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 소드마스터 흉턴 - [3]
정말로 반가운 모양이었다. 반색하며 바로 달려오는 그 모습, 누가 보면 이쪽을 껴안으려는 연인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리는 껴안으려 하는 게 아니라 칼을 휘둘러왔다.
가온은 가뿐히 피하면서도 질겁했다.
“뭐야!”
“덤벼!”
이미리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실랑이할 때가 아닌데. 가온은 짜증이 솟구쳐 말했다.
“야 이년아. 나 지금 죽으면 사람들 재산 피해 엄청나거든?”
“사람들?”
“싸우러 온 플레이어들!”
“뭐, 등신들 사정은 내 알 바 아니고······”
이 와중에 흉턴이 거리를 좁혀오고 있을 것이다. 또 텔레포트하기에는 마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귀찮다 못해 짜증이 난다. 정말 베어버릴까?
검술의 가르침 따윈 얻지 못하게, 뭔 일이 일어났는지 죽는 쪽으로선 알지도 못하게 단칼에 죽여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간 며칠 꿈자리가 사나울 텐데.
가온이 고민하던 차였다.
싱글거리던 이미리가 입가에서 미소를 거두었다. 그러더니 더없이 진지한 태도로 검을 들어 얼굴의 반을 가렸다.
전투에 앞선 검례(劍禮).
이미리가 선언했다.
“자, 결투다.”
“뭔 결투!”
“아스인이잖아. 결투의 전통 몰라?”
“알기야 아는데······.”
결투와 관련된 전통이 있다. 결투 후, 패배자는 무조건 그 땅을 떠나야 한다.
소드마스터의 존재로 생겨난 전통이기도 하다.
혼자서 군대를 압도하는 소드마스터가 탄생하면 기존의 권력자들은 위태롭다. 권력은 힘에서 나오는 법이요, 소드마스터는 그 어떤 힘보다 우월하므로.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소드마스터가 정권을 탈취하기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정권탈취 과정에서 권력 양도를 거부한 기존 권력자들은 몰살될 것이다.
자비는 없을 것이다. 권좌에 앉은 소드마스터는 후손들에게 안정적으로 권좌를 물려주길 원할 것이므로. 자신처럼 초인이 아닐 후손들을 향한 정권 탈환 시도, 혹은 보복과 같은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 기존 권력자들과 그 일족을 남김없이 제거하는 경우가 충분히 있을 법하다.
인류 역사상 두 번 생겨난 일이었다.
그래서 세 번째 인간 소드마스터가 탄생했을 때, 황제는 멸문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드마스터가 황궁에 발을 디뎠다.
반쯤 자포자기 심정으로, 황제는 찾아온 소드마스터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자신이 이기면 떠나라고, 반대의 경우 자신이 떠나리란 결투였다. 황제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조건을 내걸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건 소드마스터는 결투를 받아들였다.
당연히도 패배한 황제는 일족과 함께 제국을 떠났다.
그 결과, 황권은 이양되었으며 소드마스터는 만족했다. 권력 이양 과정이 나름대로 명예로웠으므로.
그래서 황좌에 오른 소드마스터는 후손들에게 미칠 보복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를 더 잡아 죽일 필요가 없었고, 괜한 피가 흐리지 않았다.
결국 그 결투는 역사적으로 칭송받았으며 이후로 탄생한 인간 소드마스터들에게 모범이 되었고 전통이 되었다. 소드마스터의 탄생과 그로 인한 정권교체를 좀 더 평화롭고 명예롭게 진행하기 위한 전통.
이 전통은 나중에 소드마스터가 아닌 일반 검사들에게도 퍼졌으며, 심지어 지구인들 사이에도 유명해졌다. 현대에 이르러 어느 소드마스터가 독재를 위해 악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면 떠나겠다?”
가온의 질문에 이미리가 되물었다.
“나 귀찮고 좆같잖아. 내 꼴 보기 싫을 거 아냐?”
그렇긴 하다. 앞으로도 계속 덤빌 예정 같은데, 짜증이 솟구치는 일이다. 떠나주겠다면 이쪽으로서는 고맙다.
그러나 정말 쫓아내기는 또 껄끄럽기도 하다.
이미리는 검술 교습소에서 수련을 가장 열심히 하는 인원 중 하나였다. 가온이 봤을 때, 단 하루도 교습소에서의 연습을 빼먹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미리에게, 그 수련장에서 쫓겨나는 것은 단순히 게임 내 도시에서 쫓겨나는 걸 넘어 하루의 중요한 일상이 바뀌는 일일 것이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냐는 말을 축약해서 물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붙고 싶나?”
이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월급 구십만 원인데, 여기 오느라 현금 백오십만 원 썼다.”
“왜?”
“용병 사무소장? 그 새끼한테 돈 주느라. 좆같더라. 덕분에 통장 텅텅 비었고.”
가온이 한쪽 눈을 치켜떴다.
“나 습격하려고 월급 날렸다고?”
“피 토하는 출혈이었지. 그러니까 싸우자, 제발.”
