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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4판타지-18화 (18/135)

LV.8 총잡이 이복동 - [4]

듣던 대로 쇠뇌를 든 사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팅 하는 소리와 함께 쇠뇌 화살들이 날아왔다.

그러나 화살에 맞아 죽은 소드마스터 따윈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

화살들이 어디서 언제 날아올지를 가온은 저들이 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달리는 그대로, 날아오던 화살을 칼로 툭 쳐서 멈추고는 염력을 실어 적을 향해 되던졌다.

휙 하고 원래 위치로 날아간 화살이 쇠뇌수의 목에 박혔다.

누가 봐도 놀라운 일임을 가온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또다시 날아온 화살을 되던지며 달리면서 적들의 반응을 기대했다.

이 위업에 저놈들은 놀랄까? 기겁할까?

‘아니······’

적들의 얼굴을 바라본 가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기대한 반응이 없었기에.

칼로 화살을 쳐내도, 심지어 되던져 적을 죽여도 적들은 무표정했다.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이전에 보았던 NPC들의 생생함을 고려하면 저들도 이보다 극적인 반응을 보였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교관은 NPC라지만 거의 진짜나 다름없었는데. 그 안내인 NPC도.’

결국 쇠뇌수 다섯 명이 제 화살에 맞아 쓰러진 가운데, 가온은 순식간에 사제 앞에 접근했다.

사제에게 칼을 겨눈 차였다.

그 앞을 막아서는 자가 있었다.

“결투다, 칼잡이!”

남성인데도 잘생기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한 얼굴, 뾰족한 귀.

우드엘프 검객이었다.

「도움말 : 네임드 – 소드 엑스퍼트입니다!

소드 엑스퍼트는 소드마스터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구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온갖 전투에 검 한 자루만 들고서 뛰어듭니다. 경제적 이익이나 명예가 아닌,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이룰 수 있는 검술의 진보를 위해서 말입니다.

당연히도 그들은 검의 달인들이며, 아스의 소드 엑스퍼트들은 특히나 강력합니다.

아스에는 늙어 죽지 않는 종족이 꽤나 있고, 수백 년 수련하여 화살도 튕겨낼 수 있게 된 엘프 검사들마저 여럿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전장에서 만났다면 크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백 년 수련한 검사마저 몇 달 훈련받은 병사의 총알에 평등하기는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그들을 참호 속이나 건물 내부 같은, 근접전이 빈번한 좁은 곳에서 만났다면······ 죽었다고 복창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그 잘난 소드 엑스퍼트마저 가온이 원래 표적이던 사제를 해치는 걸 막아내지는 못했다.

가온이 왼손에 쥔 칼을 뻗었다.

변칙적이다 못해 규칙 자체가 없는 검의 진로엿다. 가온의 찌르기는 엘프 검객의 방어를 빗겨 파고들고 사제의 가슴을 찔러버렸다.

“여신이시여······”

사제가 절명하자 가온이 마음속으로 외쳤다.

‘보십시오, 여신이시여. 당신의 대전사가 명을 완수했습니다!’

여신께서 화답하시었다.

‘장하구나! 내 대전사가 여신의 명에 충실히 따름은 언제나 네 여신을 기쁘게 하노라!’

‘얼마든지 명에 따르겠습니다. 부디 말씀만 하십시오!’

‘그렇다면 기꺼이 명 하나를 더 내리노니, 오늘은 꼭 12시 이전에 자거라! 이 명 또한 완수하여 네 여신을 기쁘게 할 테지?’

가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엘프 검객 또한 묵묵했다. 자기가 지켜야 할 사제가 죽었음에 비통함을 드러내지도, 분노를 토해내지도 않았다.

그저 제 할 일을 했다.

널찍한 곡도를 휘둘러왔다. 힘이 실렸는데도 세련되기 그지없는 사선베기. 가온이 너무나도 쉽게 막아냈지만 엘프 검객은 당황하지 않았다.

