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 소드마스터 흉턴 - [2]
칼끝이 피부를 파고든 시점, 흉턴은 바로 반응했다.
앞으로 땅을 박차는 동시에 몸을 뒤틀었다. 칼이 닿는 부위를 바꾸는 동시에 벗어나는 회피였다. 아주 조그만 단서에서도 크나큰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소드마스터의 전투 감각이 발휘된 것이다.
그러리란 것을 가온도 예상했다. 자신도 소드마스터니까.
그대로 칼을 찔러넣었다.
칼이 흉턴의 등을 찔렀다.
어깨를 노리려던 것을 생각하면 썩 좋은 결과는 아니었지만, 아주 나쁜 결과도 아니었다. 자그마하게 상처를 내는 것은 성공했다. 출혈. 생명에 지장은 없겠지만 소드마스터가 상대라면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성과다.
이 와중에 흉턴은 분노하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흉턴은 침착하다 못해 무표정하게, 이 상황에 적절한 일을 했다. 우선 11m로 늘인 검을 휘둘러 주변의 네 명을 마저 베었다.
그리 주변의 위협을 제거한 뒤에야 자신을 습격한 범인을 향해 등을 돌렸다.
한편 여신께서 말씀하시었다.
‘가온아, 동급의 적들과 맞붙음으로써 검술의 증진을 꾀하는 바 아니었느냐? 기습은 검술 증진에 썩 도움될 것 같진 않은데.’
‘그렇다고 정면에서 맞붙기는 좀 그렇더군요. 소드마스터와 대등히 겨뤘다간 사람들 앞에 저 또한 소드마스터임을 밝히는 셈이니까······’
여신께 대답하며 가온은 흉턴을 바라보았다. 그 눈길은 정확히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투명한 와중에도 대충 위치를 짐작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더 모습을 숨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가온이 투명화 주문을 해제했다.
그리하여 소드마스터의 등을 찌른 범인의 모습이 공개되었다. 흉턴뿐만 아니라 저 멀리 있던 사람들의 눈에도 가온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여전히 흉턴은 묵묵했지만, 플레이어들의 경우에는 아니었다.
“와! 씨발!” “키리토가 소마한테 칼빵 성공했어!”
열렬한 환호가 일었다. 하기야 기쁠 만도 할 것이다.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던 와중에 유일하게 피해를 준 상황이니까.
그 환호 속에서 가온은 속으로만 웃었다.
그래, 이 반응을 원했다.
겉으로는 가온 또한 흉턴만큼 무표정했다. 천천히 칼을 흉턴에게 겨누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시간 끌어줄 테니까 다 짐 갖고 퇴각하든 재정비해서 싸우든 알아서 해요.”
“시간을 끌어요? 어떻게······”
“이제 저 양반 나 쫓아올걸? 내가 유인할게요.”
방금 기습으로 흉턴은 자신의 위험성을 아주 크게 평가했으리라고, 그러니까 최우선 표적으로 삼았으리란 설명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흉턴이 바로 덮쳐왔으므로 .
가온은 텔레포트하여 거리를 벌리고는, 부리나케 달렸다.
예상한 대로 흉턴은 가온을 쫓아 달렸다. 멀어져가는 두 칼잡이를 지휘관은 벙찐 채 바라보았다.
겨우 살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던 와중이었다.
“어쩔까요?”
부하의 질문에 지휘관은 조금 고민하고는 지시햇다.
“위에다 보고해. 소드마스터 나타났다고.”
*******
계속 달리던 가온이 건물로 들어갔다. 뒤따라온 흉턴이 칼을 겨누자 가온은 그제야 뒤돌아섰다.
“이제 보는 사람 없지?”
오랫동안 혼자 지낸 사람 특유의 혼잣말. 가온은 중얼거리면서 칼을 들어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덮쳐온 흉턴의 칼을 막아냈다.
쾅 하고, 번갯불이 튀었다. 칼 두 개가 맞부딪쳤다기에는 끔찍한 충격이었지만 싸움을 계속 이어나갈 수는 있었다. 오거 포션으로 얻은 괴력은 소드마스터의 초인적 근력 못지않았다. 게다가 오리하르콘으로 도금한 칼답게 검기에도 버텼다.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한 번의 공격에 실패한 흉턴이 조금 뒤로 물러나더니, 기습적으로 덮쳐왔다.
가온은 여유롭게 막을 생각이었다.
주변은 어둡지만, 흉턴의 칼이 어둠을 사르고 빛나는 덕에 공격을 파악하기는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인간 소드마스터들 특유의 백색 검기. 눈에 아주 잘 들어온다.
소드마스터의 전투 감각이 최선의 수를 알려준다. 지금 이 공격을 막아내고 바로 반격······.
‘젠장.’
예상과 달리, 이쪽 방어가 저쪽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허무하게 뚫리더니 목을 노려왔다.
그 사실을 겨우 파악했기에 목숨은 건졌다.
가온은 피했고, 흉턴의 칼이 이쪽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온은 이를 악물며 생각했다.
못 이기겠다. 이 몸뚱이로는 절대.
그동안은 이 캐릭터의 몸을 움직이면서 별 아쉬운 점이 없었다. 그러나 대등한 상대와 붙어서야 겨우 아쉬운 점을 실감했다.
‘역시 이 정도 스펙으론 안 된다 이거지.’
그 와중에 흉턴이 생각보다 만만하지도 않다. 자신처럼 양민들이나 잔뜩 학살하고 다녔기로 유명해서 검술 면으로 썩 대단하리라 여기지도 않았는데.
막상 붙어보니 실제 몸으로도 질 것 같다.
분함은 잠시, 가온은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가 바로 뒤돌아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흉턴을 유인하기 위해서.
