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19 대전사 가온 - [2]
기자가 보기에는 정지된 화면의 연속 같았다. 상황이 진행되는 가운데 자기 혼자서만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해서 본 것처럼. 연속되는 장면의 중간중간을 자신만이 보지 못한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보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었고, 그래서 충격적이었다.
지켜보던 기자마저 기겁하는 가운데, 테러리스트는 아예 혼이 나가버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겁에 질린 테러리스트를 보며 기자는 퍼뜩 직감했다.
특종감이었다. 최대 종교를 향한 마법 테러 시도, 그것을 막은 공개 석상에 모인 비극의 소드마스터······.
지구에서 온 기자는 이 모든 것이 영상에 담기고 있음에 신께 감사를 올렸다.
정말 계시는지 모를 지구의 신이 아닌, 저기 하늘에서 확실히 지켜보고 계실 아스의 신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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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 가온. 네 여신의 위엄을 보였노라. 그 어떤 위협도 네 여신의 권세를 위협할 수 없음이 증명되었나니, 이로써 네 여신의 신도가 수천은 늘리라!’
‘제 팬카페 회원도 아마!’
기쁜 가운데, 가온은 최대한 무표정을 가장하려 애썼다.
지금 가온은 대전사로서 나섰기에 원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회색 머리칼, 뽀족한 귀의 그레이엘프.
역사책에도 여러 번 나온 그 모습으로 이 자리에 섰다.
마법사 테러리스트도 이 유명한 신의 대전사를 몰라볼 수가 없었다. 경악하여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가온은 뒷걸음질 치는 테러리스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기독교인의 테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었다.
아스의 신들은 지구의 종교인들에게 지나친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가끔은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방식으로도 존재를 드러내는 신들.
존재가 증명된 신들. 아스의 신들은 수많았던 무신론자들을 지구평면론자들과 동급으로 취급되게 만들었다. 지구의 수많은 종교인들이 시험에 들게 했다.
시험에 이겨내지 못한 종교인들이 많았다.
수많은 지구인들이 지금까지의 믿음을 버리고 아스의 종교에 귀의했다. 몇몇 지구의 종교인들은 이 과정을 이교의 침략으로 받아들이며 분개하고 있었다. 복수를 결심할 만도 했다.
마법사 테러리스트가 도주를 시도했다.
“「마디쿨 라 솔렘―」”
텔레포트 주문. 가온은 써서 도망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텔레포트는 지나치게 강력한 마법이라, 그 주문을 봉쇄하는 방법은 오래 연구됐으며 결과물 또한 많았다. 가온 또한 텔레포트를 봉쇄할 방법 중 몇 가지를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그중 한 방법으로서 주변에 마나를 흩뿌렸다.
반신의 마나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주변 공간을 순식간에 장악하여 왜곡을 방해했다.
텔레포트에 실패한 테러리스트의 안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텔레포트를 전투에 맘대로 쓸 수 있으면 내가 모든 소드마스터 다 이기고 그랜드마스터라 불리는 건데. 검술 실력 차이고 뭐고, 상대 등 뒤로 계속 텔레포트만 반복하면 무조건 이기니까······.’
딴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온은 여유가 넘쳤다. 저 남자가 뭘 하든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더 뭔가 하지는 않고 지켜보던 와중이었다.
절망에 가득 차 있던 남자의 표정에 미소가 감돌았다.
「끝이군」
남자가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한 많은 나의 아스여, 안녕」
남자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피부가, 살이 모조리 가루로 변하기 시작했다. 소드마스터조차 막을 수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가온마저 조금 놀란 가운데, 테러리스트는 해골이 되었다.
양복을 입은 해골. 영혼을 잃어 축 늘어져 있었다.
“리치였어!”
주변 사람들이 기겁한 가운데, 가온은 상황을 파악하고자 애썼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카샤드 서기장이 보낸 것이겠습니까?’
가온의 물음에 여신께서 대답하시었다.
‘확신할 수는 없다. 모든 언데드가 그 해골의 휘하에 속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리치가 어느 신의 사주를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어느 신이라 하시면?’
‘어떤 신이건. 충분히 이번 일을 사주했을 법하다.’