무표정하게, 계속해서 연격을 퍼부었다.

가온은 자신을 노려오는 검을 여유로이 쳐내면서 생각했다.

‘오, 제법······’

정직하게 막아내자면 나름대로 수고가 드는 공격이었다. 소드마스터가 그리 평했다면, 그것은 놀라울 정도의 극찬이었다.

한편 사제가 죽었고, 그 사실은 이제 여기서 총을 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그 사실을 알아챈 이복동과 지존무쌍이 제 할 일을 했다. 다다다, 하고 울리는 총소리.

“쇠뇌수들 처리 완료!”

지존무쌍이 외치자 이복동이 복창했다.

“쇠뇌수들 처리 완료!”

그리고 가온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는 정말로 검사 둘뿐이었고, 바라던 상황이었다.

검의 달인은 그 자체로 검술 교재가 된다던가?

요새 검술을 익히는 가온 또한 흥미롭게 상대의 검술을 살폈다.

적이 해오는 모든 동작을 보았다.

찌르기, 베기 같은 기본적인 동작에서부터, 페이크와 카운터를 노리는 온갖 연계 동작들을 눈여겨보았다. 언제든 끝낼 수 있으면서도 방어에 치중한 채 서로의 칼을 연속 부딫혔다.

그러면서 가온은 웃었다. 즐거워서 웃었다.

탕 하는 총성이 그 웃음을 깨었다.

“아, 맞혔다······”

머리에 맞은 총알, 엘프 검객이 쓰러졌다.

가온이 뒤돌아보니 이복동이 든 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니, 왜 쐈어? 잘 즐기고 있는데!”

칭찬받을 줄 알았던 이복동은 어물어물 대답했다.

“오래 끌길래 불안해서, 마침 총도 쏠 수 있게 됐겠다 도우려고······ 미안해요······”

가온은 더 성내려다 말았다. 가온은 일찍이 사제였고, 다른 사람들의 상담을 들어주며 보낸 세월이 약 이백 년이나 있었다.

덕분에 가온은 맘이 꺾인 사람들에게 대단히 관대했다.

“음, 아니. 잘했어. 둘이서 움직이는 중에 적만 맞히다니 확실히 총 잘 쏘긴 잘 쏴.”

“아, 네, 아니 응. 감사······”

이복동이 어색하게 말을 흐리는 가운데, 가온은 속으로 신음했다.

‘이미리 그 여자한테 나만 노리지 말고 이런 소드 엑스퍼트 NPC들이나 찾아서 때려잡고 다니라 권할까 했는데. 지금 보니 못 그러겠네. 생각해보니 아까도 쇠뇌수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실제 전장이면 검사들끼리 정정당당하게 일기토 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을 테니.’

이보다 위층에는 저격수들이 있다고 했다. 그마저 정리하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십 분 뒤, 가온이 오늘 들은 ‘벌써’는 스무 번을 넘게 되었다.

“벌써 나와요?”

지휘관이 신음했고, 가온은 씩 웃었다.

지존무쌍이 허겁지겁 물었다.

“우리 전리품 다 맡아놨죠? 누가 손댄 적 없고?”

“아, 예.”

이로써 오늘의 전투는 끝이었다.

지휘관이 병력을 모아놓고 수고를 치하했다.

오늘, 시가전은 그 어느 때보다 진전되었다고 했다. 이 정도면 내일 혹은 모레 정리되어 도시를 점령할 수 있게 되리라고. 도시의 규모가 큰 만큼 그 점령 가치 또한 크니 보너스를 줄지도 모른다고.

모인 용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자그마한 연회가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미식 또한 완벽히 구현된 게임이었다. 심지어 술을 마시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가온은 오늘의 주인공으로서 이 사람 저 사람이 내미는 축배를 받아마셔야 했다.

“이 분 진짜 현실 소드마스터 아냐? 이름부터가 가온인데······”

“아냐!”

“진짜 아냐? 맞는 거 같은데. 힘숨찐 하는 중이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고백해서 광명 찾아야······”

“아니라고!