가온은 당황했다. 저 여자가 뭔 생각인지 당최 알 수 없었다.
강해지려고 저러는 것까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겨우 한 번 붙었다고 확 강해지는 것도 아닐 텐데 그걸 위해 생활을 위태롭게 한단 말인가?
물론 그 사정을 헤아려 줄 이유는 없었다. 이쪽도 급박한 와중 아닌가.
가온은 역시 강제로 뚫고 지나갈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결투에 앞서 이름을 밝혔다.
“후긴의 가온.”
이미리가 웃었다.
“인천의 이미리.”
가온이 이미리에게 칼을 겨누었다.
아까 결심한 것처럼 단칼에 베지는 않기로 했다. 헤이스트 주문도 쓰지 않았다. 오거 포션을 마신 것을 감안하여 팔에서 힘까지 뺐다.
저 여자가 이쪽 공격을 보고서 뭔가 배우는 바가 있도록.
과연 배울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어쨌건 바라는 대로 해주었다. 월급 날린 보람이 약간은 있기를 바라며.
그리 힘 조절을 잔뜩 했음에도 소드마스터의 일격이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첫 번째 격돌이 있었을 때, 이미리는 방어를 뚫렸고 두 번째 합에서 검을 놓쳤 세 번째 합에서 목에 칼을 겨눠지고 말았다. 공방에서 밀린 완전한 패배였다.
이미리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숨을 몰아쉬며 한탄했다.
“아, 씨. 졌네.”
가온은 괜히 이번 승부를 무르자거나 없던 일로 하자고는 말하지 않았다. 결투는 신성한 법이다. 그 결과는 좋든 싫든 따라야 한다. 그리 배우고 자랐다.
그래서 자비로운 말을 던지는 대신, 가온은 자기 칼을 던져주며 말했다.
“승자의 권리로 부탁 좀 하나 더 하자. 이거 검기도 버틸 만한 특제 검이거든? 이거 줄 테니까 소드마스터 상대로 시간 좀 끌래?”
이미리가 눈을 크게 떴다.
“소드마스터?”
“뒤에 쫓아오는 놈이 그거야. 소드마스터랑 붙는 경험도 있음 좋지, 응?”
“좋지.”
그 입가에 핀 미소를 보았다. 패배했는데도 즐거워 보인다. 그야말로 젊은이다운 열정이 넘친다.
가온은 생각했다.
‘싸가지없는 인성파탄 미친년이지만 열심히긴 하네.’
그리 이미리를 내버려 둔 뒤, 가온은 달렸다.
잠시 후, 등 뒤에서 이미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감탄이었지만 사실상 단말마였다. 그 외침을 끝으로 이미리는 죽었다. 단 한 합도 버티지 못하고 단칼에 죽었다. 소리를 듣고 알 수 있었다.
‘1초도 못 버티네.’
결국 벌어준 시간 따윈 없었다.
가온은 원망하려다 말고, 멈춰섰다.
생각해보면 계속 도망쳐야 할 이유가 있나?
없다. 도망만 계속해서 시간을 끌어주는 게 플레이어들에게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가온 자기에게 도움 되는 것은 아니다.
검술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면 맞붙다가 죽는 편이 당연히 낫다. 다만 검술 증진의 의욕보다 사람들에게서 칭찬받고자 하는 욕망이 더욱 컸기에 유인이라도 하고자 계속 도망쳤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증진의 의욕이 조금 더 커졌다.
방금 느낀 바가 있다. 웬 미친년은 월급 날려가면서까지 강해지려 발악하는데 소드마스터씩이나 되어 도망만 다니는 건 좀 그렇다는 생각. 그 발악하는 약자를 보며 느낀, 한때 그 여자보다 열정적이었던 소년 시절의 자신.
가온이 뒤돌아섰다.
다가오는 흉턴을 향해, 칼을 겨누며 읊조렸다.
“결투다. 후긴의 가온······”
흉턴은 자기 이름 따윈 읊지 않았다. 계속 달려오며 살의에 불탈 뿐이었다.
“씹네.”
서둘러 녹화 기능을 켰다. 지구인들에게는 과도한 요금을 지불해야만 사용하게 해주지만 아스인에게는 무료로 제공하는 기능 중 하나다.
이제 벌어질 싸움은 앞으로도 다시 보며 공부에 쓰이리라. 그러니까 진지하게.
가온은 원래 오른손잡이다.
검을 든 손을 바꿔 잡았다.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오른손에 검이 닿자마자 검신에 에너지가 씌워진다.
이 세상에서 유일한, 가온만의 검기.
검신을 타고 회색빛 재가 물결처럼 일렁인다. 창문 안으로 들어온 햇살에 먼지가 고요히 모습을 드러내듯, 어둠 속에서 재는 어슴푸레 존재감을 발한다.
이쪽 또한 소드마스터임을 드러낸 상황이지만 흉턴은 신경 쓰지 않는다.
접근해온 흉턴이 칼을 휘둘렀다. 가온은 오른손에 쥔 칼을 찔러 맞섰다.
양 소드마스터가 결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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