불과 화로의 여신께서는 천상의 의석을 34.3%나 지닌 대신격이요, 단독으로 가장 큰 발언권을 지니셨지만 그런데도 천상의 모든 일이 여신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전쟁에 관해 주화파인 불과 화로의 여신께서는 소수파에 속하시었다.
나머지 65.7%의 의석을 지닌, 다른 주신들 모두가 주전파였기에.
좌파 신이든 우파 신든 모두 마찬가지였다. 천상의 주신들은 다 함께 분노를 노래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신이건 저 리치를 사주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천상의 신들은 유일하게 전쟁을 반대하는 여신, 그것도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여신의 뜻을 바꾸고 싶어 할 것이었다. 어떻게?
지구 종교인의 테러. 평화주의자를 분노케 하기 충분한 동기가 될 것이다.
웬 언데드 리치에게 순교를 명하기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지성 있는 언데드들은 사후를 두려워한다. 천상에서 자발적인 언데드들의 천국행을 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웬 신이 한 리치에게 접촉하여 천국으로의 입장을 대가로 테러를 저지르라 사주하는 것은 충분히 있음 직한 일이다.
사주한 신으로서는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 비공식적으로나마 언데드들의 천국 입성이 허가된 마당이니.
서기장 카샤드가 배후의 인물일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 리치는 신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 났을 테니까.
그 언데드가 신들의 영향력을 줄이겠답시고 일부러 공산주의를 퍼뜨린 과거의 만행을 천상의 신들은 아직 잊지 않았다. 천상과 화해한 지금, 공을 세워 만회하고 싶을 것이다.
아주 가능성 낮은 일이지만, 정말 순수하게 기독교도로서 저지른 테러일 수도 있었다.
대차원문이 열린 뒤, 언데드 리치들 상당수가 기독교에 심취한 것은 유명한 일이었다. 기독교의 성경에 언데드의 천국 입성을 금하는 문구는 없었으므로.
저 리치는 순수하게, 정말로 순교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고 싶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상상력을 조금 보태기만 하면 그럴듯해졌다.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기에 가온은 여신께 추측을 고했다.
‘지금 보니 아까 화전양면전술이니 지껄인 기자 놈, 저 기자 놈도 아주 수상합니다. 기자들이 무례한 거야 당연한 일이라 쳐도 저놈은 지나치게 무례했습니다. 일부러 신도들을 자극하여 지구인들에 대한 분노를 초래하려는 수작질이 아니었을지요?’
‘물론 그럴 수도 있으리라.’
‘잡아서 흉수를 캐내겠습니다.’
‘아니, 그러지 말라. 가온. 소용이 없으리라. 누가 배후에서 조종했든 일 처리가 그리 허술하지 않을 것이니.’
‘그렇다 해도 무사히 지구로 돌려보내고 싶진 않습니다. 이계의 성녀에게 애국 기자가 일침, 뭐 그딴 식으로 특종 내보내고 인기인 될 거 아닙니까? 그 꼴은 도저히 못 봅니다.’
그러면서 가온은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무신경하게. 그러나 분노를 담아서.
기자들은 이 유명한 소드마스터의 시선을 잘 받아내지 못했다. 모두 안절부절못하며 시선을 피했다.
아까 성녀 앞에서는 그리 당당했던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그 동공이 쉴 곳을 찾아 헤매듯 회전하고 있었다.
‘늙은 성녀는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대전사는 소드마스터라 두려워하는군요. 비겁한 놈. 역시 용서할 수가······’
‘그만. 누군가가 무례를 저질렀을 때 약자가 참아넘기는 것은 굴욕이지만 강자가 넘기는 것은 관용이다. 관용을 보이라. 내 대전사.’
‘그래도······’
‘저자의 발언이 심히 무례했으나 이해할 바가 있기는 했다. 저번 내 대전사의 행보가 네 여신의 신도들에게 불안을 준 것은 사실이니. 평화를 바라는 가여운 자들을 실망 시킨 것도 사실이고. 네 여신이 답을 내릴 필요가 있기는 하리라.’
‘그렇다면?’
‘저 기자의 무례한 질문에 대답을 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도들의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서, 네 여신이 뜻을 전하리라. 가온, 잠시 입을 빌려주겠느냐?’
‘예, 물론.’
가온이 소리쳤다.
“모두 경청하라!”
그리고 연이서, 가온의 입이 다른 말을 꺼내었다.
