서는 말을 받아주기가 고역이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밥 먹는 데만 집중했다.

사실, 맛은 있었다. 친구가 없고 혼자 먹을 용기가 없다 보니 평소에 이런 식당은 와보지도 못했던 탓이다.

그래서 투덜거리면서도 이복동은 제법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쳤다.

이복동이 지갑을 꺼내고 있자니, 지존무쌍이 먼저 계산대에 가 있었다.

이복동이 바라보는 사이에 지존무쌍은 계산을 마치고 돌아와 말했다.

“이제 식후땡하자! 뭐 먹을까. 커피? 아이스크림? 말만 해. 형이 다 사준다!”

이복동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돈 없으시다면서?”

“우리 복동이 먹여줄 돈은 있지!”

그러면서 지존무쌍이 기분 좋게 웃었다.

잠시 후, 지존무쌍은 정말 아메리카노 커피 둘을 사서는 그 값마저 자기가 치렀다.

어쩐지 이복동은 미안해졌다. 문득 생각난, 맘속에 담아두고 있던 것을 제안했다.

“이번에 공로 보상금, 저만 받았잖아요.”

“응? 어.”

“생각해보니 저 대신 우리 전리품 지켜주셔서 저도 많이 돈 번 건데, 공로 보상금 저만 꿀꺽하기 뭐한데요. 절반 드릴까 하는데······”

“음, 됐어!”

지존무쌍이 즉시 대답하자 이복동은 눈을 크게 떴다.

“됐어요? 정말?”

“어. 됐다니까!”

“아침만 해도 자기도 받아야한다며 겜 속에서 장교들한테 막 징징거리셨으면서······”

“아, 그건 돈 있는 놈들한테 뜯어내려 한 거고!”

*******

한국의 국회의원은 심히 저자세였다. 가온을 보자마자 허리 숙여 절하고는 외쳤다.

“여신의 대전사님을 뵙습니다. 저 개인의 영혼에게는 물론 가문 대대의 영광일 것입니다!”

“음.”

“그리고 이번 일을 막아주신 것, 깊이 감사드립니다! 자칫했으면······”

가온은 최대한 무게 있게 손짓했다.

“일단 앉아.”

“예? 예. 감사합니다!”

국회의원은 허겁지겁 자리에 앉았고, 그제야 가온은 살짝 웃었다.

“너무 어려워하진 말고. 편히 하게.”

“그럴 수는······ 제가 신도이자 한참 연하로서 어찌 감히······”

“괜찮네. 난 조선인들 좋아하니까.”

“그거 참······ 영광입니다!”

“알다시피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조선인이었지. 덕분에 이렇게 조선말도 잘하는 거고. 수십 년 만에 다시 조선말을 쓰게 되니 기껍군.”

여신께서 물으시었다.

‘가온아. 왜 거짓말을 하느냐? 내 대전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거의 한국인들과만 대화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왜 그들을 조선인이라 부르는 것이냐?’

‘여신이시여. 당신의 대전사는 수련에만 몰입한 나머지 수십 년째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으며 바깥 일에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설정입니다. 완전 멋지지요?’

여신께서 혀를 차셨지만 가온은 못 들은 척했다.

국회의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이제는 조선이 아니라 한국입니다. 국호가 바뀌었지요.”

“알겠네. 그래, 정정하지. 난 한국인들 좋아하네.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내가 자기네들 적이 되리라 염려하는 건 썩 즐거운 일이 아니야.”

“예? 그런 걱정은 한 적이······”

“아니, 괜히 면담을 요청한 건 아닐 테고. 얼마 전에 정치 집회 참여한 일로 내 의중을 물으려던 것 아닌가? 전쟁에 참여할 것이냐 아니냐.”

국회의원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솔직히, 여쭙고 싶은 일이기는 합니다.”

“그래. 염려를 불식시킬 겸, 국방비를 절약할 수 있도록 말해주자면······ 난 솔직히, 전쟁이 열리건 말건 난 끼고 싶지가 않아.”

국회의원이 반색했다.

“정말이십니까?”

“그래. 하지만 그게 내가 이미 원수를 용서했다는 말은 아닐세.”

“그 말씀은······”

가온은 적당한 이유를 멋지게 꾸며내려다 말았다.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어디부터 복수해야 할지 막막해진 거야. 원수가 너무 많아서.”

“예?”

“역사 공부 좀 했나?”

“예? 아, 예. 나름 공부했지요. 경께 얽힌 일을 얼추 알 정도로는 했습니다. 영국인들이 후긴 내부에 종족 갈등을 조장했죠. 그 상태에서 프랑스인들이 혁명 반군을 지원했고, 후긴의 왕족이었던 그레이엘프들이······”

“대충 맞네. 그래, 내 원수는 지구에도 많고 아스에도 많지. 그중 한 놈은 엘프고. 하이엘프.”