그리 즐거워하던 와중이었다. 지휘관이 중얼거렸다.

“소드마스터 말 나와서 하는 얘긴데, 다 이긴 상황이니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야간기습 무조건 막아내야 해요. 자, 야간 경계근무 순번 정하겠습니다······ 다들 직업 프로게이머 맞죠?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 로그아웃하실 분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때 웬 여자가 중얼거렸다.

“진짜 밥 먹고 겜만 하나보네? 엠창 새끼들.”

모두의 시선이 이미리에게 쏠렸다. 기분이 좋지 않은지, 이미리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모두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겨누었다.

곧바로 욕설이 쏟아지던 와중이었다.

“저 여자 여기 대체 왜 온 거야?”

지존무쌍의 말에 가온이 대꾸했다.

“그러게요. 대체 왜 계속 여기 있는 거지? 평상시면 지금쯤 로그아웃할 시간인데, 어째 지금은 로그아웃도 안 하네. 혹시 야간 경계 맡긴 거 아니죠?”

지휘관이 말을 받았다.

“미쳤어요? 칼만 들었는데 뭔 수로 경계를 맡겨? 경계 뚫려서 소드마스터 나타난 상황에 대비 못 하면 진짜 다 끝장나는 건데.”

“뭐 그래서······ 소드마스터 못 오게 대비는 잘하셨나? 보니까 보안은 완벽하드만. 혹시 하수도로 나타나는 거 아냐?”

그 질문에 지휘관은 자신감 넘치게 대답했다.

“그걸 생각 못 했을까 봐? 아예 콘크리트 부어서 막아놨어요. 하수도론 못 들어와.”

“그럼······ 땅굴은?”

“땅굴이요?”

“소드마스터쯤 되면 화강암이든 뭐든 싹 다 검기로 잘라가며 땅속에서 전진할 수 있잖아요?”

“어······ 혼자서 땅굴 파며 수 킬로미터를 전진할 수 있을 거라 이 말씀이십니까?”

“아마. 물론 대단히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어쨌건 가능은 할 겁니다. 그거 대비도 해야 할 거 같은데?”

가온은 진지하게 말했지만, 지휘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해오면 못 막지. 뭘 어떻게 막아요?”

“도시 방비 더 철저하게 한다든가 그럴 순 없고요?”

“의미가 없어요. 애초에 도시 안에 진입하는 걸 막아야 하는 거잖아? 일단 들어오면 그걸로 끝이지.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야간경비나 철저히 해야 해요. 아, 가온 씨는 경계근무 빠지셔도 됩니다. 로그아웃 하셔도 되고. 일등공신은 편히 주무셔야지, 암······.”

그러나 다른 프로게이머들에게 잘 보이길 원했던 이복동과 지존무쌍이 야간경계 근무에 빠지지 않았으므로, 가온 또한 함께하기로 했다.

놀랍게도 수면까지 가능한 게임이었다. 병영에 몸을 누이며 가온이 여신께 기도를 올렸다.

‘기뻐하십시오. 여신이시여. 당신의 대전사가 아직 10시인데도 침대에 눕다니 경이로운 일입니다. 또다시 명을 완수했습니다!’

여신께서는 혼란스러워하시었다.

‘아니, 전자오락에서 잠을 취함에 네 여신은 기뻐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이게 대체······.’

시간의 흐름 또한 구현된 게임이었으므로, 밤이 깊었다.

로그아웃하지 않고 병영에서 자던 플레이어들이 번갈아 일어나 경계근무를 섰다. 그 과정에 예비군들의 불침번에서 보일 법한 느슨함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그 모든 경계 근무는 당직 사령의 지휘하에 철저히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지휘관은 최선을 다한 셈이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휘관은 어떻게든 머리를 더 짜내야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머리를 더 짜내었다 한들 방법은 마땅히 없었을 것이다.