“「너희 여신이 뜻을 전하노라」”
가온은 굳이 증명하지 않았지만, 그게 천상에서 울리는 소리임을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냥 듣기만 해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지상의 천한 존재들은 저런 뜻을 전할 수 없다.
장관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수십만 명의 인파가 일제히 엎드려 예를 표하는 장면.
그들의 시선은 모두 가온 자신에게 향해있었다.
가온은 너무 들뜨지 않고자 노력해야 했다.
“「너희 여신은 여전히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 너희에게 참전을 명할 일은 이후로도 없으리라. 전쟁의 불길은 화로에 담기지 않는다. 화로는 집안에서 불타야 한다. 너희는 화로 앞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너희 여신의 뜻이다」”
일부는 그 내용을 듣고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일부는 그저 신의 말씀을 들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여신의 대전사가 전쟁을 원한다면, 그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대전사의 복수는 개인적인 권리일 것이며, 너희 여신은 여전히 전쟁을 원하지 않겠으나 그 권리마저 막지는 않을 것이다. 그 권리가 너희 여신이 보기에도 정당하기에」”
여신의 말씀이 남자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지만 이 자리에 엎드려 절한 그 누구도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다.
단순히 엘프의 목소리가 성별과 관계없이 듣기 좋아서는 아니었다. 어색함 따위를 느낄 여유들이 없었다.
정신에 직접 전해지는, 천상의 뜻은 의식을 짓누르듯 선명했다.
“「너희 여신은 이로써 뜻을 밝히었다. 더 의문을 가진 자가 있는가?」”
없었다. 모두 몸을 떨기 바쁠 뿐이었다.
‘잘 빌렸다. 고맙다, 가온.’
‘뭐 이 정도를 가지고.’
여신께서 가온의 몸을 떠나시었고, 모두를 짓누르던 신성한 압력 또한 사라졌다.
이 와중에 아까 가온의 눈길을 받았던 기자는 벌벌 떨고 있었다. 마구 몸을 떨더니, 엎드린 그대로 땅에 머리를 찧으며 외쳐댔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미천한 것이! 미천한 것이 감히!”
분노 어린 신도들의 복수를 피하고자 저러는 것인지, 아니면 놀라운 종교적 체험에 저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건 가온은 만족했다. 감히 무례했던 기자가 굴복해서. 여기 모인 수십만 명 신도가 자기네 대전사를 존경의 눈길로 쳐다보고 있어서. 그리고 한 기자가 벌벌 떨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어서.
마지막 이유가 특히 가온을 만족스럽게 했다.
이번 활약이 기사로 나올까? 아마 그럴 것이다.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이었다.
이 와중에 여신의 대전사에게는 신도만이 아닌 다른 이들의 시선마저 쏠린 채였다. 불과 화로의 여신의 대전사, 그 유명한 소드마스터가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이는 것은 수십 년 만이었다.
기자들이 쭈뼛거리며 다가오더니, 거의 절하다시피 허리를 숙이며 요청했다.
“저기, 가온 경이십니까? 혹시 인터뷰 요청을 드려도······”
맘 같아서는 받아주고 싶었지만, 기자회견에 응하는 비극의 소드마스터는 그다지 멋지지 않을 것 같았기에 가온은 거절했다. 대답조차 없이, 무관심한 듯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으로 끝.
어떤 기자도 끈질기게 달라붙으며 귀찮게 하지 못했다.
가온이 뒤돌아선 와중에도 기자들은 여전히 허리 숙여 절하고들 있었다. 가온은 텔레포트하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여신의 신전 안. 가온은 대전사로서 그 소파 하나를 차지할 권리가 있었다. 최대한 근사한 자세로 앉아있자니 사제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허겁지겁 다가와 시중을 들었다.
“여신의 대전사시여, 제 칭송을 들으소서! 방금은 정말······”
계속해서 말없이 차만 받아마시던 와중이었다.
사제 한 명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가온에게 깊이 절하여 예를 표하고는 말을 전했다.
“미천한 종복이 말씀을 전합니다. 여신의 대전사를 감히 만나 뵙고자 청하는 자가 있습니다.”
가온은 잔뜩 내리깐 목소리로 물었다.
“누군가.”
“국회의원이라 합니다. 대한민국의······”
거절하려다 말고, 가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보겠다 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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