“하고를 말씀하시는 거지요?”

“그래.”

“저희도 그놈 싫어합니다. 요새 그놈이 IS 합류한 뒤로 미군도 난리가 났어요. 아, 물론 엘프들이 분노한 것은 이해합니다. 미국은 세계수를 불태우면 안 됐지요. 이후로 하고 그자는 미국인들을 죽일 수 있을 만한 전쟁이라면 반드시 낍니다. 백 년째 말입니다! 이라크전에도 참여해서······”

“백 년······ 긴데. 그 오랜 투쟁 결과 하고는 미국을 멸망시켰나?”

“아닙니다.”

“당연히 그 복수가 끝나려면 오래 걸리겠지. 아주 오래. 그런데 난? 하고는 미국만 표적으로 삼았는데도 질질 끄는데. 나는 복수해야 할 나라만 둘이요 한 명은 소드마스터잖아. 그래서 내가 어느 쪽부터 복수해야겠나?”

“음······ 전 잘······”

“나도 잘 모르겠던데. 후긴인들부터? 아니면 프랑스인들부터? 그랬다간 원수인 소드마스터는 강하니까 내버려 두고 만만한 것들한테만 복수한다는 소리나 듣겠던데. 모양새 좋게 하고부터 쓰러뜨릴까? 그러려고 했는데, 꼴사납게도 져버렸어.”

국회의원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가온만이 계속 말했다.

“결국 그대로 시간이 흐른 지 수십 년째고. 시작도 하기 전에 주저앉아 버린 셈이야. 이 와중에 새삼 제국주의자들에게 복수할 기회가 생겼느니 어쩌느니 해봤자 영······”

“시간이 흘러 원한은 조금이나마 사라지셨습니까?”

“원한이야 남아있지. 남아있는데, 막상 원한을 갚으려니 다 흐지부지해졌어.”

“그럼······”

“내가 뭘 하기엔 이제 다 귀찮아. 그럴 기력도 없고. 그냥······”

국회의원이 숨죽인 가운데, 가온이 말했다.

“알아서 치고받고 싸우다 싹 다 죽었으면 좋겠어. 지구 놈이고 아스 놈이고 전부.”

어째서인지 말투가 가벼워진 것을 신경 쓸 수는 없었다. 국회의원은 지금 저 엘프와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탁자만을 바라보는 가운데, 가온이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봤는데, 좀 와닿나?”

“예.”

“아무튼 한국 돌아가면 가온은 전쟁 참가 안 할 거라고 전해. 나머지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전하진 말고.”

“예.”

“여신께 맹세할 수 있나?”

“맹세합니다.”

“믿네.”

“그런데, 참마황의 집회에 참가하신 것은 어째서······”

“그건 대충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해서 밥 먹으러 나갔더니 사이비 집회였다고 생각하게. 그런 자리인 줄 모르고 나간 거라고. 알겠나?”

국회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식은땀을 흘리다가 문득 자기 목적을 떠올렸다.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예. 그런데, 친구분 말이 나와서 문득 생각 난 김에 말씀드리자면, 작고하신 친구분······”

“반지성이?”

“예. 그분 묘가 이번에 국립묘지에 생길 예정입니다.”

가온은 눈을 크게 떴다.

“반지성이,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마 아닌가? 심지어 흉턴 경한테 패해서 잡혀간 뒤로 그 시체도 한국에 못 돌아갔을 텐데······ 국립묘지면 국가유공자들 묻히는 곳일 텐데 거기 안장한다고?”

여신께서 지적하시었다.

‘가온아. 지금 그런 말을 하면 설정 오류 아니더냐? 방금까지만 해도 내 대전사의 역사 지식은 약 백 년 전에 멈췄다는 설정이었느니라.’

가온의 동공이 흔들리는 가운데, 국회의원은 억지로나마 웃으며 말했다.

“어쨌건 그분께서 국가유공자임은 분명한 일입니다. 지구인 유일의 소드마스터로서 베트남전에 참여해서는 승리를 홀로 일구다시피 하셨고······ 이쪽에 시체가 없는 것도 맞지만, 그 공로를 기려 어찌어찌 묘를 공식으로 세우기로 했습니다.”

가온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잘됐군.”

“잘된 일이지요. 그래서 말인데······ 다가올 친구분의 기일에 그분의 가장 절친한 친우셨던 가온 경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가능할지요?”

가온은 조금 고민한 끝에 말했다.

“그래, 내 가겠네.”

“작고하신 친우 분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건 잘 모르겠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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