어두운 밤, 도시의 골목 한 귀퉁이에서 바닥이 들썩이는 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들썩이던 바닥이 푹 꺼지고, 구덩이가 생겨나는 것을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그 구덩이에서 칼 한 자루, 방패 하나로 무장한 중년 남자가 기어 나오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었다.

그 칼이 어둠을 사르고 빛나는 걸 막아낼 방법은 더더욱 없었다.

*******

김일성이, 백 살 넘어 젊은 외모를 유지하고 있죠?

본인은 아스의 신들이 자기 항일운동에 감명받아 불로불사의 반신(半神)으로 만들어준 덕분이라 주장하는데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아스 신들이 빨갱이들 얼마나 싫어하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김일성이가 뱀파이어라서 그런 거 아닙니까.

공산계 뱀파이어 양성, 카샤드 서기장이 스탈린에게서 사회주의 주도권을 가져오고자 벌인 핵심 사업인데요.

독재자와 주요 장성 몇 명을 수명 늘려주겠다고 포섭해서, 자기 휘하 뱀파이어 군주와 접선시켜 언데드 뱀파이어로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공산당 독재자 중에 뱀파이어가 유독 많습니다. 차우셰스쿠처럼 자기가 뱀파이어가 된 걸 자랑스럽게 여겨서 아예 관련 캐릭터 사업을 벌이는 경우도 있고, 김일성처럼 그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있고······.

이거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뱀파이어들은 위계가 있는데, 이 위계는 단순히 명령권에 따른 서열이 아니라 마법적인 겁니다. 상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은 하위로선 죽기보다 싫어도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 이 수준이거든요.

그러니까 카샤드 서기장이 제 휘하 뱀파이어 군주를 통해 명령을 내리면, 김일성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겁니다. 2차 한국전쟁을 일으키라 시키든 서울에 핵을 날리라 시키든 뭐든 다요.

뱀파이어 되기를 거절한 소련 역대 서기장들이 괜히 재평가받는 게 아닙니다. 뱀파이어가 된 모택동을 인민의 피를 빨아먹게 둘 수 없다며 암살한 주은래 총리가 괜히 의사로 칭송받는 게 아니고요.

국가원수가 뱀파이어가 된다는 게 사실상 나라 자체가 넘어가는 거니까요. 무조건 막아야 될 일입니다.

뱀파이어라서 이제 늙어 죽지도 않을 김일성이 엘프가 되겠답시고 그 게임에 돈 퍼붓는 건, 상위 뱀파이어의 지배에서 풀려나기 위한 발버둥이라 보시면 됩니다.

당연히 김일성이도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 따르기 싫은 거죠. 왜 그러고 싶겠습니까? 지금도 스시랑 스테이크 삼시 세끼 먹고 있는데요. 2차 한국전쟁 일으키면 네끼 먹을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카샤드 서기장이 전쟁 의지를 보인 지금, 북핵 리모컨이 아스 전쟁광들에게 넘어간 거나 다름없어요. 대단히 위험하다 이 말입니다.

김일성이 그 명령 하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건 우리 안보 이익과도 합치합니다.

지금 김일성이, 게임에 돈 너무 퍼부어서 인민군 계정비 내주기도 버겁다죠? 그 계정비 계속 낼 수 있게 자금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아니, 지금 종북 얘기가 왜 나옵니까? 여러분 모두 알다시피 전 안보를 중시하는 정통 보수······ 빨갱이? 너 뭐 하는 프락치야 씨발 놈아. 너 안 나가? 개씨발것이 어디서 수작질······

(······)

죄송합니다. 흥분했습니다.

아무튼 국민 여러분도 협조해주셔야 합니다.

우승할 승산도 없으면서 혹시 모른다며 그놈의 게임에 비자금 털어 넣기 바쁜 회장님들도 자제해주셔야 하고, 그 게임에서 한국 유저 분들 툭하면 조선인민군 보급기지 털어먹곤 6.25의 원한을 갚았다며 좋아하신다던데 제발 그러지들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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