어차피 이기지 못할 것이라면 사람들에게 도움이나 되자는 심정이었다. 그러면 저들은 기꺼이 환호들을 바치겠지.
오늘 들은 환호들은 얼마나 달콤했던가?
자려고 일찍 누워놓고서도 잠들지 못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머릿속으로 그 칭찬들을 계속 복기했기 때문에. 그러다 웃음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지자 아예 밖으로 나와 회상을 즐겼다.
물론 지금 웃을 여유는 없었다.
흉턴의 검은 참마검(斬魔劍)이라 불리는데, 검은 매연을 뿜으며 전염병을 퍼뜨리는 지구인들을 한때 마족(魔族)으로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그 검 특유의 기능은 소드마스터끼리의 결투에서는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 그러나 저 멀리 있는 상대,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상대를 공격하기에는 그 어느 검보다 유리하다.
가온은 자신의 등으로 길쭉하게 뻗어오는 공격을 느꼈다. 황급히 피해냈지만 칼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억······’
아까의 복수인지 우연인지 몰라도 등을 찔렸다. 출혈이 시작되는 가운데 가온은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텔레포트했다.
*******
이미리는 우울하다. 성실하게 일하는 게 아니라 게임으로 밥 벌어먹으려는 족속들은 언제 봐도 거지 같고, 그 거지 같은 놈들이 자신에게 욕을 퍼부어서 더욱 거지 같다.
이 거지 같은 와중에 목적은 이루지 못했다.
밤이 찾아왔지만 이미리를 위해 숙소를 제공해준 맘 좋은 지휘관은 없었다. 그래서 적당히 빈 건물에 들어와 밤을 새고 있었다.
내일 출근해야 하건만, 이 와중에 로그아웃하지 않은 것은 집착 때문이다. 그놈의 아스인 칼잡이를 습격하자는 집착. 밤을 노리려 했더니, 생각보다 순찰과 불침번들이 열심히 일하고들 있어서 시도해보지도 못했다.
결국 이대로 시간을 낭비하게 되나 한숨 쉬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도시가 소란스러웠다.
뭐, 이미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멍하니 앉아있던 와중이었다.
무언가가 다가왔다.
*******
「도움말 :
소드마스터 흉턴 경입니다. 그 어떤 소드마스터보다 지구인에 대한 살의에 넘치는 남자입니다.
손을 들어 그 초인과의 위치를 가늠해보십시오. 엄지보다 작게 보입니까? 큰일입니다. 목숨을 건지려면 지금부터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십시오.
손바닥만큼 커보입니까? 맙소사. 애도를 표합니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추격전이 계속되었다. 한순간 한순간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위기였다.
적은 이쪽보다 빠르면서도 강했다. 심지어 이미 이쪽을 표적으로 발동된 소드마스터 특유의 전투 감각, 절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가온은 같은 소드마스터로서 잘 알았다.
이 와중에도 가온은 나름대로 계속 도망쳐다닐 자신이 있었다.
강적에게 쫓기는 상황, 아주 익숙한 상황이었다.
약 이백 년 동안 가온은 다른 소년들과 함께 다른 세계에서 지냈다.
차원문을 열어주며, 대마법사는 그 세계가 텅 빈 세계라고 말했다. 오직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만이 존재하는 세계라고.
거짓말이었다. 이쪽을 죽이려 드는 온갖 악의가 도사린 세계였다.
괴물들, 신들에게 버림받은 고대의 신성한 괴물들이 있었다.
고대의 전쟁에서 패해 추방당한 바, 억겁에 가까운 세월에 짓눌려 자아를 잃어버린 고대의 신들이 있었다.
그 끔찍한 괴물들 사이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던 생존투쟁의 나날. 자기 목숨만 건지면 되는 게 아니었다. 가온은 무리의 유일한 사제였다. 다른 이들을 챙겨주고 상담까지 받아주어야 했다. 당시 가온은 나이 어린 소년이었음에도 어른까지 몇 명 끼어있던 그 무리의 지도자였다.
가끔은 악몽으로도 추억되는 그 시절, 죽을 만큼 힘겨웠지만 하루하루가 충실했다.
가끔은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느낀다.
지금은 마치 그때로 되돌아간 것 같아 즐겁다.
흉턴이 뒤에 바짝 따라잡았다.
공기 갈라지는 소리. 검기를 두른 칼이 일정 범위를 점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허공에 생겨난 진공이 가온을 끌어당기려 했다. 꼼짝 못하는 와중에 연이어 덮쳐오는 칼날.
‘으······’
가온은 땅을 굴러 겨우 목숨만 건져냈다.
그리 위기를 또다시 넘기고서 어느 건물 안으로 텔레포트했다.
일부러 그 안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 외에 피할 데가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문을 잠가버리고 건물 내부를 달렸다. 그리고 당연한 듯이, 소드마스터는 벽에 통로를 만들어 건물에 들어와서는 계속해서 쫓아왔다.
가온은 또 한 번 텔레포트했다.
단번에 이 층 높이를 건너뛰어 3층으로 향했다. 이걸 쫓아오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겨우 시간을 벌었다.
문득 바깥 상황이 어떻게 되나 하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다 도망 못 쳤나보네. 다 도망치려고 성문에 차량 몰려서 오히려 도망이 늦어진 상황······’
한동안은 더 도망 다녀야 할 것 같다. 기꺼이 그래 주리라.
계속 달려 4층에 닿았을 때였다.
어두운 건물 안, 저 앞에 누군가가 있었다.
적 NPC?
설마. 그럴 리가 없다. 여긴 플레이어들이 점령한 구역 아닌가. 오늘 자신이 직접 점령한 곳이라 잘 알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불이 밝혀져 있었다.
이 건물에서 밤을 새우던 한 여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여자가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이미리?”
“방가방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